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인의 경제시평] 보수의 터무니없는 비난, 애처롭다
‘경천동지’가 이리도 자주 일어날 수 있는 걸까? 지난 3박4일 동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말 그대로 두 번 ‘표변’했다. 그가 북·미 정상회담 결렬을 선언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국내의 보수야당과 언론들이 최대로 목소리를 돋웠다. 그들에게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의 “위장평화쇼”에 들러리나 선, “김정은 신원 보증인”에 불과하다.
북핵 문제의 직접적 당사자는 북한과 미국이지만, 이 지난한 평화과정의 최종 출구인 북한의 ‘체제안전 보장’과 ‘한반도 비핵화’는 두 나라 간 합의로도 해결할 수 없다. 중·미 간의 균형, 집단 안전보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하여 산 넘어 산, 앞으로도 고비가 많을 텐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 협상을 치킨게임으로 인식하고(“미친 사람처럼 행동하라”), 여기에 살라미 전술(협상을 여러 개로 토막 내서 단계마다 이익을 얻는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북한은 대대로 치킨게임 또는 벼랑 끝 전술의 귀재로 알려져 있지만, 기실 북한의 인식과 행동은 일관되게 팃포탯(“눈에는 눈, 이에는 이”·TFT)이었다. 돌이켜 보면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연기부터 최선희의 비난 성명에 이르기까지 북한은 정확히 TFT에 따랐다. 하지만 이 전략의 가장 큰 결함은 어떤 이유로든 양자가 배반과 배반을 반복하는 상호보복 상황에 빠지면 헤어날 길이 없다는 데 있다. 해법은 어느 한쪽이(여유가 있든지, 아니면 절박하든지) 먼저 협동으로 돌아서는 것(관대한 TFT·GTFT)이다.
흥미로운 것은 TFT의 상호보복 상황이 치킨게임과 동일하고 GTFT를 쓴 쪽은 상대에게 치킨(겁쟁이 또는 바보)으로 인식된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치킨게임의 승리에 만족하고 김정은 위원장은 반복죄수의 딜레마에서 최고의 전략을 사용했다. 앞으로도 고비마다 이런 상황이 되풀이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때마다 트럼프가 요구하는(살라미) 실리를 재빨리 파악해서 딱 그 수준으로 북한이 관대함을 보여주도록 해야한다. 즉 고비마다 문턱을 넘어설 수 있도록 양쪽에 정보를 제공하여 가능한 균형을 찾아내는 것, 즉 ‘선량한 중재자’의 역할이 그것이다.
이번에 한국의 보수는 트럼프의 전술에 한껏 농락당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여 마지막으로 기댈 언덕은 역시 경제다. 1·4분기의 고용 실적이 발표되자 이들은 일제히 목소리를 높였다. ‘소득주도성장’의 실패라는 것이다. 현재까지 유일한 실증분석인 노동연구원의 연구결과(홍민기, ‘2018년 최저임금의 고용효과 추정’, 5·3)가 발표됐지만 마이동풍이다. 산업별 고용추세를 고려한 이 연구는 최저임금이 고용량에 미친 영향은 양이지만 통계적으로 별 의미가 없고, 근로시간은 유의미하게 감소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즉 적어도 현재까지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에 대한 비판은 별 근거가 없다.
증거는 필요 없다는 걸까? 어제(28일) 한 경제지는 과거의 장관 10명이 9대 1로 소득주도성장을 반대했다고 보도했다. 이 중 5명은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에서 녹을 먹었으니 여야 막론, 만장일치에 가깝다. 이 기사의 인용만 보고 판단한다면 한국 경제의 저력에 또 한번 경탄할 수밖에 없다.
먼저 한국 경제를 책임졌던 이들이 기본적인 이론조차 모른다는 증거. 소득주도성장이 “과거 절대빈곤 시절에나 통하는 정책”(전윤철)이라니 오히려 그 반대다. 과거 자본이 부족하던 시대에는 자본소득이 생산적 투자에 사용되어 성장률을 높일 수 있었지만(트리클 다운) 이젠 그 반대이며 세계 각국에 대한 실증자료를 봐도 대체로 선진국이 소득주도성장 국가이다.
“본말이 전도돼 소득, 분배 더 악화”(윤증현), “부작용 크기 때문에 수정 필요”(노대래)는 통계는 물론 경제현실에 대한 감도 떨어진다는 증거다. 분배 악화의 증거로 제시된 1분위의 소득 감소는 최저임금 인상과 거의 관계가 없다. 세계 최고의 빈곤율을 보이는 한국 고령층이 이 분위에 속하며 이분들은 복지정책, 즉 2차 분배의 대상이다.
이런 터무니없는 비난이 아니더라도 경제를 걱정해야 할 이유는 많다. 수출증가율이 확연하게 떨어지고, 재고율이나 가동률을 고려해 보면 설비투자 증가율 역시 더 감소할 것이며 건설투자는 확실히 한계에 이르렀다.
정부가 해야 할 일도 명확하다. 임대업자들의 전·월세 인상을 막아야 하고, 분배 개선과 혁신 투자를 이루려면 자산소득 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종부세나 국토세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당장 부족한 투자는 정부 투자로 메워야 할 텐데 무엇보다도 생태 인프라투자가 절실하다. 현실을 모르거나 분석 능력을 결여한 비판은 애처로우며 결국 그들의 정치적 패배로 귀결될 것이다. 안보뿐 아니라 경제도 마찬가지다.
2018.05.28.
정태인 |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소장
원문보기_경향신문 오피니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