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저축-투자 갭을 방치하고 성장률은 둔화되는 데도 대외투자자산만을 대규모 쌓아 간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적극적 내수 확대의 한국형 뉴딜의 길로 갈 것인가? 지금 결정해야 한다.
한국은 지금 저축이 투자보다 많은 저축 과잉 경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된 현상이다. 국민총처분가능소득 대비 총저축률은 1995년 38.1% 수준이었는데 외환위기 이후 하락하기 시작해 2018년 34.8% 수준이다. 국내 총투자율은 1995년 39.2%였는데 외환위기 이후 급속히 하락해 2018년 30.4%다. 국민 계정에서 말하는 총저축은 가계, 기업, 정부 등 경제 전체의 저축이며, 국내 총투자도 국내에서 이뤄지는 민간과 정부의 총투자를 의미한다.
<그림 1> 한국의 총저축률과 국내 총투자율(%)
자료 : 한국은행 국민계정
저축-투자 갭은 순수출로 경상수지 흑자를 의미한다. 외환위기 이후 경상수지 흑자 폭이 급속히 증가했는데, 경상수지 흑자의 대부분은 해외투자로 이어지고 나머지 작은 부분이 외환보유고 증가분이다. 경상수지 흑자 대비 해외증권 투자 비율은 2017년 77%에 달했다. 결국 저축-투자 갭의 대부분이 국내 고용 증가나 성장과 별 관계없는 해외 증권투자로 나가고 있다.
<그림 2> 경상수지와 해외 증권투자 추이
자료 :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우리가 적정 수준의 균형 성장률과 고용률을 달성해 실업 문제가 없다면 높은 수익률을 따라 해외로 나가는 투자를 굳이 탓할 일이 아니다. 시장 원리에 의해서 투자 수익률이 높은 곳으로 투자 자금이 배분되는 것은 자본주의 시장 원리상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것이다.
저축 중 상당 부분은 국민연금 수지 흑자에 의한 공공 저축이다. GDP 대비 국민연금의 수지 흑자 규모는 2018년 2.8%이며 2020년 2.8%, 2025년 2.4%, 2030년 2%가 될 것으로 국민연금 4차 재정계산은 전망하고 있다. 2018년 전체 국민연금 투자 자산 중 해외주식 투자 비중이 17.7%, 해외채권 비중이 4%로 국내주식 18.7%, 국내채권 47.1%보다 작다. 그러나 2019년 목표 자산 운영 구성은 해외주식 20%로 국내주식 18%보다 크다. 과거엔 한국 성장률이 세계 성장률 보다 높았지만 향후 세계 성장률이 한국 성장률보다 높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수익성을 추구해야 하는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비중은 급속히 증가해 조만간 적립자산 중 해외투자 비중이 50%를 넘어설 것이다. 2009~2018년 10년간의 자산 운영 실적을 보면 국민연금 해외채권 투자 수익률은 4.61%이고 국내채권 투자 수익률은 4.34%이며, 해외 주식 투자 수익률은 8.63%, 국내 주식 투자 수익률은 7.88%였다.[1] 이처럼 해외투자 수익률이 국내 투자 수익률보다 높다면 당연 국민연금 자산운영에서 해외투자 비중을 높이는 것이 합리적이고 국민연금 가입자의 이익과 일치한다.
그러나 한국경제는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하며 제조업 구조조정으로 주력 경제활동 계층인 30대~50대 남성 고용률이 하락하고, 세계경제 둔화에 의한 수출 감소로 경제성장률이 급속히 하락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선 국내저축을 해외에 투자하기 보다는 국내에 투자해서 내수를 확대하고 경제를 활성화하고 고용을 늘리는 것이 국민경제 관점에서 더 바람직하다.
한국은 2009년 중반 이후 수출이 급증하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신속하게 극복하였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상수지 흑자가 급증한 것은 수출 증가 때문이 아니다. <그림 3>에서 보듯이 수출은 등락이 있었지만 2011년 이후 사실상 거의 정체 상태였다. 따라서 경상수지 흑자는 수출 증가가 아니라 순수출 증가, 즉 <그림 1>에서 본 저축-투자 갭 때문이다.
<그림 3> 수출액 추이
자료 :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국제통화기금(IMF)은 국내총생산 대비 경상수지 흑자 비율이 높은 것이 한국경제의 수출 경쟁력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긍정적 지표라기보다는 총수요에서 내수가 위축되어 있다는 것을 함축하는 지표라면서 한국은 내수를 촉진하기 위해 정책적 노력을 좀 더 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2] 즉 국내총생산 대비 가계소득 비율 감소에 따라 국내총생산 대비 가계소비 비율은 2002년 이후 계속 감소 추세였고, 국내 총투자율도 2012년 이후 하락해 저축-투자 갭이 증가하고 경상수지 흑자가 급증한 것이다. 그러므로 국제통화기금이 지적한 것처럼 소비와 투자 증가 둔화에 의한 내수 침체가 경상수지 흑자 증가의 주요 원인인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은 최저임금 인상, 기초연금 등 사회복지 지출 확대를 통해 가계소득을 늘리고 소비를 증가시켜 내수 확대, 성장과 고용 촉진의 선순환을 도모하는 것이다. 따라서 소득주도성장은 소비주도성장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계속 하락 추세였던 국내총생산 대비 가계소비 비율이 2018년 0.1% 포인트 상승하는 반전을 보인 것은 소득주도성장정책의 긍정적 영향으로 보인다.
<그림 4> 국내총생산 대비 가계소비 비율
자료 : 한국은행 국민계정
박근혜 정부의 “빚내서 집 사라” 정책의 영향으로 가계부채가 1,500조원에 달하고 있어 이자 상환 부담으로 가계소비 증가를 억누르고 있다. 지금처럼 세계경제 둔화로 수출 의존적 한국경제 성장이 악화되는 경우 가계소득 증가에 의한 소비주도성장을 추구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고소득층은 소비성향이 낮아 소득이 증가해도 소비 증가 효과가 크지 않다. 소득주도성장이 효과를 내려면 중산층 이하의 소득이 증가해야 하는데 불황 국면에선 소득 증가도 정체되기 때문에 소득주도성장의 효과를 제약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세계 GDP 대비 세계교역량 비율은 계속 증가추세였다. 그런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GDP 대비 세계교역량 비율이 완만하게 하락하는 추세로 바뀌었다. 미·중 분쟁 격화와 함께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고 있고 일본 경제도발로 한일관계도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세계교역과 자유무역주의가 세계경제를 이끌어 나가던 시절이 저물고 있는 것이다.
<그림 5> 세계 GDP 대비 세계교역량
한국 수출증가율은 2011년부터 급속히 둔화하여 수출액이 2011년부터 사실상 정체 상태에 들어갔다. 2017년, 2018년 초반의 반도체 특수로 인해 수출이 잠시 증가했지만 2015년 수출 감소를 만회하는 수준에 불과하며 2019년 들어 다시 감소하고 있다. 수출 감소를 내수 확대로 상쇄하지 못하면 결국 총수요 부족으로 경제는 침체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정책을 쓰고 있지만 경제 불황으로 현재 가계 소비 증가를 크게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저축-투자 갭에서 해외투자로 나가는 자금 중 상당 부분을 국내에 투자되도록 할 수 있다면 단기간 내에 내수 확대를 통해 경제 활성화가 가능하다. 수익률 차이 때문에 해외투자가 증가하고 있지만 이 수익성은 사적 수익성이다. 사회적 수익성 관점에서 보면 국내 투자의 사회적 수익률이 해외 투자의 사적 수익률보다 더 높을 수 있다. 국내 투자는 투자자의 직접적인 금전적 이익 외에 간접적으로 다양한 사회적 이익을 가져온다. 어떤 기업이 투자를 증대시키면 산업연관 효과로 타기업의 매출이 증가하고 고용유발 효과로 실업률이 떨어지고 타 분야로 경제효과가 확산되는 등 다양한 형태의 외부효과를 창출한다. 그러므로 투자자의 직접적인 사적 이익보다 사회적 수익은 더 큰 것이다. 시장에만 맡기면 사적 수익률만 고려한 투자가 이뤄져 사회적 최적 수준보다 더 작은 투자가 이뤄지기 때문에 투자 확대를 위해 투자 세제 혜택 등을 준다. 그러나 조세 감면 혜택은 당기순이익이 커 법인세를 많이 내는 대기업들이 주로 혜택을 보고 당기순이익이 크지 않은 기업들은 별다른 혜택을 보지 못한다. 따라서 조세감면을 통한 투자 유인은 주로 대기업에 혜택이 돌아가는 한계가 있다. 실제로 조세 감면 혜택으로 상위 10대 기업의 법인세 실효세율이 중소기업보다 낮았다.[3]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고 정부는 투자 촉진 조세 감면도 추진하고 있지만 세계경제 둔화로 불확실성이 워낙 커 투자 증가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결국 해외로 투자가 빠져나가는 저축-투자 갭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정부가 나서서 과잉 저축을 흡수해 공공 투자를 늘릴 필요가 있다. 국내총생산 대비 일반정부 총지출 비율은 2018년 한국 33.3%, OECD 평균 40.1%다. 한국은 OECD 평균 보다 6.8% 포인트 정도 낮아 정부지출 비율이 OECD 국가 중 가장 낮다. 소비, 투자, 정부 지출 등 한국 경제의 작은 내수는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성장률 둔화와 높은 청년실업률 지속으로 인적 자본 손실이 발생하고 기업가의 투자 의욕 감퇴로 실제 투자율이 하락하면서 공급능력이 저하되는 이력효과(hysteresis effect)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이 최근 잠재 성장률 하락의 원인 중 하나로 지속적인 총수요 부족이 초래한 이력효과도 작용하고 있다.
케인스는 저축은 남아도는 데 국내 투자는 이뤄지지 못하고 총수요 부족으로 불황이 심화되는 경우 정부가 적극 나서서 투자의 사회화, 공공투자 확대를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한국경제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투자, 인공지능, 공유경제 등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한 디지털 뉴딜, 에너지 전환, 생태전환을 위한 그린뉴딜 등 적극적 투자 확대를 통해 미래에 대비하고 성장 잠재력을 높여야 한다. 그러나 이런 투자는 사회적 수익률은 높지만 사적 수익률이 낮고 불확실성이 커서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시장실패가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해외증권 투자보다 사회적 수익성이 더 높은 사회투자, 디지털 뉴딜 투자, 그린 뉴딜 투자를 찾아내서 해외증권 투자로 빠져나가는 돈이 이 쪽으로 투자되도록 해야 한다. 정부 먼저 공공투자를 주도하고 민간부문에 방향성과 유인책을 제시하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확대해 나감으로써 고용과 성장을 촉진하고, 미래 성장 잠재력을 강화해야 한다.
사회적 수익률이 국채금리보다 높은 공공투자가 있다면 정부는 국가채무비율 증가를 두려워하지 말고 주저 없이 국채 발행을 해서 공공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공공투자가 사회적 수익을 실현하고 성장률을 상승시키면 국가채무비율은 GDP 증가와 함께 점차 다시 하락하게 되며 정부 재정수입 증가로 국채 이자도 충분히 상환할 수 있다.
일본은 투자보다 저축이 많고 저축-투자 갭이 장기간 지속된 경상수지 흑자 국가였다. 경상수지 흑자 대부분은 해외투자로 나갔고, 일본은 대외자산 규모가 전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다. 그러나 일본 경제는 성장률이 하락하고 침체해 잃어버린 20년을 겪었다. 고령화로 인한 사회복지 지출의 자연 증가로 일본 정부지출은 증가했는데 반해 성장률 둔화로 정부수입은 하락하거나 정체되어 국가채무가 급증했다. 아베노믹스는 소비와 투자를 증가시켜 저축-투자 갭을 줄이고 내수 확대를 통해 잃어버린 20년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다.
한국은 저축-투자 갭을 방치하고 성장률은 둔화되는 데도 대외투자자산만을 대규모 쌓아 간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적극적 내수 확대의 한국형 뉴딜의 길로 갈 것인가? 지금 결정해야 한다.
<그림 6> 일본의 총저축률과 국내총투자율(%)
자료 :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조영철 /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1] 국민연금연구원 기금평가팀, 「2018년 국민연금 기금운용 성과평가」, 2019. 6.
[2] IMF, Country Report : REPUBLIC OF KOREA, No. 18/41, 2018.
[3] 강병구, “법인세제의 현황과 개편 방안:, 미발표 논문.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