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권의 GCC 아이디어> 블록체인은 최고의 혁신인가, 최악의 사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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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은 역사상 가장 과대평가된 기술?

이번에는 몇 차례 나눠서 기술적 측면을 검토해보겠다. 우선 리브라 백서에 따르면 리브라는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종류의 디지털 통화”라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블록체인에 대한 얘기를 먼저 확실히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

돌이켜보면 지난 10년 동안 수많은 획기적인 기술혁신들이 있었다. 일상의 도구가 된 스마트폰은 계속 업그레이드 되어 이제는 필수 정보통신기기의 통합버전이 되었다. 인공지능 기술은 이미지 식별, 음성인식 등을 필두로 빠르게 상용화되고 있는 중이다. 전기차의 확대를 넘어 자율주행자동차도 실용화를 위해 한 단계씩 전진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부문에서 그리드 패러티에 접근하는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는 태양광 패널 생산기술은 잘 알려지지 않은 놀라운 혁신의 사례다. 양자 컴퓨터의 상용화도 멀지 않다는 소식들도 꽤 자주 들린다. 그러면 이런 기술혁신의 목록들 가운데 블록체인 기반 암호 화폐는 어떤 위치를 차지할까?

“암호 화폐와 모든 디지털 자산들은 꺼질 수밖에 없는 현대판 거품이다. 나는 블록체인 기술이 역사상 가장 과대평가된 기술이며, 실질적인 이점을 줄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난 2019년 7월 6일 프랑스에서 열린 경제 컨퍼런스에서 미국 경제학자 누리엘 루비니가 한 발언이란다. 심지어 루비니는 이렇게 덧붙였다.

“암호 화폐 산업에는 사기가 너무 많습니다. 현재 암호 화폐 산업에서는 수많은 사기꾼과 도둑들이 너무나도 쉽게 살아남습니다. 저는 이런 부분에서 암호 화폐 시장이 마약 밀매자보다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블록체인 기술을 인터넷의 등장에 비교될 엄청난 혁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충격적인 발언일 수 있다. 그러면 왜 이런 얘기가 나오는가? 우선 블록체인를 구성하는 요소기술들이 해시암호기법이나 머클트리, 작업증명 등 전혀 새로울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열광했던 것은 한 가지다. 이들 기술조합을 통해 ‘탈중앙화 된 시스템’을 처음으로 구현해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다. 마치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기술조합들로 애플이 아이폰을 만들어냈던 것처럼. ‘암호 화폐가 있다면 이제 중앙은행 따윈 필요 없다’는 주장도 나올 법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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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블록체인을 본 사람?

“한 가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블록체인이라는 단어는 모두가 들어봤을 정도로 수 없이 언급됐지만, 그 누구도 블록체인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블록체인과 암호 화폐의 기술적-경제적 측면을 통합해서 제대로 분석한 가장 탁월한 책 『블록체인 해설서』(2019)의 저자인 이병욱씨 주장이다.(앞으로 기술적 측면은 이 책을 많이 인용하려 한다.) 핵심을 찌르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중앙권력이나 제3자들 배제하고 누구나 자유롭게 동등하게 참여하는 네트워크만으로 정보와 화폐를 교환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서의 블록체인은 여전히 현실에 없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 현실에는 수천 종류 암호 화폐가 있고 매일같이 거래소에서 거래되고 있지 않나? 현재 익명기반의 완전 개방형으로 되어 있어 탈중앙화 된 블록체인으로 작동하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이 그나마 위의 블록체인 정신을 기술적으로 구현하려 한 사례이고 나머지는 이른바 프라이빗 블록체인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조차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 시스템에서 트랜잭션을 모아 블록을 생성하고 그 보상으로 암호 화폐도 챙기는 채굴업자들이 극단적으로 독점화 되면서 이른바 ‘탈중앙화(decentralized)’ 이상은 완전히 사라졌던 것이다. (당연하게도 수많은 프라이빗(private) 블록체인들, 또는 똑같은 말이지만 리브라가 하겠다고 하는 ‘허가된 블록체인(permissioned blockchain)’은 인증된 소수가 관리 운영하는 시스템이므로 기본적으로 탈 중앙시스템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비트코인의 블록생성(채굴)의 90%는 상위 10개 채굴업체가 독점하고 있고 특히 상위 3개 중국 업체가 5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더리움은 독점상황이 더 심한데 상위 3대 업체가 60% 이상을 채굴하고 있단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비트코인 지갑을 설치한 사람은 1,5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네트워크 구성원으로써 신뢰 검증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1만 명 정도이고 그 조차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이 가운데에서도 트랜잭션을 모아서 블록을 만드는 것을 하는 업체는 10개 내외라는 소리다.

요약하면, 비트 코인 거래를 하는 99.9999% 이용자들은 단 0.0001% 채굴업자들이 블록을 생성해서 거래 처리를 하도록 기다려야 한다. 누구의 트랜잭션을 처리해 줄 것인가는 채굴업자 마음이다. 또한 채굴업자가 생성한 블록의 신뢰검증은 전체 이용자의 1퍼센트 완전노드를 다운받은 사람들이 해주게 된다. 이게 ‘동등한 권한을 가진 사람들의 수평적 연대’의 현재까지 실체다. 여기에 ‘탈중앙화 된 이상적 시스템’의 흔적조차 찾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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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권위 없이 중립적인 관리자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가?

탈중앙화 된 블록체인 시스템의 구현을 위해 하나 더 지적할 것이 있다. 특정 정치권력이나 사적권력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여 동등하고 자율적인 개인들의 연대로 정보네트워크를 구성하려는 블록체인 이상이 실현되려면, 논리적으로는 자발적 개인들 말고는 특정 관리전담조직이 있으면 안 된다. 또는 있다고 하더라도 정말 정치적 압력은 물론 이익에 대한 탐욕으로 부터도 완전 독립되어야 한다. 그런데 모든 시스템에는 예외 없이 운영과 유지보수 관리조직이 필요하다. 특히 소프트웨어는 계속 업그레이드되어야 하므로 더 그렇다. 블록체인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특히 리브라는 페이스북을 포함한 28개 컨소시엄이 구성하는 ‘중립적’ 리브라 협회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이 조직은 단순히 시스템 유지보수가 아니라 블록의 검증, 준비금(Reserve)관리 등 막강한 권한을 갖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면 이들 재단이나 협회들은 국가나 공적 기구보다 중립적일 수 있을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의 경우 bitcoin.org라는 도메인을 소유한 단체가 중립적으로 개발 및 유지보수를 하고 있지만, 2012년 설립된 비영리 비트코인 재단과 팍스풀이라는 중개소가 재정지원을 한다. 그런데 비트코인재단은 설립 초부터 이사진들이 사기와 범죄 등에 연루되기도 했다. 한편 이더리움은 창업자 비탈릭 부테린이 주도하는 이더리움 재단에서 직접 개발과 유지보수를 책임진다. 이들 재단은 ‘선 채굴’등 편법을 통해 많은 이익을 편취하거나 무리한 ‘하드포크’를 강행하는 등 민주적 운영과 거리가 먼 행태를 보인바가 있다.(이더리움의 The DAO 사건) 리브라 협회는 다를 것인가?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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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권력의 통제를 배제하면, 통제받지 않는 권력들이 통제 불능의 상황을 만든다.

일부 탈중앙화 이상을 추구하는 블록체인 옹호자들 가운데에는, 특히 페이스북과 같은 ‘시장권력’에는 뜻밖에 우호적인 반면 국가나 공적권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심각하게 반감을 갖거나 불신하는 사례가 많다. 때문에 이들이 생각하는 탈중앙화는 특정 독점기업으로부터의 독립이라기보다는 주로 국가나 중앙은행으로부터 독립을 암시하는 경우를 발견하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앞서 인용한 이병욱씨는 최근 저서에서 매우 간명하게 탈중앙화가 어떤 조건에서 이뤄져야 하는지를 진단하고 있는데 그의 주장으로 결론을 대신하면 될 것 같다.

“정부는 투표라는 수단에 의해 국민이 선출한 최고권력 기구다. 정부는 권력으로 국민을 지배하지만, 국민은 투표라는 권력으로 정부를 견제한다. 정부의 큰 역할 중 하나는 잡다한 다른 권력들을 적절히 통제하는 것이다. 국가 권력이 배제되면 그 자리는 통제받지 않는 권력이 차지한다.”

“블록체인은 사토시 나카모토의 순진한 이상처럼 권력 기관의 개입을 막아 더 투명해지는 세상을 구축하는 기반이 아니라, 선출된 권력을 배제시키고 통제 불가능의 혼란을 구축하는 플랫폼으로 악용될 수 있으며, 이 우려는 이미 암호 화폐를 통해 현실화 되었다. 암호 화폐의 광풍 이면에는 절대 익명이라는 통제 불능의 보호막 뒤에 숨어 시세를 조종, 선동하는 신흥세력들이 있다. 이들은 이미 암호 화폐 시장을 장악하고 통제하며, 사람들을 마음껏 유린하고 있지만 ‘블록체인’과 ‘디지털 자산’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 아무런 제제 없이 마음껏 부를 늘리고 있다. 거대한 부를 손에 쥔 이들은 이제 권력과 법조계까지 움직이고 있다. 이들은 250년이 된 ‘보이지 않는 손’을 전면에 내세우며 규제 철폐를 외친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손’을 가장 잘 실현해줄 수 있는 것은 권력을 가진 ‘보이는 손’이다. ‘보이는 손’이 투명하게 개입할 때 ‘보이지 않는 손’이 제 역할을 한다.”

요약하면 이렇다. 국가권력의 통제를 배제하면, 통제받지 않는 권력들이 통제 불능의 상황을 만든다. 탈중앙화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조직의 문제이며 민주주의의 문제다.

김병권 / 서울시 협치자문관

● 참고문헌:

이병욱(2019). 『블록체인 해설서』. 에이콘

이병욱(2018).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탐욕이 삼켜버린 기술』. 에이콘

Libra Association Members(2019). “An Introduction to Libra: White 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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