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수출형 경제모델 한계…패러다임 바꿔야”
“이제는 서비스업 육성하고 소비가 성장 주도하게 해야”
“양적 성장에 대한 집착 버리고 내실 다져야” 지적도
【세종=뉴시스】이윤희 기자 = 한국경제가 길을 잃었다. 지난 60년간 우리를 떠받쳐온 성장의 공식들이 더이상 작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중심 수출 주도의 성장이 한계에 부닥쳐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계층간 격차 확대와 정규직 비정규직 등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굳어지면서 사회 전반의 양극화는 심해지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활력 저화로 성장잠재력이 침식되면서 저성장의 늪은 깊어지는 양상이다.
경제를 접근하는 사고방식을, 패러다임을 확 바꾸지 않으면 위기를 돌파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드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내수와 서비스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고, 가계소득 확대에 정책의 역량이 모아져야 하며, 질적인 성장에 힘 써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구조적인 위기다. 산업화 시대 이후의 경제 엔진이 앞으로는 작동하지 않는다”며 “수출과 재벌 중심의 성장에 제동이 걸리니 성장률이 2%대로 주저 앉았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패러다임을 바꿔야한다”며 “근본적인 구조개혁을 하지 않은면 한국 경제가 일본처럼 장기 불황으로 갈 것이라고 본다”고 우려했다.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는 “우리경제는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가 워싱턴 컨센서스를 받아들인 뒤 미국식 승자만능주의를 20년 넘게 제도화 했다”며 “그 결과 산업과 경제가 전반적으로 모두 양극화됐고, 노동시장도 이중구조가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정태인 칼폴라니연구소 소장은 “50년 가까이 우리나라의 경제전략은 대기업 위주의 수출이었다. 수출이 늘면서 대기업이 설비투자를 하고, 공장이 지어지면서 고용이 늘었다”며 “하지만 이제는 수출이 마이너스로 들어섰고, 한동안 그럴 것이다. 기존의 전략으로는 안된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경제 패러다임을 바꿔야한다는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특히, 산업화 시대부터 이어온 수출 주도형 경제모델을 내수 중심으로 개편해야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는다.
박 전 총재는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며 “가계소득과 소비, 이를 통한 내수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선성장 후복지’는 ‘성장·복지 병행’ 정책으로 바궈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수출 주도의 성장이 소비 주도의 성장으로 바꿔야 한다. 재벌 주도 경제는 가계 주도로 바꾸고, 대기업 소득 보호정책은 가계소득 보호정책으로 바꿔야한다”며 “소비가 경제성장을 주도하기 위해 가계소득과 복지를 늘려 빈부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과거에는 소비와 복지의 증가를 성장과 반대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분배와 성장이 같아지고, 복지와 성장이 같이가고, 빈부격차 해소와 성장이 같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 소장도 “거시정책으로는 내수를 늘리는 쪽으로 가야한다. 그렇게 해서 임금과 고용이 늘어나도록 해야한다”며 “가장 확실한 것은 분배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우리나라 양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데, 부자들은 한계소비성향이 굉장히 낮다”며 “분배정책을 통해 불평등을 해소하면 장기적으로 총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까지는 규제 완화를 통해 성장을 해보려 했는데, 이는 하늘에서 감이 떨어지길 입 벌리고 기다리는 것이다. 더 적극적인 정책을 펴야한다”며 “자본친화적인 정책 대신 노동에 대한 배분 몫을 늘려 구매력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는 시도를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성장률에 집착하지 말고 내실을 다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이제는 고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체제다. 양적 성장률 중심의 시각을 이제는 바꿔야 한다”며 “과거 한국 경제가 양적발전을 모색하는 시기였다면, 이제는 내부의 질적 발전을 도모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이것이 정치권에서 말하는 ‘공정성장’이나 ‘공평성장’일 수 있다. 내부 격차를 축소하는 방식으로 성장을 이루자는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경제적 부가 각계각층에 공평히 배분되고 소비되는 일종의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과거와 달리 경제와 복지를 통합적으로 생각해야한다”며 “경제와 복지가 있으면 한가운데 노동시장이 있다. 경제성장과 복지분배, 노동시장 세가지를 통합적으로 고려하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업 부분에서도 구조적인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도 “미래 산업혁명에 대비하는 한편 서비스 부분에서 새로운 동력을 찾는 노력을 지속해야한다”며 “지금도 방향은 많이 제시되고있지만, 이런 노력을 더 치열하고 적극적으로 수행해야한다”고 말했다.
정 소장은 “대기업의 기술혁신은 거의 한계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3세 경영체제가 되면서 이병철 회장의 반도체나 정주영 회장의 자동차와 달리, 면세점을 두고 재벌들끼리 피튀기는 싸움을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지금도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지원은 많지만, 중소기업의 혁신적 기술을 이끌어낼 네트워크와 인프라가 부족하다”며 “전기자동차를 타고싶어도 충전소가 없어 못타는 상황이다. 정부가 혁신기술을 위한 인프라를 지원해야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