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주도 성장 전략의 종말
“중국발 충격”이라는 말이 2주째 각 언론 경제면 머리기사 제목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상하이종합지수가 18일 6% 하락한 것은 물론, 한국의 코스피지수는 20일 오전 11시, 1920포인트 밑으로 떨어졌고 미국의 다우존스평균지수와 유럽의 주가 지수도 폭락세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국제 유가(서부텍사스산 원유)는 40.80달러를 기록해서, 전 세계가 공포에 떨었던 2009년 3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중국 위완화 가치가 이틀 만에 4% 떨어져서 혼란스러운 데다, 중국 정부의 증시 부양책이 한계에 다다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지난주에 말씀드린 대로 위완화의 평가 절하는 당연한 조치이고 중국 정부 처지에선 위완화 국제화라는 장기 전략에도 부합합니다.
선진국들이 양적 완화 정책을 쓰면서 자국 통화 가치를 떨어뜨릴 때, 위완화는 나 홀로 가치를 지켰습니다. 2007년 GDP(국내총생산)의 10.1%에 달했던 중국의 경상 수지 흑자가 작년(2014년)에는 2.1%까지 감소한 데는 환율도 한 몫을 했습니다. 또 중국의 주가 급증 역시, 2010년 이후의 부양 정책(주식 투자에 대한 규제 완화)에 힘입은 거라서 본래의 자리를 되찾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중국의 실물 경제가 폭락할 가능성입니다. 유럽이나 미국의 분석가들은 중국의 경제 성장률이 정부의 공식 통계보다 훨씬 낮아서 4%내지 5%에 불과할 것이라는 추정치를 내 놓고 있습니다. 저도 ‘리커창 지수’로 판단하면 5% 내외일 거라고 짐작합니다.
(리커창 지수의 정의와 2013년까지의 추이는 2013년 7월 30일 “중국과 한국 경제, 동반 추락?” 기사를 보십시오.)
과연 이 상황이 경착륙으로 발전할까요? 지난 몇 년간 지속적으로 중국 경제를 폄하해온 폴 크루그먼은 “경제 정책의 경우, 무엇이든 관철시킬 수 있는 시진핑도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고 비아냥거렸습니다. 실로 경제를 개방한 1978년부터 2010년까지 매년 10%대의 초고속 성장을 해온 중국 경제가 곧 붕괴할 거라는 얘기는 10년 내내 수도 없이 들은 얘깁니다. 한 번도 맞은 적이 없는, 이런 붕괴 시나리오는 이번에도 반쯤만 실현될 겁니다.
물론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중국이 성장을 지속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중국 상품을 수입해온 선진국들의 성장률이 0%에 가까워지면서 중국의 수출 주도 성장 역시 막을 내렸으니까요. 실로 동아시아와 독일의 수출 주도 성장은 미국이나 남유럽의 부채 주도 성장과 짝을 이룰 때만 효력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과잉 투자와 그림자 금융
이 그림은 중국의 현재 위기를 설명하는 데도 유용합니다. 중국은 경제 위기가 닥치자 정부가 주도해서 대대적인 투자 확대에 나섰습니다. 실로 중국은 수출 주도/투자 주도 성장 국가였습니다. 1990년대 35%였던 중국의 고정 투자는 2007년 41%까지 증가했고(여기까지는 한국의 고도 성장기와 유사한 수준입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에는 더욱 늘어나서 2013년에는 무려 47%에 이르렀습니다.
GDP의 반이 투자에 들어가는 세계 경제 사상 전무후무한 일이 벌어진 거죠. 중국의 투자 확대는 원자재 가격을 상승시켰고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는 이 기간 동안 세계 경제의 “충격 흡수기(shock absorber)”였습니다. 말하자면 세계 경제의 구세주였고, 특히 바로 옆에 있는 한국에겐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였다고 할 수 있겠죠.
현재 중국의 위기는 이런 과잉 투자의 후유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 지방 정부의 인프라 투자, 철강과 시멘트와 같은 건설 자재 및 중화학 산업의 설비 투자, 그리고 증시와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간 돈이 모두 문제가 됩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그림자 금융입니다. 중국의 공공 은행은 어마어마한 돈을 대출해 줬고, 신용 회사(trust company)들은 은행의 위험 채권을 사들여서 다른 안전 증권과 섞어서 자산 관리 상품(WMP, Wealth Management Products)을 만들어 일반 소액 투자자에게 판매했습니다. 초보적인 형태지만 서브 프라임 모기지의 파생 상품([그림 1]의 오른쪽 부분)을 연상케 하는 거죠.
은행이 지방 정부와 부동산 개발 회사에 대규모 대출을 해 줄 때, 중국 정부는 국영 신용 보증 기관을 통해 대출 보증을 섰고, 은행은 장부에 위험 부채가 나타나지 않도록 할 수 있었습니다(은행이 자회사로 신용 회사를 만들면 아무 거리낌 없이 위험한 대출을 늘릴 수 있으니까요). 바로 중국의 그림자 금융입니다.
이런 신용 대출 액수는 8조 위안(관리 자산은 14조 위안)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요. WMP의 상환 기간은 단기인 반면(60%는 3개월 이내), 이 WMP가 기초한 채권은 주로 비유동 자산(예컨대 대규모 건설 투자)에 투자됐기 때문에 만기 불일치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의 외환 위기 때 외국에서 단기 자금을 빌려와서 대규모 설비 투자를 한 것을 연상하면 됩니다. 지난 18일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가, 11개 신용 회사가 허베이 성 당 총서기에게 구제 금융을 신청했다는 보도를 했는데요. 어쩌면 그림자 금융 연쇄 파산의 신호탄일지도 모릅니다.
한 마디로 중국은 과잉 설비와 악성 부채 위에 앉아 있는 꼴입니다. 2008년의 미국과 1991년의 일본이 그랬듯이 GDP에 비해 민간 부채가 급격하게 증가하면 금융 위기를 맞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중국은 일당독재 국가이고 크루그먼 말대로 시진핑 총리는 무엇이든 관철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 생각엔 크루그먼의 짐작과 달리 중국 공산당은 현재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중국의 악성 부채는 대부분 공공 은행이 지방 정부와 공기업에 대출한 겁니다. 대규모 구제 금융을 조성하고 이를 집행하는 건 현재의 중국 공산당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고, 동아시아 외환 위기를 지켜 본 중국 정부는 처리 방식도 잘 알 고 있을 겁니다. 수백만, 수천만 명의 소액 투자자들이 대규모 시위를 하는 것보다는 국가에 의한 악성채무 해결을 택할 겁니다. 또 ‘일대일로’와 같은 대규모 국제 투자 계획을 지니고 있어서 중장기적으로 장기 침체라는 만성 질환에 시달릴 것으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관련 기사 : 박근혜 정부의 ‘잘한 일’에 걱정 드는 이유?)
중국의 기침은 한국의 독감?
하지만 중국의 기침이 독감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해도 주변국에 미치는 영향은 심각합니다. 현재 중국의 상황은 1) 중국 은행이나 기업에 대한 대출이나 투자 2) 중국에 대한 수출의 감소 3) 원자재 가격의 폭락 4) 위완화의 평가 절하로 인한 수출 경쟁력의 약화라는 경로를 통해 다른 나라나 기업에 영향을 미칠 겁니다.
우선 원자재 가격의 폭락은 곧바로 브라질, 러시아 등의 산유국과 중남미 국가들에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한국은 2)와 4)의 면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볼 나라 중 하나이고 3)의 면에서도 일부 투자자가 피해를 입었습니다.
한국 경제의 상황은 점점 악화하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이 지난 7월 23일 발표한 “2/4분기 실질 국내 총생산(속보)”을 보시죠. 프레시안 조합원에게 [표 1]은 이제 익숙할 겁니다.
지난 2/4분기의 한국 경제는 1/4분기에 비해 0.3%(작년 2분기에 비해서 2.2% 성장) 성장했습니다. 내용을 보면 소비는 –0.3%, 설비 투자가 0.4%, 수출이 0.1%로 거의 제자리걸음이었습니다.
정부는 메르스 탓을 하고 있지만, 정부의 정책 때문에 더 급속하게 증가한 가계 부채가 소비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소비가 증가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수출 역시 감소하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니 기업이 투자를 할 리도 없죠.
이런 상황에선 중국이 기침을 하는 정도라도 한국은 독감에 걸릴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대통령은 재벌의 투자가 살 길이라는 환상 속에서 국회에 책임을 돌리고 경제부총리는 “빚내서 집사라”고 한 적 없다며 오리발을 내밀고, 또 고위 경제 관료가 8월 14일 공휴일 지정의 경제 효과가 1조3000억 원이라는 통계나 발표하고 있는 한, 우리 경제는 독감을 넘어 악성 폐렴에 걸릴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남은 한 해, 한국 경제가 위기에 빠질 징후를 포착하고, 벗어날 대책을 같이 궁리하는 데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정태인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