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잔 속의 태풍, 그러나 빙산의 일각
2016년 일주일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세계 경제가 뒤숭숭합니다. 4일과 7일 연이어서 중국 증시 거래가 완전히 중단됐습니다.
작년(2015년) 8월 증시 대폭락에 놀란 중국 정부가 주식 시장의 과도한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올해부터 도입한 서킷브레이커가 개장 첫날(4일), 그리고 넷째 날(7일) 발동됐습니다. 4일에는 오후 1시 34분(현지 시각)에, 그리고 7일엔 개장 30분도 안 된 9시 59분에 시장을 닫아야 했죠. (중국의 서킷 브레이커 제도는 선물지수에 기초 자산이 되는 CSI300지수가 5% 상승하거나 하락했을 경우 발동됩니다.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면 모든 주식과 선물의 거래가 15분간 중단되고, 이후 재개된 후에도 지수가 상하 7%까지 변동할 경우 시장을 닫습니다.)
4일 상하이 종합지수는 6.85% 떨어졌고 7일에는 그 짧은 시간에 7.32%나 폭락했습니다. 가히 패닉 상태입니다. 중국에 직접 영향을 받는 아시아 증시는 물론, 뉴욕, 런던, 프랑크푸르트, 파리의 증시도 출렁거렸죠.
하지만 지난 10여 년 동안 줄기차게 중국의 경착륙을 주장했던 일부 언론을 제외하곤 한국 언론도 그다지 호들갑을 떨지 않았습니다. 중국 증시 폭락의 원인이 그리 뚜렷하지 않았으니까요.
4일의 폭락에 직접 영향을 미친 사안은 중국의 제조업 구매자 관리지수가 예상보다 약간 적게 나왔다는 건데, 이 지수는 10개월째 하락 중이었습니다. 7일의 경우엔 중국 중앙은행(인민은행)이 8일 연속 위안화를 절하한 것이 도화선입니다. 중국의 환율 제도는 준고정 환율제인데, 인민은행의 이 행동은 앞으로 위안화 가치가 더 떨어질 거라는 예고가 될 수 있으니까요.
작년 8월 주가 폭락을 막기 위해 중국 정부가 대기업의 주식 매매를 제한한 조치가 8일에 종료될 예정이라는 사실도 폭락에 일조했을 겁니다(중국 정부가 주식 매매를 제한하는 새 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에 이 요인은 소멸됐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실물 경제가 금년에 6%대 초반까지 떨어지리라는 건 누구나 예측할 수 있었고 미국의 금리가 인상된 상황에서 위안화가 절하되리라는 것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중국의 주가가 계속 올라간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죠.
결국 새해 벽두의 소란은 일단 중국 주식 시장의 특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즉 거래 금액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개인 투자자가 단기 수익을 노려 주가를 부풀려 올리다가 한 두 가지의 소재를 계기로 일제히 빠져 나갔고, 위안화의 절하는 일부 외국 자금의 유출을 불러왔을 겁니다.
물론 중국의 지방 정부와 공기업의 부채, 부동산 거품, 과잉 투자로 인한 재고 급증 등 구조적인 문제가 이런 소란의 배후에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번 말씀드린 대로 은행이든, 공기업이든 중국공산당이 좌지우지 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재의 상황이 금융 위기로 이어지지는 않을 겁니다.
80년대 말의 “3저 호황”은 왜 재현되지 않는 걸까?
오히려 문제는 중국의 이런 소란으로 전 세계 증시가 2%에서 4% 동반 하락했다는 데 있습니다. 예컨대 많은 이들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관계 악화를 이번 소란의 원인 중 하나로 꼽았다는 사실은, 지금 세계가 얼마나 서로 긴밀해졌는지, 그리고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지금 세계 경제의 3대 악재로 불리는 중국의 경기 둔화, 원자재 가격 하락, 그리고 미국의 금리 인상은 서로 얽혀 있는 현상입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세계 경제는 중국의 확대 정책과 이에 따른 원자재 수출국의 경기 상승에 의해 유지돼 왔지만 이제 바로 그 신흥 경제권이 세 번째의 경기 하락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점진주의에 따르겠다고 천명했습니다만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계속 금리를 인상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이미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고 있는 원자재 수출 국가들, 그리고 대외 채무가 많은 여타 신흥국(남아프리카공화국, 태국(타이), 터키 등)들에서 외국자본이 일제히 빠져 나가면 1997년의 동아시아 외환 위기가 재현될 수 있겠죠. 더구나 미국의 회복은 그다지 미덥지 못하고, 유럽과 일본은 여전히 침체의 수렁 속에서 양적 완화라는 튜브에 매달려 있습니다.
1980년대 후반과 똑같은 3저(저금리, 저유가, 낮은 원화 가치)인데 지금은 왜 한국 경제가 경기 침체에 빠져들고 있을까요? 바로 세계 환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당시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국은 미국과 유럽이었습니다만, 지금은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 그리고 원자재 수출국의 비중이 훨씬 큽니다.
또 1980년대 후반에 원화 가치가 낮다는 건 곧 엔고를 의미했습니다. 원화가 달러에 연동되어 있는 상태에서 1886년 플라자 합의는 엔화 가치를 급속하게 끌어 올렸습니다. 선진국 시장에서 일본과 경쟁하던 한국 기업은 톡톡히 재미를 봤습니다. 실로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한국의 자동차 산업, 그리고 반도체 산업이 그렇게 빨리 일본을 쫓아가지는 못 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일본이 가장 적극적으로 양적 완화를 통해 엔화 가치를 낮추는 데 목숨을 걸고 있습니다.
지금 사상 최저의 금리가 투자에 불을 붙이지 못 하는 이유는 내수마저 위축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까지는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래 노동조합이 속속 결성되면서 실질 임금이 빠르게 상승했습니다. 즉 당시엔 수출과 내수가 동시에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1년 가까이 수출이 감소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저금리가 남아도는 돈을 부동산과 증시로 몰아가서 거품만 부추길 수 있습니다. 정부가 부동산 경기 부양에 목을 매단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불을 보듯 뻔하겠죠. 박근혜 정부 내내 일어난 현상입니다.
이번 중국의 증시 폭락이 보여주듯 세계 경제가 극히 취약한 상태에서 대대적인 구조 조정, 즉 대량 해고와 임금 삭감까지 하면 한국 경제는 어떻게 될까요? 불행하게도 한국의 ‘4대 연구원장’이라는 분들이 그런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관련 기사 : 한국 경제 生死 기로…규제 풀고 과감히 구조 조정을)
매년 1%가량 부풀린 엉터리 경제 전망을 내 놓으면서(금년엔 3% 정도), 외국에 가선 “한국경제 생사 기로…규제 풀고 과감히 구조 조정을” 하라는 이들이 과연 경제를 알기나 하는 걸까요? 그 대통령에 그 원장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