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청년들이 말하는 ‘수저계급론’을 보면서 불평등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토마 피케티(프랑스 파리경제대학 교수)가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역설한 ‘세습자본주의’를 언급했다.
경북대 이정우 교수는 “금·흙수저 여부가 노력을 이길 수 없는 상황이 온 이유”를 묻자 즉답 대신 한국의 ‘피케티계수’가 7을 넘는다는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피케티계수는 한 나라의 순자산을 그 나라의 국민소득으로 나눈 값이다. 이 교수는 “피케티는 자산, 자본, 부를 동의어로 쓴다”면서 “한 나라의 자본이 국민소득보다 크다는 것(즉 피케티계수가 높다는 것)은 돈이 돈을 낳아 불평등이 계속되는 메커니즘이 작용되기 쉽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피케티는 이 계수가 20세기 초 2~4에서 5~6으로 높아졌다고 경고한다.
이 교수는 건국대 주상영 교수의 연구를 소개하면서 “한국의 경우 피케티계수가 7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력주의 시대가 가고 금권주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피케티의 예측이 가장 잘 들어맞는 나라가 한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승일 사회민주주의센터 대표도 ‘수저론’에서 피케티의 세습자본주의 코드를 읽어냈다. 정 대표는 “수저론에 내포된 세습 개념은 전근대적 현상이 아니라 굉장히 자본주의적 현상”이라면서 “토마 피케티가 1980년대 이후 선진국의 자본주의가 현재 ‘세습자본주의’로 가고 있음을 증명해냈듯, 계급의 세습은 시장의 공정한 룰이 작동하느냐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속성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한국의 경우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를 급격히 받아들였고 모든 정권이 자본주의에 대한 제어를 제대로 시도하지도 못했다”고 지적했다.
<88만원 세대> 저자인 박권일씨는 “청년들의 수저론은 ‘21세기 자본’의 대중적 판본”이라고 압축해 설명한다.
정태인 칼 폴라니 연구소장 역시 “상위 1~10% 출신과 그렇지 못한 이들의 ‘신분’이 바뀔 가능성이 없다는 게 금수저·흙수저론이자 피케티의 세습자본주의”라면서 “수저계급론은 계층 이동성이 90년대 중반부터 확 떨어진 한국 사회에 대한 자각이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