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을 닮아간 86세대 회사원?
우리는 모두 간첩이다. 아침 출근길에서 우리는 신분을 바꾼다. 집에서 <한겨레>를 구독하는 누군가가 회사 인사팀에선 <조선일보> 논조에 맞춰 일한다. 페이스북 등 온라인 활동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력 자체를 속이기도 한다. 물론, 이런 ‘리플리’는 극단적인 경우다. 그러나 자기 정체성을 이리저리 흔드는 경우는 흔하다. 진보 성향인 이가 극우 성향이 강한 커뮤니티에 가입하기도 한다. 예컨대 부동산 등 재테크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 가운데 어떤 곳은 지금도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과 내통한다고 믿는 이들이 센 목소리를 낸다. 그래도 부동산 관련 정보를 건질까 싶어서 가입한다. 입장이 완전히 다른 댓글이 달렸는데, 반박하지 않고 넘어가거나, ‘좋아요’를 누르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대체로 간첩 노릇이다. 정보를 구하기 위해 자기 정체성을 숨겼다.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속내를 감췄다.
1980년대 내내 “간첩 신고하면 상금 3,000만 원”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간첩 식별 요령’을 담은 글 역시 흔히 볼 수 있었다. 간첩 색출에 열을 올렸고, 조작 간첩도 흔했으며, 간첩을 무서워하던 시절이다. 간첩이 나라를 망칠까봐 무서웠고, 자기도 모르게 간첩과 친해질까 무서웠고, 간첩으로 몰릴까봐 무서웠다.
그리고 이런 시대에 대학을 다니고 중산층이 된 이들 역시 간첩을 닮아갔다. 마르크스, 레닌, 혹은 김일성의 저술을 탐독하다 대기업 공채에 합격했다. 신입사원 연수에서 배우는 내용은 그들이 불과 얼마 전에 읽던 책들과 정반대 방향이다. <공산당 선언>, <독일이데올로기> 등을 읽다가 이병철, 정주영, 김우중 등을 영웅으로 묘사한 교육을 받았다.
그래도 대개는 잘 적응했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많은 경우, 이미 연습이 돼 있었다. 운동권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동시에 비운동권이 주도하는 자리에도 잘 어울리는 이들이 흔했다. 이를 정당화하는 명분도 있었다. 활동가는 ‘대중성’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누구와도 잘 지내는, 모나지 않은 품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사람을 잘 챙긴다는 자부심과 대기업 직원 생활은 서로 부딪히지 않는다. 집에선 <한겨레>를 읽고, 회사에선 <조선일보> 논조에 맞춰 일하는 생활, 집에서 회사로 파견한 간첩 같은 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 힘은 대학 시절에 이미 확보돼 있었다.
“옮겨다 심은 사람”, ‘닥치고 적응’뿐이다
김영하의 소설 <빛의 제국>은 그래서 흥미롭다. 북한에서 21년, 남한에서 21년을 보낸 간첩이 주인공이다. 주인공 김기영은 북한에서 태어나 간첩 교육을 받았다. 남한에 와서는 신분을 위장해서 연세대 수학과 86학번으로 입학했다.
작가는 간첩을 가리켜 “옮겨다 심은 사람”이라고 했다. 북에서 남으로 보낸 간첩은, 북이 남에 “옮겨다 심은 사람”이다. 남이 북에 보낸 간첩 역시 마찬가지일 테다.
“그들은 김일성을 키스(KIS)로, 김정일을 친지김동(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으로, 주체사상은 주사 혹은 서브(Sub)로, 북한은 엔케이(NK)로 부르고 있었다. 기영은 차분히 그들이 알려주는 것들을 들어 익혔다. 그러면서도 빈 강의실을 가득 채운 과장된 엄숙함 때문에 모든 상황이 현실이 아니라 한편의 소극처럼 느껴졌다. 이들이 정말 남한의 체제를 전복할 혁명적 전위들이란 말인가? 이 솜털이 보송보송한 젊은이들이? 이들이 그 극악하다는 안기부의 고문을 견뎌내고 폭압적 국가제도를 전복할 수 있단 말인가? 기영은 믿을 수가 없었다. 그가 북에서 본 혁명가들은 오진우나 김일성처럼 모두 칠십줄을 넘긴 노인들이었다. 물론 김일성이 혁명을 시작한 건 이십대였지만 그건 <피바다> 같은 가극에서나 볼 수 있는 이미지여서 현실감이 전혀 없었다. 어쨌든 기영은 이제 NL진영의 활동가가 된 셈이었다.
(…) 그는 그들의 열정에 찬, 그러나 그럴수록 설득력은 떨어지는 답변을 듣고 고개를 주억거려주었다. 주체사상에 대한 그들의 턱없는 맹신은 오히려 그의 사상적 신념에 조금씩 균열을 가했다. 몇 부의 앙상한 팸플릿과 한민전 방송의 조악한 녹취록만 읽고서 어떻게 저렇게 모든 것, 심지어 역사의 종착역까지를 아무 의심 없이 믿을 수 있는 것일까?” (<빛의 제국>, 192~194쪽)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그를 지도했던 주사파 선배 역시 “옮겨다 심은 사람”이었다. 간첩 신고 포스터를 그리고 상을 받던 유년의 세계에서 반독재 운동권의 세계로 옮겨 심어졌다.
“옮겨다 심은 사람”에게 의심은 사치다. 회의하고 성찰할 여유가 없다. 옮겨다 심은 식물이 그렇다. 빨리 뿌리를 내려야 한다. 그게 가장 급하다.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 “옮겨다 심은 사람”은 ‘닥치고 적응’하는 길 외엔 없다.
직장과 부동산에 대한 집착, ‘뿌리를 내려야 한다’
주체사상의 세계에선 주인공 김기영이 원주민이다. 그가 보기에, 주체사상의 세계로 “옮겨다 심은 사람”인 남한의 주사파가 어쩐지 미덥지 않은 것, 뿌리가 얕아보였던 것은 당연하다.
“그는 개인용 컴퓨터라는 게 없던 시절에 내려와서 남한 사람들과 함께 그 신기한 발명품에 놀라며 그 세계 속으로 빠져들었다. 포트란이나 베이직 같은 언어를 익혔고 보석글 같은 프로그램으로 워드프로세서의 세계에 입문했다. 그리고 도스에서 윈도즈, 피시 통신에서 인터넷의 세계로 옮겨왔다. 어쩌면 평균적인 남한의 사십대보다 더 잘 적응해왔는지도 몰랐다. 그는 ‘옮겨다 심은 사람’이었으므로 적응이야말로 최우선의 과제였다. 변화를 거부하거나 방기할 자신감과 배짱이 있을 리 없었다. 그것은 이곳에서 태어나 살아온, 원주민들의 특권이었다.”(<빛의 제국>, 77~78쪽.)
“옮겨다 심은 사람”에겐 변화를 거부할 배짱이 없다. 역사의 손길이 반공의 세계에서 뽑아내 주사파로 “옮겨다 심은 사람들”. 그리고 다시 현실의 관성이 운동권의 세계에서 뽑아내 대기업으로 “옮겨다 심은 사람들”. 그들에게 변화란 그저 적응할 대상일 뿐이다. 민중가요를 부르며 격렬히 팔뚝을 흔들던 청년이, 불과 얼마 뒤에 회사 회식 자리에서 넥타이를 머리에 두른다. 그렇게 밤을 보내고 다음날 다시 출근한다. “옮겨다 심은 사람”이므로, 그러고도 태연할 수 있었다. 만약 그가 한쪽 세계 원주민이었다면, 간첩 훈련만큼 힘든 과정을 거쳐야 했을 테다.
영원히 옮겨 다닐 수는 없다. “옮겨다 심은 사람”도 결국 뿌리를 내려야 한다. 한때 ‘기층 민중’을 이야기 했던 이들이 아주 빠르게 중산층 문화에 녹아든 현상 역시 그렇게 설명할 수 있다. 안정된 직장과 부동산에 대한 강한 집착도 어쩌면 같은 맥락이다.
먹고 살만한 이들의 대중 노선, 민중을 지우다
여기에 ‘대중성’에 대한 강조까지 곁들이면, 잘 이해된다. 그들이 속한 세계 안에는 이념 성향이 다른 이들이 많다. 그러나 같은 세계 안에 있는 이들과 잘 지내는 게 우선이다. 자신이 포함된 대중의 이해와 요구를 받아 안는 게 중요한 실천이라고 믿었으므로, 더욱 그렇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이념이 비슷한 기층 민중보다 이념이 다른 직장 동료 혹은 동네 주민과 잘 지내야 한다. 직장과 동네는 계층을 반영한다. 자신이 속한 계층의 이해관계에 충실한 태도는 옛 운동권이 대중 노선을 강조하던 것과 부딪히지 않는다.
지난 번 글에서 ‘죽창과 기관총’ 이야기를 했다. 우금티 전투에서 죽창을 든 동학 농민군이 일본군의 기관총에 학살당했다는 이미지가 오랫동안 강렬했다. 서구 제국주의 군대가 제3세계 원주민들의 봉기를 짓밟은 이미지와 닮았던 탓도 있다. 그러나 ‘죽창과 기관총’의 대조에 너무 몰입하면, 놓치는 게 많다. 예컨대 일본군에게 기관총이 없었어도, 동학 농민군은 구조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일본군이 정말 기관총을 활용했다는 근거 역시 찾기 힘들다. ‘죽창과 기관총’ 이미지에 몰입하면, 우리 내부의 갈등과 한계에는 눈을 감게 된다. 아울러 기관총이 상징하는 기술 변화에 무조건 적응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이어진다. 기관총을 못 만들었다는 콤플렉스, 기관총이 없어서 졌다는 피해의식이 있으므로, 강박은 더 깊어진다. “옮겨다 심은 사람”에겐 더 그렇다.
<빛의 제국>에 등장하는 남파간첩은 주인공 김기영 말고도 더 있다. 주인공은 연세대를 나와서 영화 수입 사업을 한다. 다른 간첩은 남한에서 대학에 다니지 않았다. 다들 “옮겨다 심은 사람”이지만, 남한 땅에서 다른 세계에 속한 채 살아간다. 대학 진학 여부가 세계를 구분 지었다. 대학 진학을 결정짓는 과정에서 새겨진 콤플렉스와 트라우마는 한국 중산층을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다. 다음 편에서는 이 문제를 다룬다.
성현석 / <프레시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