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노후 공포 마케팅’에 목매는 이유?

 

국민연금 논의가 뜨겁습니다. 프레시안 조합원들은 무엇이 쟁점인지 잘 아실 겁니다. 그 동안 <프레시안>에 올라온 기사들이, 제가 보기엔 가장 훌륭했기 때문입니다. 다음의 글들이 그렇습니다.

 

“국민연금 더 주면 보험료 두 배?…거짓말!”,

청와대, 공적 연금 사회적 합의 방해하나?)

(2006년부터 <프레시안>은 한미 FTA의 토론 마당이었습니다. 하여 몇 년에 걸친 오랜 논쟁을 어느 때나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었는데 국민연금에 관해서도 <프레시안>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연금을 원론 수준에서 이해할 뿐, 구체적인 제도나 수치를 잘 모릅니다. 그런 사람이 글을 쓰는 건 논의를 정리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어지럽게 만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도 한 마디를 보태는 것은 현재의 논의가 아주 오랜 동안 진행되어야 마땅하고, 여기에는 장기 거시경제적 시각도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합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실 ‘연금개혁’ 논쟁은 유럽에서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다시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장기침체의 전망 속에서 연금의 지속가능성이 다시 심각한 문제로 등장한 거죠. 예컨대 마이너스 실질이자율 상황이 닥친다면 연금이 어떻게 수익을 낼 수 있을까요? 더구나 우리나라처럼 GDP 대비 기금규모가 크면 안전자산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게 되어 침체를 더욱 부추길지도 모릅니다. 즉 우리 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깁니다. 전 세계적인 인구구조의 변화, 노동시장의 급격한 변화(이른바 노동시장 유연화), 여기에 장기침체로 인한 재정악화까지 겹쳤기 때문입니다.

 

이 논쟁의 역사는 하나의 중요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랜 기간에 걸쳐(최소한 수년 동안) 사회적 이해당사자들이 합의에 이르렀을 때만, 그 개혁이 실행력을 가지고 또 현실 변화에 따라 새로 수정하는 것도 용이했다는 사실입니다.

 

(관심있는 분은 다음 보고서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꽤 긴 보고서라 기회가 닿을 때 요약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가기)

 

그런데 공무원 연금 개혁에서 촉발된 이번 논의는 사회적 타협이 아니라 사회적 갈등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공적 연금 전반이 문제인데, 마치 수술을 하듯 공무원연금만 먼저, 그것도 군사작전 하듯 몇 달만에 해결할 수 있다는 대통령의 생각이 갈등의 근원이었습니다.

 

더구나 대통령은 한 술 더 떠서 국회의 합의를 단번에 뒤집어 버렸습니다. 그나마 넉달에 걸쳐 사회적 합의 과정(두 정당이 논의를 주도한 것은 결코 이상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만)을 거쳐 곳곳에 고민의 흔적이 배어 있는 결론을 단 한 마디로 폐기시켜 버렸죠.

 

대통령의 고집은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의 막말로 이어졌습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려면 보험료를 두 배로 올려야 하고 이건 ‘세대 간 도적질’이라고 규정한 겁니다. 처음엔 공무원과 국민을 분리시켜 고립시키고, 이번엔 청년세대와 노년세대를 대립시킨 거죠. 현재의 유리한 정치지형과 언론 상황을 한껏 이용해서 ‘대통령=전체와 미래의 대변자, 노조와 야당=이기적 집단의 대변자’라는 프레임을 만든 겁니다.

 

장기 시나리오에 대한 거시적 이해가 필요하다

 

이번 논쟁은 어느 쪽이든 사실상 하나의 시나리오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 표는 2013년의 국민연금 3차 재정추계에서 나왔습니다(오건호의 글 참조). 50%로 소득대체율을 올릴 경우 김연명 교수는 2060년에 기금이 소진되는 경우를 상정해서 1% 보험료를 올리면 된다고 주장한 것이고, 문 장관은 2100년 후에도 일정 적립배율의 기금을 보유하는 경우(표의 맨 오른쪽 칸)를 상정해서 보험료를 두 배로 올려야 한다고 확언한 거죠.

 

물론 전문가들이 최선을 다해 만든 표겠죠. 하지만 이런 초장기(무려 100년 가까운 기간)의 시나리오를 짤 때는 하나의 변수를 조금만 변화시켜도 엄청난 차이가 나타납니다. 경제학자들이 흔히 하는 대로 세대 간 균형 방정식(현재 노인의 소비와 100년 후 노인의 소비를 일치시키는 균형방정식)을 만드는 경우 미래할인율(이자율)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하늘과 땅 차이가 나타나기 마련입니다(생태문제에 관한 논쟁에서 이런 상황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위 표와 같은 시나리오가 여럿 있어야 하는 거죠. 이런 장기간을 예측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케인스와 같이 고도의 현실감각을 지닌 학자도 “5년 후의 영국경제”와 같은 예측은 불가능하다(“확률관계 제로”)고 단언했을 정도니까요.

 

둘째는 문형표 장관처럼 2100년에도 일정 배율의 기금을 유지한다는 가정(표의 마지막 칸)입니다. 지금도 국민연금기금은 GDP의 30%가 넘는데 이 수치는 부동의 세계1위입니다. 정부 추계에 따르면, 기금이 가장 많이 쌓이는 해를 2083년으로 잡을 경우 기금규모는 GDP의 1.4배나 됩니다.

 

대통령이나 정부의 말은, 우리 세대가 저금을 많이 해서 젊은이들과 미래 세대에게 아무런 부담도 주지 말자는 것처럼 들립니다. 훌륭한 어른의 자세죠. 하지만 국민연금은 가계의 저축이 아닙니다. 지금도 “연못 속의 고래”라는 비유가 나오듯이 국민연금은 금융시장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훨씬 더 커진 상태에서 안전 자산을 보유하려 든다면 우리나라의 국채 전체를 다 사들여도 안 될 겁니다. 당연히 채권 가격은 한 없이 오르고 수익률은 0에 가까워지겠죠. 정부의 주장은 한 마디로 미시와 거시를 혼동했거나 고의로 무시했기 때문에 나온 겁니다.

 

더구나 이 정도로 규모가 커지면 자산을 처분하기도 어렵습니다. 부족한 연금 지급액을 메꾸기 위해 채권이나 주식을 파는 순간 가격은 폭락하겠죠. 현재의 박근혜 정부처럼 주식과 부동산 가격 상승에 목을 매다는 상황이라면 기금 규모를 줄여서 연금을 지급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기금이 너무 커서 사용하지 못한다는 역설이 발생하는 거죠.

 

결국 현실적으로 연금을 지속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즉 진정으로 미래 세대를 위하려면 보험료율이 서서히 오르고 이에 맞춰서 기금규모를 줄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 속도와 규모를 정하는 게 바로 합의의 대상이 되지 기금규모를 유지하는 데 맞춰 보험료율을 올리는 건 거시적으로 지속불가능한 발상입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연합뉴스

 

‘세대 내 연대’와 ‘세대 간 자산재분배’가 우선이다

 

위에서 소개한 <프레시안> 논자들의 공통점은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는 겁니다. 실제로 현재의 국민연금은 한 마디로 “중상층 연금”입니다. 현재도, 그리고 앞으로도 당분간 국민연금 수령자는 상위 40% 밖에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국민연금이 “용돈 수준”이라는 건 현재의 수령자가 상대적으로 잘 사는 분들이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말입니다. 그 돈을 하위 50%가 받는다면 결코 용돈이 아니겠죠).

 

연금이 절실하게 필요한 하위 계층에게, 중상층 연금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소득대체율을 높이게 되면 노인 세대 내 불평등은 오히려 늘어납니다. 바로 이 때문에, 합의안에 공무원연금 ‘개혁’으로 확보된 돈 일부를 사각지대 해소에 쓴다는 항목이 들어간 갔을 테죠. 또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대표가 기초연금 확대를 역설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즉 ‘세대 간 연대’를 말하기에 앞서 ‘세대 내 연대’부터 실천해야 할 겁니다.

 

박근혜 정부와 보험회사는 똑같이 ‘노후 공포 마케팅’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습니다. 노후가 걱정이니 연금기금을 쌓아야 하고, 민간연금을 들어야 한다는 거죠. 지금보다 훨씬 못 살던 시대에도 이렇게 먼 미래를 걱정한 적은 없었습니다.

 

노인복지와 노인의료의 획기적 확충, 나아가서 지역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정책 없이 정부가 나서서 공포를 조장하면 노인들은 자산을 움켜쥐고 소비를 줄이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장기적인 침체와 세대 간 불평등은 더욱 심해집니다. 한 마디로 현재의 청년과 미래 세대가 집을 보유하거나 금융자산을 늘리는 건 불가능해질 테니까요. 세대 간 자산 불평등이야말로 미래세대의 삶을 위협하는 근본입니다. 거꾸로 노인의 주거와 의료 문제를 국가와 지역공동체가 공동으로 보장한다면 노인들이 더욱 자산을 늘릴 이유가 없어지겠죠. 예컨대 자산세와 상속세를 대폭 올려서 그 돈으로 노인 복지를 늘린다면, 세대 간 자산 재분배가 촉진되고 공적연금의 부담도 한결 가벼워질 겁니다.

 

문외한이 원론에 기초해서 말 그대로 운만 떼었는데도 공적 연금에 대한 논의가 우리 미래의 밑그림이 된다는 걸 아실 수 있을 겁니다. 공적 연금 논의는 장기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온갖 변수가 다 등장합니다. 결국 가능한 여러 그림을 그리고 잠정적인 사회적 합의에 따라 하나의 그림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는 노동시장 문제, 그리고 성장 기조에 관한 논의가 다 들어 있습니다. 복지전문가뿐 아니라, 사회과학자와 정책담당자들, 무엇보다도 일반 시민이 이 논의에 참여해서 일정한 합의에 이를 때만 정부가 애지중지하는 미래 세대가 살 길이 열릴 겁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 “그들이 ‘노후 공포 마케팅’에 목매는 이유?”

 정태인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