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야,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이 말밖엔 더 할 말이 없구나. 세상을 바꾸겠노라, 너희 나이에 온몸을 내던졌던 우리가, 너희를 이렇게 만들었구나.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은 전쟁을 겪었고 아주 평등한 상태에서 젊은 날을 시작했단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유상몰수, 유상분배’의 결과인 지가증권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휴지 조각이 됐고, 이 땅에서 지주계급이 없어졌기 때문이지. 1950~60년대에 우리보다 훨씬 잘살던 중남미·동남아 국가보다 우리가 잘살게 된 데는 지주계급이 없어진 것도 한몫을 했을 게 틀림없단다.
우리는 몽당연필을 다시 볼펜 껍데기에 박아 쓰고 끼니마다 형제들 간에 반찬 싸움을 벌였지만 그래도 우리는, 물론 우리 부모도 앞으로 우리의 삶이 좋아질 거라는 사실을 추호도 의심한 적이 없었단다. 그래서 형제자매도 많았던 거겠지.
1인당 국내총생산(GDP) 2000달러 시절에 그랬다는 게 믿어지지 않겠지? 지금은 아이 키우는 게 너무 힘들어 하나 낳는 것도, 아니 결혼하는 것도 망설여지고, 심지어 연애도 사치처럼 느껴지는데… 바로 그 수치가 2만5000달러에 육박하는 이 나라에서 왜 이럴까?
아이야, 미안하다. 우리가 그렇게 만들었단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남부럽지 않게 산다”는 게 그리 녹록지 않다는 걸 알아차리곤 바로 ‘내 새끼’를 위한다는 이유로 극단의 경쟁을 벌였단다. 좋은 대학을 보내기 위해 사교육 경쟁을 벌이고, 그래도 뭔가 남겨줘야 한다고 부동산 경쟁에 뛰어들어서 결국 너희들이 암기밖에 모르고, 졸업해선 자기 월급 모아서 집 사는 게 불가능하도록 만들었단다.
피케티 방식대로 우리나라의 민간순자산을 사들이는 데 순국민소득 몇년치가 필요한지 계산하니까 7년 정도가 나오는구나. 선진국 중에서도 최고 수준의 자산불평등이 이 나라에 일어난 거지. 서울에서 집을 사려면 너희 월급의 30%를 저금한다고 해도 30년이 걸린단다.
물론 그건 평균 수준의 직장을 얻었을 때 얘긴데, 불행하게도 너희들의 상대적 실업률〔핵심생산인구(30~54살) 실업률 대비 청년(16~29살) 실업률〕은 3.51배로 세계 최고란다. 일자리의 86%는 중소기업이 차지하고 있는데 대학을 나온 너희들이 월급도 반이고 안정성도 없는 중소기업엔 가지 않기 때문이겠지.
아이야, 정책이 없는 건 아니란다. 교과서에 나오는 대로 “직업에 귀천이 없다”면 너희들은 얼마든지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테지. 또 그러려면 당연히 정규직, 비정규직 간의 격차도 없어져야 하겠지. 하지만 그 정도의 ‘개혁’도 힘이 부치는구나. 장관 청문회 때마다 보듯 최상류층은 ‘위장전입’, ‘병역기피’, ‘부동산 투기’라는 불공정 경쟁을 일삼는데, 그런 사람들이 선거 때마다 백전백승이니 어쩌겠니?
어쩌면 아이야, 너희들은 혁명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레닌이나 마오쩌둥 식의 혁명은 절대로 아니겠지. 우리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그런 혁명을 준비해야 할 거 같구나. 하지만 아이야, 그래도 희망은 있단다. 너희 또래인 이길보라 감독의 얘기를 들어보렴.
“기성세대는 짱돌, 화염병이라도 던져본 연대의 경험이 있지만 우린 애당초 연대하는 법을 경험하지 못한 채 ‘저 아이를 밟고 일어서야 내가 산다’고 배워왔다. … 내가 길에서 배운 건, 그래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 우리의 생은 너무 짧은데 한 것도 없이 벌써 지치면 안 된다는 거, 친구들과 연대해서 우리가 살,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야겠다는 거다.”(<한겨레> 4월25일치)
이런 게 바로 혁명의 마음가짐 아닐까? 각자도생이 아니라, 친구들과 연대해서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드는 것, 바로 거기에 너희의 살 길이 있을 거야. 바로 21세기 혁명의 시작이겠지. 우리 아이들에게만은 최루탄 냄새를 맡게 하지 않겠다던 우리가 이런 얘기를 하다니, 미안하고 또 미안하구나.
정태인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