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여전히 시끄러운 한국 정치
매일 중요 이슈 다뤄도 뭔가 허전해
‘정치 훈수’ 담은 서적들 잇단 출간
민생, 민주주의, 노동 문제들 다뤄
“가계부채, 재벌 문제 시급” 주장부터
“민생, 경제민주화 먼저”란 목소리도
입에 풀칠도 못하게 하는 이들에게 고함 -가짜 민생 vs 진짜 민생
김동춘·김찬호·정태인·조국·손아람 지음/북콤마·1만5000원듣도 보도 못한 정치 –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의 유쾌한 실험
이진순 외 지음/문학동네·1만4500원일하지 않고 배불리 먹고 싶다 – 부채사회 해방선언
구리하라 야스시 지음, 서영인 옮김/서유재·1만3000원
나라가 시끄럽다. 사드 배치를 둘러싼 박근혜 정부의 행보도 걱정스럽고,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검찰 수사도 이상하기만 하다. 국가 안보 등과 관련된 중대 사안이니 시끄러운 게 당연하지만, 무언가 석연치 않다.
많이 시끄러우니 ‘정치 과잉’인 것 같은데, 우리네 살림살이와 노동과 같이 중요한 문제가 항상 빠져있으니 ‘정치 과소’인 것도 같다. 이런 헛갈리는 상황에서 정치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눌 책이 한꺼번에 나왔다. 각각 ‘민생’과 ‘민주주의’, ‘노동과 빚’을 조준했지만,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점에선 같은 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입에 풀칠도 못하게 하는 이들에게 고함>은 참여연대의 민생희망본부가 우리 시대의 다섯 지성을 찾아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를 책으로 묶은 것이다. ‘현장’을 누비는 활동가들인 만큼 민생 문제에 집중했고,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모두 아홉 차례 진행됐다. 각각 ‘민생과 정치’를 주제로 자신의 자리에서 진단과 대안으로 내놓고 있다.
정태인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의 진단이 눈길을 끈다. 최경환 부총리 경제팀은 2014~2016년의 1년 반 임기 동안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했고, 그 기간 가계부채는 120조원이 늘었다. ‘부채 주도 성장’으로 폭탄 돌리기와 다름없다고 일갈했다. 그 폭탄이 터지면 어찌 될까. 우리 정치가 제일 먼저 씨름해야 할 과제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특히, 정 소장이 “재벌은 저렇게 나가다 스스로 망하게 된다”고 한 대목이 흥미롭다. 살아남기 위해 기술혁신에 투자하지 않고, 손쉽게 돈 벌 수 있는 금융이나 유통 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면세점을 둘러싸고 대기업 간 경쟁이 치열했는데, 이게 우리나라 전체의 생산력 발전과 무슨 관련이 있느냐고도 했다. 재벌은 지금 망하는 지름길을 걷고 있다는 얘기다. 정 소장은 대기업의 하청 단가 후려치기를 막아 중소기업이 키우는 대안을 제시했다. 이 또한 정치가 풀어야 할 과제다.
대한민국 국회는 항상 시끄럽다. 민주주의에서 다툼은 당연하겠으나, 우리네 팍팍한 삶의 문제, ‘민생’이 저 곳 국회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민생, 민주주의 등에 대한 고민과 토론은 오늘도 계속된다. 사진은 안개 낀 국회 전경. <한겨레> 자료사진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야당과 민주화 운동 진영에 대한 고언을 쏟아냈다. 예전의 운동권 사람들한테는 민생을 해결할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대안이 없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민족해방이나 민중민주가 아니라 ‘민생민주’로 나아가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현시기 나라의 주인이 무엇 때문에 가장 고통받고 있는가. 바로 ‘민생’이다.” 특히, 야당이 노선과 관련해 ‘좌클릭’인가 ‘우클릭’인가 논쟁을 벌이는 것에 대해 “국민의 지지를 받으려면 ‘민생민주’의 지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좌클릭도 우클릭도 아닌 ‘저(低)클릭’을 해야 한다. 저클릭을 해야 비로소 민생이 보인다”고 했다. 이어 “정치민주화의 전선을 유지하면서도 경제민주화의 새로운 전선을 강하게 펼쳐야 한다. ‘두 개의 전선’이 필요하다”고도 덧붙였다. ‘민초’들이 정치권에 바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듣도 보도 못한 정치>는 한국의 대의제가 기득권 집단에 의해 독점된 ‘그들만의 리그’가 됐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반공 민주주의’와 ‘반독재 민주주의’를 앞세워 적대적 공생의 양당체제를 온존해왔다는 것이다.
이에 지은이들은 한국 정치에 대한 분석 대신 눈을 밖으로 돌려 유럽 쪽에서 진행 중인 새로운 정치실험을 구체적으로 살폈다. 시민 참여의 직접민주주의가 새롭게 도입되고 실험되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9~12월 다음카카오 스토리펀딩에서 같은 이름으로 연재했던 글을 대폭 보강해 책으로 엮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정치실험이 그 대표적 사례다. 지난해 5월, 그곳에선 풀뿌리 시민정당 ‘바르셀로나 엔 코무’가 득표율 1위를 기록했다. ‘모두의 바르셀로나’라는 뜻으로, 여러 시민단체와 신생 군소정당의 수평적 연대를 통해 구성된 선거연합이다. 이 선거를 통해 첫 여성 시장으로 뽑힌 아다 콜라우는 주거권 운동을 펼쳐온 시민단체 활동가 출신이다. 이 시민정당은 공약 작성과 우선순위 결정, 선거자금 모금 등을 모두 시민 참여 방식으로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적절히 활용했다. 선거 승리 이후에도 콜라우 시장은 자신의 모든 일정을 누리집에 공개하는 등 투명하고 수평적인 시정 운영을 선보이고 있다. 이어 이탈리아의 오성운동, 스페인의 포데모스, 아이슬란드의 해적당 등 유럽에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신생정당의 사례가 이어진다.
책의 나머지 절반은 ‘디지털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짚었다. 여러 형태의 ‘온라인 시민 플랫폼’이 만들어져 정보 공유와 토론, 집단행동을 위한 네트워크의 기반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뉴질랜드 청년들이 만든 ‘루미오’는 특정 사안에 대한 찬반 여론을 묻고 집계하는 간단한 프로그램이지만, 찬반 이유를 밝히고 재투표도 가능하게 함으로써 상호토론을 활성화했다. 또 지난해 미국에서 나온 ‘브리게이드’는 정치 전문 SNS로서,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따로 연결해 일상적인 정치적 실천을 모색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토론의 여지를 남긴다. 지은이는 “대의제의 한계를 직접민주주의의 확대로 보완”할 것을 강조했지만, 직접민주주의에도 반드시 ‘현실적 한계’가 따른다. 바르셀로나의 경우 선거공약 마련에 활발한 시민 참여가 있었다고 하지만, 참여자 규모는 5000명 수준이다. 그 도시의 인구는 150만명 안팎. 단순한 ‘시민 참여’와 ‘정당 참여’를 구분하는 것도 중요해 보인다.
<일하지 않고 배불리 먹고 싶다>는 직접 정치를 말하진 않는다. 대학 시간강사로 떠돌고 있는 ‘초라한 현실’에 대한 가벼운 촌평이 이어질 뿐이다. 그런데, 그게 당돌하고 간혹 번뜩인다.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무정부주의 관련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내공 덕분이리라.이를테면 지은이는 동일본대지진 와중에 어느 여성한테서 거북이 모양의 멜론빵을 선물 받고 연애를 시작한다. 2년 동안 연애는 이어져 결혼 준비도 함께했지만, 변변한 수입도 없이 책 보고 글 쓰는 일에만 매달리는 남자를 여자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고 싶은 일 같은 것만 해서는 안 돼. 하고 싶은 일만 하겠다니 다 큰 어른이 할 소리야, 그게?”
이에 지은이는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는다면 무슨 재미로 인생을 살아가느냐”고 되물었고, “어른은 모두 괴로운 일이 있어도 참고 돈을 벌고, 그것을 쓰는 것으로 보람을 느끼는 거야”라는 답변을 듣는다.
간혹 국가를 부정하는 듯한 주장 등에서 ‘너무 나간 것 같다’는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번 아웃’ 되는 노동을 지양하며 최소한으로 벌어 먹고 사는 삶의 방식을 고민하는 이야기에 공감이 가기도 한다. 이밖에 지은이가 혐한 시위에 반대하는 집회에 나가는 장면 등은 무척 반가울 것이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사진 북콤마·문학동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