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왜 흑자 재정인가(경향신문 2019.4.5.)
정부의 통합재정수지가 31조원을 넘는 흑자를 기록했다. 실업의 고통이 가중되고 디플레이션 위협이 출몰하는 가운데 정부가 재정 긴축의 고삐를 바짝 잡아당기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이에 대해서 관리재정수지는 여전히 10조원 정도의 적자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관리재정수지도 추세로 볼 때 그 적자 규모가 지난 4년간 거의 4분의 1로 줄어들었다는 점을 보면 정부의 재정 편성 기조가 어떤 방향을 지향하고 있는지는 명백하다.
국가 재정과 관련하여 오늘날까지 경제학자들과 관료들과 정치가들의 의식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오래된 관념이 있으니, ‘균형 재정’의 강박증이다. 이는 서로 다른 몇 가지 생각이 중첩되어 구성되어 있다. 첫째, 나라 살림도 집안 살림과 다르지 않으므로 수입을 넘어서는 지출은 방종이며 결국은 과도한 부채로 인해 파산의 길을 가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가정주부로서 살아온 오랜 경험으로 볼 때 부채는 무조건 나쁜 것입니다.” 영국의 대처 총리가 내놓았던 이 무지막지하지만 직관적으로 대단히 호소력 있는 명제는 오늘날까지도 경제학과 경제 정책의 방향까지 결정해 버렸다. 둘째, 국가의 재정 확대 특히 적자 재정은 시장으로부터 자금을 빼앗아가서 그 활력을 죽여 버리는 결과를 낳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잠깐 반짝 경기를 호전시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는 ‘언 발에 오줌 누기’와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이다.
최근 국제적으로 뜨거운 논쟁이 되고 있는 이른바 ‘현대화폐이론’의 지혜에 귀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그 입문서인 <균형재정은 틀렸다>가 국내에 번역되어 있다. 이들의 주장들 중에는 과도한 것들도 있지만, 최소한 위의 두 가지 고정 관념에 관한 한 거의파괴적 비판을 내놓고 있다. 두 가지 모두 18세기 유럽인들의 상상에서 나온 미신에 불과하단 것이다.
첫째, 국가 재정은 집안 살림이 아니다. 가정경제는 이미 창출돼 시장에서 유통되는 화폐를 벌어들여야 지출할 수 있는 수동적 존재다. 하지만 국가는 바로 그러한 화폐를 창출하여 유통시켜 시장경제라는 판을 만들어 나가는 능동적이고 거시적인 구조라는 것이다. 18세기 유럽의 군주들은 상비군과 관료제 유지를 위해 항상 돈을 벌어들여야 했고 프로이센과 같은 경우 아예 재정 수입을 올리는 방법을 연구하는 ‘관방학’이라는 학문까지 생겨나기도 했다. 국가의 살림도 집안 살림과 마찬가지라는 관념은 이 때문에 생겨났지만, 이는 국가가 조세 징수 능력을 바탕으로 국채를 발행하고, 다시 이에 근거하여 중앙은행을 정점으로 하는 은행 네트워크가 “컴퓨터 엔터기로” 화폐를 발행하는 현대의 자본주의 시스템에는 전혀 적용할 수 없는 그릇된 비유이다. 오히려 해외 부문을 배제한다면, 국가가 적극적으로 채무를 발행해야만 민간 부문에서의 금융 자산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니 국가가 균형 재정이나 흑자 재정을 고집한다면 민간의 금융 자산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둘째, “흡혈귀 국가”가 시장에서 유통돼야 할 소중한 자금을 ‘혈세’로 빨아먹어 버리면 시장이 빈혈 상태가 돼 죽어버린다는 상상력 또한 18세기 유럽인들의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화폐는 혈관을 흘러 다니는 피와 같은 게 아니다. 무수한 경제 주체들 사이의 채권/채무 관계에서 발생하고 소멸하는 것으로서, 굳이 비유를 들자면 밤하늘에 끊임없이 명멸하는 반딧불이나 강물 표면에 끝없이 소멸 생성하는 물거품에 더욱 가깝다. 국가가 과감한 지출로 부채를 걸머질 때 비로소 민간 부문에서 금융상의 채권이 발생하고 이것이 다시 인적 물적 자원 등의 실물 자산을 동원할 수 있는 역량이 되어 시장의 역동성이라는 게 비로소 생겨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의 적극적 재정 확장은 시장을 빈혈 상태로 몰아넣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시장의 경제 주체들에게 활력을 불어넣는 원천이라는 것이다.
정부의 재정 정책 기조를 옹호하는 희한한 논리가 또 있다. 앞으로 다가올 경제 위기를 대비하여 그때 써야 할 경제적 여력을 비축해 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현대화폐이론’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야말로 앞의 두 가지 잘못된 고정 관념이 극적으로 표출된 생각이라고 할 것이다. 그 “여력을 비축”하는 과정이야말로 바로 현재의 불황과 또 다가올 경제 위기를 앞당기는 결정적 원인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지금 불황이 존재하고 지금 디플레이션의 위협이 존재한다면 바로 지금 적극적인 재정 팽창이 시작되어야 한다. 경기가 호전될 때까지. 이것이 반세기 전만 해도 상식처럼 통하던 이른바 ‘기능적 재정’의 원리이다.
이런 주장을 경제 관료들이 쉽게 받아들일 것 같지 않다. 하지만 기존 경제학의 상식대로 경제를 운영해온 지금의 결과가 과연 어떤 상태인지를 직시한다면, 그를 넘는 파격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파괴적 혁신은 기업과 시장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홍기빈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소장
원문보기_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