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주자들에게 간절히 바란다. 어설픈 장밋빛 공약들을 내걸기 전에, 국가의 통치 구조를 어떻게 개조하고 새로 구축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과 전망을 내놓기를 바란다. 지금 대한민국의 국가는 심각한 기능부전에 빠져있다.
누가 어떤 세력이 권력을 잡든, 이 허리 부러진 국가를 제대로 고쳐놓지 않는다면 어떤 정책을 시행하든 유의미한 효과를 얻을 수 없을 것이며, 여러 가지 위기와 도전에 봉착한 한국 사회를 끌어 나가는 일도 불가능할 것이다.
통치 구조란 명쾌하게 정의하기 힘든 것이지만, 분명히 존재할 뿐만 아니라 현실에 결정적인 힘을 미치는 사회의 고갱이다. 여기에는 어떤 집단이 얼마나 권력을 독점하여 지배층을 이루고 있느냐는 권력 구조의 측면과 그들의 권력과 지배가 발현되고 관철되는 제도적 장치의 측면이 있으며, 말할 것도 없이 이 두 측면은 불가분으로 연결되어 있다.
산업사회의 통치 구조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방향은 지배층의 전횡을 막아내고 자유·평등·연대라는 민주주의 가치가 최대한 실현되면서, 또 사회 작동의 합리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나가면서, 이를 통해 중장기적으로 권력 구조까지 개조하여 권력을 독점한 집단을 해체해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사태는 지난 30년간 대한민국의 통치 구조는 그러한 방향을 제대로 걸어오지 못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우리는 민주화와 시장 자본주의의 도입이라는 이른바 ‘개혁’을 진행하면서 통치 구조의 제도적 측면을 바꾸어 갔지만, 그전까지 형성된 지배층의 독점적 권력 구조를 제대로 해체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결국 기존 지배층과 그 후손들은 민주화와 시장 자본주의를 자신들의 권력을 온존시키고 오히려 더욱 강화하는 수단으로 형해화해 버렸다.
박근혜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은 옛날 권력 집단의 2세·3세로서, 민주화된 정치 지형과 자본 시장을 중심으로 한 시장 경제의 새로운 환경에서 성공적으로 자기들의 권력을 구축하였고, 그 과정에서 청와대에서 문화체육관광부와 공정위와 검찰 국정원과 심지어 국민연금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온갖 제도와 기관들을 맘껏 농락하였다.
이는 결코 두 사람만의 비리가 아니며, 여기에 적극적·소극적으로 동조하고 복종한 무수한 권력 엘리트들의 집단적인 기풍이 여실히 드러난 집단적 비리이다. 대한민국의 통치 구조 전체가 온갖 크고 작은 모리배들과 사익 집단들의 노다지 놀이터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런저런 대선주자들이 내거는 아름다운 공약을 볼 때마다 반갑기는커녕 실소만 나오는 것이다. 이 혈맥과 경락이 마디마디 끊어져 버린 현재의 통치 구조를 정상화하지 않는 한, 누가 정권을 잡든 최순실은 또 나올 것이며, 영혼 없는 공무원들은 좀비 행각을 계속할 것이며, 일부 검찰과 국정원도 하던 대로 할 것이며, ‘공영’ 방송의 황당함도 계속될 것이며, 시장경제의 건전성 유지에 열쇠를 쥔 자들의 부정 또한 계속될 것이다. 경제를 살린다고 또 국민들의 복지와 삶의 질을 개선하겠다고 큰돈을 쓰며 큰 사업들을 벌이겠지만, 지난 30년간 이 왜곡된 통치 구조 속에서 진화하여 온갖 이익을 챙겨왔던 모리배들과 사익 집단의 ‘분배 동맹’은 그것을 자기들의 이익에 맞게 변형시키면서 알맹이를 다 뽑아갈 것이다.
매주 몇 십만의 촛불이 타오르는 지금도 대다수 국민의 지지와 희망을 한 몸에 받는 특검의 연장을 정부와 의회가 어떻게 훼방놓고 있는지가 그 생생한 증거이다.
무언가 세상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을 것처럼 여러 공약들을 쏟아 놓고 있지만,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오늘날의 사회와 경제 여러 문제들을 그러한 국가의 ‘한 방’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많지 않다.
국가 기구의 수장이 되겠다는 이들은 자기들이 분명히 할 수 있는 것부터 제대로 하라. 바로 자신들의 손에 들어온 국가 기구를 제대로 개조하여 통치 구조의 정상화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비정상의 정상화’이다. 이는 보수니 진보니 하는 한가한 이념 타령으로 되는 일도 아니며, 상큼해 보이는 정책을 예쁘게 모아놓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국가 기구의 어디가 어떻게 망가져, 어떻게 물이 새고 있는지를 정직하게 직시하고 그것을 바꾸기 위해 기존 권력 구조에 목숨을 걸고 도전하겠다는 결기를 보여라. 이번 대선이 국가 비상사태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정치인들도, 우리들도 잠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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