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맞서 싸우는 작은 마을, 스페인 마리날레다
헬조선에서의 ‘위로’라면 이 위기를 어떻게든 이겨내고, 극복해낸 사례를 접할 때가 아닐까.
특히 경쟁과 돈으로 운영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체제에 맞선다는 것 자체가 ‘가능해?’라는 질문을 던지는 요즘, ‘세상에 맞선 마을’이라니,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주인공은 바로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마리날레다>라는 마을이다.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도시’, ‘사회주의 유토피아’ 그리고 ‘이상한 마을’로도 불리는 마리넬리다는 스페인에서도 유서 깊은 안달루시아 지방의 자치주 이름이자 주도인 세비야에서 100km 정도 떨어진, 인구 2700여명이 살고 있는 작은 도시다. 특이한 산업 시설이나 관광 자원 없이 올리브와 농작물을 기르는 이 작고 한적한 마리날레다 시로 스페인 전역과 세계의 눈길이 주목했다.
마리날레다가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산체스 고르디요라는 인물이 이 마을의 시장으로 선출되고 나서부터. 1979년 서른의 나이에 후안 마누엘 산체스 고르디요는 마리날레다에서 최초로 선출된 시장이 되었다.
고르디요 시장은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미래에 원하는 것을 지금 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내일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가 오늘 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가능해지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는 본보기가 됩니다. 정치를 하는 다른 방법, 경제를 하는 다른 방법, 함께 사는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 다른 사회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본보기 말입니다.”
스페인 역사에서 마을의 위치를 확고히 한 결정적 계기는 1980년 8월 지방 전역에서 일어난 파업을 배경으로 마리날레다가 ‘굶주린에 맞선 굶주림 투쟁’을 벌인 사건이다. 700명이 아흐레 동안 음식을 거부한 것이다. 고르디요는 “우리 투쟁은 사회 경제적 상황이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일어난다”라고 말했다. 1980년 여름은 진짜 절망적인 상태였는데, 가족당 200페세타(2유로도 안되는 돈)를 받았고 아이들이 먹을 것도 없이 이틀을 지내는 일이 흔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단식 투쟁에 들어가며 요구한 것은 ‘공동체 고용기금 (실업자들에게 공공 근로를 하게 해 돈을 주는 프로그램)을 올려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단기적 해결책이었고, 필요한 것은 바로 근본적인 토지 개혁이었다.
단식투쟁이 진행되면서 이웃 마을에서도 마리날레다 투쟁에 동조하는 단식 투쟁이 일어났고, 총파업과 농성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날이 지날수록 안달루시아 전역에서 더 많은 마을이 집회를 열고 행동과 점거, 시위를 고려했으며 상황이 절박해질수록 그 영향이 밖으로 퍼져 나갔다.
단식투쟁에 참가한 사람들이 의학적으로 위험해지면서 정치적 긴장감이 감돌았으며 마침내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었다. 1981년 4월에도 공동체 고용 기금이 부족한 것을 두고 또 한 번 단식투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노동자 315명이 단식 투쟁에 들어갔다. 1981년 첫 세 달 동안 실업자들은 1주일에 이틀치 임금에 해당하는 기금밖에 받지 못해, 그 수입으로 가족이 먹고살아야 했던 것이다.
결국 일이 없는 사람들에게 1주일에 나흘치 공동체 고용 기금을 지급하겠다는 확약을 받아냈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고르디요는 “안달루시아에 필요한 것은 소수의 지주에게는 부를 낳고 다수의 농업 노동자들에게는 빈곤과 실업, 절망을 낳는 농업 구조를 완전히 바꾸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그렇게 농업 구조를 조금씩 바꾸려고 계속 싸웠다. 80년 초반 내내 물 부족에 항의하는 시위가 있었고 고르디요와 몇 사람이 또다시 시의회 건물에서 농성을 벌이자 마을 사람들이 투표를 통해 단식 투쟁을 하기로 한다. 이렇게 며칠이 지나자 해결책이 나왔다.
마리날레다 사람들은 계속 싸워 한번에 하나씩 작은 승리를 얻어냈고 투쟁이 일어날 때마다 계속 참여했다. 농장과 건물 점거에도 참여하고 파업과 농성, 행진, 집회에도 참여했다.
1980년대에 100번도 넘게 우모소 농장을 점거했고 90일 동안 밤낮으로 그곳에서 야영한 적도 있다. 결국 1991년 결국 우모소 농장의 1200헥타르를 받아냈다. 그것은 역사적 승리였다. 5000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안달루시아 농업 노동자들이 마땅히 그들의 것이어야 할 땅을 받은 것이다.
1200헥타르 농장을 얻고 개간이 시작되자 마리날레다 협동조합은 인간의 노동력이 가장 많이 필요해 되도록 일자리를 많이 창출할 수 있는 농작물을 골랐다. 올리브 나무와 올리브유 가공 공장에 더해 다양한 종류의 피망과 아티초크, 누에콩, 깍지강낭콩, 브로콜리를 심었다. 이를 가공해 통조림을 만들고 마을에 가공 공장을 만들어 2차 산업을 일으키고 일자리를 늘렸다. 고르디요는 “우리의 목적은 이윤이 아니라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마리날레다 협동조합은 이윤을 분배하지 않는다. 잉여가 생기면 모두 재투자해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한다. 협동조합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봉급이 모두 똑같다. 하루에 여섯시간 반 일하고 47유로를 받는다. 많아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스페인 최저임금의 두 배가 넘는다. 언제 어떤 농작물을 기를지 결정할 때도 참여를 장려해, 마을 총회에서 초점이 된다. 이런 점에서 협동조합 조합원이라는 것은 마을 전체가 돌아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감동스러웠던 것은 소외되기 쉬운 일용 노동자들에 대한 관점인데, 한때는 일용 노동자들이 마을 경제에서 차지하는 몫이 없어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소외되었지만 지금은 앞장서라는 요청을 받는다고 한다. 조합원이 아니더라도 마을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삶에서 배제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승리에 만족하지 않고 1990년대에도 계속 ‘투쟁’했다. 문화 프로젝트 기금을 위해 싸우고, 주택 건설을 위해 싸우고, 안달루시아 전역에 있는 형제들을 위해 싸웠다. 중앙은행인 스페인 은행을 점거하고, 고속 열차인 AVE를 막아서고 말라가와 세비야의 국제공항에 쳐들어가고 단식 투쟁과 시위, 봉쇄도 했다.
2012년 8월. 괴짜 시장 고르디요는 새로운 수준의 악명을 얻었다.
군용지를 점거하고, 귀족의 궁전을 점령하고, 3주간 남부 전역을 행진하며 동료 시장들에게 빚을 갚지 말자고 하고, 농업노동자조합-안달루시아 노동자조합의 동료 조합원들과 함께 슈퍼마켓을 터는 행동을 주도하면서 악명은 절정에 이르렀다. 그들은 슈퍼마켓 행진에 들어가서 빵과 쌀, 올리브유 같은 생활필수품을 가지고 나와 끼니를 잇지 못하는 안달루시아 사람들을 위해 푸드 뱅크에 기부한다. 고르디요 시장은 ‘로빈 후드 시장’ ‘스페인 위기의 돈키호테’ ‘스페인의 윌리엄 월리스’로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고르디요 시장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이제는 이 당인지 다른 당인지 신경 쓰지 않아요.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체제로 바꾸는 것입니다. 노조와 정당, 단체는 다른 체제를 추구하고, 인간이 그 체제의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상품으로 여겨지고 있어요. 이익이 나면 사람을 쓰지만, 이익이 나지 않으면 버립니다. 우리는 이런 무자비하고 비인간적인 가치관을 바꾸어야 합니다. 나는 이것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마리날레다가 완벽한 ‘유토피아’나 모두가 따라 배워야 할 ‘모범’이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곳에는 온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땅과 마을을 관리하면서 그 속에서 더불어 일하며 살기를 원하는 ‘연대’와 ‘동지애’가 있다. 국가와 대지주에 맞서 단식 투쟁을 통해 땅을 얻어내고 경제 위기에 저항하기 위해 대형마트에서 식료품을 터는 등 함께 이겨낸 가슴 뭉클하고 잊을 수 없는 ‘경험’이 있다. 그러한 경험이 가능하게 한 데에는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가 살아 숨쉬는 주민 총회가 있었다. 이 연대와 경험으로 마리날레다는 원하는 것을 내일까지 기다리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사실 읽기에 매끄럽고 재미가 있어 속도가 붙는 책은 아니었다.
그래도, ‘세상에 맞서 싸우는’ 작은 마을의 경험에서 ‘우리도 해볼 수 있겠다’는 희망 하나 틔울 수 있다면, ‘우리도 해보자’며 주먹 한번 쥐어볼 수 있다면. 뻔하고 지는 데 익숙한 싸움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이기는’ 싸움을 그려보고 싶다면 마리날레다를 들여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