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인 칼럼] 한중 FTA와 TPP

한중 FTA 발효

지난 11월 30일 한중 FTA 비준 동의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내년(2016년)부터 한중 FTA 가 법률로서 효력을 갖게 된다는 거죠.

지난해 11월 협상 타결을 선언(협상 종료를 알리는 것)한 지 1년, 그리고 체결(정식 서명을 하는 것) 후 6개월 만입니다. 한미 FTA가 2007년 4월에 체결된 후, 2012년 3월 15일에 발효될 때까지 약 5년이 걸린 데 비하면 대단히 빨리 통과된 셈입니다.

정부는 한중 FTA로 인해 향후 10년 내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0.96% 증가하고 관세가 완전 철폐되면 연간 6조3000억 원의 이익이 기대된다고 밝혔습니다. 한미 FTA와 한-EU FTA가 동시에 발효되면 GDP가 7.75% 증가한다고 공언했던 데 비하면 한결 현실적인 숫자로 보입니다.

하지만 현재 세계 경제의 상황으로 봐선 이 정도의 이익도 누리기 힘들 겁니다. FTA로 인한 무역과 투자의 증대 효과는 그리 크지 않다는 게 현재의 중론입니다. 특히 각국의 대기업은 이익을 보겠지만 대다수의 노동자, 농민, 일반 국민은 오히려 손해를 봅니다. FTA가 유행이 된 2000년 대 이후 세계 모든 지역에서 양극화가 더욱 극심해진 게 사실입니다.

이익과 손실의 주체가 확연히 갈리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한미 FTA 때 이미 대안으로 제시된 무역 이득 공유제(수출 증가에 의한 이익으로 수입 의한 손실을 일부 보전하는 제도)는 이번에도 사실상 무산됐다는 점입니다. 국회와 정부는 한중 FTA 발효에 따른 피해 대책 중 무역 이득 공유제의 대안으로 향후 10년간 매년 1000억 원씩 총 1조 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하기로 합의했는데요. 문제는 수출 증가로 이익을 본 기업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이 아니라 대기업이나 농수축협의 자발적 기금 등을 통해 조달키로 했다는 점입니다. 결코 안정적인 방식이 아닙니다.

국회는 ‘한중 FTA 보완 촉구 결의안’도 처리했는데요. 서비스-투자 분야 2단계 협상을 통해 중국 시장의 추가 개방을 확보하고 중국 측의 불법 조업 방지 방안, 미세 먼지 등 월경성 환경 문제 해결 방안, 식품 검역권 확보 등도 후속 협상에서 논의토록 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우리 정부가 얼마나 의지를 이런 의제를 관철시킬 수 있을지 지극히 회의적입니다만, 불행하게도 국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종 FTA의 성과를 점검하고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국회에 상설 ‘FTA 점검 및 보완 대책 위원회’를 두자는 제안도 여전히 실현되지 않고 있습니다. FTA 협상을 하고 발효를 할 때까지는 온갖 에너지를 다 쏟아 놓고는 일단 발효된 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 “나 몰라라”하는 겁니다.

작년 11월 14일자 칼럼에서 이미 말씀드렸듯이(☞관련 기사 : 한중 FTA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중 FTA는 포괄적인 중위 수준의 FTA입니다. 서비스, 지적 재산권, 투자 등의 신이슈를 포함했다는 점에서 포괄적이지만 개방의 강도는 한미 FTA 만큼 강하지 않다는 거죠.

인터뷰를 할 때마다 나오는 질문, “왜 한미 FTA에 대해서는 그토록 강하게 반대하고 한중 FTA는 손 놓고 있는가?”에 대한 답이 여기에 있습니다. 한미 FTA는 지적 재산권, 서비스, 투자 부문의 국내 제도를 미국식으로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말대로 “기업의 국가 인수”이기 때문에 반대한 겁니다만, 그 이후의 FTA는 더 이상 국내 제도를 악화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 만큼 한미 FTA는 강한 독소 조항을 많이 품고 있습니다.

또 원래부터 한중 FTA는 외교 안보적 요소가 훨씬 강한 협상이었습니다. 미국의 아시아로의 회귀, 또는 아시아 재균형 전략에 대한 중국의 대응, 그리고 한국 나름의 균형 전략이었던 셈이죠.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이 경제와 안보, 모든 면에서 힘겨루기를 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대 변화의 시기, 또는 새로운 질서 구축의 시기에 한국은 어떤 전략을 지녀야 할까요? 김대중 정부의 ASEAN+3,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구상 이후, 한국은 한미 FTA 발효, TPP 참가 의향 표시, 전시 작전권 이양의 사실상 포기 등 미국 쪽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전반적인 동아시아 전략은 없는 채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이라는 어정쩡한 실용주의에 기대고 있다고나 할까요?

당장 한국 정부는 미국과 일본 등 12개국이 협상 타결을 선언한 TPP(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에도 가입 의향을 밝히고, 동시에 중국 정부가 주도하는 RCEP(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ASEAN과 한-중-일, 오스트레일리아, 인도, 뉴질랜드 등 16개국의 역내 무역 협정) 논의에도 참가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이런 태도는 장기 전략에서 나온 걸 까요? 아니면 당장 눈앞의 문제를 피하기 위한 미봉책일까요?

TPP 협정문의 공개

TPP 협정문이 공개됐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12개국 정부는 11월 5일, 5544쪽에 이르는 TPP 협정문을 공개했습니다. 앞으로 2년 내에 80%의 무역량을 넘는 6개국 이상이 비준하면 그 때부터 이 협정은 발효됩니다. 결국 미국과 일본 의회에서 비준안이 통과되고 네 개의 나라 이상에서 비준이 이뤄지면 법률로서 효력을 내게 된다는 거죠. 일종의 ‘개문발차’라고나 할까요?

본문만 1000쪽이 넘는 협정문을 아직 제대로 읽지 못했습니다만, 지난 10월 칼럼(☞관련 기사 : TPP를 어찌할 것인가?)에서 봐야 한다고 했던 사항만 먼저 점검해 보겠습니다.

1) 서비스 시장의 네거티브 리스트 개방은 동일합니다. 현재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유형의 서비스는 특별히 제외하지 않는 한, 자동적으로 개방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2) 이번 TPP에는 ‘규제의 일관성(regulative coherence)’이라는 챕터가 별개로 존재합니다. 서비스 산업은 아시다시피 규제 산업인데 TPP와 국내 규제의 일관성을 확보하는 절차가 더 들어갔다는 얘기죠.

3) 금융 서비스에서는 회계 정보와 인적 정보의 해외 전자 송출이 허용됐습니다. 사적 정보의 해외 유출과 이용을 막을 방법은 별로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전자 상거래 챕터에서 각국 정부가 프라이버시 침해를 막기 위해 노력한다(endeavor)고만 명시했습니다. 사실상 프라이버시 침해를 방치하겠다는 선언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4) TPP가 발효된 나라의 기업들은 미국의 ‘미국 상품 사기(Buy America)’ 정책에서 제외됩니다. 하지만 한미 FTA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주정부와 지방 정부(local government)에는 정부 조달 챕터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시했습니다.

5) 담배의 규제(예컨대 담배의 위험에 대한 고지)에 대해서는 TPP 투자 챕터를 적용하지 않기로 명시했습니다. 즉 필립모리스가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를 대상으로 걸었던 투자자 국가 제소권을 앞으로는 사용할 수 없다는 얘깁니다. 시민 단체들이 유일하게 승리했다고 말하고 있는 조항입니다.

6) 지적 재산권 챕터에서는 “상업적 수준의(on a commercial scale)” “의도적인(willful)” 상표 침해, 모조품(짝퉁), 저작권 도용(copyright piracy)에 대해 형사 처벌을 하도록 했습니다. 이 “상업적 수준”에는 직접적이거나 금전적인 이익이 없는 경우, 예컨대 파일 공유도 포함되고, 의도와 관계없는 모조품 수입과 포장, 그리고 극장에서의 캠코딩도 해당됩니다.

7) 특허권에는 한미 FTA에 포함되지 않은 항목들도 들어갔습니다. 식물과 동물, 진단, 처방, 수술 방식도 특허의 대상이 됐고, 기존 상품의 효과성이 나아지지 않아도 기존 상품의 새로운 형태나 사용법도 특허를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즉 새로운 수술 기법도 특허료를 내야 한다는 얘기고 마지막은 이른바 특허의 무한 연장(evergreening)에 이용될 수 있는 조항입니다.

8) 의약품 분야는 강한 지적 재산권이 적용된 한미 FTA 조항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좀 더 관대한 ‘5월 10일 합의(May 10th agreement)’ 조항(콜롬비아, 파나마, 페루 FTA)을 적용할지가 논란이었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듯이 특허 기간 연장, 특허-허가 연계, 자료 독점권의 문제인데 한미 FTA 조항이 적용됐습니다. 생물 약제(biologics, 생물에서 추출한 의약 제재)의 특허 기간은 ⓵ 8년으로 하거나, ⓶ 5년으로 하되 “같은 상업적 결과를 낳는 다른 수단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것으로 정리됐습니다. 한미 FTA는 없었던 문제죠.

9) 한미 FTA에 없었던 “무역 비밀(trade secret)” 조항이 추가됐습니다. 상대국에게 무역 비밀의 절도에 대한 형사 처벌 제도를 만들라는 겁니다.

10) “경쟁력과 글로벌 공급 연쇄(global supply chains)”에 대한 챕터가 추가됐습니다. 누적 원산지 제도에 의해서 원산지 여부를 결정합니다. 예컨대 네 나라의 부품을 한 나라가 조립해서 수출할 때, 어떤 나라 부품의 원산지 소재가 30%라면 이 부품은 관세 혜택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최종 조립품의 원산지를 계산할 때는 이 부품의 30%도 분자에 산입해서 계산하기 때문에 12개국의 최종 수출품 원산지 인정을 받는 비율은 훨씬 늘어날 겁니다. 12개국 내의 공급 망을 강화하겠다는 거죠. 하지만 이렇게 복합한 제도가 실제로 어떻게 운용될지는 의문입니다.

11) 투자와 관련해서는 한미 FTA의 투자자-국가 분쟁 처리(ISDS) 조항이 그대로 들어갔습니다. 미-오스트레일리아 FTA에서 의약품 쪽의 희생을 무릅쓰고 이 챕터를 제외했던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결국 굴복한 거죠. 결국 ISDS의 근본적 문제인 1) 독립적 재판부의 부재 2) 판례의 불인정 3) 항소의 불가능성 4) 비밀주의 등등은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또 하나의 쟁점이었던 자본 유출에 대한 국가의 규제 범위에 관해서는 단기적인 자본 통제를 인정했습니다. IMF가 앞으로 어떤 정도의 자본 통제까지 인정할지가 관건입니다.

13) 환율 문제에 관한 부속 서한(side letter)도 공개됐습니다. 각국 재무부 장관이 별도로 환율에 관한 정보의 공개를 규정한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구체적인 제재 조항은 없지만 각국의 거시정책도 무역 협정의 영향을 받게 된 겁니다.

14) TPP는 “살아있는 협정(Living Agreement)”입니다. 앞으로 추가 멤버가 들어갈 수도 있고 모든 나라의 합의 아래 개정도 할 수 있다는 거죠. 현재 협정문의 문구로 볼 때 일단 6개국 이상이 발효를 한 후에, 그 나라들의 전원 합의 아래 새로운 멤버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에게는 2년 후에나 닥칠 문제이고 각국이 요구하는 사안들을 받아들여야 하겠죠. 즉 한미 FTA 때처럼 4대 선결 요건이 아니라 48대 선결 요건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미래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 언론의 반응은 의외로 차분했습니다. 정부도 TPP에 들어가지 못해서 우리가 입게 될 손해를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일본이 자국 농산물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의 자동차 시장 개방을 맞바꿨기 때문입니다. 현재 2.5%인 미국의 자동차 수입 관세가 25년에 걸쳐서 단계적으로 낮아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반면 우리 기업들은 내년부터 바로 관세율 0의 혜택을 봅니다.

경제적 손해가 막심하기 때문에 TPP에 빨리 가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터무니없습니다만 장기적인 한국의 외교 안보 전략에 관한 논의는 지금 시작해도 이미 늦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제 보기에 길은 하나입니다. 중국과 미국의 패권을 모두 두려워하는 러시아, 남북한, 일본, 아세안, 인도를 연결해서 반패권 연합 세력을 형성하는 겁니다. 이들 나라가 중심이 돼서 중국과 미국도 다자간 경제 공동체, 안보 체제에 동등하게 참여하도록 하는 거죠. 전후 제3세계에 대해서 미국과 소련이 그랬듯이 두 대국도 이 중간 국가들의 호의를 얻으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겠죠.

앞으로 RCEP이나 FTAAP(Free Trade Area of the Asia-Pacific, 아시아-태평양 자유무역지대)가 미국식 FTA, TPP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상대국의 시장 공략보다 참가 국민 모두의 이익이 되는 협력 프로그램 위주로 플랫폼을 바꿔야 한다고 중국을 설득해야 하는 거죠.

박근혜 정부나 새누리당에 이런 기대를 하는 건,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잡으려는 격이겠죠. 그럼 새정치민주연합에는 이런 기대를 할 수 있을까요? 눈앞이 캄캄한 건 그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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