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대통령의 신년 담화(13일)에 이어, 1월 14일, 18일, 20일 세 번에 걸쳐 ‘2016년 대통령 업무 보고’가 있었습니다.
전체 제목은 “내수-수출 균형을 통한 경제 활성화 방안”(기획재정부 등 경제 부처), “창조 경제, 문화 융성 양날개로 우리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겠습니다”(미래창조부 등 6개 부처), “일자리, 늘리겠습니다, 국민 행복, 더하겠습니다”(교육부 등 사회 부처)입니다. (☞바로 가기 : 2016 부처 업무 보고)
먼저 대통령의 신년 담화 및 기자 회견부터 볼까요? 보통 새해의 메시지라면 희망부터 시작해야겠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이중의 위기’로 시작했습니다. “안보와 경제는 국가를 지탱하는 두 축인데 지금 우리는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위기를 맞는 비상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겁니다. 안보는 4차 북핵 실험 때문에, 경제는 국회 때문에 위기를 맞았다는 거지요.
“신뢰 프로세스”를 통해 안보를 튼튼히 했다는 자화자찬, 국제기구에서 경제 정책이 1위로 평가받았다는 자랑이 무색합니다(다시 말씀드립니다만 국제기구에서는 그런 평가를 하지 않습니다. 상식적으로도 말이 되지 않죠). 대통령과 정부는 안보와 경제 모두 잘 하고 있는데 그 파트너인 북한과 국회 때문에 위기를 맞았다는 거지요.
그런데 여기 또 하나의 파트너가 등장합니다. 안보 위기를 해결하려면 중국이 “어렵고 힘들 때 손을 잡아주는 (…) 최상의 파트너”로서 북한에 압박을 가해야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중국이 앞장 서야 한다는 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일갈했듯이 “전 세계 모든 국가가 박대통령에게 봉사한다고 생각해야 나올 수 있는 발언”입니다. (☞관련 기사 : “박근혜 위안부 합의, MB도 이렇게는 안 했다”)
미국이 중국 포위 전략의 첫 걸음으로 한일 위안부 협상 타결을 종용했다는 건 상식입니다. 그렇게 해 놓고 중국이 나서서 북한에 압박을 가해야 한다니, 이 얼마나 기막힌 생각일까요? 국회가 “경제 활성화 2법”, “노동 개혁 5법”을 통과시켜서 ‘선제적 구조 조정’을 하게 되면 우리 경제가 정말 위기에 빠지게 될 거라는 얘긴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교수들은 박 대통령의 대한민국을 ‘혼용무도’라는 말로 요약했지만 여기에 ‘적반하장’도 추가해야 합니다. 정치권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시도조차 못해 놓고 이제 와서 무효화를 주장하고 정치적 공격의 빌미로 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회 역시 정치적 이유로 ‘7법’을 가로막고 있으니 국민들이 나서서 “국회의 기능을 바로잡는 일부터”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죠. 대통령은 재계가 주도하는 국민 서명에도 앞장섰습니다. 가히 미국의 꼭두각시, 재벌의 꼭두각시입니다.
건설이라는 마지막 동아줄
1월 14일 경제 부처의 대통령 업무 보고는 “수출 총력 지원” “내수 회복세 유지” “주거 안정 강화와 민간 투자 활성화”, “가계, 기업 부채 등 리스크를 철저하게 관리”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금년 수출이 2.1% 증가할 거라고 전망했습니다. 작년 수출이 –7.5%로 전망되는데 갑자기 플러스로 전환한다는 게 얼마나 근거가 없는지는 지난 번 편지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기획재정부의 “수출 총력 지원”은 “한중 FTA의 적극적 활용”, “신시장 개척과 무역 금융 지원”, 그리고 내수 기업의 수출 기업화 세제 지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FTA가 수출을 획기적으로 증가시킬 것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한-EU FTA와 한미 FTA가 발효된 지 각각 5년, 3년 지났지만 이들 지역의 수출은 오히려 감소했죠. 이 두 FTA가 동시에 발효되면 장기적으로(약 10년 동안) GDP가 7.75%나 증가할 거라는 대외경제연구원(KIEP)의 예측을 지금도 믿고 있는 걸까요?
한편 “내수 회복세 유지”는 재정 지출 확대, 코리아 그랜드 세일 등 소비 여건 개선, 규제 개혁에 의한 민간 투자 활성화, 대내외 위험 요인의 선제적 관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정부는 1분기에 작년 대비 8조 원을 더 많이 집행할 예정입니다. 또 공공 기관 투자 및 연기금 대체 투자로 16조 원을 추가로 지출할 예정입니다.
과거에 정부는 경기 회복을 위해서 상반기에 집중적으로 재정을 지출했습니다만 금년엔 한 발자국 더 나아가서 1분기에 집중시키겠다는 겁니다. 그만큼 내수가 급격하게 위축되는 걸 두려워하는 거죠.
두 번째로 민간 소비를 늘리기 위해서 정부는 2월에 또 한 번, ‘코리아 그랜드 세일’을 하고 대규모 할인 행사를 정례화하는 한편(11월), 외국인 관광객을 더 유치하겠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조삼모사의 정책입니다. 내구재의 소비세 인하 같은 정책은 단지 미래의 소비를 앞당길 뿐입니다. 그 뒤에 오는 ‘소비 절벽’을 막기 위해 계속 미래 소비를 끌어 오는 정책이 언제까지 가능할까요?
실제의 문제는 지난번에 보여 드렸듯이 가계 부채 증가율(10.4%)이 소득 증가율(4.3%)의 두 배를 훨씬 넘어섰다는 데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소비를 늘린다면 그건 제 정신이 아니겠죠.
언제나 그렇듯이 정부의 투자 정책은 규제 완화입니다. 대통령은 신년 담화에서 서비스 산업 규제 완화의 효과가 얼마나 큰지 강조하고 또 강조했죠(FTA의 경제적 효과가 그렇듯, 정부가 발표하는 투자의 경제적 효과도 믿을 만한 수치가 못 됩니다). 듣는 사람이 안타까운 마음이 들 정도였죠.
하지만 의료, 전기 등의 규제 완화는 곧 민영화를 의미합니다. 잠깐 인수 합병 등 재벌들의 투자가 증가할지 모르지만 의료비 인상, 전기료 인상, 나아가서 세월호와 같은 사고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결국 수출과 민간 소비, 어느 쪽에서도 경제의 활로를 찾기는 어려울 겁니다. 정부는 또 다시 건설 투자에 매달렸습니다. 수서발 KTX 개통, 서울-세종고속도로 연내 착공, 인천공항 3단계 확충으로 토목 건설을 증가시키고(정부는 SOC 예산을 10% 늘렸습니다), 민간 임대 사업(뉴스테이)을 본격적으로 추진해서 주택 건설도 늘리겠다는 거죠.
이번에는 도심 내 상업 시설의 재건축, 토지 임대형/협동 조합형 뉴스테이도 새롭게 도입됐습니다. 서울 등 지방자치체에서 도입한 사회적 경제형 임대 주택 정책까지 망라한 겁니다. 불행하게도 이 정부가 주도하면 수익형 임대 주택으로 바뀔 게 뻔합니다.
가계 부채 대책으로는 우선 “빚은 갚을 수 있는 만큼 빌리고, 처음부터 나누어 갚는 원칙”을 여신가이드라인으로 삼겠다고 합니다. “빚내서 집 사고, 빚내서 전세금 올려주라”고 할 때가 바로 엊그제인데 이젠 가계 부채로 인한 위기가 겁나는 거겠죠.
하지만 가계 부채 대책에도 부동산 경기 정책은 숨어 있습니다. 이른바 “내 집 연금 3종 세트”(주택 담보 대출의 주택 연금 전환, 보금 자리론과 연계된 주택 연금, 저소득층 우대 주택연금)라는 신상품이 바로 그렇습니다. 한 마디로 부채를 연금으로 대체하는 겁니다.
사실상 주택을 은행에 미리 팔고, 앞으로 받을 이자에서 월세를 뺀 금액을 연금으로 받으면 된다는 거죠(제가 집값의 폭락을 막기 위해 국민연금으로 집을 사들이고, 원하는 경우 국민연금 수익률에 해당하는 월세를 내고 그 집에 계속 살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한 적이 있는데, 내용상 동일합니다). 빚을 갚기 위해 주택을 한꺼번에 내다 팔아서 집값이 폭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정책이기도 합니다.
더 획기적인 정책은 전세금 투자풀 제도입니다.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면서 받은 전세 보증금을 모아서 “수익성 있는 임대형 주택 등에 운용하고 그 수익으로 월세를 충당하는 상품을 개발”하겠다는 겁니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가히 천재적입니다.
결국 정부의 경제 정책은 또 한 번 건설 경기에 올인했습니다. 국민의 실질 소득을 늘리는 정책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6쪽의 ‘가계 소득 증대 세제 보완’이 유일한데 내용은 없습니다). 생태 투자 등 미래의 인프라에 대한 투자도 오직 서비스 산업 규제 완화와 관련해서만 제시되어 있을 뿐입니다. 복지도 증가시켜서 소비를 늘려야 합니다만 대통령은 오히려 자신의 대선 공약인 보육료(누리 과정 예산)마저 못 주겠다고 선언했죠.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의 위기 대책인 “상시 선제적 구조 조정”을 하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대통령은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건 곧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미국의 전략이요, 재벌의 단기 이익일 뿐입니다. 꼭두각시 대통령은 이제 국민까지 나서라고 얘기합니다. 바로 파시즘이죠. 바로 그런 광기가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