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인의 경제시평]조금 더 과감한 개혁을
정태인 |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장
“초기에 조금 더 과감한 개혁을 할 걸 그랬어요.” 2012년 대선 경쟁이 시작될 즈음, 문재인 민주당 후보가 중진 학자들을 불러 모았다. 내가 들어서면서 “반대파도 왔습니다(한·미 FTA 반대를 이른 말이다)”라고 인사하자 “반대파는 무슨…”이라면서 문 후보가 덧붙인 말이다.
그랬다. 참여정부는 더욱 과감한 개혁을 했어야 했다. 적어도 불평등에 관한 한, 개혁정부나 보수정부나 비슷한 무게의 책임을 져야 한다. 각각 10년씩 양자 모두 피케티의 β값(순자산 총액/국민소득)을 꾸준하게 자본주의 사상 최고 수준(이전의 최고점은 ‘레미제라블 시대’의 7.5 정도이다), 주요 선진국의 두 배 수준(8.28)까지 부풀렸다.
보통 사람이 근로 소득으로 재산을 모으는 일은 불가능해졌다.
2004년 11월, 고 노무현 대통령은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면서 이를 막으려면 아예 정책기조를 바꿔야 하는지, 아니면 정책 보완으로 충분한지 보고서를 올리라고 지시했다. 이정우 당시 정책기획위원장과 내가 정책기조를 바꿔야 한다는 보고서(“동반성장의 길”)를 만들었지만 “수고했다”는 네 글자와 함께 기각되었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7월에 발표한 “경제정책 기조”는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을 선언했고 나는 “만세”를 불렀다. 무려 13년 만의 일이다. 서민의 소득 증대에 의한 소비 확대와 중소기업을 동력으로 하는 혁신성장은 분명, 과거의 재벌주도 혁신과 부채주도 소비를 뒤엎은 것이다. 개혁방향이 잡힌 것이다. 그러나 ‘과감’하기도 한 것일까?
지난 7일, 이정우 교수는 경향신문 정동칼럼에서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새 정부가 복지국가를 향한 일대 거보를 내디디라는 것이 촛불민심일진대 초대기업에 한정한 법인세 인상으로 2조원 증세 전략을 쓰는 것은 너무 안이한 정세 인식이 아닐까?”라며 우려했다.
법인세는 증세 쪽으로 방향이라도 틀었지만 자산보유세(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는 아직 손도 대지 않았다. 작년 종부세 수입은 겨우 1조4000억원이었으며 금년도 대동소이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 때 과세 대상과 세율, 누진공제액을 대폭 조정했기 때문이다. 2016년 말 기준 토지자산 총액이 6981조원, 주택시가 총액이 3732조원이며 증가속도도 경제성장률의 두 배에 이른다. 그대로 둔다면 앞으로도 피케티의 β값은 계속 커질 것이고 바로 그만큼 아이들은 절망에 빠질 것이다.
내가 실무총괄을 했던 2005년의 5·4 부동산대책을 그대로 시행했다면 금년도 종합부동산세 실효세율은 1%까지 올랐을 테고 당시 추산으로 30조원가량의 세수를 거뒀을 것이다. 지난 대선 때 이재명 후보는 토지에 대해 국토보유세를 부과하여 15조5000억원의 세금을 더 거둬서 모든 국민에게 1인당 연 30만원의 토지배당을 지급하자고 주장했다(자세한 내용은 전강수·강남훈, ‘기본소득과 국토보유세’, ‘역사비평’, 2017년 가을호를 보라). 어느 쪽이든 좋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종부세를 손보든지, 아니면 새로운 국토보유세를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
지난 대선 때 심상정 후보는 “사회상속” 공약을 내걸었다. 2015년 기준 상속증여세 5조4000억원을 20세 청년들에게 고루 배분하면 약 1000만원을 사회가 ‘상속’할 수 있다는 얘기다. 매년 전체 순 자산의 약 100분의 1이 상속증여된다고 가정하면 100조원 남짓이 다음 세대로 넘어간다. 상속증여세의 실효세율이 36.1%나 되는데도 실제 상속증여세가 적은 것은 상속세의 경우 대상자의 2.22%만 세금을 내고 증여세도 10만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상속증여세를 현실화한다면 청년들에게 줄 수 있는 ‘사회상속’은, 예컨대 3000만원이 될 수도 있다.
법인세, 소득세, 부가가치세 등 3대 세목을 모두 손볼 여지가 있지만 자산 관련 증세는 더욱 절실하다. 지금도 시중의 돈은 자산으로, 특히 부동산으로 몰려갈 기회만 노리고 있다. 시세차익과 지대수익률이 월등히 높고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부동산의 수익률이 다른 자산의 수익률보다 낮아지도록 세율을 올려야 하고 세입자에게 증세분을 전가하지 못하도록 임대료 상승을 규제해야 한다.
진정으로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꾸려면, 불평등 심화 경향을 역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 역사적으로 시장만능정책이 부풀어 올린 불평등을 급격하게(평균 7.5를 2.5로) 바로잡은 사례는 두 번의 전쟁과 한번의 대공황이라는 파국의 시대밖에 없었다. 현재의 불평등 경향을 방치한다면 결국 파국에 이를 것이다. 만일 세계를 감동시킨 촛불의 힘으로 부드럽게, 합의를 통해 이 절망의 행진을 멈추게 한다면 바야흐로 우리는 만방의 존경을 받을 것이다. 5년 전 문 후보의 말대로 초기에 과감하게 개혁을 해야 한다. 불평등 심화와 아이들의 희망은 양립할 수 없다.
2017. 12. 11
원문보기_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