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에밀리아 로마냐와 금천구 – 풀뿌리 탁구혁명의 버전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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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의 영화로도 유명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신부님 우리 신부님>.

# ‘신부님 우리 신부님’이라는 책이 있다. 신문기자 출신으로 이탈리아의 국민작가로 통하는 조반니노 과레스끼의 대표작이다. 정확히는 ‘조그마한 세상(MONDO PICCOLO)’ 시리즈 중 ‘돈 카밀로(DON CAMILLO)’를 번역한 소설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의 어느 외진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공산주의자 읍장 페포네와 교구 신부 돈 카밀로 사이에서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사건들을 그렸다. 아들에게 레닌이라는 이름으로 영세를 내리려는 공산주의자 페포네와 이를 막으려고 주먹질까지 마다않는 매력적인 신부 돈 카밀로 등 따뜻하면서도 흥미로운 스토리가 가득하다. 지극히 인간적인 웃음과 눈물이 배어 있다.

# 이 책을 안 읽었다면 동명의 영화를 떠올려도 좋다. 같은 스토리다. 영화의 배경은 브레첼로(Brescello)인데, 바로 ‘협동조합의 천국’으로 불리는 에밀리아 로마냐의 레지오 에밀리아에 위치한 도시이다. 진보 경제학자로 유명한 정태인 씨(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장)는 2011년 ‘착한 것이 살아남는 경제의 숨겨진 법칙’이라는 책에서 에밀리야 로마냐를 소개했다. 이탈리아 20개 주 중 하나로 이탈리아 북동부에 위치한 에밀리아 로마냐는 우리나라 경기도의 2배 면적에 인구는 3분의 1이 조금 넘는다고 한다. 2010년 정태인 소장이 방문했을 때 1인당 GDP는 4만 달러로 이탈리아의 국가 평균의 2배에 달했다. 인구 400만에 40만 개의 기업이 있으니 노인과 어린아이를 제외하면 5~6명에 하나씩 기업을 구성한다고. 이 에밀리아 로마냐, 혹은 ‘협동조합의 수도’로 불리는 주도(州都) 볼로냐는 요즘 한국에서도 핫하다. 재벌독점 시대를 벗어나 협동조합, 사회적기업이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 지난해(2017년) 3월 7일 ‘이제껏 없었던 풀뿌리 체육혁명-금천구 탁구이야기’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금빛나래탁구후원회를 소개했다. 2009년 미성초등학교에서 생활체육으로 탁구를 즐기던 동호인들이 어린 선수들을 후원하면서 시작된 이 모임은 이후 중학교(문성중, 2010년), 고등학교(독산고, 2013년), 실업팀(금천구청, 2017년) 창단으로 이어졌다. 지역 생활체육이 엘리트체육을 선도하는 이 다운톱 방식은 신선하면서도 나름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아예 금천구를 탁구의 메카로 만들자는 안이 나와 2017년 1월 18일 후원회는 번듯한 사단법인(금빛나래)이 됐다. 서울시에서 우수사례로 선정되고, 전국 각지에서 금천구 풀뿌리 체육혁명을 ‘한 수 배우겠다’는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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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나래탁구후원회의 홈페이지 메인화면.

# 그런데 2018년 벽두. 금천구를 기반으로 하는 금빛나래탁구후원회의 활동이 ‘버전 업’에 한창이다. 먼저 지난 해 가을(9월) 사단법인 금빛나래는 ‘지정기부금단체’가 됐다. 같은 사단법인이라고 해도, 지정기부금단체는 격이 하나 위라고 할 수 있다. 이 인가를 받는 것이 생각보다 까다롭다. 어쨌든 보다 활발한 후원이 가능해졌다. 이어 올초에는 금빛나래의 이관수 총무이사를 중심으로 사회적기업 설립이 추진되고 있다. 단순히 후원만 받는 것이 아니라 스포츠를 통한 소외계층 돌봄, 일자리 창출 등 공익적 기업활동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관수 이사는 “이미 1월부터 금빛나래는 유아탁구를 출범했다. 또 노인건강을 위한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쇼핑몰도 시범 운영 중이다. 후원금만 받는 것이 아니라 자생적인 노력으로 생산활동, 기업활동을 하자는 취지다. 대한체육회가 진행하는 스포츠클럽 사업에도 도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 한국사회의 흐름을 바꿔놓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체육계에서 유머처럼 떠도는 말이 하나 있다. “역설적으로 최순실 사건은 스포츠가 돈이 되고,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줬다”고. 사욕을 앞세워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정치권력을 남용한 최순실의 스포츠가 가장 나쁜 쪽에 위치했다면, 금천구 금빛나래의 스포츠는 반대편 가장 좋은 쪽에 놓여 있다. 400명이 넘는 금빛나래의 회원들은 개인돈을 써가며 탁구와 스포츠, 지역의 발전을 위해 뛴다. 뭐를 해도 공익이 먼저다. 심지어 엘리트선수들에게 운동만 잘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인성을 앞세우고, 열심히 할 것만을 주문한다. 그러면서 상급학교 진학이나 취업을 돕는다. 금빛나래의 류희복 회장은 금천구청장 출마를 권유받았지만 ‘내가 돋보이려고 이런 일을 한 것이 아니다’라며 고사했다. 좋은 것은 멀리 이탈리아까지 가서 배워와야 한다. 그리고 우리 주변의 것 역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알고 보면 우리 주변에도 좋은 것들이 제법 있다. 참, 다음 달이면 독산고등학교에 금천구의 탁구전용체육관이 완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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