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객관적으로 보면 대한민국이 위기에 선방하고 있다. 대내외 여건을 다 짚어봐도 (IMF 사태와 같은 위기는) 전혀 아니다.”
2. “사전에 구조조정하지 않으면 전체적으로 큰 위기에 빠지게 되고 대량실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3. “제2의 IMF가 터지고 의장이 손을 흔들어봐야 소용없다.”
4. “(내년 정년 연장으로) 청년 고용 절벽이 예정돼 있고, 미국 금리 인상으로 우리 경제가 어려워지는 것은 또 어떻게 할 것이냐.”
5. “직권 상정은 법에 따라 할 수밖에 없는데 지금의 상황은 국가비상사태로 볼 수 없다. 초법적 발상을 행하면 나라에 혼란을 가져온다.”
이 다섯 개의 인용문은 정치적으로 한 지붕을 이고 사는 사람들 입에서 나왔다. 경제에 대한 인식으로 보자면 1번과 5번이 같은 편이고, 2·3·4번이 또 하나의 무리인 듯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5번을 뺀 나머지가 같은 편이다.
1번 발언은 12월10일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출입기자단과의 송년 간담회에서 했다. 총선을 앞두고 1년6개월여의 임기를 마치면서 자신의 실적에 대한 자화자찬 끝에 나온 얘기다. 그 짧은 기간에 가계부채를 170조원이나 부풀게 만든 경제부처 수장이 한 얘기로는 한가하기 그지없다. 2번은 12월14일 박근혜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한 얘기다. 대통령은 그저 알리바이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3번은 이날 오후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친박 돌격대장 격인 조원진 원내 수석부대표가 한 발언이다. 경제부총리가 부정한 “제2의 IMF”까지 입에 올렸다. 4번은 다음 날 아침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이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한 말이다. 노동개혁 법안, 경제활성화 법안, 테러방지법을 의장 직권으로 상정하고 선거법을 처리해야 한다고 순서까지 ‘지시’했다. 이들 법안만 통과시키면 만사가 해결될 것이라는 투다. 5번은 12월16일 정의화 국회의장이 기자간담회를 자청해서 한 얘기다. 한마디로, 법대로 하는데 왜 청와대가 나서서 불법행위를 하는지 경고한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청와대 수석이 국회의장에게 압력을 가하는 건, 삼권분립이 교과서에 있는 말에 불과했던 유신시대에나 일어날 법한 일이다.
과연 박 대통령은 아버지를 닮았다. 단 한마디에 의원들과 청와대 정무수석이 우르르 국회의장에게 몰려가니 말이다. 그럼 과연 ‘노동개혁 법안’이나 ‘경제활성화 법안’을 통과시키면 우리 경제가 살아날까? 아니다. 내가 보기에 정의화 국회의장이 홀로 한국 경제를 지키고 있다.
그동안 여러 번 강조한 대로 우리 경제는 지금 매우 나쁘다. 최 부총리나 박 대통령의 인식대로 단순히 수출만 줄어들고 있는 게 아니라 소비는 가계부채 때문에 더 이상 증가하기 어렵고, 중국의 경기침체로 인해서 설비투자도 늘어날 수 없다. 즉 내수도 계속 위축되는 중이다.
노동 5법안 통과되면 경제는 마이너스로 급전직하
여기에 박 대통령의 주장대로 뼈를 깎는 “선제적 구조조정”까지 하면 어떻게 될까? 삼성이나 두산인프라코어에서 보듯이 이미 인원 삭감이 일어나고 있는데, 여기에 ‘일반해고의 자유’(경영상의 긴박한 이유 없이도 해고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하면, 바로 대량해고 사태가 벌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실업이 급증하면 당연히 기존 노동자의 임금도 줄어든다. 즉 이른바 노동 5법안들이 통과되면 1%대 성장이라도 거둘 경제가 마이너스로 급전직하할 것이다. 만일 가계부채가 폭발하면 패닉 수준의 경제위기를 맞을 가능성도 있다. 말하자면 정 의장이 그런 사태를 막고 있는 셈이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내수를 살리는 것이다. 이미 실기했다. 박근혜 정부 초기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노동자의 임금 몫을 늘려서 성장률을 높여야 했다. 우리 경제는 임금 몫이 늘어나면 경제성장률이 올라가는 ‘소득 주도 경제’이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해야 할 일은 ‘내수 확대형 사회적 대타협’이다. 이미 위기에 빠진 대기업은 해고보다는 임금 인하와 생산성 향상을 통해 구조조정을 하더라도, 나머지 중소기업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을 최대로 올려서 전체적으로 내수가 늘어나야 한다. 그래야 매출이 늘어나고 투자도 기지개를 켜지 않겠는가?
‘21세기 유신’은 결국 경제위기로 이어질 것이다. 못 박아두건대, 내년에 경제위기를 맞는다면 그건 전적으로 가계부채를 부풀린 최경환 부총리와 대량해고 사태를 일으킨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이다. 무지를 바탕으로 대통령 한마디에 이리 뛰고 저리 뛴 새누리당 국회의원들도 책임을 면할 길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