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노인장기요양보험에서 가족 돌봄을 제도 내로 포함하는 방식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노인의 선택권을 보장하면서도, 어쨌든 가족의 돌봄 노동을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일석이조의 프로그램일까요?
영양 상태 개선과 의학 기술 발달로 기대수명이 증가하였지만, 오래 사는 것과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실제로, 2018년 기준 한국의 노인은 사망하기 전 마지막 2년가량을 병상에서 보내게 된다고 합니다. 노인의 요양 기간이 장기화되고 가족 형태 및 노인 돌봄에 대한 인식이 변화함에 따라, 예전처럼 가족이 가정 내에서 노인의 마지막 시기까지 전적으로 책임지는 것은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노인 돌봄의 사회화 socialization of elderly care‘ 혹은 ‘사회적 돌봄social care’에 대한 요구가 제기되었고, 2008년 한국에도 다섯 번째 사회보험으로 ‘노인장기요양보험’이 도입되었습니다.
‘노인 돌봄의 사회화’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해 중 하나는 ‘이제까지는 노인 돌봄이 사회적 권리가 아니었다가 최근에 새롭게 사회적 권리로 등장 하였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개인이 존엄하게 생을 유지하고 마칠 권리는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권리 중 하나였지만, 그러한 권리 요구에 대응하는 의무 주체가 국가나 사회가 아닌 가족이었다고 이해하는 것이 정확할 것 같습니다. 만약, 노인 돌봄의 사회화를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돌봄을 받을 사회적 권리 social rights to receive care라는 것이 새로 생겨났으며, 이윽고 중요한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로 이해한다면, 이전까지 그 담당했던 가족의 역할을 보지 못하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실제로, 노인 돌봄을 위한 제도, 즉 노인장기요양보험이 도입된다고 해서 가족의 역할이 단번에 없어지지 않습니다. 돌봄을 단순히 노인에 대한 신체적 지원이나 의료적 처치에 국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관계적 영역까지 확장하여 생각한다면, 현재의 제도가 충족할 수 없는 부분을 가족이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OECD에서도 돌봄의 사회화 과정에서 노인장기요양보험과 같은 제도적 지원과 함께, 기존의 가족 돌봄을 어떠한 방식으로 통합할 것인지에 대한 각국의 다양한 방식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노인장기요양보험 내로 비공식 수발자인 가족을 통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우리보다 일찍 장기요양보험제도를 도입한 두 나라는 가족 돌봄의 제도화에 대해 상반된 결정을 하였습니다. 한국처럼 별도의 사회보험을 도입하여 노인 돌봄을 제도화한 대표적인 나라는 독일과 일본입니다. 1995년 수발보험Langzeitpflegeversicherung을 도입한 독일의 경우, 서비스/현물 급여뿐만 아니라 현금 급여를 허용합니다. 노인이 요양 시설에 입소하거나 타인이 집에 방문하여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 대신, 현금 급여(서비스/현물급여를 선택 하였을 때의 절반의 액수를 지급)를 선택하여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없는 가족이나 친구를 비공식 수발자로 지정할 수 있습니다. 독일이 이러한 프로그램을 선택한 근거는 ‘소비자 선택Consumer’s choice의 존중’입니다. 즉, ‘자신에게 어떠한 서비스가 가장 적절한지는 노인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는 논리입니다.
반면, 일본에서는 가족에 의해 제공되는 돌봄이 공적 영역으로 들어올 여지를 제도 도입 과정에서 없앴습니다. 2000년에 시행된 일본의 개호보험(介護保險)의 경우, 현금 급여가 제도에서 보장하는 급여 항목에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설령 가족이 자격을 취득하여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가족에게 제공한 돌봄에 대해서는 개호보험에서 공적 돌봄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노동의 대가를 지급하지 않습니다). 일본이 공적 돌봄의 한 형태로 가족 돌봄을 허용하지 않게 된 배경은 ‘가정 내 노인의 주 수발자가 돌봄 노동에서 벗어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입니다. 현금 급여를 도입하거나 비공식적 돌봄을 금전적으로 보상할 경우, 이제까지 자신의 가족을 수발하던 여성들의 유급 노동시장 진출을 막게 될 것을 우려한 일본 내 여성주의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한 것입니다.
어느 것이 더 나은 방식인지는 위에 언급된 것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같은 질문 -가족 돌봄을 공식화 할 것인가?- 에 대해 한 사회에서는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가족 돌봄을 허용하는 반면, 다른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개인의 권리’를 위해 가족 돌봄을 금지한다는 점입니다. ‘건강보험 외 별도의 사회보험’이라는 외피는 같더라도 제도에서 중요시하는 가치와, 당대의 사회적 합의로 인해 가족 돌봄을 제도 내에 포함할 수도 배제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럼, 한국의 노인장기요양보험은 가족 돌봄에 대해서 어떤 입장에 있을까요? 재미있게도, 한국이 노인 돌봄의 제도화 과정에서 가족 돌봄을 통합하기 위해 채택한 방식은 위에서 언급된 두 나라 어느 쪽과도 같지 않습니다. 한국 노인장기요양보험은 독일과 다르게 현금 급여를 원칙적으로 금지합니다. 그렇지만, 개인이 일정한 조건을 갖추는 경우에 한하여, 즉 가족 수발자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한다면 다른 요양보호사들과 마찬가지로 장기요양보험 서비스 수급자를 돌볼 수 있고, 요양보호사는 요양보호사-서비스 이용자의 가족관계 여부에 관계없이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방문요양센터를 통해 돌봄의 대가를 지급받게 됩니다. 제도 초기에는 이들에 대한 명칭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010년 이후 ‘자격증을 취득하여 요양보호사로서 자신의 가족을 돌보고, 그 대가를 임금의 형태로 지급받는 사람‘ 을 ‘가족요양보호사’ 라고 보건복지부 및 건강보험공단에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의 노인장기요양보험에서 가족 돌봄을 제도 내로 포함하는 방식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노인의 선택권을 보장하면서도, 어쨌든 가족의 돌봄 노동을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일석이조의 프로그램일까요?
본 연재에서는 몇 회에 걸쳐 한국의 노인장기요양보험 내 ‘가족요양보호사’의 존재를 드러내고, 이들이 제도 내에서 어떤 역할과 의미를 가지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가족요양보호사를 이해하기 위해 우선은 법과 제도에서는 그들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서비스 전달체계에서 그들은 어디에 위치하는지, 그리고 가족요양보호사가 되기 위해서 어떠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를 알아보겠습니다.
윤태영 / 사회학 박사, 인하대학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