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빈의 옆줄> ‘옆줄’을 아시나요

‘홍기빈의 위키토피아’가 여러 필진들이 참여하는 ‘위키토피아’로 재편되었습니다.  앞으로 홍기빈 소장의 글은 ‘위키토피아’ 내 ‘홍기빈의 옆줄’ 코너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편집자 주

‘옆줄’을 아시나요

물고기의 몸통에는 비늘 위에 옆줄 lateral line, 側線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라는 말이 무색하도록 몸통 한 가운데에 마치 자를 대고 그은 것같이 아가미부터 꼬리까지 주욱 이어진 점선의 모습입니다. 이 기관의 기능은 물 흐름의 속도와 방향을 감지하는 것이며, 물을 통해 전해져 오는 자기장 등 각종 파동 신호를 읽어내는 역할도 한다고 합니다.

해부학적으로 본 인간 존재의 최대의 아이러니 하나는 이 ‘옆줄’이 없다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인간은 그야말로 ‘옆줄’ 없이는 전혀 생존이 불가능한 생물이건만, 인간 신체의 감각 기관에는 그게 빠져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인간 세상에서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비극과 희극을 모두 낳게 되는 원인이라고 보입니다. 물고기는 물속을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따라서 물 흐름의 속도와 방향을 읽어내지 못하면 어디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도 결정할 수가 없게 됩니다. 태고적 이래로 인간은 항상 집단을 이루어 살아왔고, 집단을 떠난 인간은 대부분 불과 며칠을 견디지 못하고 스러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인간 집단은 자연 환경 속에서 장구한 시간에 걸쳐 축적한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담은 사회적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연 환경, 역사, 문화, 사회적 관계는 물고기가 살고 있는 강물과 마찬가지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쉬지 않고 흘러가며, 그 흐름의 속도와 방향 또한 항상 변하고 있습니다. 개인이건 집단이건 이러한 네 가지의 끊임없는 변화를 항상 감지하고 거기에 계속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생존을 보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도 물고기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황당한 것은, 물고기와 달리 인간에게 ‘옆줄’이라는 확실한 감각 기관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몇 천 년 전 인간들은 자신들에게 이 ‘옆줄’이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고, 이를 메꾸어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습니다. 처음에는 짐승의 뼈를 굽거나 팔괘를 그어 하늘과 땅과 인간의 상태를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등 가지가의 점술divination이 발전하였고, 보다 근대로 들어오게 되면 정보와 데이터의 체계적 축적과 선형적 인과관계로 구성된 수리 모델을 사용하여 미래를 예측하는 기술도 발전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언론과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여 수많은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게 하여 다수가 합의하는 여론consensus이라는 것도 지속적으로 생산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인간들은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무엇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무엇이 바람직한지 피해야 하는지 등등의 판단을 내리고 집단을 실천하고자 했습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습니다. ‘옆줄’이 없는 인간은 자신들의 삶과 행동의 방향을 결정하기 위해서 몸 바깥에 ‘옆줄’을 만들어 낸 셈입니다.

문제는 이 몸 바깥의 ‘옆줄’이 물고기의 ‘옆줄’과 달리 전혀 확실한 것이 아니며 또 사람마다 집단마다 모두 다르게 작동하여 다른 결론을 낸다는 점입니다. 아즈텍 제국의 사람들과 조우한 스페인 정복군은 자신들이 신대륙에서 새 역사를 시작한다고 생각했지만, 아즈텍 사람들은 이 ‘신들이 보낸’ 스페인 사람들의 출현으로 역사가 끝난다고 생각했습니다. 중국의 명청 교체기라는 대격변을 놓고 조선의 지배 계급은 백성들의 안위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대신 인간의 도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도덕적 당위의 문제에 골몰하였습니다. 온 인류가 지구 온난화로 인한 파멸을 향해가고 있는 지금, 대학의 경제학자들은 그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가 아니라 그것이 초래할 비용을 제대로 계산하기 위해 이자율을 얼마로 놓아야 하는가라는 논쟁으로 밤을 지새웁니다. 요컨대, 인간이 만들어낸 사유와 성찰과 토론이라는 ‘옆줄’은 사람마다 다르고 집단마다 다르며, 그 방향도 관점도 서로 전혀 불통일 정도로 제각각이며, 그렇게 해서 합의에 이른다고 해봐야 별로 명확하고 확실한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위와 같은 포복절도의 (희극이든 비극이든) 사태들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인간의 결함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록 진화에는 우열이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저는 인간이 몸 밖에 두고 있는 ‘옆줄’이 물고기 몸통 옆에 새겨진 ‘옆줄’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뛰어난 기관이라고 믿습니다. 단지 우리들이 그 사용법을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여 서투르게 쓰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정치철학자의 한 사람이었던 에릭 푀겔린Eric Voegelin의 말에 따르면, 인간의 의식은 지향성intentionality과 회광반조 回光反照, luminosity라는 두 개의 양식을 겸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전자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욕구에 따라 거기에 맞추어 외부 세계를 감지하고 이해하는제반의 개념과 범주를 낳는 원천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그 빛을 외부 세계가 아닌 자신 스스로에게 돌려서 자신의 그러한 욕구와 의식을 낳는 근원의 어둠속을 비추는 지혜입니다. 길거리를 걸으며 여러 얼굴들과 마주치다 보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외모가 뛰어난 미남미녀를 쫓아 자신의 시선이 옮겨 다니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조금 후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이야’라고 정신을 차리고 다시 시선과 행동을 수습하고 갈 길을 바르게 걸어가게 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른 사람의 외모의 미추를 판단하는 능력이 있지만, 그러한 의식의 모드를 언제 어떤 때에 발동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능력은 다른 모드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하는 주변 환경을 판단하는 ‘몸 밖의 옆줄’도 마찬가지로 이 두 개의 모두가 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물고기의 ‘옆줄’보다 더 복잡하고 불확실해 보이지만, 또한 훨씬 더 다차원적이고 풍부한 파악이 가능한 기관이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서 인간과 사회와 자연이 모두 근본적인 변화를 겪는 대격변의 한 가운데에 있습니다. 동서남북과 상하좌우도 구별하기 힘든 이 대혼란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고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어떤 속도로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데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를 카스토리아디스Cornelius Castoriadis와 같은 철학자는 “미로 속의 갈림길”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닥쳐오고 있는 문제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도 신경을 곤두세워 파악해야 하지만, 그 문제의 성격이 무엇이고 판단을 위해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도 난감한 것투성이입니다.

한 예로 출산율의 문제를 들어봅시다. 21세기 들어와서 출산율의 증가가 둔화된 것은 전 지구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를 놓고 어떻게 해야 출산율을 끌어올릴 것인지를 놓고 많은 토론이 벌어지고 있으며, 정부에서는 이를 명목으로 10년간 100조원이 넘는 예산을 지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은 나쁜 일일까요? 한 쪽에서는 일자리 부족을 놓고 비명이 터지고 있지 않습니까? 생태계 파괴의 속도를 늦추려면 인구 감소가 필수적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성들이 ‘출산드라’도 아닌 이상, 출산율 감소는 더 많은 여성들에게 더 많은 삶의 자유와 선택의 여지를 안겨주고 있는 게 아닙니까? 게다가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이게 마치 해류의 변화나 태양 흑점의 증감과 마찬가지로 인간들이 좋은지 아닌지를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 그냥 적응해야 하는 자연적 생물학적 현상인지도 모른다고 생각됩니다. 따지고 보면 출산율이란 한 생물종에게서 벌어지는 사건인 바, 이걸 놓고 인간들 뜻대로 늘리고 줄이고를 할 수 있는 일인지도 의심스럽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산업사회의 격변에서 나타나고 있는 하나하나의 변화들이 이런 성격의 것일 때가 많습니다. 기대수명이 늘어나는 것은 어떤가요? 1인 가구와 고독사가 동시에 늘어나는 것은 어떤가요? 인간이 로봇으로 대체되고 심지어 섹스봇까지 출현하고 있는 사태는 어떤가요? 나이 50이 되면 대부분 직장에서 잘려나가는 세태는 어떤가요? 젊은이들이 노동 시장에 진입하는 나이가 계속 늦추어지는 현상은 어떤가요? 도대체 어떻게 파악해야 하고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요?

물고기는 먹이를 쫓아 천적을 피해 움직일 뿐이지만 인간은 행동의 결정이 보다 복합적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옆줄’ 또한 더욱 복잡할 수밖에 없고, 앞에서 말한 지향성과 회광반조의 양식을 모두 적절히 활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산업혁명의 물결로 인해 우리가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인간과 사회와 자연의 총체적 근본적 변화의 흐름에 내동댕이쳐졌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이는 18세기 중반 이후 간헐적으로 계속해서 인류가 겪어 왔던 바이며, 그 과정에서 값비싼 대가와 말할 수 없는 고통 및 희생을 치르는 가운데에 그 속에서 인간적인 산업사회를 건설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워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산업사회의 인류에게는 집단적인 ‘옆줄’이 조금씩 돋아나고 있습니다.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 먼저 “에포케epoche”, 즉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판단의 모드를 중지시킨 상황에서 있는 그대로 바라봅니다. 그리고 이를 다양한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 놓으면서 그 여러 측면들을 음미합니다. 그 다음에는 우리 스스로가 진정으로 원하고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러한 욕구는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그것이 긍정하고 풀어놓아야 할 것인지 아니면 부정하고 억제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성찰합니다.

이 ‘옆줄’ 코너에서는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가 부닥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한 번 다루어보고자 합니다. 저는 여기에서 어떤 주장을 내놓거나 그것을 읽는 이들에게 설파하고 선전하려는 생각이 없습니다. 어차피 인간의 ‘옆줄’은 우리 몸 바깥에 있습니다. 이를 읽는 이들과 함께 생각하고 토론하여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제 목적이며, 이를 통해 우리가 함께 만드는 유토피아 즉 위키토피아의 형성에 일조하고자 할 뿐입니다.

물고기 ‘옆줄’에는 비밀이 있습니다. 알고 보면 ‘옆줄’은 비늘 위에 뚫려있는 구멍일 뿐이라고 합니다. 물고기는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단단한 비늘을 걸쳐 입어야 하지만 그 때문에 물의 흐름을 몸으로 느낄 수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비늘을 입은 상태에서 물의 흐름을 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비늘에다가 구멍을 뚫어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선입견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합리적 계산이 아닌 ‘대충 계산heuristics’으로 사유하고 행동하도록 진화해 온 존재입니다. 이 위험하고 불확실한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마치 물고기가 비늘을 입듯이 어느 정도로는 선입견으로 무장하는 것이 필수적일 것입니다. 하지만 꽁꽁 막아버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옆줄’의 감각 능력을 발동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지금까지 철갑처럼 두르고 있었던 편견과 선입견을 스스로 깨고 구멍을 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그 일을 제가 한 번 시작해 보겠습니다.

홍기빈 /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