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알파고’ 시대, 언제까지 ‘줄빠따 경제’인가?

 

[백년포럼] “왜 4차가 아닌 3차 산업 혁명인가”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알파고’와 프로 기사 이세돌 9단의 대국이 연일 화제다. 기보(棋譜, 바둑 둔 기록)만 놓고 보면, 알파고는 똑똑한 인간쯤으로 보인다. 창의적이고 전략적이며, 가끔 실수도 한다.

어쩌면 ‘혁명’이다. 실제로 최근 다보스 포럼에선 ‘4차 산업 혁명’이라는 주제를 다뤘다. ‘1차 산업혁명’은 증기기관을 이용한 기계화였다. ‘2차 산업혁명’은 내연기관 및 전기를 활용한 대량 생산이다. ‘3차 산업혁명’은 정보기술을 이용한 자동화다. ‘4차 산업혁명’은 이제 시작 단계인데, 인공지능(AI)의 발전이 가져온 변화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은, 어쩌면 ‘4차 산업혁명’ 시작을 알리는 상징일 수 있다.

다보스 포럼에 참가한 경제 지도자들은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일자리 파괴를 주로 걱정했다. 남성 일자리 한 개가 새로 생기는 대신 세 개가 사라진다. 여성 일자리는 다섯 개를 없애서 한 개를 만든다. 일자리가 이렇게 줄어들면, 소비자도 함께 사라진다. 돈을 벌어야 쓸 게 아닌가. ‘대량 생산 대량 소비’라는 20세기의 성장 방정식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근본적인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는 건 그래서다. 하지만 다보스 포럼 등에서 이야기 된 건 ‘일자리 걱정’ 수준을 넘어서지 않았다. 일자리가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역시 보다 큰 틀에서 다뤄져야 한다.

“여전히 우리를 지배하는 건 ‘2차 산업 혁명’이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이런 이야기를 제대로 풀어내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달 25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열린 제5회 백년포럼이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이 발제를 했다. 그런데 제목이 흥미롭다. “왜 4차가 아닌 3차 산업혁명인가”이다.

왜 그런가. 홍 소장이 보기엔, 아직 3차 산업혁명도 제대로 시작하지 않았다. 1차 및 2차 산업혁명은 그저 기술 패러다임 변화에 그치지 않았다. 사회 자체를 근본적으로 뜯어 고쳤다. 대략 지난 세기 중반에 시작된 정보기술(IT) 혁신이 가져온 사회 변화의 폭은 과거 산업혁명에 크게 못 미친다. 홍 소장은 “현재의 국면은 네 번째가 아닌 세 번째의 산업 혁명이 사회적 형식과 제도의 변화를 초래하기 시작한 시점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의 사회 경제적 제도의 틀은 2차 산업 혁명을 통해 전면화 된 자본 시장, 투자 은행, 대규모 주식회사 등에 압도적으로 지배당하고 있는 현실로서, 100년 전 미국의 노상강도 귀족들(robber barons)의 시대에서 아직 크게 바뀐 것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같은 도전에 대한 다른 대응…”파시즘이냐, 사회민주주의냐”

물론 진짜 중요한 건, 지금 우리가 겪는 변화가 3차인지 4차인지 하는 숫자 놀음이 아니다. 현실을 똑바로 인식하는 것이고, 변화의 방향을 제대로 찾는 것이다.

예컨대 1880년대에 미국과 독일에서 시작된 2차 산업 혁명은 사회를 완전히 뜯어 고쳤다. 이 과정에서 혹독한 진통이 있었다. 전쟁과 혁명, 학살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졌다.

재앙과 비극만 있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똑같은 변화가 낳은 도전 앞에서 다양한 대응이 있었다. 파시즘으로 흐른 사회가 있는가하면,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로 대응한 곳도 있었다. 새로운 도전을 마주한 지금 역시 마찬가지다. 변화는 재앙일 수도, 기회일 수도 있다. 그걸 정하는 건 우리의 선택이다. 이 대목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

현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지식인 사회에서 ‘거대 담론’은 금기가 됐다. 언제까지 그래야 할까. 기계가 머리 쓰는 일로 사람과 겨루는 시대, 거대한 변화의 도입부에 서 있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전보다 크게 떠야 한다. 총체적인 인식이 필수다. 세상의 변화를 보다 큰 틀로 바라보는 건, 백년포럼 참가자들의 바람이자 숙제다. 홍 소장의 발표 내용을 간추렸다.
“어제의 공산당원은 왜 오늘 파시스트가 됐나”

홍 소장이 이야기한 첫 키워드는 ‘파시즘’이었다. 파시즘이 득세하던 시기는 공산주의가 호응을 얻던 때와 겹친다. 공산주의와 파시즘은 이념적으로 완전히 상극이다. 그런데 당시 역사를 보면, 파시스트 정당 지지자와 공산당 지지자가 겹치는 일이 흔했다. 파시스트 정당의 정책과 공산당 정책 역시 놀라울 만큼 닮았다. 그래서인지 당적을 교환하는 일도 잦았다. 어제는 공산당원이었는데, 오늘은 파시스트가 되는 식이다. 이걸 어떻게 봐야 하나.

홍 소장은 역사학자 찰스 마이어의 설명에서 답을 찾았다. 찰스 마이어는 파시즘의 유래를 20세기 초의 산업 합리화 운동에서 찾았다. 파시즘과 공산주의, 사회민주주의가 한 뿌리에서 나왔고, 그게 산업 합리화 운동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2차 산업혁명 이후 급격히 성장한 중화학 공업에 사회가 적응하게끔 하는 운동이었다.

새로운 산업혁명 역시 사회를 거기에 맞추게끔 하려는 운동을 낳을 수 있다. 이런 운동이 아직 나오지 않았으므로 ‘4차’가 아닌 ‘3차 산업 혁명’ 도입부라는 설명이다. 정보화 혁명에 어울리는 형태로 사회를 새로 조직하려는 움직임은 아직 없다는 것.

정보화에 어울리는 산업 합리화 운동, 언제쯤?

그렇다면, 이런 움직임은 언제 나올까. 점쟁이가 아니므로,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다. 다만 막연한 추론은 가능하다. 홍 소장은 경제학자 슘페터의 설명을 기초로 전망했다. 슘페터에 따르면, 비즈니스의 큰 사이클은 보통 백년쯤 걸린다. 기술 변화가 진행되는 기간이 약 40~50년쯤 걸린다. 그리고 나면, 금융자본주의가 맹위를 떨친다. 그렇게 50년쯤 지나면, 기술이 일반화된다. 사회 전체가 거기에 맞춰 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이 온다.

정보화 혁명을 여기에 대입하면, 머지않아 새로운 유형의 산업 합리화 운동이 벌어질 수 있다. 이는 다시 사회를 새로 짜려는 여러 시도로 이어질 수 있다. 그게 다수 인류에게 꼭 좋은 방향일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다만 인류의 대응 방식에 따라 방향이 정해질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쓸모 있는 수단’인지를 정하는 건 공동체다

홍 소장이 이른바 기술 결정론을 옹호하는 건 아니다. 그는 기술과 사회가 한쪽을 다른 쪽을 일방적으로 규정한다는 식의 입장을 거부한다.

홍 소장의 태도는, 그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의 주장을 알아야 이해가 된다. 베블런은 ‘공동체’, ‘쓸모(serviceability)’, ‘수단과 방법(ways and means)’ 등의 키워드로 경제 활동을 설명한다. 우선 주목할 단어가 ‘공동체’다. 개인이 아니다. 기존 경제학은 늘 ‘개인’을 단위로 삼았다. 개인이 느끼는 효용, 개인이 치르는 비용을 측정해서 논의를 진행했다. 하지만 베블런은 ‘공동체’를 단위로 본다. 공동체가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이 바람직한지를 규정한다. 전자회로를 구성하는 필수 요소인 트랜지스터. 타임머신을 타고 그걸 19세기로 가져간다고 하자. 당시엔 트랜지스터가 ‘쓸모없는’ 물건이었다.

물론, 특이한 개인이 그걸 공깃돌로 쓸 수도 있다. 그러나 공동체 차원에선 ‘쓸모없다’고 규정한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문화와 삶의 방식에 기초한 규정이다. 단지 물질적 필요만 고려한 규정이 아니다. 당대의 가치관에 비춰 바람직한지도 따진다. 예컨대 19세기 사람들에겐 풀밭에 누워서 라디오를 듣고 싶다는 욕망 자체가 없었다. 그런 욕망이 있고, 라디오 제작에 대한 기술 지식이 있었다면, 트랜지스터의 쓸모도 달리 규정했을 게다.

이번에는 당시 공동체가 어떤 ‘쓸모’를 규정했다고 하자. 예컨대 마을에 우물이 있다면 대단한 쓸모가 있으리라는 판단이 공동체 차원에서 이뤄졌다. 그렇다면 공동체는 그걸 가능하게 하는 ‘수단과 방법(ways and means)’에 대한 기술적 지식도 축적한다.

‘공동체’, ‘쓸모(serviceability)’, ‘수단과 방법(ways and means)’ 등의 키워드를 입체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래야 경제 활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많은 학자들이 지금도 기술과 사회를 완전히 동떨어진 것으로 본다. 그렇다 보니, 기술과 사회 가운데 어느 쪽이 우위인지를 놓고 다투는 일도 생긴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게 홍 소장의 입장이다. 기술의 발전, 사회의 욕구는 서로가 서로를 규정하는 관계로 봐야 한다. 따라서 기술과 사회를 구별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짓이다. 둘은 한 덩어리로 진화한다.

1차 산업 혁명과 자유 방임 사회

홍 소장의 방식으로 새로운 산업 혁명을 이해하려면 알아야 할 게 또 있다. ‘사회, 국가, 산업’의 구분이다. 16세기를 지나면서 유럽에서 사회와 다른 원리로 작동하는 국가가 생겨났다. 사회와 국가는 다른 규범에 따라 움직인다. 종교가 사회와 국가를 완전히 지배하는, 신정국가 정도가 예외다.

18세기 1차 산업 혁명을 거치면서 새로운 영역이 생겨났다. 바로 산업이다. 그 전에는 사회의 작동에서 산업만 따로 떼어내는 게 불가능했다. 산업과 경제는 말 그대로 사회 속에 묻어 들어 있었다. 하지만 1차 산업 혁명을 거치면서 산업이 사회로부터 독립했다. 산업은 사회와 구별되는 논리를 따르는 영역이 됐다. 그 뒤로, 인간의 생산 활동은 크게 두 가지 논리로 조직됐다. 하나는 기계적 합리성이다. 일종의 공학 논리다. 나머지는 기계를 소유한 자본가들의 영리적 합리성이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후자를 ‘자본 회계 합리성’이라고 불렀다.

1차 산업 혁명은 증기기관의 발명과 면화 산업 성장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당시의 기술은,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공학 지식과 다르다. 현대의 공학은 자연과학과 긴밀하게 결합한다. 반면 당시의 기술은 전통 지식에 주로 의지했다. 요컨대 전통적인 기술적 과정에 증기기관 동력을 결합한 게 1차 산업 혁명이다. 1차 산업 혁명 막바지에 등장한 철도를 제외하면, 새로운 욕망은 등장하지 않았다. 먹고 입고 자는, 전통적인 욕구를 충족하는 것이 목표였다. 따라서 시장 규모 역시 인구와 지리 조건에 따라 기계적으로 정해진다고 봤다. 새로운 욕구를 만들어내고, 그에 따라 새 시장을 끊임없이 창조하는 20세기 상황과는 많이 다르다.
산업이라는 독자적인 영역이 생겼다는 점, 그러나 욕구 및 생산방법은 여전히 전통적인 수준이라는 점. 이 두 가지는 1차 산업 혁명 이후 유럽 사회를 규정한다. 전통적인 사회의 구조, 그 지배계급인 토지 귀족과 군사 귀족은 여전히 권력을 유지한다. 그들이 장악한 기초 위에서 자본가 역시 권력을 나눠 갖는다. 산업을 이끄는 자본가들의 ‘계산 합리성'(자본 회계 합리성)과 전통적인 사회 규범이 나란히 존재하면서 균형을 이뤘던 게 19세기 자유방임 사회였다.

당시 국가의 역할은 산업과 사회가 서로 분리돼 독자성을 유지하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이 두 영역의 분리와 공존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는 철저하게 헌정 정치 원칙을 지켜야 했다. 헌법에 의거하지 않은 정치 모델은, 유럽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과학과 기술의 결합, 사회는 총동원 체제가 됐다

하지만 19세기 후반에 시작된 2차 산업 혁명은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전기와 내연기관을 활용하려면 자연과학 지식이 필수적이었다. 과학과 기술은 한 덩어리가 됐다. 이는 ‘사회, 국가, 산업’의 결합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뜻이다.

과학과 결합한 기술은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이후 발전하게 된 중화학 공업에겐 필수적인 조건이었다. 이는 다시 인간이 새로운 욕구를 품게 했다. 2차 산업 혁명 이후인 20세기에 가장 성장한 산업 가운데 하나로 ‘광고’가 떠오른 건 우연이 아니다.

1차 산업 혁명 이후 산업과 사회가 철저히 분리돼 있었다면, 2차 산업 혁명 이후엔 산업, 사회, 국가가 새로운 원리로 결합해야 했다.

경제와 사회를 분리하던 19세기 모델은, 20세기 들어 완전히 소멸했다. 산업 기술의 요구에 따라 사회 전체가 언제든 동원될 태세가 돼야 했다. 말 그대로 ‘총동원’ 체제다. 1930년대 이후 급격히 확산된 흐름이었다. 산업과 사회는 서로 조응할 수 있는 형태로, 통일돼야 했다. 이는 가족, 노동조합 등 다양한 사회 조직은 산업 기술이 요구하는 논리와 공존할 수 있게끔 변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국가의 역할도 완전히 달라졌다. 산업과 사회가 섞이지 않도록 하던 19세기 국가와 달리, 20세기 국가는 산업과 사회의 결합을 주도해야 했다.

이 과정이 평화롭게 진행된 경우가 사회민주주의, 뉴딜 등이다. 폭력적으로 사회와 경제를 통일한 경우가 파시즘, 혹은 다른 권위주의 체계다.

유럽 사회민주주의 체제는 종종 가부장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사회와 산업이 서로 조응하도록 결합하는 과정에서, 기존 사회 조직과 문화를 되도록 인정하는 형태로 타협이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전통적인 가족 질서가 인정됐다.

정보화 혁명, 기존 사회관계의 우회로 열렸다…150만 원 월급쟁이의 지구화

3차 산업 혁명은 이 대목에서 변화를 낳을 수 있다. 흔히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라고 한다. 어차피 사회조직이 다 그렇다. 따지고 보면, 가족 역시 ‘상상의 공동체’다. 일종의 상징체계다.

2차 산업 혁명 이후의 국가는 사회에 존재하는 이런 다양한 상징체계를 인정해줬다. 가족, 종교 등을 두루 인정한 바탕 위에서 산업과 사회를 결합했다. 그런데 디지털 시스템이 등장하면서, 기존의 사회적 관계를 우회할 방법이 생겼다. 자본은 그 우회로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가족, 노동조합, 지역 공동체 등 기존 사회 조직을 거치지 않고서도 인적, 물적 자원의 동태, 그리고 소비 욕구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따라서 기존 사회적 관계까지 자본 회계 합리성에 따라 조직할 수 있게 됐다. 그게 3차 산업 혁명 도입부에서 일어난 변화다. 탈산업화, 지구화, 20세기 초에 횡행했던 금융자본주의의 부활 등이 그와 맞물려 있다.

그 결과, 150만 원짜리 월급쟁이가 지구화됐다. 선진국조차 마찬가지다. 한국 역시 150만 원짜리 월급쟁이가 늘어난다.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는 이들이 흔하다. 실제로 한국 노동자 소득 중위 값은 2300만 원대다. 한마디로 사람 가격이 떨어진 거다.

새로운 기술은 있지만, 새로운 욕망은 없다

하지만 여기엔 모순도 있다. 디지털 혁명을 통해 사회가 산업 영역으로 흡수됐다. 그래서 생산 능력이 비약적으로 개선됐다. 그런데 그 생산 능력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문제는 남아 있다.

개인 차원에서 물질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과제는 거의 해결됐다. 198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한 사치재 시장이 확인시켜준다. 지금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기업은 대개 새로운 욕구를 찾아낸 곳들이다. 페이스북이 이렇게 성장하리라고, 누가 생각했겠나. 대단한 기술이 있어서 성공한 게 아니다. 서로 연결하고 싶은 새로운 욕망을 찾아냈으므로 성공했다. 다만 그 욕망을 인정하는 근거는 오로지 금융자본주의 논리일 뿐이다. 새로운 기술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그걸 결정하는 권력이 투자자에게만 독점돼 있다.

디지털 시대의 사회는 효율적인 생산 활동의 요소로만 여겨질 뿐이다. 사회가 스스로 새로운 욕구와 가치를 창출하는 역할은 인정되지 않는다. 투자자가 보기에 필요 없는 기술은, 사회가 만날 수 없다. 그러나 혁신이 반드시 ‘자본 회계 합리성’과 맞물려야 한다는 법은 없다. 새로운 기술로 채울 수 있는 새로운 욕구, 사회가 자신의 가치에 따라 그걸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2차 산업 혁명을 거친 뒤, 많은 국가는 ‘전쟁’을 욕망했다. 그 욕망은 다시 기술 혁신을 자극했다. 3차 산업 혁명은 국가 혹은 사회가 무엇을 욕망하게 할 건가. 이 대목에서 병목 현상이 있다. 일종의 사회 혁신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게 풀리지 않으면, 기술 혁신에도 한계가 생긴다. 욕구와 수요가 있어야, 기술 혁신도 탄력을 받는다.

▲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프레시안(최형락)

국가의 역할, 근본적인 한계에 부딪혔다

사회가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자신을 재구성하는 것. 그게 사회 혁신이다. 2차 산업 혁명에선 사회를 재구성하는 게 국가의 몫이었다. 다만 방식에 따라 사회민주주의냐, 공산주의냐, 혹은 파시즘이냐 라는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정보화 혁명은 그에 걸맞은 새로운 모델이 나오지 않았다. 사회-산업-국가가 새롭게 결합하는 방식이 아직 없다는 뜻이다. 산업은 오로지 ‘자본 회계 합리성’이라는 논리에 의해서만 움직인다. 다른 기준은 없다. 국가는 새로운 목표를 찾기는커녕 ‘사회의 보호’라는 전통적인 기능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전전긍긍하고 있을 뿐이다. 이 과정에서 대의제 민주주의라는 기존의 사회 통합 및 운영 방식은 근본적인 회의에 부딪혔다.

이는 2차 산업 혁명과 달리, 3차 산업 혁명에선 국가의 능동적인 역할을 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으로 이어진다. 결국 사회가 스스로 혁신의 주체가 돼야 한다.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찾아내고 조직해야 한다. 사회-산업-국가가 관계 맺는 새로운 방식 역시 이걸 통해서 나올 것이다.

‘스티브 잡스 십만 양병설’이라는 코미디

이게 홍 소장이 정보화 혁명을 보는 관점이었다. 이렇게 보자면, 지금 한국 경제 수뇌부의 행태는 극히 한심하다. 홍 소장은 과거 한국 경제의 성장을 ‘공구리 자본주의’와 ‘줄빠따 경제’라는 키워드로 설명했다.

‘공구리 자본주의’란 인간을 비용으로만 보는 방식이다. 건물 지을 때 쓰는 시멘트와 인간이 별 차이가 없다. 노동의 양을 많이 투입하기만 하면 된다. 아이폰이 흥행하자 한 정부 관료가 ‘스티브 잡스 십만 양병설’을 거론했다. ‘공구리 자본주의’ 체제에서만 가능한 코미디다. 이런 사회에서 창의적인 발상은 ‘낭비’ 취급을 받는다. 당장 돈으로 계산되지 않으면, 모조리 쓸데없는 취급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기업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지배한다. 교수가 되는 데 필요 없는 논문을 읽도록 권유받는 대학원생은 짜증을 낸다. ‘낭비’를 권유받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간은 시멘트가 아니므로, 언젠가는 반발이 생긴다. 그걸 찍어 누르는 게 ‘줄빠따 경제’다. 한국 남성들은 만나면 5분 안에 서열을 정리한다. 누가 ‘줄빠따’를 때리는 사람인지를 정하는 게다.

‘공구리’, ‘줄빠따’, ‘해봤어?’…한국 경제의 ‘앙시앙 레짐’

3차 산업 혁명 도입부에선 이런 문화가 재앙이다. 이미 징후가 있다. 최근 위기에 빠진 해양 플랜트 산업이다. 무리한 수주가 원인인데, 이는 한국 대기업의 ‘해봤어’ 정신과 관계가 있다. 고객이나 투자자에겐 무조건 할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렇게 수주한 뒤에, 기업 안팎 전문가들이 실현 가능성을 따지면 ‘해봤어?’라고 되묻는다. 그리고는 ‘공구리’와 ‘줄빠따’ 방식으로 찍어 누른다. 이제는 이런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 해양 플랜트 산업의 위기가 그걸 확인시켜 줬다.

프랑스 혁명 당시 기존 체제를 ‘앙시앙 레짐’이라고 불렀다. 지금의 한국 경제가 바로 ‘앙시앙 레짐’이다. 그거부터 부숴야 한다.

이날 포럼은 홍 소장의 발제가 중심이었다. 새롭고 흥미로운 주제를 다룬 탓에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홍 소장의 발제가 몹시 함축적이고, 또 거시적이었던 탓도 있다.

토론거리가 끝없이 나온다. 예컨대 홍 소장은 정보화 혁명 이후엔 국가가 아닌 사회가 스스로 혁신의 주체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2차 산업 혁명 이후 중화학 공업이 팽창한 시기와는 다른 지점이다. 유럽, 일본 등 선진국뿐 아니라 한국, 중국 등 후발 성장 국가 역시 국가가 ‘중화학 공업화’를 주도했다. 박정희 정권은 1970년대 ‘중화학 공업화’를 내걸고 사회 총동원 체제를 건설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다르리라는 게 홍 소장의 예측이다. 국가의 역할은 한계가 분명하다. 이는 사회 진보를 바라는 이들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다. 정권 교체, 정권 장악이 지닌 의미가 축소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진보 진영 안에서 논쟁거리가 될 수 있다.

‘영포자’, ‘수포자’ 해결 위한 ‘사회 혁신’

또 다른 궁금증은, 사회가 스스로 욕구를 찾아내서 재조직한다는 말의 뜻이다. 홍 소장은 이런 이야기를 여러 번 했다. 그러나 국가와 자본이 주도하는 경제 체제에서 평생을 보낸 이들에겐 여전히 낯선 이야기다. 이런 질문에 대해 홍 소장은 흥미로운 예를 들었다.

“지금 한국의 교육은 ‘영포자(영어 포기자)’와 ‘수포자(수학 포기자)’를 조직적으로 양산하는 구조다. 중학교 1학년만 되면, 저소득층 아이들 태반이 ‘영포자’ 또는 ‘수포자’가 된다. 누가 봐도 심각한 문제다.

그런데 이걸 누가 해결할 수 있나. 지금 체제에서 돈을 버는 사교육 업체가 해결할 리는 없다. 국가 역시 방법이 없다. 이게 기술이 없어서 못 푸는 문제인가. 그건 아니다. 해결을 위한 인프라는 잘 갖춰져 있다. 사회가 스스로 나서서 풀어야 하는 문제의 좋은 사례라고 본다. 분명히 거대한 사회적 욕구가 있다. 그런데 ‘자본 회계 합리성’으로는 당장 승인받기 힘든 욕구다. 국가는 무능하다. 반면 사회가 스스로 조직한다면, 해법이 나온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한 다양한 소모임이 생길 수 있다. 꼭 기존의 사회관계에 의지할 필요도 없다. 이 문제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이들이 나서면 된다. 그러면 그와 맞물린 기술 혁신도 이뤄진다. 그게 바로 사회 혁신이다.”

 

원글은 프레시안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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