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폴라니 총서 3] 다호메이 왕국과 노예무역

[칼폴라니 총서 3]  다호메이 왕국과 노예무역- 어느 고대적 경제에 대한 분석

칼 폴라니 지음 | 홍기빈 옮김 | 길 | 376쪽 | 2만5000원 | 2015년 4월 10일 출간

 

<출판사 서평>

시장경제냐 계획경제냐라는 이분법을 넘어선 대안으로서 인간의 경제는 가능한가

2008년 전 세계를 강타했던 세계 금융위기로 인해 시장근본주의 내지 신자유주의는 근본적인 물음에 놓이게 되었고, 칼 폴라니(Karl Polanyi, 1886~1964)의 대표작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 1944)은 이러한 흐름에 커다란 지적 충격을 던져주었다. 이 책이 그간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15개국 이상에서 번역ㆍ출간되었다는 점만 보더라도 신자유주의 내지 세계경제의 문제를 새롭게 인식하고 대안을 마련해보고자 하는 적극적 의도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새롭게 번역되어 출간된 이 책은 폴라니의 개념과 이론에 입각하여 하나의 ‘고대적 경제’(archaic economy)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종합해놓은 드문 결실이다. 사실 폴라니는 이전의 작업에서 신고전파 경제학에 의해 왜곡된 경제주의적 편향을 극복하고 동서고금에 존재했던 여러 모습의 ‘인간의 경제’를 보편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대안적인 여러 개념들을 내놓은 바 있지만, 이러한 것들은 어디까지나 높은 추상 수준의 이론적 개념들이며, 이러한 개념들을 실제로 활용하여 한 사회의 경제체제를 어떻게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지의 전체 상이 드러난 연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바로 이 책에서 폴라니는 18세기 서아프리카의 다호메이 왕국이라는 사례로 나타난 ‘고대적 경제’의 전체 상을 그려 보임으로써, 이제껏 시장경제냐 계획경제냐라는 지독한 이분법으로 말미암아 ‘형식적’ 의미의 경제 개념만이 현대인들의 생각을 지배하게 된 것에 대한 비판을 가함과 동시에 대안적 경제 시스템 구축의 혜안을 제공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들이 집단적으로 자신들의 도덕과 자유가 깃든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그에 필요한 것들을 조달한다는 본래적 의미에서의 ‘살림살이’로서 경제의 복원을 뜻한다.

인간의 경제 ― 좁은 의미의 경제적 합리성으로 좌우되지 않는다

폴라니는 인류의 경제사가 원시적 혹은 자연적 경제에서 점차 발달된 시장경제 혹은 자본주의경제로 발전해 나간다는 단계론적ㆍ진화론적 사고를 거부한다. 즉 여러 다양한 사회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경제형태들 사이에 우열이나 선후 관계를 설정하는 관점을 취하지 않는 것이다. 이 책에서 폴라니는 인류의 경제사 전체에 걸쳐서 원시(primitive)-고대적(archaic)-근대적(modern)이라는 세 개의 느슨한 시대를 설정하고, 그 가운데 형태의 경제로서 ‘고대적 경제’라는 흥미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하지만 그가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듯이, 이러한 용어 사용은 분명한 구분을 가능케 할 명시적인 정의가 없다면 서로가 서로에 의존하는 순환론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이 책 전체로 볼 때, 폴라니는 여러 경제형태들을 종합하고 재구성하는 권력의 중심으로서 조직국가와 자기조정 시장을 설정하고, 전자에 의해 전체가 조직되고 운영되는 경제를 고대적 경제, 후자에 의해 그렇게 되는 경제를 근대적 경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요컨대, 조직국가의 출현 이전의 원시경제, 조직국가에 의해 구성되는 고대적 경제, 자기조정 시장 체제라는 별개의 경제체제가 존재하는 근대경제라는 세 단계를 설정한 것인데, 폴라니는 이 책에서 다호메이 왕국의 역사적 사례 분석을 통해 여러 경제 통합 형태들과 그 속에 묻어들어 있는 ‘고대적 경제제도들’이 국가 형성 및 경영이라는 정치적 목표와 불가분으로 엮여 있는 것이 고대적 경제의 보편적 특징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게 된다고 한다. 이는 곧 우리가 ‘경제적’이라고 부르는 여러 제도와 장치들이 생겨나고 발전하게 되는 과정은 좁은 의미에서의 경제적 합리성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 훨씬 폭넓은 사회 전체의 통합 및 운영의 논리와 질서에 의해 그 모습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가 각별히 다호메이 왕국의 전체 상에서 주목하고 높이 평가하는 부분 역시 국가와 사회의 절묘한 균형 그리고 이를 통한 양 영역 모두의 자율성의 보장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 실체적 정의의 개념에 입각한 ‘제도화된 과정으로서의 경제’

폴라니가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명백하게 제시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인식의 제고이다. 즉 시장경제 혹은 자본주의경제라는 것을 하나의 목적론적인 완성태로 상정하고 초역사적인 이념형으로 삼아 이것을 비시장경제에 무리하게 투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비시장경제는 자신이 말하는 실체적 정의의 경제 개념(즉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여러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수단을 조달하는 행위)에 입각한 ‘제도화된 과정으로서의 경제’라는 관점에서 볼 때만 비로소 그 사회에 살았던 사람들을 움직였던 정치적ㆍ문화적ㆍ사회적ㆍ종교적 여러 동기들과 그들의 경제생활이 어떻게 서로 맞물려 묻어들어 있었는가의 전체 상을 구체적으로 밝혀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경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시각의 교정은 인간의 노동 분업이 오로지 시장 교환을 통해서만 조직될 수 있다는 18세기부터의 오래된 시장주의적 편견을 넘어설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폴라니의 관점, 즉 ‘제도화된 과정으로서의 경제’로 인류의 경제 문제를 바라보게 된다면, 우리는 한 사회 내에서 실제로 집단적인 생산과 분배와 향유가 어떠한 제도적 장치들로 조직되는지를 먼저 묻게 되며, 그에 따라서 그러한 제도적 장치들의 다양성에 대해 열린 시각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애덤 스미스(Adam Smith) 이래 인간의 자연적 본성의 발현이라고 믿어졌던 교환이라는 것은 집단적인 경제활동을 조직하는 한 형태에 불과하며, 그와는 전혀 다른 심리적 동기와 다른 사회적 관계망을 통해서 성공적으로 노동 분업을 조직하는 경제형태들이 얼마든지 더 존재했다는 것이다.

21세기 첨단의 미국식 경제학은 ‘인간’이 배제된 통계와 회계 중심의 거대한 맘몬(mammon)을 만들어냈다. 거기에서 인간의 구체적 살림살이는 빠졌다. 경제의 본래의 의미인 우리의 개인적ㆍ집단적 살림살이를 보장한다는 의미에서 산업 문명을 다시 구성하는 큰 작업은 21세기 우리에게 주어진 큰 과제임에 틀림없다. 경제에 대한 폴라니의 새로운 시각은 그 과제를 수행하는 데 하나의 중요한 단초를 마련해줄 수 있을 것이다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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