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주로 일자리의 미래와 관련되어 있는 듯하다. 향후 몇 년간 얼마나 많은 직업이 없어질지에 대해 두려운 숫자와 전망이 줄이어 나오고 있다. 그러면 반대편에서는 이를 비판하면서 낙관론을 편다. 기술의 진보는 항상 없어지는 것만큼 혹은 그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해 왔으니 쓸데없는 걱정 말고 생겨나는 일자리가 무엇인지에 착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쨌건 당장 나와 내 자식의 앞길이 걱정되는 사람들은 또 ‘교육, 이대로 안된다’ 등의 이야기판에 휩쓸려 다니며 ‘창의성만이 살길’이라는 별로 창의적이지 못한 이야기에 또다시 주눅이 든다.
다 귀 기울여 들을 이야기이겠지만, 내가 이 세 가지 모두에 불편함을 느끼는 부분이 있다. 기술과 산업의 변화만을 염두에 두고 인간 사회의 조직 전체가 어떻게 변해갈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우선 없어질 직업 생겨날 직업이라는 양적인 방법으로 접근하다 보면, 기존의 직업들이 그 업무와 보상의 성격이 어떻게 변해갈 것인가라는 질적 차원의 변화가 무시된다. 새로운 직업의 창출이라는 것도 그렇게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떤 개인이나 세력이 적극적인 사회 변화와 혁신을 이룰 것인가에 전적으로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 이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개인적으로 마련한 뗏목 하나로 헤쳐갈 수 있다는 생각도 황당하다. 요컨대, 이 거대한 산업혁명의 변화 앞에서 인간과 사회가 어디로 변해가고 있으며 또 변해가야 하는지라는, 총체적인 사회 혁신에 대한 이야기가 빠져 있는 것이다.
오로지 맨손으로 삶을 꾸려가던 농촌의 부부가 있었다. 편의상 둘의 노동 분업을 단순하게 가정해보자. 아내는 집에서 빨래 설거지 바느질 등 온갖 집안일을 맡으며, 남편은 논일 밭일 등 힘쓰는 일을 맡기로 하여, 이러한 각자의 역할로 서로를 의지하며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그런데 갑자기 이 집에 온갖 기계가 들어왔다고 하자. 세탁기 미싱 진공청소기 등은 물론 트랙터를 위시한 각종 장비도 들어와, 아내도 남편도 이제는 ‘기계에 대체될’ 상황이 벌어졌다고 하자. 이 부부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이제 저놈의 영감탱이 여편네 필요 없게 되었네라고 하면서 서로를 쫓아낼 궁리를 하게 될까? 아니면 집안일 바깥일은 모두 기계에 맡기고, 그 단순무식한 노동 분업의 논리에 가려져 있었던 남편과 아내의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새로운 신혼의 오디세이가 시작될까? 시간이 남아돌게 되자 혹시 아내는 춤바람에, 남편은 골프 바람에 휩쓸려 가정이 해체되지는 않을까?
모두 다 가능성일 뿐이다.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기계의 공격 앞에서 지금 부부가 해야 하는 일은, 그야말로 부부관계의 ‘사회 혁신’이다. 서로가 지금까지 해왔던 역할에 큰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명확히 인정하고, 이제부터 서로가 서로에 대해 갖는 존재 이유를, 그리고 그렇게 해서 맺어지는 두 사람의 관계를 새롭게 규정하고 그에 근거하여 새로운 생활 방식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아내가 밥해 주는 사람이 아니고 남편이 돈 벌어 오는 사람이 아니라면 두 사람은 왜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일까. 이 황당한 질문에 정해진 답이 있을 리 없다. 두 사람이 뜻을 같이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방향에 따라 완전히 다른 답이 나오게 되어 있다. 그에 따라 부부의 미래도 결정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출범한 이후 반세기 넘도록 이 질문을 회피해 왔다. 우리가 왜 함께 모여사는가에 대해 기껏 나오는 대답은 ‘경제 성장’과 ‘재산 증식’이었다. 서로를 일 시켜먹는 머슴으로 보며 살아온 부부처럼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를 하나의 ‘경제 공동체’로만 생각해 왔으며, 사회의 크고 작은 공식적 비공식적 제도들은 기능적 존재로서 변질되어 버렸고, 교육 제도도 복지 제도도 심지어 가족이나 종교까지도 경제 성장과 재산 증식이라는 오로지 하나의 목표에 종속되어 버렸다. 이제 로봇과 인공지능과 자율주행차와 네트워크 혁명이 몰려오고 있다. 우리들의 인연도 이제 끝날 때가 된 게 아닐까.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오로지 다른 이들을 더욱 싼 값에 일 시켜먹고 편하게 내팽개칠 수 있는 도구로만 쓰고 있지 않은가. 인간이 대체 가능한 노동에서 풀려나 진정 서로에게 소중하고 필요한 새 역할을 찾도록 사회 전체를 바꾸어 가야 한다. 기술 혁신이 있으면, 사회 혁신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