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북 수재민 돕기를 긴급 제안한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새로운 ‘명예혁명’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12월 3일, 전국에서 타오른 323만 촛불은 단순히 박근혜 퇴진 뿐 아니라, 이 나라가 부패 없고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대한민국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거대한 시민혁명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시위 현장에 나온 한 여대생은 “최순실만을 위한 나라가 너무 부끄러워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유모차를 밀고 나온 어머니는 “우리 아이들은 나와 다른 나라에 살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국에서 농기계 수백대를 몰고 서울로 온 전국농민회총연맹의장 김영호는 전봉준 투쟁대장으로서, “썩어빠진 나라를 갈아엎고 새 씨앗을 뿌려 역사 농사를 짓기 위해서 왔다“고 했다.
우리는 부패한 권력을 청산하고 정의와 민주주의의 새 역사를 대한민국에 쓰려고 촛불을 들고 있다. 수구 정권과 언론의 ‘종북몰이’를 너머 시민들이 남북화해와 교류의 새 물꼬를 틀 수는 없을까. 풀뿌리 차원의 공생과 연대로 얼어붙은 남북에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이 나라를 바로 세우려는 촛불의 함성에 ‘한반도 평화’의 깃발을 포함시킬 수는 없을까.
이미 생명이 다한 박근혜 정부는 사드 배치를 서둘러 밀어붙였고,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에 조인하여 시대의 새로운 흐름을 정면으로 거슬렀다. 내년 1월 20일 취임할 트럼프의 미국을 세계인이 우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아베의 일본은 과거사에 대한 사죄도 없이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향해 착착 나아가고 있다. 사드 배치에 반발한 중국은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에 나서고 있다. 위기가 고조되는 동아시아 정세에서 박근혜 정부의 무책임하고 위험천만한 대결 정책을 무효화하고, 남북관계를 평화와 상생의 방향으로 새롭게 풀어가야 한다는 것은 엄중한 시대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지난 8월 29일부터 9월 2일까지 태풍 라이언록이 함경북도에 불어 닥쳤다. 사망자 133명, 실종자 395명 및 집이 4만채가 붕괴되었다고 보도되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UNOCHA)에 따르면 이재민들이 14만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이 지금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대략 60만 명에게 어떤 형태로든 지원이 필요한 상태라고 한다.
▲ 북한 조선중앙TV는 지난 9월 19일 태풍 라이언록으로 피해를 입은 함북도 회령시 피해복구 현장을 보도했다. ⓒ조선중앙TV 캡쳐) |
이제 11월 말, 함경북도 무산, 회령 지대 날씨는 영하 15°를 오르내리고 있다. 두만강도 꽁꽁 얼어붙었다.
지난 9월 21일 <노컷뉴스>에서 우리민족서로돕기 대표 인명진 목사는, 북한이 대북NGO단체를 통해 비공식적으로 컵 라면, 방에다 깔 비닐장판 등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그는 컵라면으로 핵을 만들겠느냐면서 사람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인도적 지원이 시급하다고 했다. NCCK는 지난 10월 시국선언문에서 북한 수해 복구 지원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과감하게 진행하자고 발표했다. 그리고 “적대적 대북정책에서 벗어나 민족 자주 원칙의 통일 협상을” 실시하자고 촉구했다. 그리고 국회의원들 73명이 북한 홍수 피해지역 어린이 돕기에 나섰다. 세비를 모아 방한복을 구입, 정부기관을 통해 전달하기로 했다. 북한의 수해 피해를 인도적으로 지원하는 것 또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국회의원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한다.
이 흐름에 우리 풀뿌리 시민들도 적극적으로 팔을 걷고 나서 보면 어떨까. 지금 전국에서 대한민국에 새 역사를 써 보자는 염원을 지닌 촛불 시민들이 힘껏 동참해보자는 제안이다. 전국의 촛불 광장에서 인도주의 정신으로 저마다 백원이고 천원이고 정성을 모아보자는 것이다. 돈을 얼마나 모으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참가하느냐가 이 제안의 관건이다. 사드는 남북 간 단절의 상징이다. 남북 간 대화가 진행될 때 북한의 핵 개발은 없었다. 이는 역사적 경험이다. 사드 배치문제로 온 지역민이 결사반대에 나선 성주, 김천, 원불교 신자들이 앞장 설 수 있다면, 더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가장 혐오하는 나라는 북한이며, “동포가 아니라 적“이라고 하는 20대가 선봉에 선다면 그 가치는 한결 더 소중할 것이다. 그리고 이 단초가 닫힌 개성공단을 다시 열자는 정치적 움직임으로 이어지길 희망한다. 나아가 남북 간 적대적 공생관계를 청산하는 한 계기를 우리 시대가 열어가길 희망한다.
곤경에 처한 친구를 돕는 이가 진짜 친구라고 했다. 장차 통일이 이루어졌을 때 2016년 수해와 한파로 북한 동포 수십만 명이 고생하고 있었을 때 남한 동포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하는 질문도 두렵다. 우리 후손들에게 어떻게 고개를 들 수 있을까. 반대로 예상하면 전쟁없는 장밋빛 세상이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이다. 촛불 광장의 시민들이 1만 명, 10만 명, 100만 명이 작은 정성을 모았다고 해보자. 만약 이 발선(發善)의 힘이 우리 사회에 전체에 도도하게 흘러넘친다면 그 누가 이 땅에 사드를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그러나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9월 19일 정례브리핑에서 북한 수해 지원 문제와 관련해 “북한의 (수해지원) 요청이 있다고 하더라도 현 상황에서는 수해 지원이 이뤄질 가능성은 좀 낮지 않은가 보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북한이 4차 핵실험(올해 1월 6일)으로 유엔 제재를 받고 있는 가운데 5차 핵실험(9월 9일)까지 강행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인도적 지원까지 거부하는 정부의 태도는 민간 차원의 지원도 매우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대만과 중국은 과거 냉전 대결 시대에도 서로 증오를 부추기는 일을 하지 않았다고 고 이영희 교수는 말했다. 대만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상호간에 증오를 부추기는 내용이 한 단원도 없다. 대만 정부가 비록 본토에서 쫓겨난 ‘피난민 정권’으로서, 중국 본토 공산당 정권에 패배한 원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라나는 세대의 교과서에 증오심이나 적개심을 일으킬 내용은 담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국 본토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대만으로 도망간 국민당과 그 지도자들을 인간적으로 매도하고 모독하는 단원은 들어있지 않았다. 지금 대만과 중국은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에 따르면, ‘사실상의 통일 상황’으로서, “서로의 차이점은 제쳐두고 공동이익을 추구한다는 구동존이(求同存異) 정신으로 경제우선 실용주의에 의해 최근 5~6년 사이 양안관계가 눈부시게 발전했다”고 한다. “왕래인원이 연 900만명에 이르며 8만 여개의 대만 기업이 중국에 진출해 있고 대륙에 상주하는 대만인도 2백만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 북한 조선중앙TV가 특별중대방송 형식으로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다고 밝힌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통일부에서 관계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뉴시스 |
우리에게도 소중한 일화가 있다. 2004년 정주영 회장이 김정일 전 국방위원회 위원장과 개성공단을 협의하던 당시의 이야기다. 정 회장이 물었다. “개성공단 이천만평이 완공이 되면 적어도 창원처럼 50만 공업도시가 되고,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만 35만 명에 달하는데, 개성 주변 인구가 30만밖에 되지 않잖습니까, 그러니 노동력 조달은 어떻게 하죠?” 김정일 위원장의 대답이 명쾌하다. “우리가 6.15도 했고, 8년이면 남북 관계도 발전했을 터이고, 그런데 남과 북에는 군대가 너무 많아요. 내가 인민군대 군복을 벗겨서 한 30만 명 공장에 넣겠습니다.” 남북 정규군의 수가 180만 명이다. 한국 군사비 지출 규모는 세계 8위로, 1년 약 400억 달러의 군사비를 지출하고 있다. 전 세계에 군사기지를 두고 있는 패권국가 미국은 인구 3억에 병력 총인원이 140만 명에 불과하다. 미국의 통일운동가 정형외과 전문의 오인동은 ‘세계 최대 비생산적 소모 인력이 남북한의 군대’라고 한다. ‘남북 연합방’으로 남북이 평화에 합의하면 병력을 각기 15만~20만으로 줄여 전역 장병을 산업인력으로 전환하자고 주창한다.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정치 아웃사이드가 제도권 미국 정치와 언론의 신랄한 비판과 예측을 완전히 뒤엎었다. 위대한 미국을 다시 건설하겠다는 트럼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뜻하는 ‘중궈멍’(中國夢)을 집권 이념으로 내세운 중국 주석 시진핑령과 첨예하게 부딪힌다. 지난 11월 19일 트럼프가 미국에서 대통령 당선 연설을 하던 그 시간, 시진핑은 TV 생중계로 우주 비행사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우주 굴기는 ‘팍스 시니카(Pax Sinica)란 야망의 상징이다. 이 적대적 국면에 일본의 아베 수상도 군사대국화의 길로 매진하고 있다. 그는 전쟁을 부인하는 평화헌법 9조를 해석개헌으로 개정했다. 자민당 정권의 오랜 숙원인 자위대의 해외 파병을 합법화하고 첨단 무기 수출과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도 에너지자원을 지렛대로 한 ‘강대국 러시아의 부활’을 추구해왔다. 우크라이나 분리 독립 사태로 EU와 미국의 가혹한 제재에 시달리고 있는 푸틴에겐 극동개발이 그의 정치적 명운을 건 프로젝트라고 한다. 거대 열강들의 국가주의와 보호무역주의가 한반도를 둘러싸고 격렬하게 충돌할 전망이다.
지금 한국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사실상 국정 마비 상태다. 대통령의 국기 문란과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으로 미증유의 위기 상황이다. 이 와중에 국방부는 11월 14일 ‘한일군사정보협정’(GSOMIA)에 가서명했다. 이 협정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다가 국민 여론의 저항에 부딪쳐 2012년 6월에 중단한 것이었다. 한편 7월 8일 사드를 성주에 배치한다는 한미 양국의 결정이 발표되었다. 국방부 장관이 국회에서 사드 배치는 아직 결정된 것 없다고 대답한 지 3일 만이었다. 외교부장관은 사드 배치 발표 당시 백화점에서 바지를 수선하고 있었다. 빈센트 브룩스 주한 미 사령관은 11월 4일 “8~10개월 안”이라고 목표 시점을 말하고 “괌 포대보다 큰 규모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부상에 대응, 아시아의 재균형을 선언한 미국 오바마 대통령. 댜오위다오(센카쿠)를 둘러싼 중 · 일 갈등,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북미 핵 갈등 등에서 패권적 지위를 잃지 않으려고 부심하고 있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로 국정마비 상태인 대한민국에 미국은 신속하게 한반도에의 사드 배치를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이참에 한미일 삼각동맹 체제를 더 견고하게 강화하고자 서두르고 있다.
▲ 개성공단 폐쇄 닷새째인 지난 2월 15일 오후 개성공단으로 향하는 파주 통일대교 앞이 바리게이트로 막혀 있다. ⓒ뉴시스 |
개성공단도 돌연 폐쇄되었다. 2013년 박근혜 정부는 “어떤 경우에도 개성공단은 정상 운영”이란 공약을 했던 터였다. 공단 입주기업들이 적어도 손실 8천억 원이란 막대한 피해를 입은 조치였지만 입주 기업들은 어떤 사전 협의도 없이 단지 2~ 3시간 전 통보를 받았다. 남북관계 최후의 보루로서 연평도 포격 등 남북 간 군사적 갈등이 첨예할 때에도 고수해왔던 게 개성공단이다. 개성공단 폐쇄나 사드의 성주 배치나 일본과의 ‘위안부’ 합의나 한결같이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가 부인해왔던 중차대한 조치들이다.
나라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경제, 군사, 역사적 사안들의 방향에 왜 이토록 갑자기 큰 변화가 일어났을까. 비선 실세로서 장‧차관 인사까지 사전에 통보받아온 최순실이 이런 사안들에 깊이 개입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왔다. 시사IN의 주진우 기자는 최순실이 2015년 말부터 사드 배치 얘기를 하고 다녔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최순실씨가 무기 로비스트 린다 김과 오랜 친분이 있는 관계라고 보도했다. 야권에서는 최씨가 7조 3천억원대 대형 사업인 차기 전투기(F-X)사업에 개입했을 의혹을 제기했다. 당초 2013년 9월 보잉사의 F-15SE를 낙점할 예정이었지만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록히드마틴의 F-35A를 단독으로 올려 기종이 결정되었다. 김관진 위원장은 당시 “차세대 전투기의 기종 선정은 ‘정무적으로 고려할 사안’”임을 강조했다고 한다. 사드 또한 록히드 마틴사의 제품이다. 대통령의 비선 실세의 개입으로만이 이 돌연 변화가 설명될 수 있는 게 국민들의 한탄과 분노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단절된 남북 관계. 경제학자 정태인은 남북 모두 정권유지에만 몰두하는 중 “남북이 나란히 망하고 있다”고 탄식한다. 북한은 살아남기 위한 전략으로 핵개발에 매달려왔고, 남한은 보수정권 9년 동안 경제 민주주의나 복지국가 건설을 위한 개혁은 후퇴만 거듭하면서 부동산에만 매달렸다고 비판했다. 특히 역대 대한민국의 권위주의 정권은 정권이 흔들릴 때마다 ‘종북몰이’와 ‘간첩 만들기’에 국력을 소진해왔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경우, 집권 초기부터 정권의 정당성이 위협받아온 권력이기에 그 현상은 더 두드러졌다. 뉴스타파의 영화 <자백>이 그 실상을 적나라하게 폭로했다.
98년 6월 16일, 84세의 정주영은 소떼 500마리를 끌고 판문점을 넘었다. 18살 때 부친이 소 판 돈 70원을 갖고 고향 통천을 가출한 빚을 이제야 갚는다는 명분이었다. 통 큰 기업가의 상상력이 남북 간에 한 물코를 텃다. 역사가 정태헌은 1998년 소떼 방북을 ‘21세기 한반도’ 대전환의 문을 연 메가이벤트라고 해방70년의 변곡점에서 썼다. 정주영이 보여준 그 날의 감동을 2016년 이 겨울에 우리 풀뿌리 시민들이 다시 되살릴 수는 없을까. 93년 2월 YS정권이 출범해서 “어느 동맹도 민족보다 나을 수 없다”란 취임사를 들었을 때 우리는 울컥했다. 6 ‧15 공동선언과 10 ‧4 남북 정상선언의 감동을 이 한겨울에 다시 체험하고 싶다. 군사주권을 남에게 맡기고 첨단무기를 사들이느라고 민생을 외면하는 초라한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니라 자존감 있는 국민으로 우뚝 서서 한민족 공동체를 열어보고 싶다.
김상균 성균관대 초빙교수(전 MBC PD)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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