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후기]”괜찮아마을이 청년들에게 고향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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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지 괜찮지 않은 보통의 청년들’이 모여 6주 동안 공동체를 체험하는 ‘괜찮아마을’을 아시는지요? 지난해 8월 목포에 모인 청년들의 실험은 사회적경제, 도시재생, 커먼즈 활동가들한테 입소문으로 퍼지면서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30명씩 두 차례에 거쳐 전국에서 모였던 60명의 청년 중 무려 28명이 목포에 남아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게 됐기 때문이죠. 그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다행(多行)이네요》(김송미 감독) 상영회가 2019년 9월 5일(목) 오후 7시 서울혁신파크 상상청 2층 상상의 숲에서 진행되었습니다. 132분의 긴 상영이 끝난 뒤에도 60여 명의 관객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김송미 감독, 홍동우 괜찮아마을 대표와 대화를 나눴는데요, 그날의 뜨거운 분위기와 함께 전해드립니다.

 

홍기빈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장 (이하 홍 소장) : 긴 상영 시간에도 자리 지켜주셔서 감사하다. 괜찮아마을 홍동우 대표, 《다행이네요》 김송미 감독을 소개해드리겠다. 관객 질문에 앞서 혹시 하시고 싶은 이야기 있다면 해 달라.

홍동우 괜찮아마을 대표 (이하 홍) : 얼마 전 괜찮아마을 1주년이었다. 8월 마지막 주였다. 1주년 기념 홈커밍데이를 했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한다. 그 다음 어찌됐나. 너무 좋았던 기억 두고 떠나고 싶지 않다며 마을 지키고 싶다며 28명 자발적으로 남아 집 구하고 직업을 만들며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

김송미 감독(이하 김) : (공동숙소 식당에서) 채식 팝업 식당을 했던 ‘최소 한끼’는 진짜 문 열었다. 얼마 전에 가봤는데 너무 인기 많아서 웨이팅(기다리는 줄)이 길었다. 목포에 가면 꼭 가야 하는 곳, 핫 플레이스가 됐다. 엔딩 장면을 보며 청년들이 왜 (도시로) 돌아가는 것처럼, 도돌이표처럼, 보이게 했냐고 묻는 분 있었는데, 나는 이 모든 게 완결이 아니고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아직은 불안한…

: 불안한 마음 맞다. 모여서 돈 벌고 있다. 한 명 한 명이 모여서 지낼 수 있는 경제적 여건 못 만들면 다시 돌아가야 한다 서울로. 아직 진행 중이지만 28명 생태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3기 모집하고 있다.

: 정말 최초의 실험이다. 서울혁신파크에서 상영한다 했을 때 여기에 우리와 비슷한 분들이 입주해 있다 들었다. 각자 그래서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가,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그런 시간 갖고 싶다.

: 궁금한 거 있으면 묻고 답하자.

홍 소장 : 막간을 이용해 묻고 싶다. 괜찮아마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 청년 28명이 살아가는 방식이 다양하다. 공방 ‘안목’, 지역 영화관을 만든 친구들도 있고 ‘공장공장’에 취업한 친구들은 14명이다. 어떻게든 그 친구들 역량 활용하려고 만든 게 투어 프로그램이다. 목포 오시면 여러분들 위해 우리가 봤던 목포 구도심을 투어하는 프로그램, 영화와는 다른 얘기들 이야기하는 프로그램 이용해 달라. 유료로 진행하고 있다. 여기 있는 많은 분이 예산 쓰시는 분들로 알고 있다. 예산 쓰러와 달라(웃음).

: 이렇게 살아가는 삶도 직업으로 여겨지길 바란다. 이 영화를 기성세대, 어른들이 많이 봐주면 좋겠다. 다큐 만드는 과정이 기니까 열망하는 목표가 있어야 겠다 싶었다. 괜찮아마을 입주한 청년들의 부모가 자녀들을 이해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 친구들이 사실 어려움 겪고 괜찮지 않게 되는 과정을 보면, 부모 세대들이 ‘괜찮은 삶’이라고 여기는 것과 이 친구들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부모 세대는 먹고 사는 게 해결해야 하는 문제였다면 청년 세대는 그 보다 상위의 여러 가지를 원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좀 다른 직업상이 있는데 현실은 한 치도 나아가지 못했다. 나는 다큐 , 프리랜서 감독이다. 부모님들이 보기엔 비주류로 여겨지는 직업이다. 청년들이 생계 솔루션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다큐 출연자 부모들이 상영회 와서 “내 딸이 생각 없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네요?” 하면 뭔가 통쾌한 마음이 들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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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소장 : 투어 프로그램 하러 가면 되나?

: 20명 이상 오시면 좋겠다. 최소 10명 이상 오시면 좋도록 프로그램을 짜 놨다.

관객 1 : 선배 따라 왔다. 뭔지 모르고 왔다. 근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감명 깊게 봤다. 3기 모집한다 했는데 가고 싶다. 앞으로 목표 듣고 싶다.

: 괜찮아마을을 계속 만드는 게 목표다. 지금까지는 실패해도 괜찮아, 쉬어도 괜찮아, 했다면 앞으로는 청년들이 즐기고 일하다 한 시절 보내다 가는 디지털 노마드의 성지? 치앙마이, 발리와 함께 3대 디지털 노마드의 성지로 만드는 게 목표다. 거기서 행복한 소시민으로 살고 싶다.

홍 소장 : 아재를 위한 프로그램은 없나?

홍 : 내 역량 그다지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내 라이프 스타일 쫓아가는 게 좋다. 지금은 2030. 앞으로 4050이 되면 (아재 프로그램도) 기획할 수 있겠다.

: 사람이 모두 같아지면 그거야말로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삶, 이런 사람도 존재한다고 보여주고 싶었다. 이 다큐 만들면서 제 고민 해결됐다. 다음 스텝은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보고 싶다. 새로운 여성상 있는 것만 같다는 생각 많이 든다. 씩씩하고 진취적인 여성을 그리는 작품 활동하고 싶다.

관객2 : 같은 세대 같다. 청년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 느낌이었다. 목포 내려가게 된 계기도 괜찮아마을 청년들과 비슷했을 것 같다. 청년들한테 위로 건네게 된 계기 뭐였나?

: 딱히 목포여야 할 이유는 없었다. 청년 중에서도 목포에 살아보고 싶었던 욕망 가지고 온 청년 딱히 없었다. 연인, 배우자 만나는 이유와 비슷할 것이다. 별 이유 없었다. 다만 어느 날 로맨스가 있었다. 괜찮다고 생각했던 많은 도시가 있었다. 근데 어느 날 목포에서 공간 써보겠냐 제안했고, 하다 보니 ‘로맨스’가 일어난 것이다. 많은 지자체에서 와서 같은 것 묻는다. 청년과 로맨스를 만들어내려 하면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난 원래 여행자였다. 여행작가로 살다 독일, 프랑스, 캐나다에서 공유경제라는 걸 맛봤다. 도시 곳곳에 자전거 깔아놓은 것 보고 26세 때 서울에서 공유스쿠터 사업을 하면서 돈을 많이 벌었다. 29세에 내가 일을 하지 않고 돈을 버는 불로소득자가 됐다. 그 후 여행하면서 우리나라에도 아름다운 곳이 많은데 하면서 전국일주 여행사를 차렸다. 9명이 함께 차타고 여행하는 프로그램. 1300명이 참여했다. 모닥불 피워놓고 얘기하다 보면 공통된 얘기가 반복해서 나왔다. 취업 어렵다 혹은 어렵게 취업했는데 박봉에 성희롱에 괴롭다, 그럼에도 부모님이 좋아하니까 혹은 친구가 부러워하니까 못 그만 둔다… 우리나라 자살률이 OECD 1위다 하면 다들 끄덕끄덕한다. 15년 동안 그랬다. 30대 경우, 한 해에 교통사고로 죽는 청년보다 자살로 죽는 청년이 5배 높다. 정신 치료 말고는 우리가 돌아갈 품이 없다.

: 나도 동우씨 여행에 참여했다. 그런데 뭔가 특별했다. 마법 같은 순간이 있었다. 동우씨가 말이 많다. 내 스타일 아닌데, 하면서 여행하는데… 사람들이 풍경 속에서 속을 털어놓고 말하는, 마법 같은 순간이 있었다. 다큐 찍으면서도 그랬다. 이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다큐 끝낼 수 있었던 건, 다큐가 흔히 그렇듯 비판하는 시선 없이 너무 부들부들하게 만들었던 건, 동우씨한테 ‘난 괜찮아마을에서 괜찮아가 제일 싫다’고 했는데 이렇게 응원하게 된 건, (괜찮아마을 후원한) 행정안전부에서 뭐가 있었던 건 아니냐 하는데 그런 측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들을 보며 그들이 잘 되었으면 좋겠고 괜찮아마을에서 믿을 수 없을 만치 선한 에너지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들보단) 나 자신을 응원한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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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3 : 도시재생 리서치하고 있다. 일하러 보러 왔다가 감동했다. 괜찮아마을 홈페이지 보니까 직원들 열일하고 있다. 어떻게 그렇게 했나?

: 많은 분들이 묻는다. 도시재생, 사회적경제, 우린 잘 모른다. 여행하면서 만난 청년들이 너무 아파하더라. 원래는 ‘한량유치원’ 기획했다가 지속하려면 마을처럼 되어야 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 괜찮아마을이 나왔다. 처음부터 목포에서 만들어야겠다고 한 게 아니었다. 원래는 치앙마이에서 만들려 했다. 우리는 주식회사다. 돈 벌려고 만들었다. 치앙마이는 싸다. 근데 계산기 두드려보니 청년들이 못 오겠다. 그래서 지방 소도시에 눈 돌렸다. 괜찮아마을의 기본개념은 비어있는 자원 활용해 쉬어 갈 수 있는 품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도시재생을 위해서, 고령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온 게 아니니까. 2기 때부터는 지역을 위해 하는 행위를 많이 없앴다. 지역에서 창업 기획, 지원 많이 한다. 우리가 3000만원 없어 창업 못하는 게 아니다. 지역에서 괜찮아, 와서 쉬어도 돼, 이런 프로그램이 없었다. 지역에 와서 ‘너희가 빛내봐’라고 한다. 우리가 반딧불이도 아니고 지역을 어떻게 빛내나.(웃음) 청년들끼리 좋은 시간 보내다 보니 지역 자원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계속 살고 싶어 하니까 그런 것. 괜찮아마을이 청년에게 주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서울에서 아무리 일해도 우리가 돈 버는 속도보다 집값 오르는 속도가 더 빠르다. 한 달에 135만원을 벌면, 숨만 쉬고 잠만 자고 밥만 먹어도 그 돈을 다 쓴다. 그러니까 야근, 잔업하게 된다. 목포에선 30평대 월세가 40만원인데 서너 명이 살 수 있다. 식비도 줄어든다. 쉐어 하우스 한 숙소에선 15명이 지냈는데 한 달에 식비로 10만원씩 걷었다. 그 돈을 6주가 지났는데도 다 못 썼다. 오병이어의 기적 같았다.(웃음) 마지막엔 돈이 남아서 고기 사고 맥주 사서 파티했다. 공동체의 힘, 지역의 힘 느꼈다. 그리고 지역에도 많은 일이 있다. 디자인, 영상제작…요즘 청년의 감각으로 잘 할 수 있는 일들이다. 부득이하게 일이 많을 땐 야근도 하고 밤샘도 한다. 일을 하는 시간의 양때문에 불행한 게 아니라 인간적으로 소통하고 대접 받는 것이 중요하다.

관객4 : 원래 1기 모집 웹사이트 통해 보고 작년에 신청할까 말까 하다가 다큐 한 대서 와서 봤다. 정말 눈물이 났다. 난 엔지오에서 일하고 있다. 예전엔 미얀마에서 5개월 일했다. 그 후 계속 마을공동체를 찾아다녔다. 마을 안에 있으면 굶어죽을 일 없겠다는 기분을 한국에선 어렸을 적부터 느껴본 적 없는데 해외에선 느꼈다. 서로를 잘 아니까 뭐가 없으면 빌릴 수도 있고. 한국에서 이게 될까, 지속가능성이 있을까. 청년들이 앞으로 시골이나 지역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데에 어떤 기반이 있어야 할까. 나도 작은 공동체로 돌아가고 싶다.

: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한테 성공적 모델 물어본 적 있다. 없다고들 했다. 괜찮아마을이 지속가능한 모델 만들었다는 게 아니다. 그냥 되게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공동체라 생각한다. 시도도 어렵고, (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따뜻하게 봐주고 있지만 다른 분들은 안 그렇다. 너무 높은 기준을 제시하면서 ‘그래서 너희 서울만큼 잘 하고 있냐’ ‘당장의 결과치를 보여 달라’ 그런 분들 계신다. 내가 생각해도 벅 찬다. 나도 묻고 싶다.

: 공동체에 대한 질문이다. 괜찮아마을 만들기 전만해도 공동체란 말에 관심이 1도 없었다. 공동체라는 말, 구리지 않냐. 이 말은 어디 가면 삼촌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받냐, 취직은 했냐 물을 것 같고…그런데 영어로 커뮤니티라 하면 뭔가 다르게 느껴진다.(웃음) 그래서 생각한 게 우리가 봤던 공동체는 사람들이 구렸던 것 아닐까. 아주 예전, 아버지 세대엔 안 그랬던 것 같다. 옛날 소설 읽어보면, 서울에서 힘들게 지내던 사람이 고향 돌아가면 “삼촌~” 하고 달려오는 아이가 있고 엉덩이 두들기며 “아이고, 내 새끼 왔냐”며 밥 차려 주는 할머니가 있고 그래서 힘을 얻어 다시 도전하고…제가 살던 아파트는 재건축됐다. 우리 세대 거의 그렇다. 다들 고향이 없다. 아버지는 힘들면 맨날 하는 말이 “고향 가서 농사라도 지어야지” 하는데 우리 청년은 갈 곳이 없다. 농사도 모른다. 지금 다니는 이 회사에서 잘리면 먹고 살 길이 없다. 고향이 없다. 그래서 더 절박한 거다. 괜찮아마을은 그 청년들한테 고향이면 좋겠다. 고향이 우리 청년한테 필요하다 생각하게 됐다.

홍 소장 : 다른 지자체에서 흉내 내고 따라하려 할 것 같다. 하지만 저게 쉽사리 카피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어마어마한 암묵지 있는 듯하다. 따라하려는 사람들한테 하고 싶은 얘기 있나.

: 그래서 결과보고서 공개했다. 세상에 더 많은 괜찮아마을이 만들어지게 하자고. 운칠기삼란 말이 있다. 난 다르게 말한다. 기획이 3, 운영이 7이라고. 괜찮아마을 같은 거 운영하면 잠 자다가도 뛰쳐나가야 한다. 한 번은 새벽 3시에 전화 와서 뛰어나간 적 있다. 같이 대화하던 남자분이 여자분들을 외모 평가한다고. 기분 나쁘다고. 운영에 정말 신경 쓰는 사람이라면 조용히 남자분 끌고 나가서 “여자들이 사회에서 계속 외모로 평가 받는다, 여기서까지 그러면 안 된다, 사과해주시면 좋겠다” 해야 한다. 행안부 후속 프로그램으로 여러 지역에서 한다. 이런 식의 운영 문제 생길 것이다. 운영자 교육 필요해 보인다. 운영자들이 청년들을 또 상처 주는 일이 생기면 안 된다. 그래서 투어 하고 있다. 운영, 투어 교육하고 있다.

: 미묘한 차이 있다. 사소한 것. 첫 도시락 시켰던 때 동우씨가 그랬다. 아, 실수했다고. 왜? 하고 물으니, 채식하는 사람 있는지 안 물어봤다고 답했다. 이런 운영에는 비효율이 있다. 그 비효율을 밤새 가면서 고민하고 개선하고. 그런 마음을 카피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 청년 세대는 잘 한다. 더 나은 감수성으로 프로그램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홍 소장 : 헤어질 시간이다. 칼폴라니연구소 뭐냐 잠시 말하겠다. 칼폴라니라는 사람은 경제사상가다. 경제는 원래 우리 삶을 위한 것이고 기능을 위한 게 아니라고 말한 사람이다. 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경제라는 게 삶을 무시하고 기능만 강조한다. 그런 면에서 이 분들의 경험이 정말 소중하다는 생각으로 상영회를 열었다. 괜찮아마을, 칼폴라니연구소에 관심 가져달라.

정리 = 이경숙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미디어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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