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여 경제가 나쁘다는 얘기, 박근혜 정부의 역주행 때문에 우리 삶이 위험해지고 있다는 얘기를 줄곧 했습니다.
지난달부터는 “위기”라는 낱말을 쓰기 시작했죠. 저는 지금 이런 제 판단, 또는 선입견에 맞는 사실만 끌어 모아서 오히려 현실을 왜곡하고 있는 건 아닌지 경계하고 있습니다. 상황을 급반전시킬 만한 요소는 없는지도 점검하고 있죠. 하지만 경제가 수렁으로 빠지고 있다는 증거는 계속 쏟아지고 있습니다.
현재 가장 그럴듯한 시나리오는 이렇습니다.
1) 중국 정부가 발표하는 공식 경제 성장률이 2년여에 걸쳐 5%까지 떨어지고 이미 위기에 빠진 러시아(-3.8% 전망)나 브라질 경제(-3.5% 전망)가 세계 금융 위기를 촉발하지 않는 경우라면 한국 경제는 내년(2016년)에 잘 해야 1%대의 성장을 하게 될 겁니다.
그러나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12월에 금리를 올리고, 이어서 신흥 경제가 금융 혼란에 빠질 경우(브라질, 러시아, 동남아 국가들이 동시에 위기를 맞는다는 얘기죠) 한국 경제도 마이너스 성장, 나아가서 공황 상태로 빠져들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재닛 옐런 의장이 주도하는 연준이 0.25% 이상 급격하게 금리를 올릴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만….
2) 한국 기업의 수출은 계속 마이너스를 기록할 겁니다. 중국이 서비스업 중심, 소비 중심 성장으로 경제 기조를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오랫동안 한 자녀 정책을 썼고 복지 시스템도 미비하기 때문에 기성세대의 보험성 저축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이런 전환이 단 기간에 순조롭게 이뤄질 수는 없습니다.
당연히 수출 중화학 대기업을 중심으로 파산, 또는 대규모 구조 조정이 이어질 겁니다. 내수를 확대하는 “사회적 대타협”, 즉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 위주의 임금 인상과 고용 유지를 생산성 향상과 교환하는 대타협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이런 상황은 곧바로 소비 위축으로 귀결됩니다. 자신을 따르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테러 세력이나 위선자로 모는 대통령이 있는 한, 물론 이런 타협은 불가능합니다.
3) 기업의 위기로 신용 경색이 일어나고, 실물 경제는 투자 위축과 소비 위축에 허덕이게 되면 가계 부채가 터질 수 있습니다. 최악은 이 상황이 자산 시장 붕괴로 이어지는 겁니다. 결국 하층 위주로 빚을 탕감해 주고, 정부가 주택을 매입해서 안정적인 가격 하락을 유도하지 못 하면 국내 실물 위기가 금융 위기로 발전하게 됩니다.
4) 이 시나리오도 세계 경제 상황이 급격한 위기로 발전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그린 겁니다. 만일 1997년 외환 위기 때처럼 외부 쇼크가 내부의 폭탄에 불을 붙이게 된다면 1), 2), 3) 어느 단계에서도 금융 위기가 발발할 수 있습니다.
쏟아지는 위기의 징후들
통계청은 24일 ‘2014년 기준 기업 활동 조사 잠정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국내 회사 법인 중 ‘상용 근로자 50인 이상이면서 자본금 3억 원 이상’인 회사 법인을 대상으로 올해 6월 실시한 조사를 잠정 집계한 결과”입니다. 즉 영세 기업들은 빠진 통계죠. (☞관련 자료 : 2014년 기준 기업 활동 조사 잠정 결과)
언론에 보도된 대로 작년 기업 매출액은 이 조사가 시작된 2006년 이후 처음으로(아마도 한국 경제 사상 최초로) 마이너스를 기록했습니다. [그림 1]은 매출액 하락이 어떤 우연적인 요소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제조업의 매출액이 3.5% 감소한 것이 이런 움직임을 이끌었습니다. 즉 수출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얘깁니다.
지난 25일 한국은행은 ‘2015년 3/4분기 중 가계 신용(잠정)’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그림 2]에서 보듯이 가계 대출이 또 다시 30조 원 이상 증가해서 전체 가계 부채는 1160조 원이 됐습니다. 이 속도라면 연말에는 1200조 원에 이르겠죠.
우리는 박근혜 정부의 정책, 즉 “빚내서 집 사고, 전세금 올려 줘라”가 이 상황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부가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완화하고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연 2.5%에서 연 1.5%까지 내리면서 지난 1년 동안 가계 부채가 109조6000억 원이나 늘어났으니까요. 특히 상호저축은행, 신용협동조합, 상호금융, 새마을금고 등 비은행 예금 취급 기관의 가계 대출이 3분기에 6조3000억 원 늘었다는 것도 심각하게 봐야 할 현상입니다. 앞으로 정부의 가계 부채 대책으로 은행권이 대출을 죄면 이 쪽의 빚이 늘어날 거라는 얘기니까요.
그림의 막대 그래프의 파란 부분(판매 신용)이 급증한 것도 “그랜드 코리아 세일”이라는 정부의 소비 진작책 때문입니다. 3분기 중 판매 신용은 전 분기보다 3조9000억 원 늘어 2분기 증가폭인 5000억 원의 8배나 됐습니다. 과연 이제 어떤 방법으로 소비를 더 늘릴 수 있을까요?
소득이 늘지 않으면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습니다. 통계청이 20일 발표한 ‘2015년 3분기 가계 동향’을 보면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41만6000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0.7% 늘어났습니다. 그 중 근로 소득은 0.1% 증가했으니까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실질 근로 소득은 마이너스라는 얘깁니다. 사업 소득 역시 4분기 연속 감소했고 그나마 전체 소득이 미미하게 증가한 건 자산 소득의 증가에 기인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국민의 절반이 가진 자산은 전체의 1.7%에 불과하니까 지금 미미하게 증가한 소득도 전부 상층이 거뒀다는 얘깁니다.
이에 따라 가구당 월평균 지출액은 339만여 원으로 지난해보다 0.5% 감소했습니다. 2013년 1분기(-0.4%) 이후 처음 있는 일이죠. (☞관련 자료 : 2015년 3분기 가계 동향)
한편, 전체 지출은 줄었지만 실제 주거비는 23.5% 급증했습니다. 주류, 담배 지출도 월 3만7000원으로 지난해보다 23%나 증가했죠. 통계청은 “월세 가구의 증가 등으로 주거비가 크게 늘었고, 담뱃값 인상의 영향으로 담배 지출도 증가했다”고 밝혔습니다. 대충 그림이 그려지시나요? 전체적인 경기 둔화로 가구 소득이 줄어들었고 오로지 자산 소득이 증가했는데, 그건 임차 가구에서 임대 가구로 소득이 이전된 결과라는 겁니다.
가계 부채와 기업 부채가 모두 위험하다
11월 언론에서 가장 화제가 된 건 국제금융협회(IIF)의 보고서였을 겁니다. 새로운 사실은 없습니다만 우리의 가계 부채와 기업 부채가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어느 정도인지를 간명하게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주로 보도가 된 보고서는 11-12월 보고서이고, 기업의 부채를 다룬 건 10월 보고서입니다.) (☞관련 자료 : Capital Markets Monitor Key Issues(NOVEMBER/DECEMBER 2015), Capital Markets Monitor Key Issues(OCTOBER 2015))
2015년 1분기 기준으로 1분기 기준으로 한국의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84%에 달해서 선진국 평균 74%를 훨씬 웃돌았고, 신흥 아시아 평균인 40%에 비해서도 두 배를 넘었습니다. 이 보고서의 말을 빌지 않아도 심각하게 위험한 상태입니다.
기업 부채 역시 GDP 대비 비금융 기업 부채 비율은 106%를 기록해서 선진국의 90%는 물론 18개 신흥국 중 홍콩(226%), 중국(161%), 싱가포르(142%) 다음으로 4위를 기록했습니다. 가계 부채 못지않게 기업 부채도 문제가 되고 있는 거죠.
한편, 한국의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41%로 그리 높지 않지만, 2009년 이전의 24%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가계, 기업, 정부 부채(총부채)는 올해 1분기 기준 317%로 GDP의 3배를 넘어섰습니다. 즉, 정부 부채만 조금 여유가 있을 뿐 기업 부채와 가계 부채가 모두 급등해서 위험한 상태에 이르렀다는 얘깁니다. 그래도 이 정부가 내 놓는 정책이라곤 “부채 주도 성장” 밖에 없죠.
이런 상황에서는 조금만 삐끗해도 공황 상태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이 모든 상황이 야당과 국민들 때문이라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그의 뜻대로 될 경우 오히려 이 나라는 ‘대재앙(perfect storm)’을 맞을 게 뻔한 데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