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인 칼럼] 햇볕정책의 국제화

햇볕정책의 국제화

속도의 완급은 있겠지만 결국 북한 경제는 시장화를 확대할 것이다. 북한이 국제사회로 나오는 것이야말로 김정은의 유일한 활로임을 설득해야 한다.

 

2011년 12월17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뒤를 이어 김정은이 ‘경애하는 최고 령도자’가 된 지 벌써 6년이 지났다. 3대에 걸친 핵실험 여섯 번 중 네 번을, 그리고 63번(116발)의 미사일 발사 중 50번(85발)을 그가 이 짧은 기간에 감행했다. 이제 어느 누구도 조만간 북한이 미국 본토에 이르는 핵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핵·경제 병진 노선’을 내세웠고 이미 ‘핵무력의 완성’을 선언했다. 그렇다면 경제는 어떻게 됐을까? 한국은행이 추정한 북한의 2016년 경제성장률은 3.9%로 우리의 2.8%를 넘어섰으며 그동안 1% 가까운 성장을 했다.

지난 6년간 북한의 경제이론지 <경제연구>는 핵·경제 병진 노선 외에도 ‘새 세기 과학기술혁명(또는 지식산업시대)’ ‘인민 경제생활의 향상’이라는 구호로 점철되어 있다. 최근 북한의 경제 전략은 ‘최첨단 돌파’라는 말로 표현된다. 김정일 시대부터 강조했던 CNC(Computerized Numerical Control·컴퓨터 수치제어) 기술이 마침내 광명성 3-2호의 성공 덕에 우주산업으로 이어졌고 장차 원자력산업에 응용할 수 있는 핵기술 역시 ‘최첨단 돌파’를 이미 증명했으니 이제 북한의 ‘인재대군’을 밑천으로 해서 나노기술이나 생명기술에도 도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도 <경제연구>의 거의 모든 논문이 사회주의 소유제도가 계획과 집단주의 때문에 자본주의보다 우월하다고 선언하고 있지만 그것은 일종의 알리바이처럼 보인다. 2012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연구하라고 지시한 ‘우리식 사회주의 경제관리 방안’의 내용은 현실의 시장화를 기존 이론으로 합리화하고 나아가서 정책적으로 시장화를 대폭 확대하는 것이라 밝혀지고 있다.  

2015년경부터 과거의 ‘독립채산제’는 ‘사회주의 기업 책임관리체제’로 정식화되었는데, 기업이 ‘실제적 경영권’을 가지고 스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다. 재정과 금융에 관한 논문이 부쩍 많아진 것도 시장화에 따른 거시적 조정의 필요성 때문이며, 구체적으로는 20년 시장화로 민간에 쌓인 돈을 국가 기업의 운영에 동원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뿐 아니다. 국제금융 제도나 기법에 대한 소개가 매호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늘어났고 경제특구의 외국인 투자 유치 방안에 대한 조사도 소개되고 있다. 파생 금융상품의 가격 변동을 독자적으로 예측하고, 새로운 파생상품을 설계할 뿐 아니라 이를 조작해서 외화를 벌어들이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평양 조선중앙통신   박봉주 북한 내각 총리가 지난 15일 순천시멘트연합기업소를 시찰했다고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박 총리는 선경칠감공장과 류경김치공장도 방문했다.

 

2002년 ‘7·1 조치’를 주도했다가 보수파의 반격으로 2007년 순천비날론연합기업소 지배인으로 좌천됐던 박봉주가 다시 총리로 등용됐다. 지난해 5월에는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선임됐으며 당 중앙군사위 위원에까지 올라 당·군·내각에서 모두 입지를 굳힌 것도 의미심장하다.


북한은 비핵화 과정을 밟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야심찬 전략은 ‘핵보유국’을 인정하라는 주장과 함께 곧바로 휴지조각이 되고 말 것이다. 2009년 화폐개혁과 같은 조치로 아래로부터의 시장화를 좌초시킨다면 그때처럼 경제위기가 닥칠 뿐 아니라 이제는 책임자 한 명(박남기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의 사형으로 수습할 수 없을 것이다. 속도의 완급은 있다 하더라도 결국 북한 경제는 국제화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나노와 바이오기술의 개발과 산업화 및 당장 절실한 외화 획득을 위해서는 국제제재가 풀리고 국제기구에 가입해야 한다. 결국 체제 안보에 대한 국제적 보장이 진전되는 데 맞춰 비핵화 과정을 밟을 수밖에 없다.

한국도 ‘한반도 비핵화’를 대화의 조건이 아니라 장기 목표로 삼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트럼프와 시진핑을 설득해서 김정은 정권의 안전을 국제적으로 보장하는 방도를 찾아야 한다. 국제사회로 나오는 것이야말로 김정은의 유일한 활로라는 점도 설득해야 한다. 북한 경제가 더욱 발전해서 국제사회에 녹아들면 들수록 한반도 평화도 굳건해질 것이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국제판 햇볕정책이다.

 

 

2017. 12. 20

정태인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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