한국 온 캐리 폴라니 레빗 교수… “고삐 풀린 자본주의, 기초 먹거리에선 손 떼야”
▲ ‘칼 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국내 개소를 앞두고 한국에 온 캐나다 경제학자 캐리 폴라니-레빗 맥길대 명예교수가 23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기자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폴라니-레빗 교수의 아버지인 칼 폴라니는 20세기 초반 시장자유주의에 대안을 제시한 정치경제학자로 최근 ‘사회적 경제’의 이론적 배경 제공자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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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자본> 토마스 피케티에 이어 ‘칼 폴라니 현상’도 벌어질까. 20세기 초반 시장자본주의를 비판한 헝가리 출신 정치경제학자 칼 폴라니 딸이자 경제학자인 캐리 폴라니-레빗(92) 맥길대 명예교수가 한국에 왔다. ‘칼 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소장 정태인)’ 개소식 때문이다.
칼 폴라니(1886~1964)는 이미 50년 전에 숨졌지만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이 드러나면서 경제 민주화와 ‘사회적 경제’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학자로 다시 평가 받고 있다.
24일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센터에 문을 여는 ‘칼 폴라니 정치경제연구소’는 지난 1988년 캐나다 몬트리올에 처음 세운 ‘칼 폴라니 정치경제연구소’ 아시아 지부로, 2008년 프랑스 파리에 설립한 유럽 지부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다.
“지독한 시장 지배 시대… 70년 전 책이 유효”
23일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연 레빗 교수는 아흔이 넘은 나이에 노안까지 찾아왔지만 눈빛만은 초롱초롱 빛났다. 특히 헝가리에서 반전 운동을 했던 자신의 어머니, 일루나 두친스카를 소개하는 대목에선 마치 어린 소녀 시절로 돌아간 듯 들뜬 표정이었다.
“조만간 아버지 전기가 나올텐데 전 어머니 전기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머니가 스무 살이던 1차 대전 당시 헝가리 부다페스트 군수 공장 파업을 주도한 반전 활동가였고 1923년 아버지를 만나 두세 번씩 이민 다니며 파란 많은 삶을 함께 살았어요. 두 사람은 성격은 달랐지만 평등한 관계 속에 신의와 성실이 오랫동안 지속됐어요.”
실제 현재 캐나다 몬트리올 콩코르디아 대학에 보관하고 있는 칼 폴라니 저작물들 상당수는 두친스카가 아니었으면 존재하기 어려웠다. 당시 폴라니는 타자기를 다루지 못해 펜으로만 기록했는데, 두친스카는 남편의 저작물은 물론 편지까지 일일이 타자하고 사본까지 남겼다. 두친스카는 어학 능력도 뛰어나 헝가리 소설 6권을 영어로 번역한 작가이기도 했다.
칼 폴라니는 1944년 시장 경제의 문제를 비판한 <거대한 전환>(홍기빈 옮김, 2012년, 길)이란 책을 남겼다.
“1978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의 문서를 상속해 관리하게 됐는데 그때 뒤늦게 아버지 영향을 받았어요. <거대한 전환> 전에 쓴 에세이를 100건 정도 봤는데, 여러 인물을 만나 얘기하면서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어요.
아버지와 어머니 세대는 1914년 1차 대전으로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 전까지 경험한 유럽은 성공적이고 완벽해 보였는데 1차 대전 이후 유럽 정치경제 시스템이 산산조각 나고 나치와 소련이 등장하고 대공황이 벌어진 거죠. <거대한 전환>은 성공한 문명에서 왜 이런 참사가 벌어졌는지 탐구했어요. 인간과 토지를 상품화해 수요와 공급 법칙에 지배당하도록 만든 게 자본주의의 가장 큰 결함이라고 봤죠.”
아버지를 경제사학자이자 경제인류학자, 사회철학자로 소개한 레빗 교수는 나온 지 70년도 넘은 <거대한 전환>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봤다.
“70년 전에 쓴 책이 21세기에도 의미가 있는 건 지금이 지독한 시장 지배 시대이기 때문이에요. 시장 작동 방식이 우리 사회적 삶에 영향을 주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지배하고 있는 거죠. 19세기 중반과 달리 민주주의가 존재하는데도 불평등은 오히려 더 커졌고 상위 부자들이 부를 축적하고 금융 분야가 암세포처럼 계속 커지면서 산업경제를 먹어 들어가 2008년 금융 위기가 발생한 거예요. 19세기 경제 문명은 완전히 붕괴했는데 지금 자본주의 운영 방식이 계속되면 환경이 파괴되고 지독한 불평등으로 우리 경제가 붕괴될 수도 있어요.”
192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레빗 교수는 영국 런던에서 경제학을 공부했지만 빈곤 문제 등 아버지와는 다른 분야를 연구했다. 하지만 지난 1986년 칼 폴라니 탄생 100주년 행사를 계기로 칼 폴라니 연구소를 만들어 이사장을 맡고, 연구소장인 마거릿 멘델 콩코르디아대학 교수와 함께 아버지의 학술적 성과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다.
멘델 교수는 지난 2013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국제 사회적 경제 포럼(GSEF2013)’에 직접 참석해 칼 폴라니 사상과 사회적 경제의 불씨를 한국에 전하기도 했다(관련기사: “박근혜 창조경제, 박원순 사회적 경제 포용해야”).
“2년마다 국제 학회를 열어 국제적 네트워크를 만든 게 첫 번째 성취예요. 몬트리올과 세계 다른 도시에서 번갈아가며 열리는데 이탈리아 밀라노, 프랑스 리옹, 터키 이스탄불, 멕시코시티 등에서 열고 출판물도 많이 펴냈어요. 또 1990년대 초 캐나다 퀘벡주에서 경제 위기가 왔을 때 실업률이 높았는데 대안으로 사회적 경제 운동이 벌어졌어요. 당시 멘델 소장이 폴라니 연구 작업과 사회적 경제를 결합했는데, 이처럼 이론과 실천의 결합을 이뤄낸 게 두 번째 성취예요.”
“사회적 경제만으로 안돼… 환경 등 사회 운동과 손잡고 가야”
▲ 20세기 정치경제학자 칼 폴라니 딸인 캐리 폴라니-레빗 캐나다 맥길대 교수(맨 왼쪽)와 정태인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장(맨 오른쪽)이 23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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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란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처럼 구성원들의 신뢰와 협동을 바탕으로 효율성뿐 아니라 형평성과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경제로, 영리 위주인 자본주의 경제의 ‘보완재’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당시 퀘벡 인구는 790만 명 정도지만 3000개가 넘는 협동조합 조합원이 880만 명에 이르고, 2000개가 넘는 사회적 기업에서 6만 명이 넘는 일자리를 만들었다.
레빗 교수는 “한국 경제가 지난 40~50년 사이 놀랍게 발전했지만 청년 실업률이 높고 경제 권력 집중이 심하다고 알고 있다”면서 “경제 권력 집중 속에서 경제가 성장하면 불평등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레빗 교수는 칼 폴라니 아시아 연구소 설립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한국,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는 빠른 성장만 강조하다보니 사회와 환경을 파괴하고 있어요. 동아시아에 문을 연 칼 폴라니 연구소가 사회적, 환경적 파괴에 목소리를 내고 동남아시아와 인도까지 확산되면 전 세계 발전에도 기여할 거예요. 앞으로 서양이 몰락하고 주도권을 다른 지역에 넘기는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할 수 있는데, 금융 자본주의에서 벗어나는 경제 시스템을 만들어야 여러 문명이 공존할 수 있어요.”
“사회 보건과 연계된 기초 식품은 상품화 해선 안돼”
레빗 교수는 이날 유독 환경 문제를 강조했다. 칼 폴라니 역시 <거대한 전환>에서 ‘기초식품의 탈상품화’를 주장했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고.
“아버지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가 작동하면 반드시 환경이 파괴될 거라고 지적했어요. 자연과 사람이 상품화 돼선 안 되는 것처럼 기초적인 식품 생산 과정은 상품화 돼선 안 된다는 거예요. 수요와 공급 법칙에 지배당하는 상품 영역에서 빠져야 해요. 기초 식품은 사람들의 건강과 사회적 보건 확보와도 연계되기 때문이에요.”
박원순 서울시장 등이 사회적 경제를 통한 ‘다원적 발전 모델’을 제시한 데 대해 레빗 교수는 “다원적 발전이 경제 논리뿐 아니라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새로운 삶을 창출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사회적 경제 하나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환경운동 등 여러 사회 운동과 힘을 합쳐 무지개 같은 결합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 기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