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가격은 시장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기관에 의해 제정된다. 국가권력에 의해 제정되는 가격은 시장 메커니즘의 그것이 아니다. 북한의 국정 가격은 ‘등가’(等價)라 불러야 마땅하다.
1. 북한 화폐의 성격
1947년의 화폐개혁으로 북한은 화폐 자주권을 실현했다. 물론 한반도의 반쪽에서만 통용됨으로써 분단의 모순이 노정되는 상징물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북한은 이를 통해 유일 화폐제도와 더불어 재정금융의 토대를 굳건히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 식민지의 잔재와 단절하고 성립한 ‘공화국 화폐’는 1947년 이후 적지 않은 성격 변화를 보여 왔다. 여기서 북한 당국이 지속적으로 추구했던 ‘화폐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고찰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화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부여하는 기능과는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사회주의 이론에 따르면 화폐란 일정한 단계에서 발생했다 소멸하는 한시적인 경제범주일 뿐이다. 결국 화폐는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과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므로 항구성이 없는 것이다.
북한은 인민 경제를 계획적으로 관리하고 운영하는 ‘보조적’이지만 ‘적극적’인 역할을 화폐에 부여하고 있다. 사회주의에서 화폐가 수행하는 기능은 자본주의 사회와 같이 상품의 가치를 측정하고 그 유통을 중개하는 것이다. 새로운 기능으로 국영기업소 상호 간에 유통되는 ‘상품적 형태’를 가지는 생산수단의 교환을 중개해주는 역할이 추가된다. 그러나 일반적인 사회주의 국가와 북한과는 화폐제도 운용상 무시할 수 없는 차이도 존재한다. 그것은 북한이 독립적 화폐제도를 성립시킨 이래 화폐의 기능을 지속적으로 억눌렀다는 점이다.
화폐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기능, 즉 척도기능, 지불기능, 교환기능, 축적기능 등을 모두 수행할 수 있는 화폐를 ‘보편화폐’라 부를 수 있다. 반면, 특정한 목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통화수단이 있다. 예를 들어 교육비 지출에만 쓸 수 있는 바우처, 한도액과 용처에 제한이 가해진 법인 카드, 비정상적 상황에서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담배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통화수단을 ‘제한화폐’라고 부른다면 공화국 화폐는 제한화폐로 분류될 것이다. 북한이 화폐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수행될 수 없도록 제한을 가했기 때문이다. 화폐가 집단적 이상을 추구하는 공동체에 뿌릴 ‘개인주의’라는 독소를 염려했던 것이다.
【그림 2-1】 1990년대 이전 북한 화폐의 기능
2. 북한 화폐의 기능
1990년대 이전까지 북한은 화폐가 수행하는 기능을 제한해갔다. 먼저, 가치척도 기능은 “생산물의 가격과 원가를 계획”하는 역할 정도로 축소되었다. 화폐가 척도로써 기능한다는 것은 상품ㆍ서비스의 가치가 소재로 표현된 공통척도인 화폐에 의해 양적인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서 화폐는 상품의 가치를 투명하게 비추어 주는 거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다. 가격은 국가기관에 의해 결정된다. 정치적 요구에 따라 대중소비품은 낮은 가격으로, 사치재는 높은 가격으로 책정함으로써 의도적으로 가치와 가격을 괴리시키기도 한다.
북한 화폐는 교환기능을 수행하기는 하되 그 범위는 제한적이다. 북한에서 ‘상품’인 소비재는 ‘현금거래’로 하고 ‘상품적 형태’를 띠는 생산수단은 ‘무현금거래’를 원칙으로 한다. 결국 화폐는 소비재를 거래하는 경우에만 ‘교환수단’으로 기능한다. 그러나 화폐를 가지고 있다하여 소비재를 제한 없이 구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식량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화폐 이외에도 ‘량권’이 함께 필요하다. 교환기능이란 화폐를 매개로 소유권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온전히 실현될 수 없는 것이다. 김일성도 북한 화폐의 불완전함을 지적한 바가 있다.
상점에서 상품을 사려면 돈보다도 한도행표가 있어야 요구되는 것을 마음대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중앙은행에서 발행한 화폐보다 기관, 기업소 책임자들의 도장이 찍힌 종이쪼각이 더 효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김일성, “당사업을 강화하며 나라의 살림살이를 알뜰하게 꾸릴데 대하여”(1965.11.15∼17)
화폐가 지불수단으로 기능한다는 것은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에게 화폐를 인도함으로써 권리와 의무 관계를 청산함을 말한다. 개인 간에는 주로 신용거래에서 나타난다. 1990년대 이전의 북한은 신용거래를 통한 채권의 생성이 매우 드물어서 개인 간에 지불기능이 수행되기 어려웠다. 또한 노동의 대가는 현물과 사회보장 등의 형태로 분산되어 있어 임금의 의미가 자본주의 사회와 같지 않았다. 북한에서 세금은 1974년 폐지 선언 이후 1990년대 이전까지 공식적으로 없었다. 결론적으로 1990년대 이전까지 북한 화폐는 지불기능을 수행할 여지가 없었다.
가치저장기능은 화폐 보유를 통해 현재의 구매력을 미래로 이전시키는 것이다. 김일성의 화폐관에도 이와 같은 태도가 엿보인다.
화폐란 류통성을 가진 물건이며 화폐 류통이 오랜 기간에 걸쳐 발전하여 오는 과정에 종이돈이 생겼습니다. 돈이라는 것은 원래 생겨날 때부터 류통하기로 되여있는 물건입니다. 화폐는 그 본성에 맞게 끊임없이 류통시켜야지 쓰지 않고 궤짝에 넣어두어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써먹지 않는 돈은 류통자금인 것이 아니라 동결자금입니다. 만일 재부를 축적하려면 금덩어리나 금반지 같은 것을 넣어두어야지 종이돈을 넣어두어서는 소용이 없습니다.김일성, “제2차 7개년계획 작성 방향에 대하여”(1974.7.10∼11)
북한은 저금사업을 통해 집요하게 화폐축장을 막았다. 또한 잦은 화폐교환사업을 통해 퇴장된 화폐를 몰수하거나 유통으로 끌어냈다. 이것은 행여 화폐가 축적되어 자본으로 전화되는 것을 우려한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은 저축할 여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저축을 해도 되찾기가 어려워 기피했다. 1990년대 이전까지 북한 화폐의 가치저장기능은 작동할 수 없었다.
3. 등가 체계 정립
자본주의 체제에서 재화와 서비스의 배분은 수요와 공급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되는 가격 메커니즘에 기대고 있다. 사람들은 정교한 작동시스템이 ‘자연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인간 본성에서 연원하는 체제라고 주석을 단다. 그러나 사실 가격 결정시장은 인류사에서 매우 특수한 시대에 제한된 정치경제적 환경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인류사에서 거의 대부분의 시기에는 ‘상품’, ‘시장’, ‘화폐’ 어느 것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인류는 근대 이전에 자동적으로 조절되는 가격을 경험하지 못했다. 가격 조정시장은 전목적적 화폐, 충분한 상품, 그리고 조직화된 시장이 필요하다. 사회주의 체제는 그 어떤 것도 용인하지 않는다. 북한의 가격은 시장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기관에 의해 제정된다. 국가권력에 의해 제정되는 가격은 시장 메커니즘의 그것이 아니다. 북한의 국정 가격은 ‘등가’(等價)라 불러야 마땅하다.
여기에서 등가란 어떤 재화나 서비스에 화폐를 대입시키고 대상물의 가치에 따라 단위적 수량을 부여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제정된 가격’이다. 흔히 서로 다른 종류의 재화 사이의 수학적 교환 비율을 ‘가격’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과거의 북한과 같이 가격 결정시장이 작동하지 않는 사회에서 그것은 가격이 아니다. 실제 그런 숫자들은 시장 및 시장가격과는 무관한 ‘등가’를 의미한다. 등가 성립 과정에서 흥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이기적 욕망의 균형인 ‘시장 청산’도 함의하지 않는다. 공동체의 유지와 공정함이 등가의 정당성을 지탱한다. 등가는 공동체의 유대와 결코 분리할 수 없으며 등가의 형태로 몫을 나누는 것은 공동체의 통합에 기여하는 때에만 정의로운 것이 될 수 있다. 북한에서 가격, 즉 등가는 ‘자립적 민족경제’로 표현되는 공동체의 자급자족에 복무해야 한다. 1990년대 이전의 북한에서 상품의 교환 비율은 ‘가격’이라 쓰지만, ‘등가’로 읽어야 한다.
언뜻 생각해보면 대상물에 투입된 생산요소인 원가, 비용 등을 계산하고 적정한 이윤을 붙여 산정하면 간단할 가격 제정이 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화폐가 하나의 공동체이며 인간관계이듯 화폐를 통해 표현되는 가격은 이미 사회적 권력관계의 표징이다. 가격을 통해 사회 성원의 몫이 결정되며 교환과 재분배가 실현된다. 고대 근동에서 권력자는 먼저 공동체 차원의 등가를 선포했다. 대개 등가는 신성한 권위에 의존한다. 기본적인 등가가 정해지면 이에 따라 교환과 배분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것이 해당 공동체의 ‘정의’와 ‘공평’의 척도가 된다. 고대 사회에서 권력자가 등가를 선포한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라.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일러라. 어느 누구든지, 주에게 사람을 드리기로 서약하고, 그 사람에 해당되는 값을 돈으로 환산하여 드리기로 하였으면, 그 값은 다음과 같다. 스무 살로부터 예순 살까지의 남자의 값은, 성소에서 사용되는 세겔로 쳐서 은 오십 세겔이고, 여자의 값은 삼십 세겔이다. 다섯 살에서부터 스무 살까지는, 남자의 값은 이십 세겔이고, 여자는 십 세겔이다. 난 지 한 달 된 아이에서부터 다섯 살까지는, 남자의 값은 은 오 세겔이고, 여자의 값은 은 삼 세겔이다. 예순 살이 넘은 사람들은, 남자의 값은 십오 세겔이고, 여자의 값은 십 세겔이다.<표준새번역 구약성경 레위기 27장 2~7절>
가격은 어떤 재화가 다른 재화를 교환의 대상으로 지배하는 힘이다. 그리고 이것은 수량적 비율로 나타난다. 교환 과정에서 공급자는 많은 대가를 요구하고 수요자는 적은 희생을 치르려 한다. 거래는 본질적으로 상호 적대적이다. 화폐는 이러한 적대적 상호작용에서 인격과 감정적 요소를 배제함으로써 전일적 삶속에서 교환을 소외시킨다. 화폐가 거래의 매개가 되면, 쌍방은 명백한 적대적 관계를 내포하는 태도에 의해 달성될 수 있는 ‘이익’만을 목표로 삼는다. 이러한 교환 양상에 수반되는 적대적 요소는 아무리 희석시킨다 하더라도 결코 근절될 수 없다. 북한은 구성원들 간의 결속의 원천을 보호하고자 하는 공동체이다. 그들은 화폐에서 공동체의 결속을 저해하는 씨앗을 발견하고 의도적으로 불구로 만들었다. 북한은 화폐가 수행하는 일반적인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도록 봉인하였다. 공화국 화폐는 가치척도로 기능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가격은 투쟁적인 시장에서가 아니라, 공동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자명한 일이 되었다. 북한에서 상품 가격이나 서비스 요금 등 모든 국정가격이 내각의 ‘국가가격 제정국’에서 결정되었다. 북한의 화폐는 자본주의 사회의 화폐와는 달리 공동체에 의해 결정되는 가격, 즉 등가의 표현물로 자리매김 되었다.
북한이 건국 초기부터 제정한 ‘국정가격’도 결국 ‘등가’였다. 북한의 국정가격은 사실상 권위에 의해 설정되며, 가격의 변경도 결코 시장경제적인 방식이 아니라, 제도적 수단을 통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4. 국정가격의 성격
국정가격인 ‘등가’는 공동체 성원간의 선의와 공평성을 반영하는 것이어야 했다. 북한은 각종 재화의 가격, 임금 등을 현존하는 공동체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등가체계 속에 포함시켰다. 등가체계에서 가격은 공동체 구성원의 지위에 부합되고 그럼으로써 공동체의 기반인 유대를 강화시킨다. 그런 교환에서 ‘이윤’은 생기지 않는다. 고대의 유대인 선지자 아모스가 저울을 속여 밀을 파는 이스라엘인들에게 분노했던 것도 그러한 맥락이다. 당시에 재화 가격은 고정되어 있었으므로 상인들은 가격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저울의 눈금을 조작해 폭리를 취했다.
빈궁한 사람들을 짓밟고, 이 땅의 가난한 사람을 망하게 하는 자들아, 이 말을 들어라! 기껏 한다는 말이, 초하루 축제가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 수 있을까?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낼 수 있을까? 되는 줄이고, 추는 늘이면서, 가짜 저울로 속이자. 헐값에 가난한 사람들을 사고 신 한 켤레 값으로 빈궁한 사람들을 사자. 찌꺼기 밀까지도 팔아먹자 하는구나.”<표준새번역 구약성경 아모스 8장 4~6절>
김일성의 다음과 같은 언급 또한 아모스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전에 간상배나 장사군들은 도시와 농촌 물건을 사가지고 다니면서 한 걸음만 더 가도 몇 원씩 더 붙여서 팔아먹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간상배나 장사군들을 다 없애버렸습니다. …… 간상배나 장사군들이 없어지니 그전보다 물건이 도리여 많아졌습니다. 또 물건 값도 어디나 다 같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물건 값은 빨찌산 투쟁을 하던 백두산 밑에 가보아도 평양과 꼭 같습니다. 쌀값도 같고 담배값도 같습니다.”김일성, “조선인민군 제109군부대 군인들과 한 담화”(1960.8.25)
북한의 거래는 자립적 민족경제를 이루는 데 기여해야 하므로 이윤이 배제된 가격은 이를 보충한다. 화폐적 이익만을 위한 거래는 부도덕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민영기 / 동국대학교 외래교수, 북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