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 전집이 간행되면서 해묵은 논쟁이 재연될 조짐이 보인다. 그의 친일과 독재 찬양의 전력을 문제 삼는 이들과 그런 것들은 ‘문학 외적인 것들’이고 그가 한국문학에 기여한 바를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는 식이다. 그런데 문학 연구자도 아닌 내가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이번에는 지금까지 간과되었던 시각 하나가 꼭 논의에 추가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그것은 파시즘의 문제이다.
일제에 부역한 반민족적 행위자들에 대해서 지금까지 적용되었던 것은 ‘친일’이라는 민족주의적인 틀이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구한말부터 형성되어 온 ‘친일파’들과 1930년대 이후 일본 파시즘의 전쟁 동원에 적극적으로 나선 ‘파시스트’들을 어느 정도 구별할 필요가 있다. 물론 후자를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맹목적 충성이라는 문제와 떼어내서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이들에게는 이러한 ‘반민족 행위자’라는 문제점 이외에 자유와 평등과 같은 민주주의적 가치를 근본적으로 거부하고 권력에 필요하다면 동원 징발은 물론 대규모 학살도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그야말로 파시스트 사상을 가진 이들이라는 문제점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어처구니없는 사고방식과 정치 철학의 이면에는 파시즘 특유의 온갖 비합리주의 철학으로 점철된, 권력과 허무에 대한 끝없는 매료와 동경의 세계관이 자리 잡고 있다.
1930년대 말에서 태평양전쟁이 끝날 때까지 조선인들에게 ‘성스러운 전쟁’에 나설 것을 독려하기 위해 이들이 조선어로 또는 일본어로 쓴 문헌들을 읽다보면 충격을 받게 되는 문제가 바로 이이다. 그 글을 쓴 이들의 다수는 상황에 밀려 마지못해 그런 담설을 내뱉은 것이 아니다. 이들의 주장 배후에는 본인들의 정신세계에 깊이 내화된 파시즘적 세계관과 철학이 있고, 거기에서 도출되는 나름대로의 정교한 논리가 있다. 다시 말해서 그런 글을 쓴 이들의 다수는 파시즘의 사상과 세계관을 내면화하고 있는 이들이었다는 이야기이다. ‘영미귀축’을 몰아내고 ‘대동아 공영권’과 ‘영구적 세계 평화’를 가져올 ‘황도 철학’과 ‘국민 정신’으로 무장할 필요를 역설하고 또 역설하는 글들이다.
이런 글을 쓰던 이들이 과연 일본이 패망하고 미군이 들어오고 대한민국이 수립되고 난 뒤 하루아침에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열렬한 신봉자들이 되었을까? 그래서 개인이라는 가치와 자유 평등 연대를 위해 몸을 던지는 이들이 되었을까? 사상과 세계관이라는 것이 사람의 정신을 장악하는 방법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아는 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이들은 해방이 된 뒤에도 여전히 파시즘의 사상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새로 수립되는 국민국가의 형성 과정에서 무수한 동포들이 동원과 수탈은 물론 전쟁과 체계적 학살 등으로 부수어져 가는 과정을 내심으로부터 옳다고 생각하여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주도하였다. 제주 4·3에서 보도연맹 사건을 거쳐 1980년 광주로 이어지는 이른바 ‘코리아 홀로코스트’는 그렇게 해야만 설명할 수가 있다.
요컨대 일제 말 조선의 지배층들은 파시즘 사상을 내면화하게 되었고, 이것이 21세기까지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한국의 우익 보수 사상과 세계관을 형성해왔다는 가설이다.
36년의 식민통치에서 겨우 풀려난 1946년의 한국인들에게 하필 재수없게 일본 왕의 문양인 국화꽃을 들이댔던 서정주는 과연 ‘황도 철학’의 신봉자였을까? 문학 연구자도 사상사가도 아닌 나는 판단할 능력이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친일 문학’과 ‘친일 지식인’들의 연구와 논의에 꼭 이 파시즘 문제에 대한 시각이 추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올해 초 시청 앞 광장에서 태극기와 성조기와 심지어 이스라엘 국기가 뒤섞이는 가운데 찬송가가 울려퍼지던 친박 집회를 기억하실 것이다. 대한민국의 보수 우익을 관통해 온 사상은 자유주의도 민주주의도 아니며, 도저히 정체를 알 수 없는 비합리적인 혼돈의 세계관을 뒤에 깔고 있는 파시즘이라고 해야 한다. 그 뿌리를 캐기 위해서는 태평양전쟁 당시의 조선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의 정신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이미 사회과학 쪽에서는 1930년대 만주국의 경험이 박정희 및 만주 관료 집단을 매개로 하여 어떻게 1960, 1970년대의 대한민국에 영향을 주었는지를 논하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서정주 전집의 간행을 계기로 문학 쪽에서도 한국의 ‘자생적’ 파시즘의 역사를 구성하는 논의가 시작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