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편지]프랑스 교수가 말하는 한국 사회적경제의 역사와 과제

프랑스 교수가 말하는 한국 사회적경제의 역사와 과제

칼 폴라니 연구소 월례강연 ‘프랑스 시각에서 본 한국의 사회적경제’

8월 7일, 청년허브 다목적홀에서는 칼 폴라니 연구소 월례강연이 개최됐다.

‘한국의 사회적경제를 한국인 전문가보다 더 많이 아는 프랑스 학자.’ 르망 대학 에릭 비데 교수를 두고 하는 수식어다. 지난 8월 9일 청년허브 다목적홀에서 칼 폴라니 연구소 월례강연을 맡게 된 에릭 비데 교수를 두고 정태인 소장도 똑같은 소개말을 했다.

“에릭 비데 교수는 한국의 사회적경제를 주제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논문을 쓴 학자 중 한 명입니다. 유럽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 한국의 사회적경제를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해주시고 있는 고마운 분이죠.”

정태인 소장의 소개말에 에릭 비데 교수는 웃는 얼굴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프랑스와 한국의 사회적경제 성장 과정 등을 비교해보고, 한국의 사회적경제가 나아가야할 방향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산업혁명과 함께 시작한 프랑스의 사회적경제

에릭 비데 교수는 “프랑스에서는 사회적경제가 산업혁명이 일어났던 18세기에서 19세기 사이에 태동했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라며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나 상조연합 등이 사회적경제 조직의 원형”이라고 소개했다. 사회적경제라는 정식 용어는 없었지만 일상적인 경제활동에서 그 모습들을 속속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또한 경제학자 왈라스와 프랑스 소비협동조합의 이론적 지도자 샤를 지드의 학문적 연구를 바탕으로 그 내실은 더욱 탄탄해져갔다고 한다.

프랑스 사회적경제의 성장과정을 설명하는 르망 대학 에릭 비데 교수

그러면서 그는 “1970년대에 들어서는 본격적인 성장이 이뤄졌는데, 보험업과 은행업에 종사하는 부유층의 역할이 주효”했다고 전하면서 “그때를 기점으로 프랑스 내 사회적경제는 세 가지 조직으로 크게 구분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그 세 유형으로는 가장 보편적 형태인 협동조합과 한국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조직체, 상호공제조합 그리고 결사체 형태의 연합회가 있었다. 상호공제조합은 출자금을 바탕으로 위험에 처한 조합원을 돕는 조직체를 뜻했다.

1991년 이후로는 좌·우파를 따지지 않고 사회적경제의 중요성이 국가 차원에서 인정됐고, 미테랑 대통령 집권 시기에는 사회적경제 부처가 생기는 등 더욱더 활발해지는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다고 한다. 2006년에 프랑스 국립 통계청에서 실시한 사회적경제 지표가 이를 잘 보여줬다. 에릭 비데 교수는 “현재 총 2만 2천여 개의 사회적경제 조직이 활동하고 있고, 프랑스 전체 경제에서 사회적경제 기업이 1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농업, 금융, 보험, 보건, 건강, 스포츠 등 사회적경제 기업이 활약하는 산업군도 다양”하다고도 했다. 금융과 스포츠 산업은 특히 고용창출 측면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흐름은 유럽 전체로 이어져 현재는 유럽연합 기구 차원에서 사회적경제를 활발하게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사회연대경제법이 만들 프랑스 사회적경제

사회연대경제법이 가져온 긍정적 효과를 설명하고 있다.

2014년에 제정된 프랑스 사회연대경제법은 새로운 전기를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됐다. 에릭 비데 교수는 “법이 제정되면서 프랑스 대중들과 사회적경제가 만나는 접점이 늘었고, 사회적경제를 가리키는 대원칙도 명확해졌다”며 법률의 긍정적인 측면을 높이 샀다. 그 세 가지 원칙으로는 사회적경제 기업은 단순이익만 쫓으면 안 되며, 의사결정 구조가 참여를 보장한 민주적 운영이어야 하고, 기업 활동으로 발생한 이윤 중 일부는 사회유보금으로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에릭 비데 교수는 “사회연대경제법은 여타 영리기업들이 사회적경제 기업으로 전환하는 문의 폭을 넓혀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전통적인 사회적경제 기업뿐 아니라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원칙을 충족하는 기업이라면 사회적경제 기업으로 인정된다고 전했다. 그 결과 사회적경제의 분야와 범위가 넓어져 새로운 협업 관계를 발굴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2014년에 제정된 이 법률을 정확하게 판단하기에는 2년이라는 시간은 짧다”면서도 “노동자협동조합이 2년 새 육백 개 가까이 생겨난 점은 눈에 띄는 결과”라고 언급했다. 법 제정 이후 사회적경제를 담당하는 위원회도 두 곳이나 생겼다며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프랑스 사회적경제의 진화를 실감케 했다. 위원회는 정부차원의 국립사회적경제위원회와 사회적경제 기업들이 만든 사회적경제위원회 두 곳이었다.

사회적경제라는 단어 자체가 없던 한국

이야기는 한국의 사회적경제로 이어졌다. 에릭 비데 교수는 199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과의 인연을 언급했다.

에릭 비데 교수는 “사회학 박사 과정을 마치기 위해 주제 논문을 준비했는데, 그 주제가 ‘한국의 사회적경제’였다”며 “당시 한국은 사회적경제라는 단어자체를 생소해 했다”고 과거를 술회했다. 또한 그는 “사회적경제를 사회주의 경제로 착각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덧붙였다.

 

그가 90년대 한국에서 본 사회적경제는 영리기업과 운영방식이 같거나 관료주의적 성격을 띤 곳이 많았다고 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농협을 들었고, 참여연대는 당시 유럽에서 생각하던 사회적경제의 모습을 일정 부분 갖췄지만 경제조직으로 보기 어려운 한계가 있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에릭 비데 교수는 IMF 사태가 이러한 상황을 반전시켰다고 평가했다. IMF 이전부터 소비자생활협동조합과 자활기업 등의 형태로 사회적경제의 내실을 다지는 활동을 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반면, IMF 사태가 발생한 후 사회적경제에 대한 대중의 필요성이 증대해 사회적경제의 규모성장을 시작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에릭 비데 교수는 “출산율 저하와 인구 고령화, 가족해체 등으로 연대의 필요성이 부각했고,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과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은 대중이 사회적경제를 알게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에릭 비데 교수는 “협동조합이 이제는 한국경제에 새로운 주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만큼, 전통적인 사회적경제 기업과 새롭게 생겨나는 사회적경제 기업 간의 협력과 경쟁을 토대로 사회적경제가 커나갈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사회적경제가 세심히 신경써야할 부분도 빼놓지 않고 전했다.

성장한 한국의 사회적경제, 더 큰 성장을 위해선…

가장 먼저 그는 사회적경제 기업을 명확히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사회적경제 기업의 원칙을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언어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고, 이를 통해 지금도 존재하는 허울뿐인 협동조합을 걸러내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에릭 비데 교수는 한국 사회적경제 성장을 위한 조언들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사회적경제가 사회적 정의 실현에도 힘쓰는 만큼, 그 노력이 더 많은 곳에서 확인될 수 있도록 사회적경제 기업이 참여하는 산업군을 다각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정부와의 관계도 지적했는데,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통해 성장한 점은 인정하지만 사회적경제 기업에게 더 많은 자율성과 권한이 부여되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끝으로 사회적경제는 무엇보다도 시민사회가 가진 자산이 중요하다며 시민들의 지지와 지원을 이끄는 일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한 한 가지 방법으로 그는 프랑스에서는 개인이 사회적 목적을 가지고 운영되는 기업에 기부를 하면 면세되는 제도가 있는데 이를 참고해보길 권했다. 에릭 비데 교수는 “프랑스와 한국은 성장 속도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또한 사회적경제의 시작도 한국은 기업이 등장하고 법이 만들어졌다면, 프랑스는 그 반대로 진행됐다”고 진단하면서도 “미래를 가꾸는 노력은 한국과 프랑스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유기농 음식과 일자리 창출 그리고 사회적 금융 등 프랑스와 한국이 함께 성장해나갈 부분이 많다면서 양국의 더 많은 협력을 기대한다며 강연을 마쳤다.

조득신(벼리커뮤니케이션 소셜리포터)

 사진이우기(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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