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트 피낭스의 계급투쟁
#첫 장면이 시작하기 전: 달이 뜨지 않은 밤엔 모든 암소가 검은색이다.
빛이 나오기 전 달이 뜨지 않는 밤엔 모든 암소가 검은색으로 보인다. 모든 색을 집어삼킨 검은색은 그 자체로 무지다. 때문에 ‘검은 암소는 검은 암소다’라는 ‘절대’는 실재가 아니다. 그 안에 무수히 많은 색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이것’이 아니며 ‘모든 것이 동일한 절대’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어둠이 가시고 밝은 빛이 감돌 때야 비로소 검은색의 암소들은 제 색을 띠며 하나의 사실로서 존재하게 된다.
그러나 원래 검은색인 암소가 있다면? 원래 검은 암소가 있기에 우리는 절대를 비판하는 상대주의가 반드시 우위에 있다고 주장할 수 없다. 절대는 상대주의를 억누를 수 없지만, 그렇다고 상대주의가 절대를 압도할 수도 없다. 따라서 ‘이것은 이것일 수도’ 있지만 ‘이것이 아닐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일 수도 이것이 아닐 수도 있는 상황을 만드는 그 무엇의 존재다. 바로 서로 간의 투쟁이다. 투쟁은 존재, 상황, 처지, 여건, 까닭, 이해관계, 존재의 지속가능성, 복원력, 우연과 필연이 전개/발전시키는 모든 상황의 속성을 가장 잘 드러내며 포괄하는 개념이다.
우리는 국제금융/기관이라는 낱말이 너무 밋밋하고 중립적인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에 대안으로 “오트 피낭스”를 선택했다. 오트 피낭스는 투쟁하는 검은 암소다.
오트(haute)는 고귀한, 높은, 하찮지 않은 등의 의미를 갖는 낱말이다. 13세기 말 그리고 14세기 초 피렌체의 양모 상인들은 자금을 융통한다는 의미에서 피낭스(finance)에 커다랗고 대규모의 그리고 지배적인을 뜻하는 낱말보다 고귀한, 높은, 하찮지 않은 등의 뜻이 있는 오트를 붙힌 오트 피낭스로 불리는 것을 좋아했다. 사람들도 그렇게 불렀다. 무엇보다 오트 피낭스는 13세기 말, 14세기 초 피렌체의 양모업자들이 로마의 교회장부와 거래를 트면서 고안된 발명품이다. 오트 피낭스의 시작은 미약했지만, 유럽의 협조(concert of Europe)라고 불린 100년 평화에 세력균형과 함께 봉사한 전력이 있다. 보나빠르트는 로스차일드가 프랑스 공공재정 위에 군림하고 있는 상황에 대항할 수 있는 수단으로 ‘크레디 모빌리에’를 설립했다. 사람들은 로스차일드를 오트 피낭스라고 불렀던 반면, 페레르 형제의 크레디 모빌리에는 금융의 민주화라고 평했다.
정당을 현대의 군주라고 불렀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오트 피낭스가 현재에도 존재한다고 본다. 현대의 오트 피낭스 중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유로달러시장과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다. 오트 피낭스가 투쟁하는 검은 암소인 이상, 유로달러시장과 연준은 하나의 의지와 이해관계를 갖지 않으며 서로 투쟁하고 있다.
#첫 번째 장면: 2013년 크리스마스이브 전날, 연준과 반대 방향으로 가는 유로달러시장
지금은 블룸버그 통신으로 자리를 옮긴 매튜 보슬러는 2013년 12월 23일 당시 인사이드 비즈니스 기자로서 유로달러선물시장의 금리가 미 연준(Fed)의 경제전망과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기사를 연달아 보냈다. 유로달러 선물시장은 미국 밖에 있는 달러 시장으로, 연준이 연방기금시장을 통제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권한 밖 영역이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달러 유동성이 높은 시장이기도 하다. 당시 연준이 경제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는 보슬러의 기사에 잘 요약되어 있다.
“FOMC(연준 산하 연방공개시장위원회, 연준 의장이 FOMC 의장을 겸함)가 내세운 포워드 가이던스에 따르면, 6.5% 이하로 실업률이 떨어지지 않은 한 금리 인상을 단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단기금리에 관한 테이퍼링(양적완화 중단 혹은 축소) 효과를 상쇄하기 위해 FOMC는 금리 인상을 단행하지 않고 현 스탠스를 계속해서 유지하면서 포워드 가이던스를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FOMC가 장기 목표로 보고 있는 2% 인플레이션을 넘어서지 않는 한, 그리고 6.5% 실업률이 하락하지 않는 한 금리인상을 단행하지 않겠다고 한다.”
보슬러는 FOMC와 다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유로달러선물시장의 3개월 물 금리가 매일 오르고 있는데, 이는 유로달러 선물시장이 연준의 경제전망과 달리 시장의 빠른 회복을 반영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로달러 선물시장 금리가 연일 오르고 있다는 것은 연준이 전망했던 경제 사정보다 훨씬 더 회복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며, 동시에 연준이 시장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보슬러가 보기에 연준이 당시 경제 사정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모두 에반스 준칙 때문이었다. 에반스 준칙은 시카고 지역 연방준비은행장의 이름을 딴 것으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연준이 초저금리로 낮추었던 연방기금시장금리를 올릴 조건을 말한다. 실업률(U3)이 6.5%이하로 떨어지고 인플레이션이 2% 이상 상승 할 경우에만 우리나라의 기준금리에 해당하는 연방기금시장금리를 올리겠다는 방침이다.
에반스 준칙은 오디세우스 방식의 포워드 가이던스(선제적 지침)인데 인어의 노래 소리에 취해서 난파당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몸을 돛대에 묶은 것과 같이 특정한 경제 지표상의 수치에 금리 결정을 묶은 것이다. 유럽중앙은행은 델포이 방식의 포워드 가이던스를 통해 시장과 소통하였는데, 델포이 방식은 경제상황을 좋다거나 나쁘다는 식의 평가를 내세우며 기간을 특정하지 않고 구체적 전망관련 수치도 제시하지 않는다. 따라서 연준의 시장과의 소통은 유럽중앙은행에 비해 훨씬 더 엄격했다고 할 수 있으며 그만큼 정책 대응의 신축성도 낮았다. 보슬러는 연준이 에반스 준칙에 따라 금리인상 시점을 결정하려고 하기 때문에 연준이 금리 인상의 시기를 놓치고 있고,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에 묶여있으며, 결국 연준의 에반스 준칙은 실패할 것이라고 본 것이다.
유로달러선물시장은 연준의 에반스 준칙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금리 인상의 시점은 금융산업의 사정에 따라 움직여줘야 하는 것인데 특정 경제지표 특히 실업률과 같은 지표에 금리인상을 연관시켰다는 것 자체가 불만이었던 것이다. 유로달러선물시장은 미국 국내보다 더 많은 달러가 거래되는 시장이다. 즉 강력한 달러 유동성으로 연준의 달러 시장 형성자로서의 지위를 조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보슬러의 기사는 연준에 대한 유로달러시장의 경고를 기사화 한 것이다.
#두 번째 장면: 2014년 캔자스시티의 차가운 여름
2014년 취임한 자넷 옐런에 가해진 비판 중 가장 이상한 것은 “당신이 노동조합 위원장이냐?”는 것이다. 세계의 경제대통령이라고 하는 사람에게 한 말로는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자넷은 또 다른 연준 의장 후보 지명자인 래리 서머스처럼 민주당 사람도 아니었고, 그동안 연준에서 있었기 때문에 유명한 정치적인 인물도 아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금리인상 시기에 대한 의견이 서머스와 달랐다. 서머스는 연준 의장 인사 청문회에 가기 전부터 금리인상 시점을 2015년으로 잡고 있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녔지만, 자넷은 빠르면 2015년이고 아마도 2016년에야 비로소 금리인상에 대한 판단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자넷이 판단의 근거로 삼은 것은 최적 제어 이론이다. 자넷의 최적 제어 이론을 가장 쉽게 대중적으로 말하면 바로 에반스 준칙이다. 자넷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실업률이다. 따라서 인사 청문회 기간 동안 월스트리트와 유로달러선물 시장에서 계속 자넷을 공격하며 당신이 노동조합 위원장이냐고 했던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래리 서머스는 외가와 친가에 두 명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를 삼촌으로 두었으며, 존 베이츠 클라크 상 수상, 하버드 총장,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재무부 장관 등 화려한 경력의 경제학자다. 그러나 상원 금융위원회에서 서머스가 후보 지명자로서 계속 고집하면 비토할것이라는 협박이 횡횡한 가운데 스스로 후보직에서 물러났다.
자넷은 행동경제학자 조지 애컬로프와 결혼한 사람이기도 하다. 조지 애컬로프는 2001년에 노벨상을 수상했다. 자넷이 실업률을 고집하고 또 민주당 상원 의원들이 지지했던 것은 연준이 의회로부터 받은 책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여기에 음모 같은 것은 없다. 에반스 준칙에서 말하는 실업률(정확히는 고용의 극대화)과 인플레이션은 미 의회가 연준에게 책임을 다하라고 일러준 두 가지 임무다. 이 임무는 금융위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고용의 극대화는 이미 1946년부터 논의되었고 정착된 원칙이다. 그러나 이 원칙을 정할 때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지 말아달라는 뉴욕을 위시한 금융계의 줄기찬 압력이 있어 구체적인 수치까지를 연준에게 임무로 부여한 것은 아니었다. 고용의 극대화가 물가안정과 함께 연준의 정식 책무(이른바 “이중의 위임”)로 자리를 굳힌 것은 “1946년 고용법” 30주년을 맞아 개최된 청문회와 이어진 논의의 결과인 1978년 “험프리-호킨스법” 부터였다. 청문회 당시 앨런 그런스펀은 고용의 극대화가 연준의 책무에 해당하는 것은 합당하다고 했으며, 다만 구체적인 수치는 제시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레이건 노믹스의 보수주의 경제학이 지배하던 1980년대에는 고용의 극대화는 물가 안정의 하위 책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따라서 물가안정을 위해 어느 정도의 실업률이 상승하는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던 때였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 라이시나 크루그먼 같은 사람은 실망실업자까지 합하면, 미국의 실업률(U6)은 이미 15%를 넘었다고 까지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2008년 이후 상황은 루스벨트가 마지막 연두 교서(state of union message)를 보낼 때처럼 절박했다. 루스벨트는 1945년 종전 이후 6천만 명의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에 연준이 재무부와 함께 고용의 극대화를 달성하는데 나서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마지막 연두 교서(state of union message)를 통해 의회에 호소했다. 완전고용의 내용을 담은 그 유명한 “1946년 고용법”은 루스벨트 마지막 연두교서의 성과였다. 금융산업의 사정을 봐줄 여유 따위는 없었다.
유로달러시장과 연준 간의 갈등은 해소되지 않았고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거의 8개월이 지날 무렵 사건이 터졌다. 파이낸셜 타임즈 같은 유력 경제지에서 앞을 다투어 보도한 사건이 바로 바로 8월 21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진행되는 캔자스 시티 연방준비은행이 주최하는 국제 컨퍼런스에 국제 금융의 상징과 같은 월스트리트의 경제학자를 초청하지 않은 일이다. 대거 많은 애널리스트와 이코노미스트들이 당황했던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자넷은 미국 전미노조의 수석 경제학자 윌리엄 스프리그스를 초청해서 노동시장의 상황을 듣기로 한 것이다. 여기저기서 자넷에 대한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2014년 잭슨홀 미팅은 “노동시장 다이내믹에 대한 재평가”가 주제였다. 당시 자넷은 국제금융과 거의 대결상태에 있었는데, 다름 아닌 자넷 스스로가 에반스 준칙을 준수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실업률이 6.5% 아래로 떨어졌지만 자넷은 금리를 인상시킬 마음이 전혀 없다고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경기 침체가 장기간 지속되어 실망 실업자가 늘어났는데 미국의 공식 실업률인 U3에는 이 사람들이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애당초 에반스 준칙이 기준으로 삼았던 6.5% 실업률은 재조정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앞서 지적한 것처럼 유로달러 선물시장은 경제 상황의 호전이 연준이 파악하고 있는 것보다 빠르게 진전되어 금리인상을 단행할 시기가 이미 왔다고 판단했지만 자넷은 8개월이 지나고 나서 실업률이 현 경제상황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에반스 준칙의 6.5% 실업률은 공식실업률(U3)이 아닌 실망 실업자를 포함한 실업률인 U6로 다시 재조정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유로달러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금융의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잭슨홀 미팅은 지역연준은행이 주최하는 것이긴 했지만 사실상 국제적인 중앙은행가들의 미팅이기도 했는데, 파이션낸셜 타임즈 등이 보도한 것처럼 모건스탠리 빈센트 라인하트, 골드만 삭스 잰 해치우스, BOA 메릴린치 이단 해리스 등 월스트리트를 대표하는 이코노미스트들이 초청장을 받지 못해 참가지 못했다. 다른 한편 연준과 입장을 같이 하는 중앙은행장들은 참가했지만, 그렇지 않은 중앙은행장들은 참가하지 않았다. 이주열 총재는 취임 후 처음 맞는 잭슨홀 미팅이었지만 일정 때문에 참가하지 않았고, 대신 9월의 국제결제은행(BIS) 미팅에는 참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종운(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