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자본주의, 더이상 지속가능한 체제 아니다

[강연회]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한계, 그 다음은


이재호 기자 2015년 4월 28일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발생한 이후 자본주의 체제가 지속가능한 것이냐는 물음이 또다시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자본주의가 한계에 다다른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가운데 한국 역시 이 물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자본주의 국가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과 새정치민주연합 홍익표 의원실은 ‘문명 전환 시대, 한반도의 진로는?’을 주제로 역사학자 김기협 선생의 세 차례 연속 강연을 마련했다. 지난 15일 첫 강연에 이어 22일 두 번째 시간으로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한계’를 주제로 자본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는 무엇이고 한국 사회는 어떤 가치를 가져가야 하는지 알아봤다.

김기협 선생은 우선 근대 이후 이어져 온 자본주의가 인류사에서 보편적인 현상인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10세기 중국이나 12세기 이슬람 문명권에서는 자본의 힘이 커지는 것을 통제하는 권력이 작동했는데 유럽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기협 선생은 산업혁명 이후 자본의 힘이 커지면서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는 이른바 ‘유동성’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유럽을 제외한 다른 문명권은 이를 온건한 방식으로 대응했지만, 유럽만은 유독 과격한 방식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대담자로 나선 홍기빈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연구위원장은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면서 이같은 현상이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노동력이 부족해진 서유럽의 영주들이 전쟁이라는 방식으로 기존의 부와 권력을 유지하려고 시도했는데, 전쟁을 하려면 재물이 필요했고, 이 때문에 움직이는 재물 형태인 화폐가 널리 통용됐으며 바로 여기서부터 자본주의가 시작됐다는 설명이다.

홍 연구위원장은 “산업사회에서는 인적·물적 쓰임새가 계속 바뀌고 있는데, 20세기에 들어와서 이러한 자본주의의 유동성만으로는 인간과 사회가 존속할 수 없다는 생각이 퍼지게 됐다”며 “그래서 유기체적 세계관을 통해 안정성을 결합시켜야 한다는 노력이 나타났고 이것이 사회 민주주의를 불러오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모든 것을 ‘돈’으로 환원할 수 없기 때문에 자본이 아닌 다른 가치들이 질서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면서 스웨덴의 사례를 들었다. 스웨덴의 경우 경제 성장과 모두의 복지, 모두의 노동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치라는 점을 어렸을 때부터 교육시키는 것으로 자본이 아닌 다른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여전히 ‘돈’이라는 가치가 절대적인 힘으로 지배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가치로 홍 소장은 ‘공(公)’이라는 개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개별이익이나 개인의 신념을 넘어 공동체 전체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공공성이 한국 사회 곳곳에 뿌리내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기협 선생은 “흑사병 이후 서유럽 사람들은 권위, 명예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들에 대해 허무적인 경향을 띄게 됐는데, 이에 따라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만 가치로 인식하고 매달리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며 “하지만 이제는 보이지 않고 만지지 않는 것에도 가치를 인식하고 확인하고 누리기 위한 노력이 어디에서나 일어날 것이라고 본다. 우리에게는 공공성이 이런 가치 있는 자산 중에 하나”라고 강조했다.

이날 강연은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새정치민주연합 홍익표·오제세 의원도 참석했다. 다음은 강연 주요 내용이다.

▲ 역사학자 김기협 ⓒ홍익표 의원실

 

[기조발제]
김기협 : 문명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활동 영역 중 하나인 경제활동의 비중이 점점 커져왔다. 사회의 발전 단계가 높아질수록 관계가 많아지고 복잡해지는데,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인류는 처음에 주먹을 사용했다. 그런데 어느 단계를 넘어서부터는 주먹에서 재물로 그 힘이 옮겨졌다.

재물이 주먹과 다른 점은 보편적으로 적용된다는 것이다. 주먹은 현장에 있는 사람이어야 위협을 가하거나 받을 수 있지만, 재물은 그보다 간접적인 방법을 포함해 넓은 범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니까 규모가 커진 사회에서는 주먹보다 재물이 우선이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핵심적인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세상이 돌아가는 여러 가지 원리가 있지만, 그중에 재물, 자본이 중심이 되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원리다.

중국에서는 재물의 힘이 사회질서에 끼치는 영향을 일찍부터 주목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 역사를 살펴보면 진시황의 통일에 앞서 여불위라는 상인이 재산의 힘을 통해 진시황이 집권하고 통일로 나아가는 기반을 구축했다. 또 중국의 중앙집권 체제를 강화하는 계기가 됐던 오초칠국의 난이 일어났을 때도 난세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자본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중국에서는 제국이 성립할 무렵부터 재물의 힘이 무력의 힘보다 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이에 중국에서는 재물의 힘을 통제하기 위한 권력의 시도가 있었다. 오초칠국의 난 직후 중국은 사민(徙民, 백성을 이주시키는 것) 정책을 시행했다. 사민정책의 주된 대상은 호족들이었는데, 이들은 많은 재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재산가들이 자기 지역에서 쌓아온 연줄을 가지고 권력으로 자라나는 것을 억제하는 것이 사민 정책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다. 민간의 재력이 권력으로 자라나고 작동하는 것을 가로막기 위한 이러한 조치가 있었다는 것은 곧 재력이 권력으로 자라나는 추세가 있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다.

그런데 농업사회 단계에서는 재력의 권력화에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다. 이는 잉여 생산물이 많지 않다는 의미인데, 초기에 농업문명이 시작됐을 때는 인구 대다수가 농업에 종사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농민의 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50% 수준으로 떨어져도 식량 수급에 문제가 없는 상황, 즉 후기 농업사회로 진입하게 되면서 산업구조와 사회조직의 원리를 교체할 필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축소되면 나머지 인구들은 2, 3차 산업에 종사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사회 내의 시장이 커지는 변화가 수반되기 때문이다.

한 사회의 인구가 1000만에서 2000만으로 늘어나는 동안 농업인구는 700만에 머물렀다고 가정해보자. 이렇게 되면 기존에 300만 명이었던 비농업 인구는 1300만 명으로 증가하게 된다. 이들은 경제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농민들보다 상대적으로 활발한 시장 활동을 벌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인구는 두 배로 늘어났지만 시장 활동은 5배, 10배,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시장 활동이 활발해지면 사회의 유동성이 늘어난다. 이 유동적인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국가는 무력보다는 재력을 이용하게 된다. 무력으로 질서를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저명한 중국 사학자인 미야자키 이치사다(宮崎市定)는 당나라에서 송나라로 넘어오면서 중국이 무력국가에서 재정국가로 성격이 변했다고 주장한다. 국내 질서를 유지하는데 창칼보다 돈을 더 중시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10세기부터 이러한 탈(脫)중세 현상이 분명히 일어나기 시작했음에도, 중국은 자본 자체가 권력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상당히 경계했다. 시장이 커지는 것을 부득이한 현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시장 자체가 권력의 칼자루를 쥐고 변화의 주도권을 가지게 되는 상황이 되지 않도록 억제한 것이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도 나름의 자본주의의 현상들이 나타났지만 자본의 권력화를 어느 정도 억제한 측면이 있다.

그런데 유럽에서는 이와 다른 현상이 일어났다. 후기 농업사회에서 유동성이 증가되는 사회적인 변화를 조절하는데 있어 중국이 뻑뻑한 반죽에 물을 넣어 부드럽게 만들었다고 비유한다면, 유럽은 물에 반죽을 넣어버리는 과격한 방식을 택했다. 왜 유럽은 이런 방식을 쓰게 된 것일까?

14세기 후반에서 15세기 사이 흑사병으로 인해 유럽의 인구가 크게 줄어든 시기가 있었다. 이것이 기반 조건을 만든 건 아닌가 싶다. 유럽에서는 노동 절약적인 기술 발달에 의해 산업혁명을 겪게 됐다. 노동력을 아끼면서 자본을 집중적으로 투입하는 방식인데, 그러다보니 인력을 대체하는 기술의 발전이 이뤄졌고 그것이 대량 생산체제를 가져왔다.

후기 농업사회에서 유동성 증가에 대비하는 정책은 문명권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온건한 방식을 택했다. 그런데 유럽은 중국이나 다른 비유럽지역보다 훨씬 큰 유동성을 보여왔다. 대부분 문명권에서 적응했던 방식과는 아주 특이한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그리고 이것이 굉장한 힘을 가지고 전체 판세를 휩쓸게 된 것이다. 여기에 대해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지만, 유럽의 근대문명이 다른 경제적 발전보다 군사력 강화에 집중한 특성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가장 설득력이 높아 보인다.

문제는 21세기인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유럽의 가치와 방법이 절대적이고 옳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물론 현대의 사람들은 유럽에서부터 시작된 소위 ‘근대 문명’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이 틀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유럽에서 일어난 현상이 인류 문명 발전에서 당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는지, 유럽이 다른 문명권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산업혁명의 길을 앞서서 연 것인지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 어떤 특정한 조건들에 의해 결정된 하나의 역사적 현상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대담 1. 한국사회, ‘돈’말고 다른 가치 설 자리 있나]

박인규 : 지난 200년은 유럽이 세계를 지배해오던 시대였다. 가장 큰 원동력은 군사력과 자본의 힘이었는데 이런 체제가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굳이 2008년 금융 위기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전부터 계속 지적돼왔다. 만약 중국의 인구가 미국과 같은 정도의 소비생활을 누리려고 한다면 지구가 3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지 않나? 자본주의 체제가 더 이상 클 수 없다는 것은 상식처럼 인식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홍기빈 : 김기협 선생님이 흑사병 문제를 거론하셨는데 자본주의의 기원이 흑사병에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재물과 주먹으로 대표되는 무력과 재력이 어떻게 상호 순환관계를 맺느냐가 인류사의 중요한 전환 중에 하나가 될 텐데, 이때 이를 넘나들 수 있게 만든 형태가 하나 있다. 바로 화폐다.

▲ 홍기빈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연구위원장 ⓒ홍익표 의원실

여기서 재물과 화폐는 상당히 다른 성격의 사회적 형식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근대 자본주의의 기원을 생각하는데 있어, 재물과 화폐를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화폐는 단순한 재물이 아니라, 재물에 유동성이라는 특징을 첨가한 다른 성격의 것이었다.

유럽이 중국이나 이슬람과 달랐던 결정적 계기는 흑사병이었다고 본다. 유럽에서는 흑사병 직전에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폭발적인 인구 성장이 있었다. 그러다가 흑사병으로 인구가 3분의 1 이상 줄어든 것이다. 예전 방식대로 일이 벌어졌다면 자급자족의 농민 공동체로 분해가 돼도 시원치 않을 상황인데,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는 동유럽에서는 농노제가 강화됐다. 영주의 권력이 강해지면서 중세 봉건제대로 퇴행해버렸다.

서유럽은 동유럽보다 교회의 힘이 강했기 때문에 영주가 함부로 농노들을 다 때려잡을 수가 없었다. 영주들은 농사지을 사람은 없고, 농노들을 더 쥐어짤 수도 없고, 세금은 내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됐다. 이들은 결국 전쟁이라는 방식을 택했다. 그 결과 16세기에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전쟁을 하려면 재물이 필요했다. 이때부터 영주들은 유동성이 있는 재물이 무엇인지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그 결과 화폐가 통용됐다. 전쟁을 하려면 화폐와 시장으로 재물 관계를 다시 정리하는 수밖에 없었고 여기서부터 자본주의가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우리가 풀어야 하는 난제가 있다. 자본주의의 원자론적인 세계를 넘어서 유기체적인 세계관으로 전환하고 그런 세계로 넘어가야 한다고 하셨는데, 여기에 큰 문제가 하나 있다. 근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유동성, 즉 사람이든 자연이든 어떤 쓰임새에 묶여 있는 법이 없이 기술이 바뀌고 세상이 바뀌면 계속 바뀌어야 하는 것인데 이게 유기체적인 세계관과 양립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또 유기체적인 질서와 유동성이 공존하는 질서를 만들어야 인류의 미래가 있다고 한다면, 무엇을 가치로 삼을 것인지도 우리 앞에 놓여있는 주요한 과제다.

유기체적인 질서와 유동성이라는 문명이 공존할 수 있느냐의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철학적인 부분을 잠시 살펴보겠다.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론을 이야기하면서 비어있는 것에 대해 언급했다. 비어있는 부분이 있어야 원자가 자유롭게 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원자에는 본질이 없다고 했다. 원자가 가지고 있는 모든 속성은 외적으로, 우연적으로 연결된 것에 불과하다는 설명이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이론을 대단히 싫어했다. 그는 모든 존재를 본질로 환원해서 본질들끼리의 거대한 연관으로 우주를 구성했다. 이러한 철학에서는 ‘무(無)’가 존재할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입각한 유기체적인 세계관에서는 운동이나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 농업사회의 지배자들에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매력적이었다. 농업사회에서는 농업, 목축업, 어업 등이 모두 자연의 순환과 연결된 생산과정이기 때문에 대단히 예측가능하고 안정적이다. 그리고 그 위에서 구축되는 지배질서 성격 역시 안정적이다. 이 안정성은 지배자의 권력과 바로 연결되기 때문에 유기체적 세계관이 선호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산업혁명이 나타나면서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난 100~200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변하지 않은 것을 찾아보기가 힘들고, 이 변화의 범위 역시 생각이나 문화의 변화 수준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쓰임새 자체가 10년 단위로 바뀌는 모습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유기체적인 세계관이 공존할 수가 없다. 산업사회에서는 인적·물적 쓰임새가 계속 바뀌고 있기 때문에 유기체적인 세계관은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원자론적인 폐해 때문에 20세기에 들어오면 이러한 유동성만으로는 인간과 사회가 존속할 수 없다는 생각이 퍼지게 됐다. 그래서 유기체적 세계관을 통해 안정성을 결합시켜야 한다는 여러 노력이 나타났고 이것이 사회민주주의를 불러오기도 했다. 그래서 김기협 선생은 원자론을 강조한 신자유주의가 하나의 반동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보셨는데, 정치 사회적으로 보면 이는 분명히 반동이지만 그렇지 않은 측면도 있다. 인터넷, 컴퓨터로 대표되는 70년대 이후에 벌어진 산업기술 패러다임의 전환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에서는 60년대 형성돼있던 사민주의 형태는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일례로 1950~60년대 스웨덴은 산업 성장도 엄청났고 복지와 인권, 민주주의도 상당히 훌륭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스웨덴 사람들은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형식의 사회가 유지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사회민주주의에서 나타났던 성장, 복지 재분배, 노사협상 등등은 사회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공장이라고 상정할 수 있을 때에만 성립하는 현상들이다. 그런데 1970~80년대에는 지구화, 탈산업화가 나타나고 금융자본이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지구를 하나의 거대한 공장으로 상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보니, 사회를 어떤 형태로든 재구성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르게 됐다. 유기체라는 질서가 산업혁명의 핵심인 인적·물적 자원의 끊임없는 변동성과 어떻게 양립할 수 있을지를 찾아내야 하는 시점이 된 것이다.

아주 극명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해고 없는 세상을 외치는 분들이 많은데, 이건 현재의 산업사회에서 불가능한 이야기다. 우리가 스마트폰을 삼성이나 애플로 바꾸는 순간 블랙베리나 노키아 노동자들은 해고되는 것이 현실이다. 또 유기체적 세계관에서 비롯된 안정성, 예를 들면 정년 보장이라든가 연금 안정성 등의 이야기도 나오는데, 연금만 따져보더라도 기대수명이 이렇게 늘어날 것이라고 20~30년 전에는 어떻게 알았겠나? 농업사회처럼 충분히 예측이 가능해야 유기체적 질서가 성립될 수 있는데 산업사회 이후부터는 이것이 가능한지 의문이다.

▲ 역사학자 김기협(왼쪽) 선생과 홍기빈(오른쪽) 글로벌 정치경제연구소 소장 ⓒ홍익표 의원실

물론 철학사에서 원자론과 유기체론의 이율배반적인 논의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라이프니츠는 ‘모나드’라는 개념을 만들었는데 원자 자체가 우주 전체를 품고 있다고 주장했다. 원자 하나하나가 전체 유기체적 질서가 무엇인지 알고 있고 자기가 어떻게 움직여야 그러한 질서의 일원으로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는지, 그리고 각자가 어떻게 움직여야 거대한 질서가 나오는지를 깨닫고 있는 원자라고 본 것이다.

그에 따르면 가장 크고 완전한 모나드는 신(神)이고 우리는 모두 작고 불완전한 모나드라는 것인데, 원자의 자유로운 운동에 의해 세계가 자유롭게 바뀌는 질서도 끌어안으면서, 유기체적 질서가 구성되는 원리도 함께 담아내기 위해 이같은 이론을 만들어냈다.

실제 유동성만 있으면 사회는 지속되기 어렵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구성돼있고 그 안에서 개인의 위치는 무엇이며, 사회 구성 요소들은 각각 어떤 기능을 하고 있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서로 이해하고 공유하고 토론해서 이들을 최대한 잘 활용하면서도 전체적인 질서가 유지되도록 해야 유기체적인 세계 자체가 운동할 수 있다. 굉장히 이상적이지만, 인류 문명이 산업사회에서 살아나가려면 이런 상태를 만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돈으로 환원할 수도 없기 때문에 자본이 아닌 다른 가치들이 질서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스웨덴 사회민주주의를 굉장히 높게 평가하는 이유가 몇 가지 정책 때문이 아니라 이전부터 이런 식의 정책을 가지고 있었다는 데 있다. 스웨덴은 고정된 질서는 있을 수 없고, ‘잠정적 유토피아’라는 이름으로 계속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에도 문제점은 있다. 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가치가 있어야 하는데, 흑사병 이후 유럽에 허무주의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흑사병이 인구를 줄이기도 했지만 신이 죽었다는 것도 주목해야 할 문제다. 종교가 약속했던 인생관과 세계관이 다 날아갔다는 뜻이다.

유기체가 유지되려면 여기서 내세우는 ‘최고 선(善)’을 개개인이 모두 믿고 종교처럼 따라야 하는데 흑사병 이후 사람들이 이걸 믿지 않았다. 추기경도 흑사병에 걸려서 죽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그동안 믿었던 종교적 가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이러면서 허무주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게 자본주의 형성의 매우 중요한 특징 중에 하나인데, 게오르그 짐멜은 <돈의 철학>에서 기가 막힌 철학적 통찰을 보여준다. 그는 근대사회는 모든 가치가 무너진 상태라서 화폐가 가치를 갖게 됐다고 주장한다. 모든 것이 바뀌고 모든 가치가 상대적인 것이 돼버린 상황에서 어떤 절대가치도 없고, 이런 상황에서 모든 가치를 통합하는 절대가치가 화폐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사회를 보면 이 말이 딱 들어맞는 것 같다. 한국사람 누구나 토를 달지 않는 유일한 가치는 ‘돈’ 아닌가?

그런데 돈으로 만드는 질서만으로 사회가 지속되기는 어렵다. 유기체질서와 산업혁명의 유동성이 공존하기 위해서는 화폐 말고 공유할 수 있는 다른 가치가 필요하다. 스웨덴은 경제 성장과 모두의 복지, 모두의 노동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치라는 점을 어렸을 때부터 교육시키는 것으로 이 문제를 풀어나갔다. 함께 일하고 함께 즐기자는 것을 사회 목표로 삼은 것이다.

이에 스웨덴은 구조조정과 연금 삭감 등등도 이러한 가치로 정당화시키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북유럽은 이처럼 ‘연대’라는 가치로 사회를 끌고 왔다. 이러한 가치를 만드느냐의 여부가 21세기 자본주의 국가가 성공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결정적인 요인이 될 것이다.

동양사회에서는 ‘공(公)’ 이라는 개념이 있었다. 유교에서 사회 질서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천하와 함께 꼽는 것이 바로 ‘공’ 이었다. 개별이익이나 신념을 넘어서 천하가 제대로 서고 질서를 갖춰나가려면 공이 필요하다고 봤다. 공공성이라는 개념도 여기서 나온 것인데, 현재 한국사회에서도 이 가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문제는 이 내용이 굉장히 막연하다는 데 있다. 공공성을 무엇으로 채우느냐가 중요한 문제인데, 임진왜란 이후 조선 시대 성리학이 팽배한 현 상황에서는 공공성의 개념이 굉장히 모호해졌다는 데 문제가 있다.

임진왜란 이후 성리학은 공 개념을 모두 없애버렸다. 마음 수양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고 하면서, 천자나 군주가 지켜내야 할 공공의 영역이 있다는 논리를 계속 부인해왔다. 그러면서 군주한테는 “책이나 더 읽고 수양이나 해라”라면서 군주의 권력을 무력화시켰다. 결국 이러한 철학이 퍼지게 되면 남는 것은 내 몸뚱이 하나와 피붙이뿐이다. 즉 임진왜란 이후 지금까지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식 잘 키운다’는 가치만 남아있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공적자금을 떼먹는다거나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데, 본인의 피붙이한테 잘못하면 엄청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반대로 자기 피붙이한테만 잘하고 자기 친한 사람들한테만 잘하면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하는 것과 일맥상통한 이야기다. 공적 윤리의식이 소멸돼버린 것이다.

이것이 한국 자본주의의 중요한 정신이기도 하다. 공적인 가치는 없고 나와 내 몸뚱이 하나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지금까지 온 것이다. 한국에 이러한 가치와 돈에 대한 숭배 말고 다른 가치가 무엇이 있나? 이러한 배경이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공공성 안에 어떤 내용을 담을지도 어렵고, 돈을 대신할 대안적 가치를 만들어 내기도 상당히 어려운 측면이 있다.

김기협 : 인간의 개체 수가 늘어나는 데 따라 유동성의 증가가 불가피한 것인데, 이것이 유기체적인 특성을 위축시키고 위협하는 근원적 모순이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모순이 이제 궁극적인 충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어떤 정치체제가 있다고 할 때 그 체제가 모순의 격화를 향해 움직이는지, 아니면 모순의 근본적 해소가 아니더라도 상황을 어느 정도 관리할 수 있는 범위에서 움직이는지에 대한 부분에서도 차이가 있다. 정도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 기사 중에서

기사 전문은 [프레시안]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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