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다 보니 지난 주 대부분을 일본에서 보냈다. 작년에 약속한 TPP(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심포지엄이 니이가타에서 드디어 열렸고, 내가 일본에 간다는 사실을 안 도쿄의 “서울선언 연구회”가 강연을 요청한 데다, 이틀 후엔 일본의 팔시스템(PAL System, 일본에서 제일 큰 생활협동조합)이 주최한 한일 양국의 빈곤과 청년층에 관한 세미나가 뒤를 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TPP 반대 싸움은 한 풀 죽어 있었다. 일본에서는 농협(JA)이 TPP 반대를 주도했는데, 아베정부가 농협개혁을 선언하면서 농협 중앙회가 해체될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더욱이 12개국이 동시에 진행 중인 TPP 협상은 완전히 비밀로 진행되고 있다. “협상 전략 상 밝힐 수 없다”는 정부의 틀에 박힌 말이야 한미 FTA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한미 FTA의 협상 쟁점은 꽤 많이 알려졌고 내가 출연한 TV 토론도 수없이 많았다. 일본의 언론은 그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니 3년의 싸움에 지치기도 했으리라.
그 때문인지 투자자국가중재제도(ISDS)에 관한 내용도 일본엔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모양이다. 150여명의 니이가타 시민(대부분 활동가들이었을 게다)들은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론스타 중재 사례에 관심을 보였다. 단 세명의 변호사가 한 나라의 정책과 세금에 관해 판단을 내린다는 건 누가 봐도 주권의 침해다. 특히 문제가 되는 조항은 “최소기준 대우”라는, 사실상 ‘국제관습 기준’이다.
모든 국민이 원하는 정책이라 하더라도 국제 관습에 어긋난다고 세 명의 민간인이 판단하는 순간 휴지조각이 되고 정부는 그 피해액을 현금으로 보상해야 한다. 예컨대 필립모리스는 담배갑에 무시무시한 문구를 집어 넣도록 한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를 제소했다. 왜 공공 정책의 운명을 민간 법률가 세명의 판단에 맡겨야 하는 걸까? 원래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정식 재판을 피하기 위해 상인들이 자기들끼리 중재로 해결하던 제도가 이젠 각국의 공공정책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른 것이다.
니이가타에선 강연보다 질의 응답이 더 길었다. “7년을 싸웠지만 남은 건 하나도 없지 않느냐?”는 질문은 뼈아팠다. “싸워야 협상 정보도 흘러 나오고, 싸워야 정부의 대책도 마련되고, 또 싸워야 다음 싸움도 할 수 있다”고 대답할 수 밖에…
일본의 나이든 활동가들은 60-70년대에 지역으로 내려가, 요즘 말로 ‘사회적경제’를 실천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각 분야에서 탄탄한 뿌리를 내렸지만, 지역 내에서도 서로 소통하는 일이 드물다고 한다. 한국의 지금 진보세력이 그렇듯, 과거의 정파 차이나 세세한 전술 차이 때문에 ‘수직적 전문화’만 한껏 일어나서 ‘수평적 연대’는 매우 힘들다고 했다. 해서 전국적으로 일반 시민들까지 합세해야 하는 TPP 싸움이 농협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리라.
강연을 마치고 저 유명한 게츠오카(月光) 온천장에서 하룻밤 묵으며 노천욕을 하는 호사까지 누렸으니, 이젠 3000회가 넘을 국내외 강연 중 니이가타 행사가 가장 호사스러웠다고나 할까,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올려다 본 밝은 달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이틀 뒤 동경에선 팔시스템 주최로 “iCOOP 생협에서 배우는 한국 협동조합의 실천과 과제”와 “청년들 스스로 실천하는 청년 빈곤문제”가 연이어 열렸다. 나는 “한국의 사회적 문제와 사회적 경제”라는 제목으로 한국 불평등의 실태와 청년들의 어려움에 관해 설명했다.
니이가타에선 TPP 외에 한국의 사회적경제 얘기도 해 달라고 하더니, 이번엔 TPP에 관한 얘기도 덧붙여 달란다. 일본의 TPP 싸움에서 생협 등 사회적 경제 조직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의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현재 한국의 상황을 무척이나 부러워 한다. 자기들은 20년 넘게 노력했지만 아직도 입법을 하지 못한 “협동조합 기본법”을 어느 새 뚝딱 통과시키고, 나아가서 “사회적경제 기본법”도 국회에서 논의하고 있다니 그 내용이 궁금할 만도 하다. 더구나 서울에서 GSEF(국제 사회적경제 포럼)와 같은 국제포럼까지 개최하고 있으니 이제 “한국에서 배우자”는 것이다.
지난 20여년 한국의 생협운동은 거의 모든 걸 일본에서 배웠다. 우리가 이탈리아의 에밀리아 로마냐나 캐나다의 퀘벡, 그리고 영국의 공동체기업에 관심을 가진 건 불과 5년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일본의 백발 성성한 활동가들이 한국의 경험을 배우겠다니 가히 상전벽해라 할만 하다.
하지만 한국의 사회적경제 조직은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꽃부터 만개시킨 나무가 아닐까? 시민운동의 힘이 아직 중앙정치를 움직일 수 있어서 제도화부터 시작되었고 일부 광역자치단체가 정책적인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반면 일본의 사회적경제조직은 제도도, 정부 지원도 없이 홀로 뿌리를 내렸으니 웬만한 바람엔 끄떡도 하지 않는다.
하여 나는 강연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두 나라의 장점을 서로 보완할 수 있다면 아시아의 사회적경제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이렇게 만나는 이유가 거기 있을 겁니다. 사회적 경제 뿐 아니라 TPP 반대운동에서도 다시 만납시다!”
정태인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