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을 위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해법 <교황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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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을 위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해법 <교황의 경제학>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 ‘복음의 기쁨’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소수의 소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동안, 대다수가 이 행복한 소수가 누리는 번영과는 더욱 거리가 멀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불균형은 시장의 절대 자율과 금융 투기를 옹호하는 이념의 산물입니다. 이 이념은 공동선을 지키는 역할을 맡은 국가의 통제권을 배척합니다.”- <복음의 기쁨> 56항”

이렇듯 교황은 사회적 불균형의 원인이 물신주의, 시장과 경제의 독재, 공동선을 지키지 못하는 국가에 있으며 ‘실패자’로 낙인 찍히는 개인들이야말로 그 희생자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종교 혹은 성직자들은 현실정치나 경제에 직접적인 언급이나 관심이 덜할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세계적 양극화와 경제 독재를 강하게 비판한 사람, 프란치스코 교황. 교황의 메시지를 담은 <교황의 경제학>은 2015년 9월 교황의 미국 방문을 염두에 두고 쓰였으며, 급속도로 인간을 소외시키는 현재의 경제 체제에 대한 경고이자 이런 세태에 대한 종교들의 충고와 대안을 담고 있다.

저자인 에두아르 테트로는 오늘날 우리 모두가 직면하고 있는 장벽을 무너뜨리는 데 교황이 기여했으면 하는 기대를 갖고 있다. 무분별하고 ‘미친 돈’이 압도하는 경제의 장벽의 발치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버틸 것만 같은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최적의 지점과 시기에 일격을 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는데, 그 지점이 ‘뉴욕’이라는 것이다. 유엔 본부가 있고 월가를 중심으로 형성된 세계 금융자본의 본거지, 뉴욕. 그리고 최적의 시기는 바로 교황이 미국을 방문하는 시기로 본 것이다.

미국인 신용 소비의 40%가 일자리, 주거, 가족을 잃어 삶이 망가진 최빈곤층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들에게 적용되는 이자율은 마이너스가 아니라 종종 15%를 웃도는 폭리 수준이다. 즉 피라미드의 상층에 마이너스 이자율의 돈이 넘쳐나지만 가난한 이들은 그 돈을 얻으려면 매우 큰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 바로 이자다. 따라서 유해한 대출 상품들이 새로운 세계 경제에 물을 대줄 것이며 2008년의 경우처럼 종종 ‘부패한’ 상품까지 모르는 척, 못 본 척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본문 41p)

‘낙수효과’라는 말이 있다. 대기업이나 고소득층 등의 경제적 성과가 늘어나면 연관 산업을 활용한 후발 낙후 효과, 즉 중소기업이나 저소득층 등에게도 혜택이 돌아가 총체적으로 경기가 활성화되는 효과가 있다는 뜻이다. (종이컵을 피라미드 형식으로 쌓아놓고 그 맨 위의 컵에 물을 부으면 그 컵에 물이 다 차면 밑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라는 이론에서 나온 것)

하지만 저자는 “낙수효과는 부를 쌓아놓고 감추기에 급급한 몸집 큰 경제 주체들의 실제 행위와 선동 때문에 가능하지 않게 되었으며 과도한 재정 합리화는 수십조 달러의 부를 최상층 부자들에게 집중시킨다”고 말한다. 즉, 2015년 세계 경제에서 낙수효과는 터무니없는 이야기이며 혹시라도 그렇게 떨어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바로 빚이라는 것이다. 낙수효과는 빚더미가 쌓이는 효과일 뿐이다.

또 저자는 21세기 세계의 신경제는 세계화, 디지털화, 금융화라는 세 가지 현상이 결합하여 ‘확장되는’ 경제인데, 이 경제를 지배하는 것은 금융과 신기술이라고 말한다. 이 힘은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부와 혁신을 창조하고 빈곤을 물리치는 데 기여했지만 지난 30년 동안은 오히려 극심한 빈부격차, 지구 생태계 파괴, 금융위기, 인간 소외를 불러오며 세상을 붕괴를 향해 내몰고 있다.

프라니스코 교황은 이렇게 표명한 바 있다. “그러한 경제는 사람을 죽일 뿐입니다. 나이든 노숙자가 길에서 얼어 죽은 것은 기사화되지 않으면서, 주가 지수가 조금만 내려가도 기사화되는 것이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라고.

기술과 돈이 지배하는 세상의 경제 문제에 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 존엄성의 원리’에 대해 숙고해야 한다. “사회교리의 모든 원리와 내용을 이루는 바탕”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주저하지 않고 그들을 만났고 그들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들을 심판하여 감옥에 가두거나 처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친구가 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재산을 다 써버리지 않고 모아둔 이들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자캐오는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아보고 싶은 마음에 ‘달려 나와’ 나무 위로 올라가기까지 했던 이다. 자캐오는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부자들에게는 바로 이런 행위를 권유하는 것이다. 지갑의 돈 뿐만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와 자기가 가진 가장 좋은 것을 내어주는 것 말이다. 부와 성공을 혼자서 즐기는 것보다 더 풍요로운 기쁨을 느낄 수 있다. (본문 117p)

또한 저자는 자신에게 의제설정권이 있다면 가장 우선 처리해야 할 최소한의 두 가지로 조세피난처를 이용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거부할 것과 아동 노동을 허용하는 국가 채권과 기업 주식에 투자하는 것을 거부할 것을 제안한다.

실속없는 토론이 아니라 확실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고 이를 추구하는 것을 전제로 할 때, 이 공동 전선이 담당해야 할 일은 오늘날 세계경제의 주요 행위자들과 함께 새로운 규범을 세우고 더 나은 실천을 하는 것이다. 그 행위자로서 가장 선두에 모습을 드러내야 할 이들이 세계적 대투자가들이다. 지금 말하고 있는 협정은 이를테면 ‘시민사회와 종교계의 G20’이라 할 수 있다. (본문 176p)

지금은 국경을 뛰어넘어 공동선을 추구할 수 있는 힘에 의지해야 한다. 바로 종교들이 함께 국제 금융의 커다란 힘에 보편적 양심을 채워 넣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본문 177p)

저자는 세계최상류층 사람들이 나눔과 증여의 경제라는 흐름에 적응하고 있고, 앞으로 자신의 많은 에너지와 역량을 쏟아 부을 것이라는 것을 ‘좋은 소식’으로 전한다. 좋은 소식은 또 있다. 우리 사회가 최상의 가치로 삼는 돈이 그 위세를 잃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교회의 사회 교리를 따르리라 생각되는, 약 12억 명 정도 되는 가톨릭 신도만이 이런 전복을 바라는 게 아니라는 점이 또 좋은 소식이며, 완전히 세계화된 경제와 사회에서 우리는 상호 의존을 의식하게 된다는 것도 좋은 소식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더욱 정의롭고 덜 폭력적인 인간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 각자는 얼마나 굳은 각오를 하는가? 약육강식이 아니라 나눔의 사회를 위해서. 소유가 아니라 행복을 우선시하는 사회를 위해서” 라는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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