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주식회사들이 월스트리트가 휘청거리면서 함께 위기에 처했을 때, 의외로 협동조합들은 성장세를 유지했다. 설사 상황이 어렵더라도 오히려 일자리를 늘리거나 혹은 일자리를 나누는 것으로 위기를 함께 극복해나갔다. 협동조합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한국에서도 협동조합의 성공은 가능한 것일까?
어느 날부터 협동조합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졌다. 협동조합법이 시행된 이후, 뜻이 맞는 5명 이상이 모이면 협동조합을 쉽게 만들 수도 있게 되었고 주변에서 협동조합을 한다는 사람도 꽤 보게 되었다. 문제는 (당연한 말이지만) 협동조합을 설립하는 것보다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 즉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저자는 “설립의 자유가 생겼다고 해서 협동조합의 시대가 완전히 열렸다고 얘기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당신의 쇼핑이 세상을 바꾼다>의 저자인 신성식 대표는 생활협동조합의 1세대이며 조합원 17만여명, 연매출 3450억원을 내는 icoop 생협 경영대표를 맡고 있다. 책은 신 대표가 직접 쌀가마니를 등에 지고 아파트 5층까지 공급을 했던 협동조합 초기의 이야기부터 협동조합이 무엇인지, 앞으로 협동조합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전하고픈 메시지까지를 담고 있다.
신 대표는 ‘협동조합의 주인은 조합원’임을 강조한다. 농협이든 신협이든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조합원’의 문제라는 것이다. 사업의 3대 요소는 자본, 사람, 기술이고 주식회사도 마찬가지인데, 협동조합이 주식회사와 다르려면 사람에 관한 문제를 고민했어야 하지만 이런 점에서 일반 기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한 협동조합 관계자는 “주인의식을 가지지 말고, 주인이 돼라”라고 말했다. 조합원이 의사 결정에 어떻게 참여하고, 어떤 활동을 하는지가 협동조합이 발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신 대표도 협동조합 설립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조합원의 참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깊이 궁리하기를 조언했다.
또한 아이쿱 생협이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용자 수가 아니라 주인의 숫자, 활동가의 숫자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활동가의 숫자는 전 세계 어딜 내놔도 최고 수치라고 한다.) 조합의 생존이나 발전 정도는 조합원들의 활동에서 결정되며 그래서 교육과 자발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요즘은 ‘자연드림’이라는 아이쿱 매장을 곳곳에서 볼 수 있는데 (우리 동네에도 있다) 지역조합이 매장사업을 할 때는 ‘왜 매장을 개설하는지 이유를 분명히 하라’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매장은 온라인 공급보다 비용이 더 들어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매장을 하려고 하는가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 대표는 매장을 만드는 첫 번째 목적은 생협운동이 대중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한다. 대중화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조합원이 확대되어야만 먹을거리의 안전성을 높일 수 있고, 가격을 낮출 수 있고, 지속가능한 생산이 가능해지기 때문. 분명한 목적과 목표 아래 매장을 개설해온 것이 매장 성공의 비결임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궁금했던 것은 협동조합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고용 관계와 노동 형태에 대한 이야기. 매장에서 일하는 베이커리, 정육기사 같은 기능인들이 보기에 협동조합은 무척 생소한 현장이다. 처음에 와서 일하면 지역조합 자체도 복잡한데 무슨 이사, 매니저, 본사 사람 등 여기는 도대체 어떻게 작동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많이 한다고. 이런 고용 관계 문제는 연합조직 차원에서 해결한다고 한다. 연합조직의 자회사에서 고용한 기능인들을 지역 조합 매장에 파견하는 형식이다. 베이커리나 정육 담당은 연합조직에서 관리하고, 지역조합에서는 매니저, 판매원들을 고용하는 형태다.
이쯤 되면 한번 더 묻고 싶다. 아이쿱 생협의 직원들에 대한 처우와 판매원들의 최저임금은 지켜지고 있는지? 당연히 시간 외 수당이나 야간근무수당 등 법적 기준은 다 지키고 있고 시급도 최저임금보다 15퍼센트 이상 높다. 일자리에 대한 아이쿱 생협의 고용정책은 첫째 고용의 안정성, 두번째가 노동소득의 안정성이라며 먼저 고용의 안정성에 주력했다고 한다. “비정규직은 없다, 정리해고도 없다” 이것이 아이쿱 생협의 일자리 원칙이다.
책에서는, 사람들은 매일 음식을 먹으면서도 식탁 위에 올라온 음식과 그 식재료가 누구의 손에서 자라고 어떤 과정을 거쳐 내 앞에 도달했는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질문한다.
소비자의 선택이 어떤 생산을 하게 하는지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치적 선택만큼이나 쇼핑은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신 대표는 정치권력은 4~5년마다 바뀌지만 WTO, FTA 같은 것 때문에 사는 건 더욱 힘들어진다며 사회를 좀더 따뜻하게 바꾸려면 결국 소비자들이 올바른 소비를 하고 행동에 나서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소비자가 어떤 물품을 소비할 때 자신의 이익만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까지 고려하는 윤리적인 소비를 해야만, 사람들의 일자리와 시민의 삶을 어렵지 않게 만든다는 말이다. 어떤 물품이나 식품을 소비하는가에 따라 지배적인 거대 식품기업을 강화할 수도, 자연친화적인 친환경 농업을 북돋을 수도 있다. 윤리적 소비가 윤리적 생산을 좌우하는 것이다. 즉 소비가 생산을 결정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쇼핑이 투표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협동조합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혹은 협동조합의 과거와 방향, 협동조합의 힘에 대해 궁금하다면, 이 책을 가볍게 읽어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