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다시 한번 기회가 온다
경제 전체가 세월호처럼 서서히 침몰하고 있는데, 국가는 어디에도 없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나라에서 경제위기가 닥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낙관에 낙관을 더해도 앞으로 남은 내 삶은 지금까지 살아낸 시간의 반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언제 가장 절망했던가? 내 경우엔, 그리고 아마도 우리 세대에겐 1980년이다. 36년 전 이즈음, 나는 최근에 돌아가신 외삼촌 집에 ‘숨어’ 있었다. 광주에서 수천명이 죽고, 1만명의 체포 리스트가 있다는 소문이 나돌던 흉흉한 시절이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절망이다. 또다시 “국가가 무엇인가, 이런 국가가 왜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나왔다. 국가는 200명이 넘는 무고한 사람을 직접 죽이거나(광주), 죽음을 방조했다(세월호). 1980년의 사진은 몇 년이 지나서야 지하에서 퍼져 나갔지만, 이번엔 TV 화면으로 생중계됐다. 전자는 18년의 군사독재를 연장하려 했기 때문에, 후자는 20년에 걸친 규제 완화 때문에 발생했다. 교황 말씀대로 ‘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다.
세월호의 침몰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가습기 살균제다. 환경부, 산업부, 보건복지부는 단계마다 막을 수 있었지만 규제 완화의 기치 아래 오히려 방조했다. 현재 밝혀진 사망자 수 266명은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사용자가 몇백만명에 이르고, 더구나 주로 환자나 젖먹이, 노인을 대상으로 사용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죽음, ‘강남역 살인사건’은 다시 한번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내가 보기에 이 사건은 여성 억압이라는 고질에 현재의 사회경제 상황이 덧붙여져 일어났다. 현재의 상황이 극적으로 호전되지 않는다면 언제든 더 큰 규모로, 양상을 달리해서 재발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일제강점기만큼이나 오랜 시간, 지난 36년 동안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한 걸까? 1인당 총생산액으로 보면 1980년 1703달러(명목)에서 2015년 2만7213달러로 늘었으니 우리는 물질적으로 16배나 풍요로워졌다.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기적의 사례다.
하지만 행복, 나아가 희망도 그렇게 불어났을까? ‘헬조선’과 ‘흙수저’를 외치는 젊은이들과 36년 전의 나를 비교해보면 오히려 희망은 16분의 1로 줄어들었는지도 모른다. 당시엔 절망했지만 머지않아(길어도 10년 내에)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살아 있었다. 그리고 7년 뒤, 세상은 한번 뒤집어졌다.
앞으로 그럴 수 있을까? 대답은 극히 부정적이다. 중늙은이의 눈이라 비관적일까, 아니 객관적인 수치만 봐도 단기적으로는 훨씬 더 나빠질 것이다. 지난 8년간 그랬듯, 지금 하향 수정되고 있는 경제성장률(2.6~3.0%)은 결국 1% 중·후반대로 판명날 것이다. 조선과 해운 산업, 즉 세계 경기에 민감한 산업에서 시작된 구조조정이 바야흐로 내수산업까지 확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회에 분통 터뜨려 알리바이 만드는 대통령
불확실한 미래를 앞두고 대수술을 해야 하는 구조조정은 지극히 어렵다. 누구나 흔쾌하게 동의하는 답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고, 그러려면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2년째 밀실에서 수군대기만 하는 채권단에 맡겨놓을 일이 아니다. 결국 공적자금이 투입될 수밖에 없기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 엉뚱하게 ‘양적완화’라는 이름을 붙여 쓸데없는 논쟁을 할 게 아니라 얼마나, 어떻게 자금을 조성할 것인지 국회에서 결정해야 한다(어차피 먼저 재정을 투입하고, 이후에 국채를 발행해야 하며 어떤 방식을 택하든 법을 개정해야 한다).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피해를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 나아가 전체 경제로 확산될 실업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서 경제 회복으로 나아갈지가 구조조정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런 원칙의 전제는 각 산업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에 합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부가가치 선박으로 전문화한다거나 해양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해서 조선 산업의 새 단계를 열겠다는 식의 그림 말이다. 이를 위한 정부의 대대적 인프라 투자는 실업 극복과 경기 회복의 불쏘시개가 될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국회에 분통을 터뜨려서 알리바이 만드는 데 여념이 없던 대통령은 또다시 외유에 나섰다. 장두노미(머리는 숨겼으나 꼬리가 드러나 있다)와 혼용무도(나라 상황이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다)만큼 이 정부를 잘 설명하는 말이 또 있을까? 다행히 우리는 절망 속에서 언제나 일어섰다. 지난 4월의 총선은 예고되어 있던 박 대통령의 파시즘을 막았다. 2017년, 다시 한번 나라를 뒤집을 수 있는 기회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