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더욱 부자가 되는 이유
정태인(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
북한산 정상에서 서울을 내려다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온갖 상념이 오가겠지만 집 없는 분들은 틀림없이 이런 생각을 하실 겁니다. “저렇게 건물이 많은데 도대체 난 뭘까?” 최근 김낙년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하위 50%, 그러니까 절반이 가진 자산은 전체의 1.7%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빈부격차가 생겨난 걸까요?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최상위 10% 소득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부터 살펴 보겠습니다. 여기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만 장기 통계를 만드는 일은 의외로 매우 복잡합니다. 정부의 통계 작성 방식이 변하기도 하고, 때로는 통계 자체가 없는 기간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아주 꼼꼼한 학자들이 오랜 시간을 들여야 그래도 믿을만한 그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글은 노동연구원의 홍민기박사의 논문입니다(홍민기, 2015, 최상위 소득비중의 장기추세(1958년~2013년), 경제발전연구, 제21권, 제4호).
먼저 답에 해당하는 그림부터 볼까요? 이 논문에서는 20세 이상의 인구를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2013년의 경우 해당 인구는 3790만명, 그러니까 최상위 10%는 379만명입니다. 물론 옛날에는 이보다 적은 숫자겠죠.
지난 1월호에 말씀드린 것처럼 과거에 우리 사회는 매우 평등했습니다. 1968년까지 최상위 10%의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를 넘지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이 비율은 점점 높아져서 2006년부터는 45%를 넘겼습니다.
시대 별로 보면 1968년부터 1979년까지 이 비율이 35%로 증가했고, 그 이후 1998년까지는 비슷한 비율을 유지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가 강연할 때마다 나이 지긋하신 분들께 “그래도 희망이 있던 시절이 언젠 거 같습니까?”하는 질문을 드리면 대체로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이라고 대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1961년에서 1979년까지 박정희시대에 상위 10%의 실질소득은 연평균 15.6%, 즉 20년동안 13.5배 증가했지만 하위 90%, 즉 우리 대다수의 실질소득은 연 평균 9.4%, 5.0배 증가했습니다. 즉 고도성장과 불평등이 동시에 진행됐던 시기입니다. 즉 부자 계층이 생겨났지만 동시에 국민 대다수도 20년 동안 소득이 다섯배 늘었으니까 참고 견딜만한 시기였죠.
이 시기는 급격한 산업화가 일어나고 농민들이 대거 도시로 이동하던 때입니다. 아마도 소득불평등은 제조업 분야와 농업 분야의 차이, 그리고 기업이 생겨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관리자나 기술자(사장과 부장급으로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의 소득이 매우 빠르게 증가했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됩니다. 많은 노인들이 이 시절을 “좋았던 시대”로 그건 주로 산업화, 도시화에서 비롯된 착시, 그리고 절대적 빈곤(배고픈 시절)에서 벗어난 기억 때문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반면 1980년대와 90년대에는 하위 90%의 실질소득이 약간 더 빨리 증가해서(연평균 8.2%, 상위 10%는 7.5%) 불평등이 미미하게나마 완화되었습니다. 즉 이 시기에는 박정희 시대에 못지 않게 대다수 사람들의 소득이 증가하면서 동시에 불평등은 심해지지 않았습니다. 전두환 정부 초기에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정도로 경제가 매우 나빴습니다. 홍민기박사는 지적하지 않았지만 불황 초기에는 부자들의 재산소득(주가나 건물임대료)도 줄어들 수 있기 때문에 소득불평등이 완화되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또 87년 부터는 “3저 호황(저금리, 저유가, 엔고)”을 맞아 수출이 빠르게 늘었고, 동시에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조합의 결성봇물을 이루면서 임금도 빠르게 올랐습니다. 내수와 수출이 동시에 증가했기에 불평등이 완화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성장과 분배가 모두 좋은 성적을 거둔 시기입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엔 성장률은 떨어지고 불평등도 1970년대 만큼 급격하게 심화됩니다. 이른바 “민주정부 10년” 동안 시장만능주의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입니다. 두 정부 동안 예산에서 사회지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획기적으로 늘어났지만 시장에서의 불평등을 메꾸기엔 역부족이었죠.
사상 최초로 대규모 해고를 경험한 사람들 사이에선 “어떻게든 살아 남자”는 의식이 팽배해졌고 노동자들 간의 연대는 매우 약해졌습니다. 노동조합 조직율은 떨어졌고 산업별 노조는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됐죠. 현재 한국 사회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인 비정규직의 비율이 대폭 증가한 것도 이 때인데 기존 노동조합들은 이들의 어려움을 외면했습니다. 홍민기 박사는 이 시기에 전문직의 소득이 크게 늘어났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대형병원, 로펌, 회계법인등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같은 “개인 사업”으로 분류 되지만 변호사와 영세 식당 주인의 소득 차이는 말 그대로 천양지차가 됐습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아름다운 문장은 교과서에나 나오는 말이 됐고, 아이들은 자기가 잘 하는 일이나 좋아하는 일이 아닌, 월급의 순위에 따라 직장을 결정하게 됐습니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게 된다면 성장률은 더 떨어질 겁니다.
이제 한국은 더 이상 평등한 나라가 아닙니다. 전쟁이 끝났을 때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평등했습니다만 1970년대와 80년대, 그리고 1997년 이후 세계에서 제일 빠른 속도로 최상위 10%가 차지하는 몫이 커졌습니다(<그림2>).
<그림2>를 보면 1950년말, 한국은 최상위 10%의 소득비중이 다른 어느 나라와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낮았습니다. 하지만 이후 가장 빠른 속로로 불평등해졌고, 우리의 선입견과 달리 1980년대 초에 이미 세계적 수준의 불평등에 이르렀습니다. 이후 한동안 주춤했다가 97년 이후에는 놀라운 속도로 불평등해져서 세계 최고 수준의 소득불평등을 보이고 있습니다..
홍민기 박사는 이런 통계에 기초해서 “노동소득 불평등이 소득 불평등의 핵심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장하성교수도 비슷한 얘기를 했죠. 현재의 통계로 재산소득이 비중이 다른 나라보다 적은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주택은 일반인의 재산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집 하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거기서 현금 소득을 얻지는 못 하죠(홍박사는 한은 통계에 있는 ‘귀속소득’이라는 항목을 국제비교라는 정당한 이유로 제외시켰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자기 집이 있는지, 없는지는 불평등의 중요한 척도입니다. 전월셋 값이 치솟는 상태에선 집 없는 하위 50%의 가구에서 최상위 가구로 소득이 이전되겠죠.
더구나 집은 곧잘 상속 재산(즉 할아버지의 재산)이 되고 손자 세대의 출발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또 하나 생각해야 할 점은 우리 사회의 베이비 붐(55-65년경)이 한국 전쟁으로 인해 다른 나라에 비해 8년 정도 늦게 시작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한국의 베이비 붐 세대는 지금 최고 수준의 노동소득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면 이들은 주로 재산소득으로 살아가게 될 겁니다. 이 때는 통계 상으로도 재산소득의 중요성, 즉 자산불평등의 중요성이 부각될 게 틀림없습니다. 출발선의 차이로 인해 손자 세대의 노동소득 격차가 더욱 벌어진다면 자산과 소득불평등이 상호작용하면서 우리 사회를 ‘헬 조선’으로 몰아가겠죠.
이렇듯 인구구조 변화가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은, 왜 지금 청년들이 절망하는가를 해명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청년 실업율이 전체 실업율의 세배가 넘었다는 통계가 왜 나오게 됐는지, 앞으로의 전망은 어떤지 다음 달에 같이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