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분다. 전염병 메르스에 대해서도 “나몰랑”, 여지없이 무책임을 드러낸 정부 때문에 더 갑갑했던 2015년 여름이 지나간다. 이 여름, 세계를 뒤흔든 뉴스는 경제 쪽에서 나왔다.
그리스 경제위기와 중국발 쇼크
7월의 그리스의 위기에 이어 8월엔 ‘중국발 쇼크’가 터졌다. 7월 6일 그리스 국민들은 트로이카(유럽집행위원회, 유럽중앙은행, IMF)의 ‘최후통첩안’에 대한 찬반투표에서 단호하게 “아니오!”를 외쳤다. 하지만 불과 사흘 만에 치프라스 총리는 유로존에 남기 위해 최악의 타협안에 사인을 하고 말았다. 국민들이 원했던 부채탕감은 물 건너갔고 지난 5년 동안 그리스를 피폐하게 만든 긴축정책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생산성 격차가 있는 나라들이 같은 통화를 사용하면 경상수지의 불균형을 시정하기 어렵다. 환율이 변동해서 무역적자를 줄이는 메커니즘(외환위기 이후 원화 가치가 폭락해서 수출이 늘어났던 사실을 기억하면 된다)이 작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유로지역이 한 나라라면 중앙정부가 그리스에 보조금을 보내겠지만 메르스 총리는 ‘베짱이’, 그리스 국민을 도울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다. 결국 그리스에 남은 것은 임금과 물가의 하락뿐인데,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시행한 지난 5년 동안의 긴축정책은 효과가 없었고, 그 대가로 얻은 거액의 빚(구제금융)도 오직 과거의 빚을 갚는 데 쓰였을 뿐이다.
유로존에 잔류함으로써 급한 돈을 빌려야 하는 그리스에 채권국 독일은 더 강한 긴축을 요구했다. 그 때문인지 남유럽 국가들의 시위에는 예외 없이 ‘콧수염을 단 메르켈’이 등장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그리스 사태는 앞으로도 해결할 길이 없고 결국 100년이 넘은 유럽의 꿈은 백일몽이 될 전망이다.
숨이 턱턱 막히던 8월, 이번엔 중국이 세계를 뒤흔들었다. 더위가 마지막 기승을 부리던 즈음, 전 세계의 주가가 폭락했고 유가는 50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중국 정부가 위엔화 가치를 단 이틀 만에 4% 떨어뜨렸고 중국의 주가가 하락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엔화의 평가절하는 당연한 조치였고 중국 정부로선 위엔화의 국제화라는 장기 전략에도 부합하는 일이었다. 또한 중국의 외환보유고나 재정상황, 그리고 정부의 장악력으로 봐서 현재의 사태가 패닉으로 발전하지는 않을 것이다.
수출-부채주도 성장의 한계와 저성장
비행기로 10시간 이상 먼 거리에 있는 두 나라에서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이 사건은 세계경제의 현황을 한 프레임 안에 집약해서 보여주었다. 1990년대부터 20여 년간 세계에는 수출을 통해 성장하는 나라와 빚으로 그 재화를 수입하는 나라가 있었다. 수출주도와 부채주도의 결합은 세계의 장기호황을 이끌었지만 2008년의 금융위기로 호시절은 끝났다.
중국과 한국 등 동아시아 나라들이 수출주도 성장을 이뤘고, 그 짝은 미국의 부채주도 성장이었다. 미국이 빚을 내서 소비를 늘리면 여기에 맞춰 우리는 수출을 했다. 유럽에선 독일과 북유럽 나라들이 수출을 했고 그리스 등 남유럽국가들이 빚을 내 수입을 했다.
영원히 빚을 늘릴 수는 없으니, 2008년 이래 부채주도 국가들이 줄줄이 파산 하고 있는 중이다. 반대쪽에 있는 나라라고 괜찮을 리 없다. 중국은 대규모 투자와 자산시장 부양을 통해 위기를 헤쳐 나왔고, 덩달아 원자재 수출국과 주로 중국에 수출하는 나라들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의 중국 사태는 이 처방도 한계에 부딪혔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수년간 국제기구들이 연말에 새해 경제전망을 할 때, 항상 전제로 달았던 문구가 있다. 유럽의 위기가 악화되지 않는다면, 중국 등 신흥국들이 혼란에 빠지지 않는다면, 3% 내외의 완만한 성장을 거둘 수 있을 거라는 얘기다. 하지만 올해 여름 이 전제는 모두 무너졌다.
한국정부는 지난 7년 동안 매년 4% 내외의 성장을 전망했고 실제 성장은 그보다 1%p 정도 낮았다. 하지만 이번엔 아예 2% 이상 차이가 있을 것이다. 작년 말엔 3.8% 성장을 할 거라고 호기를 부렸는데, 올해 1/4 분기 대비 2/4분기 성장률은 0.3%(2014년 2/4분기에 비해 2.2%)에 불과했고, 불행히도 앞으로 더 떨어질 것이다. 설령 그리스와 중국 사태가 모두 이 정도로 수습된다고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위기를 맞을 때마다 사라졌다가 그저 국회만 탓하는 대통령, “빚내서 집사라”고 한 적 없다며 오리발을 내미는 경제부총리, 8월 14일 공휴일 지정의 경제효과가 1조 3천 억 원이라며 희희낙락하는 경제 관료가 우리의 정책을 만드는 한, 외부 조건이 아무리 좋아져도 우리 경제는 위기를 맞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임기는 아직도 반이나 남았다. 아니, 이미 반이나 견뎌냈다고 우리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앞으로 예견된 상황에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걸까?
정태인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