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행복한 사회의 꿈
라운드테이블
강수돌 고려대 교수(경영학)
강현수 충남연구원 원장
■ 왜, 지금 ‘행복’인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복지 수준 꼴찌, 아동의 삶 만족도·출산율·수면시간 최하위, 노동시간·자살률·노인빈곤 최상위….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 2만8천달러인 한국사회의 모습이다. 분출하는 사회경제적 문제들은 기존의 국내총생산(GDP)과 소득 중심의 경제지표만으로는 더 이상 ‘행복’수준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우리는 왜 지금 행복을 말하고 있는가를 둘러싸고 이날 참가자들은 “우리 국민 다수가 개인적이든 사회적으로든 불행하거나, 적어도 ‘행복하다’고 느낄수 없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토론자로 나선 홍기빈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연구위원장은 “한국 자본주의에 고유한 역설”을 보여주는 통계지표부터 제시했다. 그는 “1990년 이래 한국 사회의 1인당 소득과 자살률 지표가 동시에 꾸준히 위로 상승하는데, 놀랍게도 거의 평행선으로 일치한다”고 말했다. 다른 오디시디 회원국들에서는 두 지표가 서로 반비례하거나 상관성이 없는데 유독 한국에서만 둘 간의 상관관계가 0.96(상관성이 완전한 경우 1)에 이를 정도라는 것이다. 홍 위원장은 “아무리 1인당 소득 지표가 불완전하다해도 경제 ‘후생’을 나타내는 개념인데, 자살률과 상관성이 이렇게 높은 것을 보면 한국의 경제성장을 ‘자살 친화적 성장’이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다”고 표현했다.
또 다른 토론자로 나선 한준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풍요 사회에 들어서면서 불만이 마구 쏟아지는 ‘풍요의 역설’이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압축성장 과정에서 오직 소득만 추구하고 그 이외에 다른 소중한 것들은 버리고 미뤄뒀는데, 지금 돌아보면 아쉽고 한탄스럽다는 걸 한국인들이 뒤늦게 재발견하고 있다”고 한국 사회경제의 특수성을 지적했다. 특히 지나치게 경쟁하고 남들과 비교하는 한국인의 성향이 ‘나는 불행하다’는 느낌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개인의 주관적 행복수준이 낮은 배경엔 경쟁 집착, 지나친 상대평가가 자리잡고 있다는 얘기다. 이날 심포지엄에 참석한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인류역사에서 행복은 산 너머 무지개처럼 계속해 저 멀리 향해 가는 진행형”이라며 “한국의 압축적 근대화· 산업화 과정은 경쟁과 돈벌이에 도움이 안되는 건 다 잘라버리고 땅에 내던져버린 삶의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자살률 1위 지표 등이 그 역설적인 증거라는 것이다.
■ 소득 늘어도 행복감 안 올라 이날 참석자들은 한국 자본주의가 지난 반세기 동안 ‘좋은 삶’과는 반대의 방향으로 진행돼 왔다며, 물질적 부의 총량적 증가가 사회 전체의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더 이상 강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성장과 소득 때문에 교육과 존중·배려·여가 등 인생에서 가치 있고 자기발전을 이룰 기회들을 포기하고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발표자로 나선 유정식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한국을 경제발전과 민주화 등 ‘기적을 이룬 나라’라고 하지만 사실 그 기적의 동력은 ‘기쁨(행복)을 잃은 것’에 있었다”고 말했다. 피곤하고 고단한 ‘경쟁의 두 얼굴’을 지목한 셈이다. 유 교수는 이어 이른바 ‘적응과 열망의 사이클’을 강조했다. “우리는 소득과 지위를 남들과 사회적으로 비교하는 성향이 강하다. 그러면 지금 자신의 목표가 달성되고 행복하더라도 여기에 쉽게 적응하고서, 또 다시 더 많은 것을 열망하게 되면서 불행에 빠지게 된다. 마치 ‘쥐들의 경주’ 같이 모두에게 허망한 결과를 낳기 십상이다.” 결국 경제적 상황이 좋아진다고해서 행복수준이 올라가기란 어렵다. 토론자로 참여한 이영문 공주국립병원장도 타인들과의 과도한 비교를 불행의 근거 중 하나로 꼽았다. 그는 “행복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이지만, 동시에 행복은 남들과 자신을 상대 비교하는데서 느끼는 지극히 사회적인 것”이라며 “어쩌면 한국인들은 작은 것에 행복을 잘 못 느끼는, 행복체감에 훈련돼 있지 않은 상태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강수돌 고려대 교수(경영학)는 삶의 의미와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원천으로서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질적 풍요는 1950년대에 견줘 지금 300배가량 부자가 됐지만 분배 격차가 심각하고 사람들 간의 관계, 사람과 자연의 관계가 망가졌다.” ‘관계의 붕괴’가 행복하지 않은 삶을 초래하고 있다는 얘기다.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는 “외형적으로 보면 이 정도면 열심히 일하고 잘사는 나라라고 만족할 만한 터인데도, 교실에서든 직장에서든 1등도 사장까지도 모두가 불안하고 초조하고 피로하며 행복하지 않아 보인다”며 “우리 안의 소소한 행복들을 고양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지나친 행복 강박증도 피해야 한다”며, 그 어떤 못마땅한 성취를 하더라도 가족·친구·동료가 서로 “괜찮아”라고 말해주면 우리 사회가 좀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 정교한 행복측정이 관건 행복에 대한 관심의 증가는 궁극적으로 ‘행복정책’으로 이어져야 의미가 커진다. 그럼 각종 행복지표조사 결과를 어떻게 구체적인 여러 행복증진 정책개발에 활용하고 연결할 수 있을까? 이날 고승희 충남연구원 행복연구부장은 “행복의 개선 혹은 악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대한 정교한 분석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이를 토대로 행복 관련 정책의 공공성과 우선순위가 결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행복도 측정지표를 정책 목표의 설정과 예산 등 자원의 책정·투입, 정책성과 평가과정에서 활용하도록 하는 제도적 방안을 마련해야만 행복에 대한 관심이 사회변화의 메커니즘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토론자로 나선 변미리 서울연구원 미래연구센터장은 “지역·성·연령·직업·소득수준별 요인들이 행복에 다층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상호작용하는 행복의 동태적 과정을 포착해야만 이런 자료 축적을 바탕으로 행복 관련 공공정책의 연결고리와 목표를 설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지역 행복도 조사 결과 강남 3구와 평균소득 수준이 낮은 금천·강북구는, 행복도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변수들을 통제(일정하다고 가정)하더라도 행복에 미치는 영향 요인들의 순위가 다르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전국적으로 지역단위에서 주민들이 요구하는 행복의 우선순위가 뭔지 정확히 측정돼야만 효과적으로 정책적 개입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그는 “서울시민의 행복지수 결정요인을 분석해보면 물질적 요소가 우세하지만 소속감이나 사회적 신뢰 등 주관적이고 인지적 요인도 중요한 것으로 나타난다”며, 사회의 질을 높이기 위한 다차원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개인과 사회의 행복의 질과 수준이 사회경제적 상황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행복정책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 중앙·지방정부가 할 일은? 지난 몇 년간 ‘행복국가’로 불리는 부탄을 연구해온 박진도 전 충남연구원장은 이날 “사회가 불행한데 거기에 속한 개인은 행복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행복은 집단적 측면이 강하다”며 “행복은 개인에 맡길 것이 아니라 국가의 정책적 개입이 요청된다”고 말했다. 그는 “성장이 멈추는 시대에 접어들면서 우리 사회의 갈등과 대립도 커지고 있다. 행복 구성요소는 소득뿐 아니라 건강·교육·자연생태·사회적 유대 등 매우 다차원적이란 점에서도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강수돌 교수는 중앙정부는 더 이상 경제성장과 소득증대에 집착하는 양적 팽창의 강박증을 버리고 사람들의 내면의 평온과 만족에 초점을 두는 쪽으로 사회적 자원을 재분배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안희정 지사 역시 “행복은 공정한 기회 보장 등 좋은 제도와 정치·행정도 필요하지만 그 특성상 제도만으로는 부족하다”며 “문화·종교·예술 등 정신적 영역에서 행복을 늘리기 위해 사람들 간의 사회적 유대와 연대를 강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종수 충남연구원 센터장은 “행복은 전염되는 것”이라고 흥미로운 말을 꺼냈다. 행복한 사람들이 자기 주변에 있으면 자신도 행복해지기 마련이고, 따라서 지방정부가 사람들 간의 연대와 관계를 맺는 공동체 활동을 확장하는 정책을 펴면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 사회 전체 행복 총량 늘려야 개념 정의부터 쉽지 않아 자칫 추상적이고 모호하기 쉬운 행복‘담론’을 행복‘정책’으로 끌고 가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홍기빈 위원장은 “우선 추구해야 할 좋은 삶과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공동체 안에서 합의가 필요하고, 이를 기초로 각자 자신의 재능과 욕구를 발전시키는 이른바 ‘피어나는 삶’을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를 위한 물질적 수단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준 교수도 “그동안 우리 모두 선택과 집중의 요구 속에 같은 목표를 향해 선착순으로 뛰어간 데서 탈피해, 각자 다양하게 뛰고 싶은 쪽으로 가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사회 제도와 정책의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슬기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불평등 심화와 저성장 체제로의 사회경제적 변화를 고려할 때 기존의 소득·부 증가에서 행복 중심으로 국가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타인들과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얻게 되는 행복감은 본질적으로 지속될 수 없고 쳇바퀴 도는 격이 될 뿐”이라며 “이와 달리 남을 돕거나 자아를 실현하는, 즉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을 통해 사회 전체 행복 총량을 늘리는 쪽으로 정책이 조준돼야 한다”고 말했다. 변미리 센터장은 “저성장체제에서 이제 ‘행복한 삶’을 놓고 정부, 시민사회, 전문가들이 정책 연계를 위한 상호 소통하는 공론의 장을 펼쳐가야 한다”며, 이런 소통을 위해 행복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지표 개발을 하고, 나아가 정기적으로 국가·도시행복보고서와 행복영향평가에 나서자고 말했다. 고승희 부장은 “행복감은 삶을 둘러싼 모든 것에 영향을 받는 것이므로 몇 해 이상 다년간 행복지표 측정치가 축적돼야만 여러 요인들이 상호간에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는지 그 인과관계를 규명할 수 있다”며 조사자료들이 축적돼야 정책으로 정확하게 연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조계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동향분석센터장
양은영 선임연구원 kye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