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인의 경제시평] 방향 있는‘이럭저럭 버티기’
갈수록 가관이다. 이젠 “북한과의 협상이 타결될 때까지 그것(한·미 FTA)을 보류할 수 있”단다(3월29일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 “위대한 동맹과의 위대한 협상”이라고 자화자찬하고 청와대에서도 “잠재적 갈등요소를 신속히 제거함으로써 물샐 틈 없는 한·미 공조의 기반을 다시금 공공히 했다”(윤영찬 수석)며 환호한 뒤 며칠이나 지났다고…. 하긴 3월14일에는 한·미 FTA 협상과 주한미군을 연계시킬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그에게 동맹이란 “내팽개치기(abandonment)” 위협의 근거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트럼프와 미국 무역대표부는 미국의 요구를 다 받지 않으면 그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위협한 것이다. 그들은 말 그대로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다.
이미 지난달 칼럼(‘트럼프 사용설명서’)에서 얘기했듯이 그가 정말 미친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발언은 하나같이 ‘신뢰할 수 없는 위협’이다. 주한미군을 철수하면 중국이 환호할 것이고 또한 북한에 대한 마지막 카드를 써버리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대로 현행 한·미 FTA가 미국에 재앙이라면 개정된 한·미 FTA의 발효가 늦어질수록 미국의 손해다. 협상이 결렬되어 한·미 FTA가 폐기된다 하더라도 손해 볼 게 없다고 우리 정부도 말하지 않았는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전략 제1번은 모든 기회를 다 이용해서 일단 현찰을(실제로 돈이든, 아니면 유권자의 표든) 손에 쥐라는 것이다. 굳이 경제학 용어로 말한다면 그의 미래 할인율은 1에 가깝다. 하루살이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제 나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하더라도 그의 머릿속엔 기억이 없다. 그에게 모든 일련의 사건은 독립적이다. 이런 선수를 대상으로 우리 쪽에서 스스로 경제와 안보를 연계하고, 한·미 FTA와 철강 관세를 엮는 것은 바보 짓이다. 한·미 FTA 개정 협상에서 대단한 성과라도 거둔 것처럼 선전한 철강 관세 “국가면제”는 기실 관세를 쿼터로 바꾼 것뿐이고, 관세와 쿼터 어느 쪽이 이익인지는 당장 알 수 없다. 더구나 우리는 이로 인해 EU 등 다른 나라와 공조할 기회를 내던졌고 미국에는 ‘호갱님’이 되었다.
물론 정부와, 특히 대통령의 고충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4월의 남북정상회담, 5월의 북·미 회담에 ‘천려일실’, 티끌 한 조각의 누라도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한반도와 나아가서 동아시아의 운명을 결정할 전략적 상황에서는 전술적으로 손해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과 미국이라는 강대국 사이에서 상당 기간 ‘이럭저럭 버티기(muddling through)’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전략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상당히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예컨대 ‘비핵화’라는 전략적 과제는 기본적으로 북한과 미국 간의 협상에서 결정된다. 북한과 미국, 양쪽 다 ‘벼랑 끝 전술’, 즉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기로 작정했다면 더욱 끼어들 여지가 좁을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과거의 평화협상에서 성실한 제3자가 했던 결정적 역할처럼 합의 가능한 대안을 끊임없이 제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국제판 햇볕정책’은 하나의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외길의 험로에서 기적을 이뤄냈다. 대화의 물꼬를 트고 연쇄 정상회담을 유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체제안전만 보장된다면 중국식 개혁·개방의 길(북한은 이 용어를 정말 싫어하지만)을 걷겠다고 결심한 듯하다. 김정은 위원장이 작년 10월25일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축전을 보내면서 ‘중국식 특색의 사회주의’를 상찬했고, 시진핑 주석은 지난달 26일 인민대회당 연설에서 북한이 “사회주의 경제강국을 건설하기 위해 분발하고 노력”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또 하나 있다. 만일 북한은 말할 것도 없이 우리 경제도 ‘거대한 전환’을 해야 한다면 남북이 모두 지향해야 할 어떤 모델을 같이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스웨덴 등 북유럽 모델을 공통의 목표로 제시할 수도 있고, 더 민주적이고 창의적인 동아시아 모델을 기획할 수도 있다. 우리 내부에서, 그리고 남북 간에 ‘미래의 한반도 사회상’에 합의할 수 있다면 많은 이데올로기적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런 한반도의 경제모델이, 50년 전 일본 모델이 그랬듯이 아시아가 나아가야 할 길이 된다면 그것은 곧 세계 차원의 구상이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 하나하나가 1945년 이후의 “자유주의 헤게모니”의 붕괴를 촉진하고 있는데 아직 중국은 세계를 이끌어 갈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처지가 아니다. 아세안 등 역내 국가들과 더불어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모델을 구체화해 나간다면 중국 역시 이런 구상에 적극 동참할 것이다. 요컨대 당장 ‘이럭저럭 버티기’를 할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전략적 방향은 쥐고 있어야 한다.
2018. 04. 02.
정태인|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소장
원문보기_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