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개꿈’을 꾸어 보자

‘개꿈’을 꾸어 보자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세상읽기]‘개꿈’을 꾸어 보자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는 그의 역저 <희망의 원리>에서 ‘아직 아니다(noch nicht)’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인간은 항상 꿈을 꾼다. 잠을 자고 있을 때만 꾸는 것이 아니다. 행복한 순간에는 더 행복한 꿈을, 불행한 순간에는 그 불행이 사라지고 극복되어 있는 상태의 꿈을 꾼다.

그 꿈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차가운 현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백일몽 혹은 그야말로 ‘개꿈’일 때가 태반이다.

하지만 그러한 꿈들 중에는 도저히 꿈이라고 잊어버릴 수 없이 너무나 절실하고 간절한 꿈이 있다. 그것이 우리의 간절한, 너무나 간절하고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는 꿈이라면 그것의 실현가능성과 무관하게 우리의 머릿속을 항상 맴돌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이것이 우리의 정신을 완전히 사로잡고, 눈앞의 실제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현실로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된다. 이렇게 된 유토피아의 미래는 분명히 현실이다. ‘아직 오지 않았을 뿐’인 것이다. 

물론 아무리 달려가도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저 멀리의 소실점처럼 그 상태에 실제로 도달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이는 그것을 이미 알고 있는 우리의 마음속에 마르지 않는 희망의 원천이 되며, 우리로 하여금 그 ‘아직 아닌’ 미래로 달려가도록 여러 실천과 행동을 촉발시킨다.

블로흐의 ‘아직 아니다’라는 부정적 형식의 개념을 ‘이미 보이다’라는 긍정적 형식의 개념으로 바꾸어 보자. 쉽게 말하면, 개의 해를 맞아 우리 모두 ‘개꿈’을 꾸어 보자는 것이다. 실업과 불평등과 경제적 불안정성으로 고통을 받는 절반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빈말로라도 새해에는 좋아질 것이라는 덕담을 풀어놓기도 꺼려지는 현실이다. 

어떤 문제들이 존재하고 지금 사용할 수 있는 방안과 해법이 어떤 것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지난 몇 년간 숱한 논의가 있었고 대략의 합의도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서 현실적으로 시도되고 있는 바들도 있다. 

 

나도 손가락을 꼬고서 무언가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동시에 이러한 낯익은 해법들과 낯익은 조치들로 극적인 현상 타파와 새로운 진로의 전망이 터져나올까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갖고 있지 못하다. 지금 우리에게 닥친 여러 도전이라는 것은 기술 패러다임의 대전환이라는 아주 근원적인 차원으로부터 세계 경제의 변화, 기존의 한국 자본주의 모델의 한계, 사회적 문화적 변화, 인구학적 변화 등 어느 것 하나 가볍지 않은 구조적 변화들이 중층적으로 엮이면서 나타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할 일은 한 번 벅차게 ‘개꿈’을 꾸어 보는 일이다.

현실성이라는 이름 아래에 가능한 것의 한계에 대한 우리의 규범적 상상력을 제한하고 옥죄던 것들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정말로 우리 마음속에서 터져나오는 ‘아직 아닌’, 하지만 와야만 할 미래에 대한 파격적 상상력을 맘껏 발휘해야 할 때이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어떤가? 현존하는 대학의 폐지와 더불어 평생 교육과 저비용 보편 접근을 원칙으로 하는 새로운 고등교육 시스템은 어떠한가? 모든 중학교, 고등학교를 기숙학교로 전환하는 것은 어떠한가? 국가가 모든 실업자들에게 최저임금으로 일자리를 제공하는 최종 고용자 프로그램은 어떠한가? 이미 질식 상태로 마비가 되어 버린 수도권을 버리고 가장 미래적이고 이상적인 계획에 근거한 생태도시를 세워보는 것은 어떠한가? 부동산 상속세를 거의 100%에 가깝게 올려서 여기에 국민연금의 일부까지 과감히 털어 넣어 앞으로 노후 세대를 부양할 일꾼인 지금의 청년들에게 기본재산으로 고르게 나누어 주는 것은 어떨까? 어느 규모 이상의 모든 빌딩에는 의무적으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보육시설을 두도록 법제화하는 것은 어떨까? 

12년에 한 번 찾아오는 개의 해이다. 올해는 과감하고 파격적인 상상력으로 다음 12년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갈지 큰 그림을 그려볼 만한 해이다. 적폐청산도 중요하고 대한민국의 턱밑에 닥친 현안들도 엄중하다. 

하지만 2030년 아니 2050년의 대한민국이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장기적인 그림도 필요한 것이며, 이는 이러한 ‘개꿈’이 없이는 나오지 않는다. 올해가 바로 우리들의 미래에 대한 과감한 상상력이 터져 나오는 해가 되기를 빈다.

 

 

2017. 01. 05

원문보기_경향신문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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