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조합원들도 마름이란 말, 아시죠? 보통 전통적인 대지주는 자기 논, 밭이 정확히 어디 있는지도 잘 몰랐습니다(장관 청문회를 보면 지금도 마찬가지인 듯 합니다). 소작농들은 자기가 알아서 농사짓고 “병작반수제”(수확물의 반을 소작료로 내는 것)와 같은 ‘규범’에 따라 수확물을 지주에게 갖다 바쳤죠. 하지만 일제 강점기가 되면서 얘기가 달라집니다. 일본의 농법을 들여 와서 농사를 일일이 통제하는 등(이광수의 소설을 보면 마름들이 모내기를 지휘하는 장면이 나오죠), 생산 자체를 늘리는 데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학계에선 “부농형 지주”,”경영형 지주”라고 불렀죠). 소작농을 관리하는 마름(요즘 말로 하면 중간 관리자라고나 할까요?)의 역할이 갑자기 커졌습니다. 해서 종종 마름은 농민들의 원성을 한 몸에 받아 소작쟁의 때 가장 먼저 공격을 받기도 했죠. 따라서 농민들의 소작쟁의를 막는 것도 마름이 기필코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식민 지배의 대표적인 전략이었던 “분리와 지배”(divide and ruel)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마름이 애용한 전략이기도 했을 겁니다.
요즘 보면 우리 사회에 마름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지배계층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총동원하는 관료체제, 그리고 언론과 학계가 대표적이죠. 관료는 논, 밭에 나가 농민을 지휘-통제하는 ‘실행 마름’이라면, 언론과 지식인은 이간질과 홍보를 맡은 ‘구상 마름’이라고나 할까요? “대동아공영권”과 “내선일체”를 외치던 일제 강점기의 지식인들과 다를 바 없다는 느낌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재벌-경제관료-보수언론의 3각 동맹은 지주와 마름의 체계이기도 합니다.
마름의 사명은 확실합니다. 지주가 잘 되어야 자신도 잘 살 수 있고, 나아가서 농민들도 그들의 말을 따르는 게 유일한 길이라고 믿도록 해야 합니다. 스스로 그렇게 믿는다면 더 할 나위가 없죠. 일제 말기 지식인들이 “일본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27일에 발표된 “청년 고용절벽 해소 종합대책”도 그런 사례 중 하나입니다. 정부 발표문을 직접 보시죠. (☞바로 가기)
분리와 지배
지금 우리 경제는 매우 안 좋습니다. 만성질환을 앓는 환자는 약간의 외부쇼크로도 중환자실로 직행할 수 있습니다. 재벌들 스스로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딱히 탈출구를 찾지 못한 이들은 일단 과거의 수법을 강화해서 확실한 이익부터 챙기려고 합니다. 하청단가의 인하라든가, 골목 상권의 장악이 그런 것인데 경기악화와 ‘3세 승계’ 때문에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겁니다. 그리고 정부, 즉 실행마름들이 자신의 숙원사항을 실천하면 투자를 늘려 경제를 살리겠다고 강조합니다. 이른바 ‘경제혁신=규제완화+구조개혁’이 그것입니다.
구조개혁은 칼을 휘두르는 일입니다. 따라서 일반 대중으로부터 “적”을 분리해서 고립시킨 다음 이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공공부문 개혁에선 공무원이 그 적이었고, 노동(시장)개혁에선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가 바로 그렇습니다. 소작농 중 그래도 사정이 나은 농민을(실제로 이들은 지주와 이익을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적으로 삼는 거죠. 만일 잠재적으로 가장 위험한 빈농이 이들을 공격하는 첨병이 된다면 금상첨화겠죠. 바로 청년과 비정규직입니다.
해서 ‘공무원연금개혁’ 때는 현재의 연금을 그대로 두면 ‘미래세대’가 그 짐(연금적자)을 다 짊어져야 한다고 떠들었고 이번엔 청년들의 일자리가 없는 건 정규직이 독점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노동시장의 경직성 때문에 청년들이 일자리를 얻지 못한다는 겁니다.
“개혁을 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어둡고 특히 미래 세대에게 빚을 남기게 돼서 그들이 감당해야 될 몫이 너무 힘들고 고통의 반복이 지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 특히 노동 개혁은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 세대 간 상생을 위한 시대적 과제”(박근혜), “노동시장 개혁은 청년 일자리와 직결되는 만큼 정부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이를 추진해 나갈 것”(최경환), ” “노동시장이 유연한 미국과 달리 한국의 노동시장은 매우 경직돼 있는데, 이로 인해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이 힘들고 많은 청년들이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김무성)는 주장은 이래서 나왔죠.
이제 정부가 얼마나 청년들을 위해 고심하는지 알려야 합니다. “청년 고용절벽 해소 종합대책”이라는 간절한 제목은 그래서 나온 거겠죠. 이 대책 자체로는 나무랄 데가 별로 없습니다. 원인 분석에서 대책까지 EU 등에서 나온 보고서나, OECD와 ILO의 권고를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1) 불황기에는 사중손실(제도의 실행에 따르는 행정비용이나 부작용)이 크지 않으므로 임금조조금은 공공근로보다 효과적인 정책수단이다. 2) 구직 관련 서비스를 통합하여 포괄적인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 3) 청년 노동시장의 특징은 수급의 불일치(mismatch)이므로 고용지원서비스는 비효율적일 수 있다. 4) 프로그램의 목표 대상을 구체적으로 설정해서 상이한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예컨대 10대와 20대 후반의 프로그램은 달라야 한다. 5) 경영계와 지역의 파트너들이 계획에 참여해야 한다. 6) 취약청년층은 장기실업에 빠질 우려가 크므로 조기에 개입해야 한다. 7) 청년층의 임금을 낮추는 것은 효과적인 수단이 아니다. 8) 청년층의 경우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 높은 비용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조기에 실업상태에서 탈출하도록 해야 한다. 9) 최신의 정확한 노동시장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10) 프로그램의 점검과 평가가 필수적이다. 11) 사회적 파트너들의 적극적인 관여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합니다.)
< 그림1>
(<청년 고용절벽 해소대책 기본 방향>, 정부합동, 2015, p5)
위 그림을 보면 알겠지만 정부의 대책은 1) 단기고용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가시적 일자리 창출 2) 산학협력과 ‘대학구조개편’을 통한 미스매치 해소 3) 고용지원 인프라의 확충과 재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미 참여정부 시절인 2003년부터 청년고용대책이 되풀이된 만큼 이번 ‘종합대책’은 그 집대성이라 할 만합니다. 이런 구성은 EU의 여러 보고서나 OECD와 ILO, 심지어 최근의 IMF 보고서와 같습니다.
하지만 보수-진보를 떠나서 언론의 평은 별로 좋지 않습니다. (☞바로 가기)
보수 쪽은 대기업에 부담을 떠넘기는 단기 일자리 정책이라며 노동시장 유연화 등 ‘구조개혁’을 강조했고, 진보 쪽 역시 ‘선거를 위한 나쁜 일자리’를 양산하는 정책이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를 해소하라고 주문했습니다. 즉 고용보조금이라는 수단에 대해서 한 쪽은 부담이라고 하고, 다른 한 쪽은 대기업 특혜라 비판하고 있죠. 또 모두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한 쪽은 해고의 자유를 확대하는 등 노동시장규제를 푸는 쪽에, 다른 쪽은 재벌체제로 인한 경제양극화를 강조합니다.
이들 모두 단기적으로 인턴이나 비정규직을 만드는 것으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데서 일치합니다. 예컨대 20만 명 계획의 핵심은, 공공부문과 민간부분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교원 명예퇴직과 간호서비스 확대를 통해 7만5000명을 신규 채용하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임금피크제를 도입한다고 해서 민간기업이 거기서 절약된 비용을 청년고용에 쓸지 확실하지 않으며, 공공기관의 경우 할당을 채우려면 모든 임직원의 월급을 줄여야 한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또 실행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포괄간호서비스에도 경력단절 여성이 채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교원 명예퇴직 확대에 따른 청년 고용은, 아시다시피 교원연금이 줄어들기 전에 자진 퇴직하는 현상에 기대고 있는 정책이죠.
또 하나, 7만5000명을 채우고 있는 청년인턴제도에 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지난 10년의 경험은, 인턴이 실제로 정규직이 된 경우가 거의 없다는 걸 여실히 보여줍니다. 인턴은 장그래보다도 더 낮은 지위니까요. 해서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단기 비정규직 일자리의 양산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특히 청년 유니온은 20만 개의 일자리 창출을 항목마다 점검했는데요, 한 마디로 신규교원 채용 2년간 4000명을 제외하곤 괜찮은 일자리도 아니고, 실행방안이나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은 “대책 없는 고용대책”이라는 겁니다. 당사자들의 얘기를 들어 보시죠. 정부의 “지배와 분리” 전략은, 적어도 청년유니온에는 전혀 통하지 않는 셈입니다. (☞바로 가기)
청년 실업 대책의 방향 – 일자리 나누기와 사회적 대화
청년의 고용 문제는 우리나라만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게 아닙니다.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이미 1990년대부터 문제가 됐고 수많은 해결책이 제시됐지만 불행히도 사태는 악화되고 있습니다. 2010년 유럽의 재정위기 이후 ‘남쪽’의 청년실업률은 나라에 따라 30%에서 50%에 달하고 있죠.
그렇다면 이렇게 세계 전체에 비슷한 현상이 발생한 이유는 뭘까요? 제 생각엔 첫째, 인구학적으로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이 노동시장에 나온 때부터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해졌다는 것(선진국의 90년대, 한국의 2000년대), 두 번째로 피케티가 그림으로 보여준 불평등의 심화와 이론 인한 장기 경기침체입니다. 이 둘이 상호작용하면 자본주의 황금기에 설계된 연금 등 복지제도가 재정위기를 맞기에 노인들은 노인대로 연금 삭감이라는 고통을, 그리고 청년들은 일자리 부족의 위기를 맞게 되는 거죠.
(반면 주류경제학은 기술혁신을 강조합니다. 새로 생겨난 일자리에 필요한 숙련을 갖추지 못해 대규모 실업이 발생했다는 겁니다. 이른바 “기술과 교육의 달리기 경쟁”입니다. 그렇다면 교육을 바꾸면 됩니다. 정부 보고서에서 ‘대학교육개편’이나 수요맞춤형 교육을 강조하는 건 이 이론에 기대고 있는 거죠. 과연 그럴까요?)
그렇다면 해결의 굵은 물줄기가 가야 할 방향도 뚜렷합니다. 불평등을 줄이는 겁니다. 현재처럼 규제완화, ,노동시장유연화를 통해 기업이윤을 늘려서 이들이 일자리를 늘리고(이른바 ‘낙수효과’), 복지를 줄여서 재정 균형을 이루겠다는 발상은 방향을 거꾸로 잡은 겁니다. 이런 정책들은 총수요를 줄여서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킬 테니까요. 현재의 장기침체가 그 증거입니다. “소득주도성장”이 주장하는 바가 바로 이런 얘기죠.
이런 경제정책기조의 변화, 또는 경제체제에 걸맞은 정책기조의 선택은 경제를 훨씬 뛰어넘는 의사결정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경제학이라는 추상적 이론 차원에서 얘기하자면 그동안 “고용 없는 성장”, “임금 없는 성장”, “청년실업”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은 이런 문제를 노동시장 안에서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노동에 대한 수요부족은 기업이나 공공이 산출을 늘리겠다고 결정해야 해결됩니다. 물건과 서비스를 흡수할 돈이 있어야 노동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거죠. 그 돈이 상위 10%에 몰려 있고, 돈을 낳는 자산은 상위 1%에 더욱 더 집중되어 있다면, 그리고 모든 정책이 자산가에게 유리하게 배치된다면 노동수요가 늘어나지 않는 게 너무나 당연한 거죠.
이런 전체적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노동문제에 국한된 사회적대화기구(노사정 위원회)가 아니라 더 큰 범위를 다루는 사회적 대화의 장이 필요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는 재벌-관료-보수언론의 3각동맹의 지배가 불평등 경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청년유니온은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출처: 청년유니온, <정부 청년고용 종합대책 진단>, p18)
이 그림이 보여주듯이 청년들은 자신들의 문제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양극화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노동 중심부와 주변부의 연대에 의해 경제민주화와 복지(고용보험 재정확충과 실업안정망 등)를 달성할 때 비로소 청년실업 문제가 해결된다는 거죠. 감동적인 그림입니다.
정부 “관계부처 합동”, 그리고 언론과 학계의 뛰어난 이들이 겨우 500명에 불과한 청년유니온보다 지식이 적을 리 없습니다. 하지만 청년들처럼 명확하게 핵심을 짚어내지 못하는 건 그들이 마름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 면에선 박 대통령도 마찬가지죠. 이번 대책도 결국 대기업의 비용을 줄여주고 정부가 보조를 하면 청년 고용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믿음에서 나온 거니까요. 이 보고서 곳곳에도 다소 생뚱맞게 서비스시장 규제완화가 들어있는 건 그 때문입니다. 이들은 지주에게 직접 피해가 가는 일은 어떻게든 막으려 합니다. 청년고용할당제(장하나 의원 발의)가 국회에서 헤매고 있는 것도, 노동시간 단축에 관한 법률이 표류하는 것도 그 때문이죠. 마치 1940년대에 일본이 계속 승리할 거라고 믿었던 식민지 지식인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재벌이 경제를 좌지우지하고 대학진학률이 70~80%에 이르는 사회에서 청년들이 일자리를 얻는 방법은 중소, 영세기업에 취직해도 남부럽지 않아야 합니다. 정부 보고서에도 나오듯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임금이 대기업 정규직의 35%에 불과한데 대기업과 전문직, 공공부문의 일자리가 전체의 15%에 불과하다면 청년들의 장기 실업, 또는 장기 취직 준비(스펙 쌓기)은 불가피하겠죠. 앞으로 에코세대(베이비붐 세대의 자녀 세대)가 끝난다 해도 지금처럼 청년들이 절망의 늪에서 헤맨다면 우리의 장래는 없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출산율이 세계에서 제일 빨리 떨어진다면 경제와 사회 자체가 유지될 수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하는 창조경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로 돈이 될만 하면 그 기업을 재벌들이 사들이거나, 불평등한 구매계약을 맺어 이익을 탈취한다면 창의적인 모험기업이 나올 리 없습니다. 재벌 방식으로 창의적인 문화나 예술을 진흥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재벌은 재미있는 영화가 거둔 이익의 절반을 빼먹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결국 불평등의 해소(경제민주화와 복지)와 일자리 나누기, 그리고 생태인프라에 대한 투자(생태분야는 젊은이들이 흥미로워 하는 곳 중 하나입니다)가 유일한 활로인데 이 문제에 관한 구체적인 얘기는 앞으로 할 기회가 많이 있을 겁니다. 박 대통령의 임기가 아직도 2년 6개월이나 남았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