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운동의 대부’ 호세 마리아 신부 국내에 소개한 송경용 성공회 신부
“사회 현실과 영성의 결합, 쉽지 않은 일…결국 사람 중시해야 가능”
스페인에는 ‘몬드라곤 협동조합’이라는 거대한 사회적경제 단체가 있다. 1941년부터 시작된 이 협동조합은 현재 5개 대륙 41개국에서 150개 이상의 사업 그룹을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금융, 유통, 지식 등 다양한 산업분야를 아우르며 지속가능한 노동자협동조합의 대명사로 우뚝 선 이곳을 처음 일군 이는 바로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신부다. 1941년, 내전의 후유증으로 신음하는 빈곤지역이던 몬드라곤에 당시 25살의 나이로 부임한 호세 마리아 신부는 이후 36년 간 남은 생애 전부를 이곳에 쏟아부었고, 자조와 자립, 협동이라는 이름 아래 그 결실은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협동조합운동의 아버지’ 호세 마리아 신부의 생각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책이 국내에서도 출간돼 눈길을 끈다. ‘호세 마리아 신부의 생각(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지음,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HBM협동조합경영연구소 펴냄)’이라는 제목의 이 책은 지난해 사회적경제 연구 단체로 출범한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가 처음으로 펴낸 책이기도 하다. 호세 마리아 신부에 대한 소개를 적극 추천한 이는 바로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운영위원장으로도 활동 중인 송경용 성공회 신부다. 서울 녹번동에 위치한 사회적경제네트워크 사무실에서 송경용 신부를 만나 호세 마리아 신부와 그의 생각이 한국 사회적경제에 던져주는 시사점에 대해 물었다.
먼저 본인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할까 한다. 사제이면서도 직함이 참 많다. 빈민 자활 운동을 비롯해 국내 사회적 약자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곳에 몸 담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유지 중인 직함은 어떤 것들인가.
현재는 사회적경제네트워크 이사장,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운영위원장, 나눔과미래 이사장, 국제사회적경제협의체(GSEF)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곳 사회적경제네트워크에 대해 소개해 달라.
‘사회적경제’라고 하면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자활기업, 마을기업, 사회적금융 등을 총칭하는 개념인데 ‘사회적경제네트워크’는 이런 것들이 다 모이는 일종의 협의체다. 단체마다 명칭이 다르고 운영 방식도 약간씩 다르지만 사회적 가치라는 같은 가치를 지향하는 조직들인 만큼 서로 모여서 협력하고 같이 일해보자는 취지로 만들었다.
송경용 성공회 신부. 사진/사회적경제네트워크
사회적경제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부터 빈민 자립, 자활을 돕는 활동을 오랫동안 해왔다. 본래 해오던 일이 최근 들어 사회적경제라는 용어와 만나면서 점차 확장되고 발전되는 중인 것 같다.
빈곤한 사람, 즉 빈민이 생겨나는 이유는 굉장히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경제적 불평등이다. 사회적경제라고 하는 것은 이 경제적 불평등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시장경제 제1의 원리는 경쟁이다. 이 경쟁을 통해 시장이 형성된다. 주류경제학에서는 흔히 시장이 자기조정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대기업이라든지 힘 있는 사람이 결국 시장을 장악하게 돼 있다. 그래서 불평등이 점점 심해진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빈곤이라는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이 덫에서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산동네에서 빈민들하고 오랫동안 살다보니 그런 생각이 든 거다. 아무리 여러 가지로 노력을 해도 소위 경제적인 문제, 본질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빈곤의 덫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그러다보니 여러 가지 방법을 찾게 됐다.
막 찾다보니까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1990년대 초반부터 산동네에서 노동자협동조합을 비롯한 실험을 하기 시작했다. 봉제, 건설, 청소, 케이터링 등 산동네에서 주민들이 일용직 노동자로 접근하기 쉬운 일을 중심으로 해 우리 스스로 무한경쟁 대신 서로 협동하고, 연대하고, 자립할 수 있는 그런 어떤 경제조직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 하에서는 물질적 빈곤의 문제뿐만 아니라 경쟁이 사람을 소외시키는 문제도 있다. 사람이 상품으로써 팔려가는 종속적 변수가 아니라 주체적 존재로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다 특히 협동조합을 들여다보게 됐다. 해외 사례들을 보며 몇 년 동안 공부를 했다. 그러다가 스페인 몬드라곤 협동조합 사례, 일본의 여러 협동조합 사례 등을 보게 됐고 그게 그간 해왔던 일들과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고 있다.
현재 한국의 사회적경제 활동의 수준이나 단계가 어느 정도라고 보는지.
전체적으로 보면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물론 조직, 단체마다 수준차이는 있다. 한살림이나 아이쿱 같은 경우 수십만명의 조합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아이쿱의 경우 매출이 5000억이 넘고 한살림은 조합원 수로는 제일 많다. 또 두레협동조합이라든가 행복중심이라는 곳도 있고, 노동자협동조합으로서는 매출액이 550억쯤 되는 해피브릿지라는 곳도 있다. 이제 막 시작하는 곳들도 많은데 대부분 중소 규모로 출발한다.
사실 규모도 규모지만 사회적 경제, 사회적기업이라고 하는 건 그 단체가 지향하는 가치나 운영되는 방식이 사회에 얼마나 영향력이 있느냐를 봐야 한다. 물량적으로 보면 우리나라 전체 경제에서 사회적경제 기업이 차지하는 부분은 아직까지는 굉장히 작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느냐를 척도로 본다면 상당히 유의미하다고도 볼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장기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고 발전해 나갈 것인가, 인간의 삶은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가, 어떤 형태의 경제조직이 바람직한가’ 같은 측면에서 보면 시사점이 굉장히 크기 때문이다.
스페인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협동조합의 대표적인 잘된 사례로 꼽힌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와닿았는지.
산동네에서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현실이 반복되고 빈곤의 덫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1980년대 말부터 도대체 어떻게 자조, 자립할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당시 국가의 사회복지 수준이 형편 없었던 데다 우리 사회가 산업의 구조조정을 하던 때였다. 산동네 사람들은 주로 노동집약적인 산업에 종사했는데 그런 산업들이 경쟁력이 없다는 이유로 다 외국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고민하던 중 몬드라곤 자료를 보게됐는데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다. 말로는 듣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공부를 시작하면서 충격을 받은 것이다.
사실 그간 많은 사람들이 회의를 품어온 게 사실이다. ‘동업하지 말라, 여러 사람이 같이 사업을 하는 게 되겠느냐, 주인이 없는 회사는 안된다, 모두의 것은 아무의 것도 아니다’ 등의 시각이 팽배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 너무 익숙해져 있고, 그렇게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근데 한 가지 내가 믿었던 것이 있다. 바로 우리 산동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소위 공동체 의식이었다. 어려운 사람들일수록 서로 믿고 의지해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이 강했기 때문에 협동조합 운동을 한번 시도해보자 싶었다.
호세 마리아 신부. 사진/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호세 마리아 신부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달라.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소위 설계자다. 건축가이며 협동조합이라는 조직의 교육자이기도 하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이 분이 가지고 있던 영성, 영적 리더십이다. 빈곤이라는 객관적인 사회 현실을 앞에 두고 본인이 가지고 있는 영성으로 이걸 어떻게 극복해낼 것인가에 대해 고민한 분이다.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 세상에 대한 깊은 이해와 협동조합을 아주 잘 접목시킨 분이다. 정말 보기 드문 일이다.
사실 현실과 영적인 문제를 결합시켜서 구체적인 하나의 모델을 만들어낸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삶의 양식을 만들어낸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울 뿐만 아니라 더군다나 돈이 개입된 경제조직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전통적으로 돈과 영적인 문제는 분리해서 생각들을 하지 않나. 가까이 하면 안된다고들 생각하고 더군다나 사제가 기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다. 그런데 그걸 정말 조화롭게 만들어냈다는 점에 그 분의 탁월성이 있다.
핵심은 결국 사람이다. 호세 마리아 신부는 사람을 정말 잘 교육하고, 훈련하고, 전적으로 신뢰해 그걸 만들어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유한성을 간파하고 그걸 극복해낼 수 있도록 끊임없이 교육을 실시하며 조직하고 끌어왔다는 건 대단히 뛰어나다고 본다.
또 미래를 보는 통찰력도 높이 사고 싶다. 현실에 대한 진단과 대안은 그렇다고 쳐도 미래에 이게 어떻게 굴러갈 것인가, 또 무엇이 필요한가를 생각해냈던 걸 보면 참 뛰어난 사람이었구나 싶다. 인간에 대해, 현실과 경제조직에 대해, 또 협동조합에 대해 정말 깊이 이해했던 분이었다. 15살 먹은 청년 5명을 데리고 망치를 두드려가며 난로부터 만들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이들에게 또 ‘너희는 이제 경영자가 되어야 한다’면서 계속 교육을 시킨다. 이들이 경영학 공부를 다 마치고 와서 일을 하고 있을 때 또 어느날 갑자기 ‘은행을 만들라’며 은행가로서 교육을 시켰다. 이게 결국 협동조합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다 필요한 것들이다. 지나고 나니까 우리는 ‘아, 그런가보다’라고 하지만 초기단계에서 이걸 간파하고, 조직하고, 사람을 키워낼 수 있었다는 건 대단한 혜안 덕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조직원들이 호세 마리아 신부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없었다면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을텐데 전적인 신뢰를 받았다는 점도 주목된다. 공식적인 직함을 갖지 않았지만 그 어려운 과제들을 그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수행할 수 있도록 능력을 기르고 영감을 주고 방향을 제시할 수 있었다는 게 정말 탁월하게 보여진다.
책 ‘호세 마리아 신부의 생각’에서도 보면 사람들을 봉사나 헌신의 현장으로 무조건 내모는 게 아니라 우선 그 사람 자체를 경쟁력 있는 인간으로 설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각 사람의 능력을 기를 뿐만 아니라 서로 협동과 연대를 통해 서로 보완하면서 일을 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는 게 그 분의 탁월성이라고 본다. 결국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책에도 나오지만 ‘협동조합 운동은 결국은 사람에 관한 운동’이라는 생각이 바탕이 됐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떻게 더 행복하게 자기 능력을 발휘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가 생각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가 일하다 보면 사실 사람이 아니라 일에 초점을 맞출 때가 많지 않나. 그러다보면 일에 치이게 되고 ‘내가 부속품이냐’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근데 이 분은 ‘협동조합은 결국은 사람에 대한 운동’이라는 그 명제를 끝까지 관철시켰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조직하고 훈련을 실시했다는 게 이 분이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 중 하나다.
호세 마리아 신부(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그의 누이 마리아(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 사진/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한국의 사회적경제가 발전하기 위해 몬드라곤 협동조합에서 실제 벌어졌던 일들에서 힌트를 얻을 만한 게 어떤 게 있을까. 발전을 위해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가 무엇이라고 보는지.
지금 말한 대로 ‘사람이 경제를 위해 있느냐, 아니면 경제가 사람을 위해 있느냐’, 이런 부분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늘 그렇지 않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그래서 희생해야 한다고들 한다. 근데 궁금하지 않나. 경제가 어느 집 자식인데 만날 살려야 하는 건지(웃음). ‘나도 좀 살아야 하는데 만날 남의 집 경제만 살려야 한다’고 우스갯소리들을 하지 않나. 늘 희생해야 한다고 하는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수십년 동안 그렇게 이야기한다. 사람보다 경제활동을 더 우선시하는 생각이라 볼 수 있다. ‘더 성장해야 한다, 더 많은 이득을 얻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러다보니 사람은 소외되고, 해고된다. 요즘 노동유연성이니 하는 것들이 결국은 사람보다는 경제에 좀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 거다.
호세 마리아 신부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사람을 더 중하게 여기고 사람의 행복에 중심을 맞춰도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다는 모델을 보여줬다. 수십년 전 바스크 지역은 지금의 우리보다 훨씬 어려운, 정말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동네였다. 그렇게 어려웠던 동네에서도 모델을 만들어내며 ‘또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세계 경제가 요동칠 때 스페인 대기업의 40%가 망해가고 있었는데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오히려 1만5000명을 신규 고용했다. 우리 상식으로는 믿기지 않는 일이다. 지금도 조금만 어렵다고 하면 기업에서는 1000조 가까운 유보금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을 자르려 한다. 근데 몬드라곤은 오히려 1만5000명 새로 고용한 것이다. 그때 몬드라곤 협동조합에서 했던 말이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데 우리는 괜찮다고 해서 이웃을 외면하는 것은 협동조합의 정신이 아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우리가 고통을 같이 나눠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노동시간을 줄이고, 자원해서 교육을 들어가고, 일자리를 나누면서 고용을 더 늘릴 수 있었다.
몬드라곤은 그렇게 해도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또 다른 세상이 가능하고, 사람을 중심에 놓고 하는 기업활동이 얼마든지 가능하고, 그렇게 할 때 우리가 더 행복해지고 더 성장할 수 있다라는 걸 실례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보고 배워야 할 점이다.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에서 앞으로 또 어떤 출판물이 나올 예정인지. 그밖에 어떤 사회적 활동을 계획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에서 지금 영국 노동운동사, 협동조합운동사 같은 것을 모아 책으로 발간하려는 작업을 하고 있고 경제학자 칼 폴라니의 사상에 관한 여러 저작물을 계속 시리즈로 출판하려 하고 있다. 또 정기적으로 칼 폴라니 강좌를 1년에 3~4회 정도 계속 할 예정이며, 대구나 부산, 광주 같은 지역에서 순회강좌도 계속 열 계획이다. 서울에서는 칼 폴라니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 경제와 연관이 있는 경제사상이나 철학 등에 대한 스터디를 열어나갈 계획이다. 전문가들을 위한 스터디 외에 일반인들, 사회적경제를 조직하는 사람들을 위한 다양한 형태의 공부와 연구를 계속 해 나갈 계획이다.
김나볏 기자 freenb@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