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와 사회혁신”
- 마거릿 멘델 콩코르디아 대학 교수 기조강연-
지난 10월 서울에서 아시아 최초로 「칼폴라니국제학회」가 개최되었다.
이번 호 특별기획에서는 「칼폴라니국제학회」 현장을 스케치하고 캐리 폴라니 래빗 맥길 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와 마거릿 멘델 콩코르디아 대학교수의 기조강연을 소개한다.
일시 2017년 10월 14일 본지는 연사의 동의하에 캐나다 칼폴라니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인 마거릿 멘델(Marguerite Mendell) 콩코르디아 대학 교수의 「제14회 칼폴라니국제학회」 기조강연 전문을 소개합니다. |
사회혁신의 핵심은 사회변화에 기여하는 것
지난 며칠 동안 우리는 사회혁신과 사회적경제에 대해 많은 논의를 했습니다. 사회적경제라는 것은 사회혁신의 한 예로 이야기되었고요. 그런데 사회혁신에 대한 정의는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는 30년 동안 퀘벡에서 사용했던 개념으로 사회혁신을 정의하도록 하겠습니다.
30년 전 캐리1) 와 함께 칼폴라니정치경제연구소를 설립하면서 저희는 사회혁신이란 개념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땐 오늘날처럼 사회혁신이란 단어가 유행하기 전이었지요. 당시 저희는 사회혁신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혁신은 조직적일 수도 있고, 제도적일 수도 있고,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가 될 수도 있다. 단 그 무엇이 되었든 사회혁신은 사회변화에 기여해야 한다.”
혁신을 이야기할 때에는 구체적인 내용뿐 아니라 그것이 지닌 체계적인 영향력도 함께 봐야 한다는 것이지요.
제가 사회혁신을 이 같은 개념으로 사용할 때에는 정책적인 맥락에서 말씀드리는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정책이야말로 사회변화에 있어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핵심이라고 보기 때문이지요. 정책 입안과 이행에 있어서 혁신이 없다면 경제민주화를 위한 제도적 역량은 아무래도 발휘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연구자로서 사회혁신과 사회적경제가 전 세계의 공공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어떻게 실천되었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경제 이니셔티브를 기록하면 공통의 패턴을 도출하고 사회경제적인 변혁의 영향을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칼 폴라니, 사회혁신 연구에 이론적 접근법을 제시하다
칼 폴라니는 사회혁신과 사회적경제에 대한 이론적 틀을 마련하며 이 같은 연구에 적절한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광범위한 역사적, 제도적 기본을 바탕으로 맥락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주체성에 대한 연구인데요. 목적의식적인 행동은 때로 기존의 제도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세 번째는 실체주의적인 접근법입니다. 경제 또는 조달 체계가 어떻게 시공간에 걸쳐져 조직화되는지 설명하는 것이지요. 현재 사회혁신과 사회적경제를 이론화하기 위해 진행하는 연구들은 이와 같은 접근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첫 번째 접근법부터 살펴볼까요? 제가 종종 사용하는 폴라니의 인용문이 있는데요. 『인간의 살림살이 (The Livelihood of Man)』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따라서 학자의 이론적 과제는 광범위한 제도적·역사적 토대를 바탕으로 인간의 살림살이에 대한 연구를 정립하는 것이다. 연구에 사용할 방법은 사고와 경험의 상호 의존에서 얻는다. 자료의 참조 없이 구성된 용어와 정의는 무의미하며, 우리 시각으로 재조정하지 않는 사실을 단순히 수집하는 것도 쓸모없다. 이 악순환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개념적 탐구와 경험적 탐구가 함께 발맞추어 진행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의 지속적인 노력을 위해 이 탐구의 여정에는 어떤 지름길도 없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2)
폴라니가 말하는 ‘제도화된 경제 프로세스’의 개념은 사회혁신과 사회적경제의 목적성과 관련됩니다. 목적의식적으로 조직적, 제도적인 문화를 바꿔놓고 있고, 목적의식적으로 인간사회의 경제를 바꿔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칼 폴라니는 두 번째 접근법의 핵심인 주체성, 즉 시민의 행동 그리고 사회의 운동이야말로 사회의 변화를 촉진한다고 말합니다. 그가 ‘문명론’ 내지는 ‘유기적 지속성의 신조’라고 부르는 게 있는데요. 이는 사람들의 특정 행동력을 제한합니다. 사회혁신은 이처럼 수많은 진보적인 영역에서 사회, 경제, 시민사회 행동가들이 어떻게 공동의 전략과 해결책을 기획하는지, 그 기획을 통해 어떻게 다양한 도전과제에 대처하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두 번째로 살펴볼 인용문에서 칼 폴라니는 ‘인간의 주체성’ 즉 ‘인간의 역사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인간의 역량’에 대해 말하고 있지요.
“인간의 제도에서 의도적 변화가 맡는 역할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마음과 정신의 힘에 대한 신뢰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무의식적으로 성장하는 지혜에 대한 신비로운 맹신으로 인해 인간이 자신의 변화하는 제도 속에서 정의·법·자유의 이념을 다시금 구현할 자신의 힘을 약화시킬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3)
사회혁신과 사회적경제 이론화에 있어서 칼 폴라니가 제시하는 세 번째 접근법은 바로 실체주의입니다. 이는 모든 사회에서의 경제적인 조달체계를 지칭하는 것이지요. 칼 폴라니는 형식주의자와 경제인류학에 대해 신고전학파와 논쟁을 하는 과정에서 실체주의 학파를 형성하게 됩니다.
오늘날의 사회혁신과 사회적경제는 매우 다양한 문화적, 정치적, 제도적 맥락 속에서 대두되었는데요. 힘의 역학 관계, 정치적·문화적 제도, 인구, 사회경제적인 조건 등에 있어 획기적인 변화의 개방성 또는 한계성을 규정하고 있지요.
기존의 기획이나 정책 등은 지역적 차원뿐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도 일관성의 결여로 실패하곤 했습니다. 바로 그 실패 때문에 사회혁신과 사회적경제가 대두된 것이고요.
오늘날 사회적경제를 이해하기 위한 다양한 맥락
그럼 지금부터 오늘날 사회적경제가 어떻게 정의되고 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사회적경제를 이야기할 때 주로 기업, 조합, 비영리 법인 등을 중심으로 논의를 이어갔습니다. 사실 비영리기업이란 것은 전혀 새로운 형태의 조직이었지요. 기존에 존재했던 비시장조직들과는 달리 상업적 활동을 추구하지만 비영리조직을 지칭하는 독특한 형태의 기업이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있었던 사회적경제에 대한 수많은 논쟁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만, 사회적 기업, 사회목적 비즈니스, 사회적 기업가 정신 등의 새로운 개념이 대두되면서 사회적경제에 대한 논의가 더 복잡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 새로운 조직들이 사회적인 목적을 추구하며 주로 사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그 맥락을 살펴보면 영국과 미국의 경우, 복지국가의 필요성이 증대되는 상황에서 공공 서비스 체계가 부족했기 때문에 이 새로운 기업 형태가 나타나게 되었지요.
하지만 유럽의 맥락은 좀 다릅니다. 아시아의 맥락도 점차 변화하고 있고요. 특히 한국의 경우 더 더욱 그렇습니다. 사회적경제는 이제 국가와 함께 가고 있습니다. 서울시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 있지요. 새로 구성된 한국의 중앙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앙정부는 현재 사회적경제에 대한 지원을 약속하고 있는데, 이는 기존의 영미권식 접근법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는 시도라 할 수 있지요.
공공정책의 공동건설을 통해 이룬 퀘벡모델
그럼 우선 제가 가장 잘 알고 있는 퀘벡의 상황과 경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퀘벡에서는 사회적경제가 제공하는 사회서비스가 공공서비스를 대체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사회적경제는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모두가 놓치고 있는 새로운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요. 다시 말해, 공공부문에서 기존에 제공하던 서비스와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돌봄 서비스나 노동시장편입 등은 보통 공공의 재정 하에서 (부족하긴 합니다만) 운영됩니다. 서비스는 공동으로 생산되지요. 공공에서 보조받은 자금은 집합적기업이 전달합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정책들은 사회·경제 행위자들과 관련 부처들 그리고 집합적으로 조직화된 사회적경제 이해당사자들이 함께 참여해 공동으로 기획합니다. 그래서 퀘벡의 경험이 오늘날 사회혁신을 둘러싼 운동을 사실상 예견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지요.
몇 년 전 통계입니다만, 퀘벡에서는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7천여 개의 집합적기업이 21만 명을 고용하고 있습니다. 매출은 약 4백억 달러로, 그 비중은 건설, 항공, 광업을 모두 합친 것 보다 훨씬 더 큽니다. GDP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퀘벡에서는 첨단 기술, ICT, 웹디자인, 식량, 주택, 문화, 관광, 에너지 등 모든 분야에 사회적경제가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보면 평행을 이루는 또 하나의 경제체제가 형성된 것이지요.
그리고 그 모든 부분들의 총합은 사회의 것입니다. 사회적경제는 경제민주화라는 비전을 갖고 있지요. 그래서 퀘벡의 집합적기업들은 모두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지역공동체에 힘을 부여하고 지역공동체의 발전을 도모함으로써 경제민주화에 대한 패러다임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지요. 이는 퀘벡 사회적경제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 여러 곳에서는 기업 자체를 중시하는 등 사회적경제에 대한 접근이 이와는 또 다르게 나타나지요.
퀘벡 사회적경제의 또 다른 특징은 노동운동과 함께 긴밀히 움직인다는 점입니다. 노동운동은 사회적경제에 아주 깊이 참여하고 있어요. 학계와 모든 교육기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에는 ‘지식공유지(Knowledge Commons)’라 불리는 지식이전센터도 만들었지요. 지식이전은 보통 수직적으로 이루어지지만 이곳에서 추구하는 방식은 좀 다릅니다. 학계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지식이 이전될 수 있도록 연구자와 활동가들 사이에서 순환적인 지식이전을 추구하는 것이지요.
퀘벡에서 사회적경제는 하나의 운동입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노동운동은 정말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요. 사회적경제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혁신적이고도 매우 중요한 금융의 틀을 개발해냈고, 급변하는 노동시장에서 맞닥뜨린 과제들도 함께 풀어나갔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퀘벡에는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직들이 함께하는 ‘네트워크의 네트워크’ 『샹티에(Chantier de l’économie sociale)』가 있는데요. 샹티에는 사회, 경제, 환경 등 모든 이슈에 대해 정부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율성을 고수하며 절대 정부와 타협하지 않아요. 지금도 현 정부의 긴축재정 정책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지요. 샹티에의 설립자 낸시 님탄(Nancy Neamtan) 고문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그냥 반대를 하는 것이 아니다. 제안도 하고, 반대도 한다.”
퀘벡의 사회적경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정책설계 과정에서의 파트너십입니다.
2013년에는 퀘벡시 의회에서 만장일치로 「사회적경제 기본법(Framework Legislation for the social economy)」도 통과되었어요.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만, 모든 부처들이 사회적경제를 충분히 인식해, 각각 부처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우리와 협업하며 지원책을 내놓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퀘벡의 사회적경제 생태계는 다른 나라에게 롤 모델이 되고 있는데요. 하지만 퀘벡모델은 그만의 맥락 속에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일종의 뼈대는 제공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회적경제 생태계의 청사진을 마련해 줄 수는 없습니다. 퀘벡모델은 또 혁신과 학습과 적응의 결과라고도 할 수 있어요. 퀘벡에서의 여러 성공요인은 세계 여러 곳에서 우리가 배운 혁신적인 요소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퀘벡모델에도 한계가 존재합니다. 바로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간 정책적 일관성의 결여’이지요. 하지만 지금은 이 같은 정책적 일관성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충분히 생긴 것 같습니다.
우리 앞에 놓인 여러 장벽들은 정치적 의지가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제도적인 문제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퀘벡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정책 형성과 이행에 있어서 사회혁신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것이고요.
그렇다면 사회적경제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핵심은 ‘공공정책을 공동건설’하는 것입니다. 정부와 함께 일하는 것이지요. 몇 년 전에 제가 낸시4) 와 함께 쓴 논문이 있는데요. 이 논문에서 저희는 1970년대 이후의 관련 정책들을 쭉 나열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회적기업을 가능하게 했던 정책들의 목록을 정리해보니 모든 것이 다 공동기획 되고 공동구성 되었던 것들이었습니다. 정부도 이 같은 방법을 수용했기에 가능했던 일이고요.
융합과 교차 그리고 사회혁신
사실 여러 차원에서 융합과 교차야말로 사회혁신과 사회적경제의 담론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존 듀이(John Dewey), 부루노 라투르(Bruno Latour), 크리스 프리먼(Chris Freeman)이라는 세 명의 아주 중요한 사회 사상가들이 있는데요. 보통 이 세 사람의 이론을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하는 경우는 없습니다만, 이들의 이론을 같이 놓고 보면 ‘왜 여러 개별 학문에 걸쳐서 그리고 정책에 걸쳐서 전 세계적으로 사회혁신과 사회적경제가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존 듀이는 1927년, “제도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가장 어려운 문제들이고, 이러한 것이 바로 공공의 문제들이다.”라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부루노 라투르는 「국가처럼 사고하기( How to Think like a State)」라는 논문에서 “먼저 알고 그 다음에 행동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단 행동하고 다시 행동하기 전에 무언가 또 다른 지식을 습득하는 경우가 더 많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크리스 프리먼은 혁신과 혁신 시스템의 경제학을 다루는 중요한 이론가인데요. “혁신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과학자, 기술자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아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경제학자들이나 사회과학자들에게만 남겨놓아서도 안 된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세 명의 중요한 사회 사상가들로부터 나온 인용문들은 혁신의 장벽으로 작용하는 (부처 이기주의 같은) 공공기관의 행동구조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오늘날의 복잡한 도전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급진적인 제도적 변화가 필요한 것이지요. 바로 이 지점이 사회혁신과 사회적경제가 교차하는 지점입니다.
사회혁신은 실천과 긴밀한 연결을 맺고 있는 지식입니다. 그래서 실천적으로 이해해야 하지요. 흔히 혁신을 기술적인 혁신으로만 이해하곤 하는데요. 조지프 슘페터(Joseph Alois Schumpeter)는 “기술적인 혁신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문화적 환경과 사회적 혁신이 필요하다.”라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사회혁신은 혁신의 절차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제품이나 사회적 변화는 물론 그것이 모방이나 복제를 통해서 어떻게 확산되는지도 포괄하고 있지요.
퀘벡의 사회적경제 생태계를 살펴보면 중간에 정부가 있고, 네트워크의 네트워크인 샹티에가 있고, 여러 지역적 차원에서의 사회적경제 주체들이 있습니다. 샹티에는 노동훈련과 경영에 대한 지원 등 다양한 서비스를 하고 있고요. 무엇보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정책이 모든 분야에 퍼져 있다는 것입니다. 정부와 샹티에와 여러 주체들이 협업함으로써 「사회적경제 기본법」 등의 틀을 마련한 것이지요.
여기서도 역시 중간에 사회혁신이 존재하는데요. 사회혁신이 실제로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경제학, 정책, 사회과학연구 그리고 시민사회의 모든 것을 다 아우르는 통합적인 전략이 필요합니다. 융합과 교차 그리고 사회혁신은 근본적으로 상호 연결되어있는 개념입니다.
사회혁신과 시민사회의 참여
저는 사회적경제와 사회혁신에 있어서 시민사회의 참여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정책과 사회혁신이 정치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를 해보았는데요. 이와 관련해서는 EU를 비롯한 많은 곳에서도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일례로 요즘 랩(lab)이라고 칭하지요? EU 회원국들 사이에서 정책랩이 대두되고 있어요.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덴마크의 ‘마인드랩(Mindlab)’입니다. 공공사회혁신 사례로 알려져 있는데요. 시민들이 새로운 공공정책의 설계과정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랩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유럽집행위원회에서는 공공부분에서의 혁신에 대한 랩핑을 통해 「사회혁신: 사회변화의 동력(Social Innovation: Driving Force of Social Change or SI)」이라는 보고서를 냈지요. 이 보고서에서는 교육, 고용, 환경과 기후변화, 에너지, 교통과 이동성, 빈곤퇴치, 보건과 사회서비스와 지속가능발전의 7개 정책분야에서 1,000건의 사회혁신을 분석했습니다. 5개 대륙 80개국에서 연구를 진행하며 아이디어의 창출과 이행, 확산, 제도화의 모든 과정을 분석한 것입니다. 맥락은 굉장히 다양하지만, 어쨌든 이 연구는 사회혁신 접근법을 도입할 때 모든 정책 분야를 다 포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사회혁신이야말로 유비쿼터스한 개념(ubiquitous concept)이 되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 연구는 또 시민과 사용자의 참여가 굉장히 중요하며, 새로운 형태의 거버넌스가 도입되고 있고, 이 거버넌스 안에서 각계각층의 정보들이 다양하게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도 보여줍니다.
저는 지자체가 좀 더 많은 자율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시민들과 더 긴밀하게 대화하고, 시민들의 요구를 제대로 규명함으로써 이를 가능하게 할 중간조직들을 제대로 지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이 부족한 자원이 장벽이 되지만요.
『영 파운데이션(Young Foundation)』이라는 재단이 있는데요. 사회혁신에 대한 연구를 주도하고 있지요. 최근에는 「제도적 인프라를 재혁신해야 한다(re-innovate institutional infrastructure)」라는 보고서를 낸 바 있습니다. 이 보고서에서는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함으로써 새로운 아이디어를 충족시켜야 하고, 그래야만 오늘날의 도전과제인 복잡성을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어요. 사실 기존의 정책은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를 잘 분석해내지 못하고 그저 사무적으로 상황을 완화하는 데만 급급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거대한 변화를 위한 거대한 기획을 시작할 때
이제 사회적경제 현장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고 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미국, 퀘벡, 유럽 그리고 서울에서 어떤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현상들이 어떻게 자체적인 전략을 형성해내고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내는지, 이를 통해 어떻게 사회혁신을 촉진하고 공공정책에 영향을 미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정부에는 제도화된 구조가 있고, 이를 변화시키는 건 무척 어렵습니다. 의지의 부족이라기보다는 너무나 뿌리 깊기 때문에 이 제도를 바꾸는 건 매우 더딘 작업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시민사회활동가들이 더 민첩하게 움직여서 정부에 압박을 가해야할 것입니다.
서울은 사회혁신에 있어서 훌륭한 사례이지요. 박원순 시장이 당선되면서 이와 같은 활동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몇 달 전 한국에 왔을 때 「다시세운」을 방문했는데요. 다시세운은 낙후된 산업지구였습니다. 개발업자의 손에 재개발될 위기에 처해 있었지요. 그런데 박원순 시장은 도시개발의 다른 비전을 제시했고, 시민들과 함께 논의한 결과 기존의 재개발과는 아주 다른 시민 중심의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혁신적인 부분은 기획과 설계와 운영 거버넌스를 사회젹경제지원센터에 넘겼다는 점입니다.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는 지역공동체와 함께 그리고 다시 세운이라는 공간을 점할 시민들과 함께 작업을 하게 된 것이지요. 이는 사회혁신의 중요한 이정표로, 특히 도시재생과 재개발에 있어서 획기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거대한 변화는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리고 아주 거대한 기획을 필요로 하지요. 그러나 이제 우리 사회는 더 신속하게 움직일 거라 생각합니다. 사회적인 위기는 더 커졌는데, 정책은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의지의 부족이 아니라 정책적 지원의 부족이라 생각해요. 하지만 세계 곳곳에서 실천을 통해 획기적인 패러다임의 변화를 촉진하고 있습니다.
폴라니가 말했듯이, 경제민주화를 주시하며, 그 안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는 우리 학계는 이 패러다임의 변화를 위한 노력을 기록하고 개념화하고 일원화해야 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경제활동가들 그리고 정책입안자들과 협업해야 하고요. 다른 대안은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같은 중요한 기획을 실행하기에 이미 충분한 기반을 갖추었다고 생각합니다.
1) 칼폴라니정치경제연구소 이사장인 캐리 폴라니 래빗 맥길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2), 3) 번역문 참고: 『인간의 살림살이』 (후마니타스, 이병천, 나익주 역)
4) 낸시 님탄 샹티에 고문
2018.02.26
사진 김푸르매
김푸르매, 조경하(본지 기자) koala@s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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