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이 더 낮은 사람이 사실상 더 많은 부담을 지는 현재의 국민건강보험제도를 바꾸는 것, 실질적 평등을 향한 아주 작은 시작이지만 의미있는 첫 걸음이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건강보험제도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는 세계적으로도 우수하다고 평가받는다. 실제로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기 힘들만큼 빠른 시간인 12년(1977년 ~ 1989년)만에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건강보험 체계가 정착되었고, 대다수 국민들 역시 비교적 저렴한 비용에 높은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다만, 근래에 들어서는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 증가에 따른 우려와 적정수가를 요구하는 의료계 요구 등으로 여러 문제점이 지적되기도 한다.
한편, 현행 의료보험 제도에 대한 거의 모든 논의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보험재정’에 대한 부분이다. 문제점과 해결방안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견이 존재하지만, 건강보험 재정이 안정적으로 확보되어야 한다는 부분에서는 거의 모든 의견이 공통된다.
불합리한 보험료 상한제
그러나 이러한 사회 다수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보험료 제도는 매우 불합리한 체계를 갖추고 있다. 바로 일정 소득 이상의 최상위 계층의 소득에 대해서는 사실상 보험료를 감면하고 있는 보험료 상한제도가 그것이다.
1977년, 지금은 건강보험법으로 이름이 바뀐 의료보험법에 존재했던 상한제는 1985년 폐지된 이후 2002년까지 유지되다가 그해 말 국민건강보험법이 개정되면서 다시 부활한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 결과 2019년 현재 기준으로 직장가입자의 월보험료의 상한은 6,365,520원이다. 즉, 아무리 많이 벌어도 월보험료는 저 금액 이상을 내지 않는 것이다.
물론 해당 보험료의 액수 자체가 적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래에서 보는 것처럼 상한제는 국민건강보험법의 목적에도 맞지 않고, 헌법이 규정한 평등의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무엇보다 불합리하게 최상위 계층한테 혜택을 줌으로써 결과적으로 다수의 국민들이 더 많은 부담을 지게 되는 실질적인 불평등을 제도화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국민건강보험법의 목적에 반하는 최상위 계층에 대한 보험료 감면
국민건강보험법은 제1조에서 해당 법의 목적이‘국민보건 향상과 사회보장 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 법에 따라 납부되는 건강보험료와 같은 사회보험은 ‘보험의 원칙’과‘사회연대의 원칙’이라는 2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운영된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설명이다.
‘보험의 원칙’이란 보험료와 보험급여 간의 등가 원칙을 말한다. 우리 모두가 아는 것처럼 보험료를 많이 낸 사람이 많은 혜택을 받는 원리가 그것이다. 그에 반해 ‘사회연대의 원칙’은 보험료 및 보험급여 산정에 있어 사회적인 조정이 이루어질 것을 요구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보험의 원칙에 수정을 가하는 원리일 뿐만 아니라, 사회보험체계 내에서의 소득 재분배를 정당화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이것 역시 우리가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바다. 소득이 높은 사람이 건강보험료를 많이 내는 것은 바로 이 사회연대의 원칙 때문이다.
헌법재판소 역시 “사회연대의 원리에 따라 소득에 비례하여 보험료를 산정함으로써, 소득이 많은 자가 소득이 적은 자에 비하여 많은 보험료를 부담해야 하는 것은 사회보험의 성격상 당연하다”고 밝힌 바 있다(헌법재판소 2000. 6. 29. 선고 99헌마289 결정 참고).
그러나 현행 국민건강보험법은 이러한 원칙에 정면으로 반하는 상한제를 운영하고 있다. 상한제 덕분에 아무리 소득이 많은 사람도 6,365,520원 이상은 내지 않기 때문에 결국 일정 금액 이상을 버는 최상위 계층은 실질적으로 보험료를 면제받게 되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보험료를 내기 어려운 저소득층에 대한 보험료 감면은 건강보험의 목적과 취지상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러나 부담 능력에 문제가 없는, 아니 오히려 차고 넘치는 최상위 계층에 대한 보험료 감면은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는 이들에 대한 불합리한 우대이고, 국민보건 향상과 사회보장 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건강보험법에 정면으로 반하는 불합리한 차별이다.
소득이 많을수록 실질 부담률이 낮은 불평등한 제도
현행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르면 일정금액 미만의 소득을 버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자신이 번 전체 소득에 비례한 보험료를 부과하는 데 반하여, 최상위 계층의 사람들에게는 소득이 아무리 높아져도 보험료 상한액인 6,365,520원만을 부과한다. 이로 인해 소득이 적은 사람이 실질적으로 더 많은 보험료의 부담을 안게 되는 이른바 ‘역진성’이 나타나게 된다.
아래의 표는 이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표1. 건강보험료의 역진성]
* 법정 보험료 상한액 적용
** 법정 보험료율과 동일
월 1,000만원을 버는 사람은 일반인의 관점에서 상당히 고소득자다. 그러나 그런 사람도 자신이 번 돈의 6.46%인 646,000원을 보험료로 납부한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버는 사람, 가령 한 달에 5억 원을 버는 사람은 자신이 번 돈의 1.27%만을 보험료로 낸다. 더 나아가 10억 원을 버는 사람은 자신이 번 돈의 0.636%만 보험료로 내면 되는 것이 현재의 제도이다.
이러한 불합리한 결과는 앞서 헌법재판소가 언급한 ‘소득에 비례하여 보험료를 산정해야 한다는 사회연대의 원칙’에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리고 이는 결국 헌법의 명시적인 규정에 반해서 최상위 계층을 우대하는 경제 능력에 따른 불합리한 차별에 해당한다.
헌법재판소는 일관되게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하는 것’이 헌법 제11조가 규정한 평등의 원칙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소득에 비례해서 보험료를 내는 모든 국민들을 동일하게 대우받는 것이 타당하다. 더 많은 돈을 번다고 해서 실질적으로는 더 적은 보험료를 내는 것은 평등하지도 않고, 헌법이 요구한 것도 아니다.
더욱이 이러한 제도는 궁극적으로는 최상위 계층이 아닌 국민 대다수의 재산권을 침해한다. 앞서 본 것과 같이 최상위 계층은 자신의 소득에 비례해서 내야 하는 보험료 보다 적은 금액을 내고 있는데 그만큼 그들이 부담해야 할 부분을 나머지 가입자들, 즉 국민 대다수에게 전가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소득이 많은 자가 더 많은 사회적 부담을 지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이라면 현행 보험제도는 이러한 상식과는 정반대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실질적인 평등이 필요하다
대한민국헌법 제1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제2항은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고 다시 한 번 평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2019년 현재의 국민들은 우리 사회에 실질적인 계급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 같다. ‘금수저’로 회자되던 이른바 ‘수저론’이 그 단적인 예다. 거기에 더해 청년층들의 분노를 표현한 ‘헬조선’이라는 용어에 이르면 우리 사회의 어두운 현실에 이른바 고구마 100개를 집어삼킨 듯한 답답함을 피하기 어렵다.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는 평등이 절실하다. 그리고 그 평등은‘평등권’이라는 추상적 단어가 아닌 일상생활에서 구체적으로 느껴지는 ‘살아있는 평등’ 그 자체여야 한다. 더 이상 말이나 글 속에서만 존재하는 평등이 아닌 오늘, 지금 내 삶 속에서 보고,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평등이 우리에게는 절실하다. 소득이 더 낮은 사람이 사실상 더 많은 부담을 지는 현재의 국민건강보험제도를 바꾸는 것, 실질적 평등을 향한 아주 작은 시작이지만 의미있는 첫 걸음이다.
이동우 / 법률사무소 호연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