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권의 GCC 아이디어> 금융을 뒤흔들 기회? 또는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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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것만큼이나 쉽게 돈을 보내고 싶은 것이다.”
(We want sending money to be as easy as sending a text message.)

페이스북이 글로벌 디지털 통화 ‘리브라(Libra)’의 면모를 밝힌 백서를 공개하면서 던진 화두다. 최근까지 이룩된 정보 통신 기술, 그리고 스마트폰의 엄청난 보급에 힘입어, 이제 전 세계 시민들은 거의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실시간으로 자유롭게 문자 메시지나 사진, 심지어 동영상까지, 언제 어디서나 주고받는 시대가 되었다. 당장 페이스북이 그렇다. 일일 사용자 15억 6천 만 명이 1분마다 웹 페이지에 30만개의 뉴스피드를 쏟아내고 14만개의 사진이 올리며 50만개의 코멘트를 만들어내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어떤가? 왜 돈을 송금하거나 받고, 물건사면서 가격을 지불하고 결제하는 것은 그렇게 못하겠는가? 왜 돈을 보내려면 일단 은행에 계좌를 개설하는 복잡한 과정을 꼭 거쳐야 할까? 송금할 때마다 높은 수수료를 물고 긴 송금지연시간은 또 왜 감당해야 하는가? 해외를 넘나들며 구매를 할 때마다 왜 급변동하는 환율에 신경을 써야 하는가? 문자를 보내듯이 전 세계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돈을 주고받고 결제를 하지 못할 이유가 뭘까?

문자를 보내는 것처럼 돈도 보낼 수 있다면 무슨 일이?

호주의 금융경제학자 스테판 그렌빌(Stephen Grenville)은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 웹사이트 칼럼을 통해 이런 가정을 해보았다. 과거 아르헨티나 페소화 위기 때처럼, 한 국가의 경제가 불안정해지려는 상황에서 리브라 같은 글로벌 디지털 통화를 사용하고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아마도 사람들은 은행계좌의 돈을 인출해서 손쉽게 리브라 화폐로 바꾸거나 심지어 해외로 송금하는데 아무런 장애가 없지 않을까? 그러면 한 국가의 금융시스템은 조그만 금융 불안에도 금방 뱅크런이 일어나거나 자본 해외도피(Capital Flight) 현상이 자기 충족적 예언 방식으로 증폭되지 않겠는가? 이는 극단적 가정이지만 중요한 함의가 있다고 본다.

사실 현대 정보통신 기술 그 자체만 놓고 보면, 문자를 보내는 것과 같은 수준으로 자유롭게 돈을 보내는 데에 기술적 장애는 전혀 없다. 따라서 돈이 사람들 사이를 오갈 때나 특히 국가 간 장벽을 넘어갈 때 불편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기술적인 혁신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국민경제와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위해서 제도적으로 ‘일부러’ 그런 장애물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이 그러하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제임스 토빈의 표현을 빌면 ‘모래 뿌리기’를 다분히 고의적으로 하는 것이다. 소액일 경우 환전이나 송금은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해주지만, 고액 송금은 매우 엄격한 규제를 한다든지, 명확한 실명거래를 원칙으로 한다든지, 해외와의 자본거래 등은 철저하게 모니터링하는 것은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시스템 안정성을 위해 일부러 그렇게 하는 것이다.

돈의 이동은 숫자의 이동이 아니라 ‘자산의 이동’이다.

암호화 화폐나 글로벌 디지털 통화의 기술적인 측면에만 열광하는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숙고해봐야 할 문제는, 돈의 이동과 문자 메시지의 이동은 차원이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돈의 이동은 단지 디지털 화 된 숫자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결정적으로 ‘자산(asset)’이 움직이는 것이다. 시장경제에서 자산의 이동은 경제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 인지되지 않고 통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경사이의 거대자산 이동이나 자본유출은 순식간에 한 국가의 경제를 결딴낼 수도 있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은행위기가 모두 그런 사례에 해당한다. 더욱이 리브라가 고려하고 있는 것처럼 자산의 이동이 실명이 아니라 ‘익명’으로 국경을 넘어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검은 돈’의 유통을 차단하는데 결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만들 수도 있다는 뜻이다.

또한 자산의 이동은 국가의 부의 소유권이 이동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정부가 부여하는 ‘과세’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모든 국가는 부와 소득이 발생한 곳에 과세를 하고 이를 기반으로 국가를 운영한다. 따라서 모든 부와 소득의 발생과 이전은 투명하게 정부에 신고 되어야 하며 법에 정한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그럴 때 민주주의와 국가가 작동한다. 그런데 리브라는 이를 혼란에 몰아넣을 수도 있는 것이다. 적어도 현재 백서에서 설계된 것으로만 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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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은 기술적으로 뒤떨어져서가 아니라 너무 첨단이어서 문제였다.

일부 사람들은 마치 금융시스템을 운영하는 기득권 세력들이 최신의 정보통신 기술추세를 받아들이지 않고 과거에 자신들이 하던 관행을 고집함으로써 혁신을 가로막고 있고, 페이스북의 리브라 통화 같은 것을 비난하는 것도 비슷한 행태라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인 사실로 본다면, 금융이 약탈적인 것은 최첨단 기술을 적용하지 않고 구태의연한 영업으로 소비자 불편을 자초하면서 고액 수수료만 챙기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진실은 거꾸로, 금융의 약탈적 행태는 대체로 최첨단 혁신 기술을 동원해서 이뤄졌다.

예컨대,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전 세계 금융위기로 전염시킨 도화선인 MBS, ABS, CDO, CDS 같은 각종 파생금융상품들은 첨단의 정보기술들이 없으면, 상품 설계나 가치평가도 리스크 평가와 유통 교환도 모두 불가능했을 것이다. 어찌 보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첨단의 금융혁신과 정보기술혁신이 결합해서 낳은 산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당시에 파이낸셜 타임스 수석 이코노미스트 마틴 울프는 이렇게 표현했다.

“무시할 수 없는 또 하나의 문제가 정보통신기술 혁명이다. 이들 기술의 발전은 파생상품과 같은 복잡한 금융거래를 만들어 낼 수 있게 했다. 그리고 거대한 규모의 금융자산을 24시간 거래할 수 있도록 했다. 컴퓨터 기반의 새로운 위험관리 모델은 많은 금융부문에 도입되었다. 오늘날 금융부문은 정보기술 혁명의 가장 강력한 자식(child)이다.”

따라서 금융 기득권 세력들이 최첨단 기술을 적용하지 않고 구태의연한 영업으로 소비자 불편을 강요하면서 약탈적 관행을 유지한다는 말은 정확한 진실이 아니다. 정확한 진실은 일반 시민들도 잘 모르는 복잡한 수학, 공학 기법들을 들이대면서 첨단 정보기술을 악용해서 약탈적 금융관행을 끊임없이 창조했던 것이다. 어떤 대목에서 금융은 무분별하게 첨단기법이라는 이름으로 검증되지 않은 기법들을 자제하는 것이 훨씬 소비자들과 국민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 단적인 사례가 2008년 한국 금융시스템이었다. 당시 한국도 뒤늦게 아시아 금융허브를 만들겠다고 하면서 자본시장 통합법을 준비하는 등 금융혁신 바람이 막 일어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본격화되기 직전에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현재 국제결제은행(BIS) 수석 경제학자를 맡고 있는 신현송 교수는 당시 한국 상황을 평가하며 금융혁신을 늦게 했던 것이 오히려 금융위기의 세계적 전이에 휩싸이지 않게 만들어줬다고 진단했다.

“(한국이) 월가의 선진 금융기법을 도입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던 셈이다. 일본의 경우도 90년대에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한 후 금융기법을 체득하지 않고 후퇴적인 경영을 하면서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피할 수 있었다. 규제 때문에 ‘촌놈’ 행세를 한 것이 맞았다”

기존의 신용시스템은 변화해야 하지만 …

물론 기존의 은행시스템과 신용시스템이 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1950년 다이너스 클럽 카드(Diners Club Card)라는 것이 발명되고 난 이후, 현재 우리가 범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세계적 신용시스템은 최신의 기술 수준이나 네트워크 발전 수준에 비하면 불합리한 대목들이 있을 수 있다. 신용시스템이 발전하지 못했던 중국 등에서는 때문에 기존 계좌를 온라인으로 곧바로 이체해주는 알리 페이 등의 결제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등 새로운 진화들이 이미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조만간 새로운 지급결제나 송금, 이체 시스템에 대한 모색과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된다. 하지만 그것이 특정 거대 독점기업들의 수익모델의 일환으로 설계되어서는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금융의 측면’에서 리브라의 등장 전망에 비판적 의견을 쏟아내는 것이다.(다음 번에는 리브라의 ‘기술적 측면’을 살펴보려고 한다.)

김병권 / 서울시 협치자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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