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에 나오는 온갖 오디션 프로그램, 이젠 그만했으면 좋겠다. 정치경제학과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에 불과한 내가 오지랖 넓게 대중문화에 대해 발언하는 것을 용서해 주시기 바란다. 처음 한두 개 나올 때는 몰랐는데 이 포맷의 프로그램이 완전히 정착되면서 이 문제가 단순히 좁은 의미의 문화 차원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세대 간 또 노사 간의 권력관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낼 뿐만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정당화하는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끼와 창의성을 한껏 뽐내야 할 젊은이들이 모두 하나같이 나이 많은 ‘아재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단 앞에 얌전히 서서 학예회 비슷한 장기자랑을 펼친다. 그러면 그 ‘아재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거침없이 칭찬도 비난도 심지어 조리돌림에 가까운 폄하까지도 서슴지 않으며, 방금까지 개성과 끼와 심지어 반항 가득한 도발적인 읊조림과 몸짓과 눈빛을 번뜩이던 청년들은 갑자기 두 손을 얌전히 모으고 서서 그 한마디 한마디에 울고 웃는다. 칭찬이라도 몇 마디 던져주면 감읍할 지경이다.
이런 게 대중음악이었나? 1950년대 이후 팝 음악의 역사는 ‘아재들’ 음악 재미없다고 싹 무시해버리고 멋대로 새 스타일을 만든 용감한 젊은이들과 거기에 열광하고 동조하여 ‘아재들’을 왕따시킨 동시대 젊은이들에 의해 계속 새로운 흐름이 출현한 역사였다. 로큰롤, 블루스 록, 헤비메탈, 사이키델릭, 그런지, 펑크, 얼터너티브, 디스코…, 어느 것 하나 예외가 아니다. 그러니 팝 음악에서 ‘아재들’이 인정하고 지도하는 끼와 창의성이란 사실 ‘오빠가 인정하는 페미니즘’과 크게 다른 것이 아니다.
팝 음악은 몇 백년 역사 속에서 고정된 형식과 방법을 가지고 있는 가부키나 노(能)가 아니기에, ‘아재들’이 조언이라고 비판이라고 내던지는 말들이라는 것도 들어보면 별 일관성도 없고 자의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설령 그 말들을 충실히 따라 철저히 숙지한다고 해봐야 잘 훈련된, 하지만 진부하기 짝이 없는 음악인들만 대량생산될 뿐, 톰 웨이츠나 루 리드 같은 개성과 스타일을 지닌 음악인들이 이런 데에서 배출될 리는 만무하다.
그렇다면 이런 오디션 프로의 의미는 무엇일까? 사실 ‘입사 시험’이다. 바들바들 떨고 있는 청년 지원자들에게 면접관들은 거만한 목소리로 서면상의 그 청년과 실물로 앉아있는 그 청년 두 존재 모두에 대해 내키는 대로 별의별 질문과 논평을 쏟아 놓으며, 그때마다 지원자는 깜짝깜짝 놀라면서 자신이 익힌 면접 매뉴얼에 따라 가장 효과적이고 모범적인 대답을 찾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러한 면접 장면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지금 우리 사회의 세대 간 권력관계 그리고 고용주와 구직자 사이의 권력관계가 어떤 것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우리의 TV에 넘쳐나는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은 엔터테인먼트라는 당의정으로 감싸놓았을 뿐, 바로 그러한 입사 시험 면접의 현장을 옮겨놓은 것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서 그 심사위원 ‘아재들’은 생살여탈권에 가까운 권력을 쥔 존재로 옥좌에 앉으며,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들 특히 그중에서도 젊은이들은 이렇게 실업 지옥에 빠져있는 오늘날의 자본주의에서 매일매일 반복되는 입사 면접이라는 잔인한 의식이 정제된 형태로 재현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마음가짐을 다잡고 ‘아재들’의 충고에 따라 최선을 다해 자신을 맞추어 가면 반드시 승리하고 성공하리라는 신화를 마음속에서 재생산한다. 그리고 최종 합격자가 나오면 마치 자신이 합격한 것처럼 짜릿하게 기뻐한다.
연예기획사 입사 시험은 그냥 그 기획사 사무실에서 치르라. 이 어처구니없는 의식(儀式)을 왜 전국 방방곡곡의 국민들이 지켜보아야 하는가. 프로그램의 제작자들은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느끼고 배우기를 기대하는 것인가? 비록 추측이기는 하지만, 이 또한 그 ‘권력관계’라는 것으로 설명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방송사와 몇몇 거대 연예기획사들 권력의 균형추는 후자 쪽으로 기울었다는 소문이 돌게 된 지 오래이니까. 노래도 들리지 않는다. 춤도 흥이 나지 않는다. 경제적·문화적·산업적 권력을 다 거머쥔 ‘아재들’이 청년들을 찍어 누르는, 고용주가 입사 지원자를 찍어 누르는, 적나라한 권력관계만이 보일 뿐이다. 이런 프로그램, 제발 그만보고 싶다.
원글은 경향신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원글 보기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