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 자유의 독점
오늘 날 ‘자유’라는 말은, 특히 한국에서, 대략 상위 10%를 위해서만 쓰이는 것 같다.
태극기가 ‘박근혜 석방 집회’의 상징이 된 것만큼 어이없는 일이다. 우리의 ‘자유시장’에서, 10억원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집에서 살 ‘자유’가 있지만 1억원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집을 가질 ‘자유’는 없다. 인간 해방을 위한 보편 가치였던 ‘자유’가 부유층의 소유물이 된 시절이라니.
다행히, 재작년 한 교수님의 강의에서 자유에 대한 다른 해석을 들을 수 있었다. “자유와 평등은 비교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다. 평등은 독립된 개념이 아니며 ‘~의 평등’처럼 지정 대상이 정해져야 한다. 자유는 평등의 적용 대상이고, 평등은 자유의 분배 형태이다.” 아시아인 최초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마르티아 센 하버드대 교수의 이론을 설명한 것이었다.
자유도 분배돼야 한다는 것. ‘주먹밥이 공평하게 나뉘었나’처럼 ‘금수저 경영진과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에게 집을 가질 자유가 제대로 분배됐느냐’라고 우리는 물을 수 있는 것이다. ‘자유시장’은 ‘부자가 자유를 독점하는 시장’을 말하는 게 아니라 ‘자유가 공정히 유통되고 있는 시장’일 수도 있는 것이다.
강의를 듣고 센의 책 ‘자유로서의 발전’을 사봤다. 편협한 ‘자유’ 논리에 빠진 우리 국민에게는 제목에서 마치 ‘격차는 자연스러운 것이다’라고 화장실에 써 붙였다는 자유경제원의 주장을 떠올릴 테지만, 내용은 정반대이다.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주로 다루는 이 책은, 빈곤은 역량의 박탈이며 가급적 평등하게 자유를 누리도록 하는, 자유의 확장이 발전의 목표라고 이야기 한다.
청와대가 헌법에 ‘토지공개념’을 넣겠다고 밝히자, 한 보수 신문은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의 입을 빌어 “토지공개념이 헌법에 들어간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한 군데도 없다”며 “토지공개념이 적용되면 자유 시장경제의 근간인 재산권 보장이 위축되고 경제 활력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했다. 이 재계 관계자가 전 세계 헌법을 모두 찾아보았는지는 차치하고도(대만,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헌법에 토지공개념 포함), 강도 높은 공공주택 정책을 실시하는 자유시장주의 국가들의 사례는 많다. 영국, 호주는 물론 미국 일부 도시도 토지공공임대제를 적용하고 있다. 핀란드 헬싱키는 토지의 60%를 시정부가 소유하고 임대하며, 싱가포르는 토지 대부분을 국가가 소유하고 주택의 85%가 공공주택이다.
‘토지공개념’에 따라 우리가 검토해볼 수 있는 제도는 공공임대주택 확대나 보유세 강화, 택지소유상한제, 토지초과이득세 도입 등이 될 것이다.
이런 제도들은 자유의 확장일까, 축소일까. 우리 상황을 보면, 2012년 개인 토지의 경우 상위 1%가 전체의 55.2%(상위 10%는 97.6%)를, 법인 토지는 상위 1%가 전체의 77.0%(상위 10%는 93.8%)를 보유했다. 2016년 부동산 가격 기준으로 상위 1%는 1인당 평균 6.5채의 주택을 보유(2007년 3.2채)하고, 상위 10%는 1인당 3.2채(2007년 2.3채)를 보유하고 있다. 반면 전체 가구의 44%(2015년 기준)는 무주택자이다. 그러니 일련의 제도들이 상위 1%가 주택을 무한정 수집할 자유를 줄이고, 44%의 무주택자에게 주택을 살 자유를 넓혀 준다면 이는 산술적으로 자유의 확장이다.
정태인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장은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의 4마리 호랑이로 일컬어진 경제성장 국가들은 모두 농지개혁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땅덩어리와 건물을 가진 부모 밑에서 태어났는지가 인생의 성공을 결정짓는다면, 경제발전의 토대가 되는 건전한 경쟁이란 실상 불가능하다. 지주 봉건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평등이나 분배라는 말은 싫고 사회주의 같다고? 그럼 다른 말로 바꿔보겠다. 이제 그 좋다는 자유 좀 같이 누리자고.
2018. 03. 28.
이진희 기획취재부 차장 river@hankookilbo.com
원문보기_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